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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행복한 가정 (시1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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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 (시128:1~6)

1852년 4월10일, 미국의 한 시민이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사망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후, 미국 정부는 군함을 보내어 그 유해를 미국으로 가져오기로 결정했다. 그의 유해가 뉴욕항에 도착하는 날, 수 많은 인파가 몰려왔다. 대통령, 국무위원들, 뉴욕시장이 유해를 맞이 하기 위해 도열해 서 있었다. 

이 주인공은 위대한 정치가도, 외교가도 군인도 아니었다.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런데 그가 이와 같은 환영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작사했던 한 곡의 노랫말 때문이었다. 이 노래는 미국인들로 하여금 가정에 대한 위대한 가치를 일깨우는 노래가 되었다고 한다. 

1862년 남북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버지니아의 레파하녹크 강 전투에서 양쪽 진영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낮에는 전투를 하고 밤이 되면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서 양쪽의 군악대는 매일 밤 군가를 연주했는데 어느 날 밤 이변이 일어났다. 북군의 군악대가 아주 특이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 멜로디는 바람을 타고 울려 퍼졌다. 그 순간 그리운 가족이나 연인에게 편지를 쓰고 있던 군인들은 사무친 그리움에 텐트 밖으로 나와서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멜로디는 강 건너 편에 있던 남부군 진영에도 울려 퍼졌다. 남부군 군악대도 덩달아서 이 음악을 연주하고 남부군도 다 함께 합창했다. 그리고 그들은 상대방이 적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강으로 뛰어나와서 서로를 얼싸안고 모자를 하늘로 높이 던져 올리며 환호했다고 한다. 그 다음 날 하루는 휴전했다고 한다. 그 가사의 내용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 뿐이리 .”

이 노래의 작사가는 미국의 기자겸 극작가 존 하워드 페인이란 사람이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평생에 가정을 가져 보지 못하고 타국에서 쓸쓸히 생을 마쳤다고 한다. 가정을 그리워 하면서...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로버트 죠지 웰즈는 가정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요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다. 가정은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으며,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사랑받는 곳이다. Hebert.George 웰즈

우리는 존 하워드 페인의 “홈 스위트 홈”의 노랫말을 떠올리지 않아도 가정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가정의 현실은 점점 더 불안한 상태로 발전해 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높아지는 이혼율, 가족 간의 갈등, 유아 납치, 성폭력등 각종 범죄로 인해 행복해야 할 가정이 점점 위협을 받고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 

이와 같은 위기적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가정을 안전하게 지키며 행복한 가정을 이뤄갈 수 있는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시편 128편을 통해서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한다. 오늘 본문에서 시편 기자는 행복한 가정의 아름다운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다면 행복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을 말하는가? 


1.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시 128: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러분! 인간의 불행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시작되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하나님을 섬기도록 지음 받았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 대신 섬겨야 할 다른 신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생겨난 불행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애썼다. 그 노력의 소산물이 바로 맘몬이라는 물질신이다. 돈이 인간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어떤 가난한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다가 그물에 커다란 금덩어리를 건져 올렸다. 그런데 금 덩어리를 건져 올린 그날부터 집 안에 도둑이 들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사람까지 다치게 되었다. 병원에 갔더니 돈에 욕심이 생긴 의사가 상처를 악화시켜 더 고생하게 되었다. 이 어부는 고민하다가 다시 금 덩어리를 강에다 던져 버렸다고 한다. 

재물이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재물에 대하여 이렇게 경고하였다.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양다리 걸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경고하셨다.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면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오늘 본문 1절의 말씀대로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경외함 - 하나님을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
(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2)순종함 -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행복한 가정의 출발은 가정이라는 기관을 처음 만드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외함이 참된 섬김이 되기 위해서 주의 말씀 앞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 우선주의 하나님 중심주의로 살기로 결단해야 한다. 적당주의로 믿으려 말고 적극적으로 섬기라. 온 가정이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다. 


2.수고의 떡을 먹는 가정

(시 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현대인들은 경제 원리에 대단히 민감하다. 적게 투자해서 많이 벌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네가 일한 것 만큼 거둬들이는 것이 복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적게 일한 사람이 분에 넘치게 많이 받았을 때 “운이 좋다” “땡 잡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한 두 번으로 족해야지 계속 그것을 바라면 그 사람은 성공하기가 어렵다. 왜 그런가? 그는 계속 운을 바라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는다. 결국 한 두 번의 운이 그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복권, 도박, 증권등으로 재산을 증식하려는 태도는 성경적이지 않다.

어떤 집사님이 퇴직을 했다. 퇴직금과 융자한 돈을 투자해서 양계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태풍이 불어 닥치면서 축사가 물에 잠기고 닭들이 다 죽고 말았다. 그는 일순간에 빚더미에 올라 앉고 말았다. 흔치 않은 일이지만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수고의 댓가를 얻지 못할 때 낙심하게 되고 원망하게 된다. 믿는 사람에게도 이런 어려움이 닥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자신이 땀 흘린대로 수고의 댓가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요 감사한 일인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소중함을 잊고 산다. 

(시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시 127:2)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돈 줄은 하나님이 쥐고 계신다. 하나님은 만물의 소유주가 되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그 분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분이시며, 참새 한 마리도 허락지 않으시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종로2가에 가면 YMCA 건물이 있다. 미국의 백화점왕 '존 워너메이커'라는 사람이 헌금해서 지어진 건물이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진정으로 우리의 땀의 댓가를 누리기 원하는가? 전심으로 하나님 사랑하기를 힘쓰라. 그리고 그 말씀 앞에 순종하라. 그리하면 우리의 땀의 댓가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채워 주실 것이다.”

요행이나 불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 먼저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도에 순종하는 자가 복 있는 자다. 조급한 생각을 버리고 꾸준히 땀을 흘리라.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다. 
수고의 댓가를 먹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다.


3.사랑의 관계가 있는 가정

(시 128:3)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1)아내의 모습
아내의 모습을 결실한 포도나무에 비유하고 있다. 포도나무는 관상수가 아니다. 화목으로도 적합지 않다. 포도나무에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열매다. 

(겔 15:1)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겔 15:2) 인자야 포도나무가 모든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랴 삼림 중 여러 나무 가운데 있는 그 포도나무 가지가 나은 것이 무엇이랴

결실한 포도나무란? 조용히 남편을 내조하며 가정의 제반 일을 훌륭하게 담당하는 가정주부의 모습과 자녀를 잘 양육하는 어진 어머니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그런데 결실한 포도나무의 모습 뒤엔 성실한 남편의 사랑의 공급이 있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된다. 

어제 아침 우리 교회 홈페이지 박인희 코너에 올라온 글을 읽고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평생 맹인으로 살던 최 씨가 병원을 찾았다. 어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한 채 횐 머리가 난 지금까지 살아오다가 혹시나 하고 병원을 찾아가서 의사선생님께 "제소원은 이 세상 모든 사물을 제 눈으로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선생님 가능할까요? "

의사선생님 고개를 끄덕이며 "물론입니다." "요즘 의술이 좋아서 검사 결과 나오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후 며칠 후 연락이 왔다.
"기뻐하세요! 수술하면 눈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내일이라도 빨리 오세요! "

최 씨는 마음이 설레었다. 지금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최 씨는 병원에 가지않았다. 수술비가 없어서도 아니고 시력을 되찾는 게 싫어서도 아니다. 아내가 걸려서였다.

스무 살 때 지금에 아내를 만났다. 물론 그 당시도 최 씨는 눈이 보이지 않았고 누가 나 같은 사람이랑 결혼을 하겠어? 난 차라리 이 세상에 태여나지 않았어야 했어 최 씨는 절망 속에 하루하루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한 여인이 다가왔습니다. 그녀가 지금에 아내였습니다.
"미영씨! 저와 결혼해주세요. 비록 전 눈이 보이지 않지만 평생 마음에 눈으로 당신을 보살피고 사랑할께요."
미영 : 저도 그러고 싶지만...
최씨 : 제가 싫으신가요?
미영 : 아니에요 사실은 제 얼굴이 흉터로 가득해요. 어릴 때 뜨거운 물에 데어서 화상을 입었 거든요.
그런 사연이 있었던 부부였었다. 최 씨는 다음 날 병원에 가서 수술을 포기 하겠다고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무서워서 그러시나요?”
“그게 아닙니다.”

최 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에게 화상을 입은 아내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두 눈을 얻게 되면 아내의 흉칙한 얼굴을 보게 되겠지요? 그러면 분명 아내의 마음은 편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수술을 포기 하는 겁니다. 다소 불편하지만 그냥 남은 인생도 맹인으로 지내겠습니다.“

의사도 최 씨에 말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나보다 상대를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 그 것이 사랑의 출발인 것입니다. 

부부는 가정의 핵심이다. 군림하거나 지배하려는 것은 가정의 행복을 깨뜨리는 원인이 된다. 아내에 대한 배려, 남편에 대한 존중이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2)자녀들
자녀들은 어린 감람나무에 비유하고 있다. 현숙한 아내와 사랑스런 자녀들이 함께 한 상에 둘러 앉아 식사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감람나무에서는 올리브유를 얻을 수 있다. 어두움을 비추는 연료가 되며, 요즘에 가장 인기 있는 식용유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감람나무는 장수하는 나무 중의 하나다. 1000년 이상 산다고 한다.

“어린 감람나무”란, 자녀들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자랄 것인가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장차 세상의 어두움을 밝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인재로 쓰임 받게 될 것이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자녀들과 함께 한 상에 둘러 앉아 있는 모습 속에서 세대 간의 화합과 교제가 잘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잠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잠 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부자되려고 애쓰기 전에 부부 간의 사랑, 부모와 자녀들 간의 사랑의 관계가 잘 형성되어 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다. 


4.신령한 은혜가 이어지는 가정

(시 128: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시 128: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5절에,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 - 시온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장소”를 가리킨다. “예루살렘”은 -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 - 교회를 가리킨다. 

“시온에서 복을 주신다.” “네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란 말씀은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공급되는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성도는 자신의 특별한 이익에 전념하지 말고 하나님의 교회가 형통하는 것 보는 것을 제일의 소원으로 가져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가정의 행복은 교회 공동체와 직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종종 교회를 옮기는 분들의 고민을 듣게 된다. 정당한 이유가 있어서 옮길 때는 문제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섬기던 교회가 문제가 생겨 떠날 경우 큰 상처를 입게 되고 그 후유증이 오래 남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래서 박윤선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다.
“성도는 그가 속한 교회가 복을 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교회가 은혜롭고 건강하면 그 은혜를 받는 성도들도 당연히 복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자연스럽게 교회라는 은혜 공동체 안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이다. 교우 여러분들에게 권면드린다. 교회의 손님이나 구경꾼이 되지 말라. 교회를 세우기 위해 적극 참여하길 바란다. 교회를 통하여 흐르는 은혜의 물줄기를 마음껏 들이킬 수 있도록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라.

어느 교회 저녁 예배에서 가족 찬양 - 4대 20여명이 나와서 악기를 들고 찬양하는 모습이 신문에 실린 적이 있었다. 장수하며 자녀들이 믿음 안에서 자라는 모습은 노년의 큰 기쁨이다. 일생을 충실하게 하나님 경외하는 일에 힘쓰며 성실히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면 자손들이 믿음의 유업을 이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멀리 있지 않다. 오늘 말씀을 비추어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보충하고 잘 안되는 부분이 있으면 고치도록 결단하기 바란다. 

1)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 여호수아처럼 가족들이 함께 하나님을 열심히 경외하기를 선포하고 확실한 신앙생활을 결단하기 바란다. 

2)땀의 수고를 먹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다. 일확천금, 한탕주의를 노리지 말고 작은 일에 충성하고 진실되고 성실하게 땀의 댓가를 받으라.

3)가족들 간에 사랑이 흐르도록 서로 용서하고 품어주어야 한다. 
물질적 풍요가 행복한 가정이 아니라 가족 간에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다.

4)시온의 복, 곧 신령한 복을 누리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당대만 은혜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이 더욱 열심히 섬기고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도록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 주어야 한다. 

행복한 가정,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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