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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습 3: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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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고 즐거워하라 (습 3:14~17)

(습 3: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습 3:15) 여호와가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쫓아내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너의 중에 있으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습 3: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습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웃음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노만 카슨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유명한 '토요 리뷰'의 편집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러시아에 출장 갔다 오다가 희귀한 병인 '강직성 척수염'이라는 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이 병은 류머치스 관절염의 일종으로서, 뼈와 뼈 사이에 염증이 생기는 병으로 완치율이 낮은 편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나이 오십에 이 병으로 죽는다고 생각하니 원통하고 분했습니다. 
  
그때 그는 몬트리올 대학의 한수 셀 리가 지은 <삶의 스트레스>라는 책을 보게 되었답니다. 그는 책을 읽는 중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다.'라는 말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하, 가장 좋은 약은 마음의 즐거움에 있구나!'라고 생각하고는 '나는 오늘부터 웃어야지, 즐겁게 살아야지'라고 다짐하고 계속 웃었다고 합니다. 계속 웃으니 아픈 통증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어느 날 손가락 하나가 펴지게 되었답니다. "여보, 이게 웬일이에요? 당신 손가락이 펴지다니 이게 웬일이에요?" 부인과 아이들은 감격해 울었답니다. 그때부터 같이 웃으면 더 잘 펴진다는 말을 듣고 온 집안 식구들이 웃기 시작했더니, 몸이 점점 호전되어 완전히 나아버렸습니다. 
  
웃음으로 치료된 그는 너무 신기해서 하버드 대학을 찾아가고, 스탠포드 대학을 찾아가서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했습니다. 그의 소리를 들은 의과대학교수들은 처음에는 비웃었지만, 그의 끈질긴 설득으로 결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웃음에 대한 연구를 착수했습니다. 의사들은 연구를 하면 할수록 웃음에 대한 비밀을 알아갔고, 더구나 웃음의 치료효과, 영향력 등 놀랄만한 사실 수 백 가지를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그도 '토요 리뷰'의 편집인을 그만두고 의과대학 교수 밑에서 보조일을 시작하며 웃음 치료에 대한 연구를 하여 의과대학을 정식으로 다닌 사람이 아닌데 의과대학 교수가 되었답니다. 그 후 노만 카슨스는 미국 UCLA대학교에서 75세까지 웃음과 건강연구를 위해서 일생을 바쳤답니다. 노만 카슨스는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저서 <질병의 해부>에서 '웃음은 방탄조끼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세균, 병균, 바이러스도 웃는 사람에게는 들어갈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동경의대에서는 웃음이 우리 몸의 모든 계통에 좋은 영향을 주어 불치의 병도 다 고칠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웃음은 신경계에 영향을 주어 신체 전 기관의 긴장을 완화시켜서 암환자의 통증을 경감시킨다고 합니다. 그리고 웃음은 호흡기에는 산소공급이 두 배나 증가되게 하여서 머리도 좋아지게 한다고 합니다. 소화기에는 기분이 좋을 때 소화호르몬이 촉진되어 음식물의 소화를 돕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는 웃는 이야기를 하라고 합니다.  근육계도 웃으면 우리 몸의 650개의 근육 중에 231개가 움직인다고 합니다. 얼굴 근육은 15개가 움직인다고 합니다. 내분비계는 혈액 내에 아드레날린과 스트레스호르몬인 코티졸의 양을 확 줄여준다고 합니다. 웃으면 세포도 증가된다고 합니다.
  
신약성경은 신앙인의 3대 실천 강령을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라고 말씀합니다. 그 중 첫 번째는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도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잠 17:22)"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기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원리이며 명확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기력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정복하여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정복자들은 이스라엘의 저항을 약화시키려고 이방인들을 이스라엘땅에 이주시켜 섞여 살게 했는데 그들이 예루살렘에서 태양신 숭배, 바알과 아세라 숭배, 강신술등의 우상 숭배를 하였습니다. 그 영향이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뇌물에 의해 판결이 기울고, 매춘 등이 난무하며 도덕적, 종교적인 부패로 인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각한 부도덕에 빠져, 절망 상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지도자들은 나라를 바로 세우려는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자신들의 유익만을 따라 움직이고 희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부정적이고 좌절된 생각으로 손을 늘어뜨리고 주어진 현실을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스바냐 선지자를 보내어 위로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기쁘게 노래하라."  "온 맘을 다해 기뻐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라." 눈에 보여지는 현실이 어둡고, 답답하고, 불안하게 생각되어도 우울한 감정에 사로잡히면 안됩니다.  사단에게 속습니다. 믿음의 눈을 크게 떠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기쁨으로 충만케 유지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쁜 마음으로 나아와 예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늘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함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나아갈 근거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이 함께 계시며 우리의 죄를 사하셨기 때문입니다(15).
  
우리가 살아가면서 왜 위축됩니까?  죄의식과 죄책감 때문입니다. 죄의 형벌이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지 못했으며, 양심대로 떳떳하게 살지 못했다고 하는 죄의식이 우리를 종종 괴롭힙니다. 또는 '어차피 온전하게 못살 인생인데!' 하는 생각이 자포자기하게 하고 새롭게 살아보고자 하는 의욕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또 누군가가 우리 귀에 '너는 어쩔 수 없어, 어차피 버린 인생'이라고 속삭입니다.  '이대로 살다가 죽지.' 하는 무기력한 생각에 지배를 받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형벌을 제거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화해의 초청장(사1:18)을 내밀고 우리를 용서하시고 계십니다.  2000년전 이 땅에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우리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완전하게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다시 하나님께 축복을 받고 은총을 받아 누리며 힘있게 살 수 있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제가 군대생활을 거의 마쳐갈 무렵이었습니다. 제대를 앞두고 작업을 하거나 훈련을 하다가 다칠까봐 부대에서는 배려로 초소에 보초근무를 하도록 해주었습니다. 매일 지나는 사람도 별로 없는 초소에서 총을 들고 서있으려니 무료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한 권들고 가서 총을 어깨에 맨채 주위를 틈틈히 살피며 서서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책에 빠져 주위 경계를 잠시 소홀히 한 그 순간 대대장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힘찬 경례소리가 날텐데 이상하다 싶어 가까이 다가가보니 초병이 독서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책을 빼앗기고 이름을 적힌 후 책망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영창갈 각오를 하라는 말을 남기고 갔습니다. 큰 걱정이 되었습니다. '영창에 가면 호적에 빨간 줄이 남고 헌병들이 엄청 괴롭힌다는데 어떻게 견뎌내나..' 몹시 두렵고 불안했습니다. 

다음 날 포대장에 호출받아 속으로 '이제 영창에 가게 되나보다.'하고 생각하며 갔더니 포대장님이 부드럽게 책망하시며 '부대에서 모범적인 신실한 병사인데 한 번 실수 한것 같습니다. 제대할 날을 얼마 남겨 두지 않았는데 영창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용서해주시면 잘 타이르겠습니다.'하고 말씀드려 용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기쁘든지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이처럼 작은 실수를 용서받아도 기쁘고 감사한데 하나님께 우리의 지나온 모든 죄를 다 용서받았는데 기쁘지 않습니까? 우리 힘으로 돌이킬 수 없는 그 많은 허물과 잘못을 다 용서받았는데 어찌 즐겁지 않습니까?    
  
여러분, 왜 손을 늘어뜨리고 걷습니까?  여러분, 왜 근심과 불안에 눌려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정결하고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안에서 우리앞에 새롭고 복된 삶을 가져다 주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기 바랍니다.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17절).
  
우리의 삶이 무기력해지는 이유는 사랑을 잃어버리고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때대로 말할 수 없는 고독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고아처럼 버려지고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팽개쳐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곤이 마구 몰려옵니다. 그 이유는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는 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부부간에도 사랑이 식은 것 같고, 자녀들도, 부모님도 나에게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친구도 멀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우울해집니다.  

저도 가끔 그런 순간이 찾아옵니다. 자녀들도 다 성장해서 제 일 감당하기 벅차서 무관심하게 되고 아내도 예전같지 않다고 느껴지고 교인들도 아무도 나를 좋아하는 이가 없다는 생각이 밀려오면 힘이 빠집니다. 의욕도, 열정도 사라집니다.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종종 그런 부정적인 생각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어제는 옛날 우리 교인이었다가 20년 전에 멀리 이사간 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무리 다녀보아도 우리 교회같이 좋은 교회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러자 아내가 "그렇게 말하는 교인들이 많아요. 그렇지만 남아있는 교인이 그렇게 생각해야지 떠나고나서 그렇게 여기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떠나고나서라도 잊지 않고 귀하게 여기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오니 감사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하나님께 별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뭐 나같은 것을 관심이나 가지시겠어?'하고 말합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에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하십니다.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기쁨을 참을래야 참을 수 없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사랑의 감정을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을만큼 강렬하게 사랑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보통은 사랑해도 그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속에만 담아둘 수 있습니다. 보통은 즐겁고 기뻐도 절제하고 마음에만 담아 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좋고 사랑스러우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웃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처럼 감출 수 없는 큰 사랑으로 우리를 기뻐하시고 정말로 사랑하십니다.  어쩌면 모든 문제는 사랑이 적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사랑이 충분히 부어지지 못하기에 우울증에 걸립니다. 사랑이 부족하기에 자살합니다. 사랑이 부족하기에 스스로 불행하게 여겨집니다. 사랑이 부족하기에 방황합니다. 사랑을 느낄 수 없고, 사랑을 확인할 길이 없어지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변하고 맙니다. 사랑이 모두 아름답지만 그중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비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를 생각하실 때마다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이름을 부르실 때 마다 즐거워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삭개오라고 하는 분은 세상에서 웃음을, 기쁨을 찾으려고 했지만 그는 기쁨이 없었습니다. 지위도 높고 흔히 그렇게들 말합니다. 높고 많이 가지고 잘되면 기쁨이 오는 줄 알지만 삭개오는 다 가졌지만 기쁨이 없었습니다. 어디서 기쁨을 찾았습니까? 주 예수에게서, 그를 만나면서 삭개오는 춤추며 주님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가정에 기쁨이 찾아 왔습니다. 즐거움이 감사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므로 기쁨은 하나님의 선물이고 하나님과 만남에서 그의 품안에서 얻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은 그의 품안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신 만 가지 은혜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참 기쁨이 아닙니다. 잠깐의 기쁨 뒤에는 쓰나미같은 새로운 태풍이 몰아쳐서 그 기쁨을 다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유럽의 격언에도 "5분 동안 기뻐하고 30년 슬퍼할 수밖에 없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너무나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 큰 기쁨을 드리는 귀한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도 기뻐하고 즐거워합시다. 우리의 상황이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기억하며 능동적으로 감사하며 기뻐하십시다. 모든 삶속에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할수록 하나님께서 만족해하심을 깨닫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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