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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와 은사 (고전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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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와 은사 (고전 1:4~9)

  영국에서 열린 비교 종교학 회의에서 세계 각국 전문가들이 기독교 신앙의 특성을 찾아 토론에 들어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사건이 기독교의 특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독교의 특성은 부활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저런 주장으로 토론이 길어지고 있는데 C.S 루이스 교수가 방을 잘못 찾아 들어왔습니다. 뜨겁게 토론하는 그들에게 ‘토론 주제가 뭡니까?’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토론자들은 전 세계 종교 중 기독교만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찾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루이스 교수는 ‘그거야 쉽죠. 은혜 아닙니까?’라고 말했습니다. 

  토론자들은 열띤 토론 후에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 ‘은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불교는 고행을 말합니다. 힌두교는 업보를 말합니다. 유대교는 언약을 말합니다. 이슬림교는 법전을 말합니다. 이들은 모두 인간의 노력으로 인정받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을 말하는 것은 기독교뿐입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음을 고백한 예수님의 제자가 있습니다. 마태입니다. 그의 직업은 세리였습니다. 예수님 당시 세리들은 법의 묵인 아래 많은 백성들의 재산을 착취하였습니다. 세리들은 백성들로부터 착취한 돈으로 고리대금업을 하며 재산을 불리는데 혈안이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리는 죄인과 창기들과 같이 전혀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천민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세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았던 마태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새사람이 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마태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입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그에게 마태라는 이름을 지어 주신듯 싶습니다. 마태는 일생 동안 자기 이름을 기록할 때 마태라는 이름 앞에 꼭 ‘세리’라는 단어를 붙여 ‘세리 마태’라고 기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신의 추한 과거를 숨기고 싶은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인데 도리어 마태는 자신의 추한 과거의 삶을 대변하는 ‘세리’라는 직업을 밝혔습니다. 마태는 이를 통해 자신은 죄인 중의 죄인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마태는 자신의 이름 앞에 세리라는 단어는 붙임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은혜란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일방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도서 3장 5절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치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긍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긍휼은 은혜의 다른 표현입니다. 저주받아 마땅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저주가 아닌 사랑을 베푸심이 은혜이고, 긍휼입니다. 

  한번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간음한 여인을 현장에서 잡아 예수님께 데려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이 여인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율법대로 돌로 쳐 죽이라고 말하면 예수님께서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자신의 말씀을 뒤집는 것이 됩니다. 반대로 여인을 용서하라고 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사람들은 이런 묘한 상황을 만들어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 넣고자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허리를 굽히시고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을 향해 ‘죄없는 사람이 돌을 들어 이 여인을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었던 돌을 내려 놓고는 한 사람, 두 사람 돌아갔습니다. 모두가 돌아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여인을 향해 ‘너를 고소하던 사람들이 다 어디 있느냐?’ 여인이 ‘주여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여인을 향해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건에서 사람들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중심으로 ‘의인과 죄인’으로 구분 하며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건에서 ‘의인과 죄인’으로 구분하신 것이 아니라 ‘죄를 인정하는 죄인과 죄를 부정하는 죄인’으로 구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사함을 받기 위해 두 손을 벌리는 사람의 손을 붙잡아 주십니다. 죄인임을 고백하며 두 손을 벌리는 행동을 기독교 용어로 ‘회개’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향해 죄의 크고 작음을 따지지 않으시고 그들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시며 하나님의 품에 안아 주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빼고는 교회를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 교회가 세상 사람들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기 보다 도덕과 의로움을 먼저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모든 죄인들을 향해 초대하시는데 교회는 사람들을 향해 죄를 다 청산하고 교회에 오라고 제한할 때가 있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면 은혜를 느끼기 보다 의를 주장하는 사람들로 인해 도리어 더 비참함을 느끼게 됩니다. 

  바울은 본문 4절에서 고린도교회의 시작이 하나님의 은혜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사말을 통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 되었음을 이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고백합시다. 행복한교회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가 세워졌음을 우리 모두가 고백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되었듯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향해 열려진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며 그들을 품는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과 교회로서 향기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하나님께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많은 은사를 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본문에 ‘은사’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은사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카리스마’입니다.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여 부름 받은 은혜를 ‘카리스’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도록 하기 위해 주신 능력과 역할, 직책을 주신 것을 은사 즉 ‘카리스마’라고 합니다. 은혜라는 ‘카리스’와 은사인 ‘카리스마’는 같은 단어의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세속적인 의미와 혼동합니다.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처음 세속적인 의미로 처음 사용한 사람은 독일의 유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입니다. 그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했습니다. 그가 사용한 카리스마라는 단어에는 신학적인 의미가 전혀 없었습니다. 사회학자들이 사용하는 카리스마는 히틀러, 스탈린, 달라이 라마와 같은 사람들이 강력한 힘으로 대중들을 이끄는 힘을 말할 때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카리스마는 세상에서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카리스마와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카리스마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섬김’의 정신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은사에 대한 구체적인 것은 고린도전서 12장을 다루면서 자세히 말씀 드리겠습니다만 은사에는 우열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는 우리들의 성격에 맞게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역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각각의 힘과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은사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그러기에 서로의 은사가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 카리스마가 있다’라는 말이 기독교적인 의미와 세속적인 의미와 구분이 되어야 합니다. 기독교적인 카리스마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가지고 성숙하게 섬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언과 신유의 은사를 가지고 섬기는 사람에게 카리스마가 있다면 온유와 긍휼의 은사를 가지고 이웃을 섬기는 사람도 카리스마가 있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사람이 말씀을 잘 가르치면 카리스마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영적이라고 말하면 신비하고 방언하고 예언하고 하는 것만을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영적인 것은 하나님의 정신과 뜻을따라 섬기는 삶을 말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도 영적이지만 주신 은사를 가지고 주방봉사하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성가대에서 찬양하는 것도 영적입니다. 저는 우리 행복한교회 성도들 모두가 카리스마가 있는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각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개발해서 서로를 존중히 여기고 합력해서 선을 이루는 성숙한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에베소서 4장 12절에서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통해 은사를 주신 목적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첫째는 성도를 온전케 하신입니다. 성도 개개인을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일꾼으로 성숙하게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둘째는 봉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은사는 자신의 신앙의 성숙한 성장을 위해 필요하지만 다른 사람을 세우는 일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은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은사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사용됩니다. 

  은사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다양성과 통일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많은 일꾼들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양한 은사가 각 자의 활동 영역을 주장하면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일과 하나님의 영광을 중심으로 통일성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질서를 무시하는 은사는 제대로 된 은사가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을 높이는데 사용되는 은사는 거짓 은사입니다.  

  우리 행복한교회가 지난 주에 창립 3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4주년을 향해 걸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행복한교회 공동체를 성숙한 믿음의 공동체로 세우기 위해 성령 안에서 각 자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충성스럽게 섬기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교회를 중심으로 성령님을 통해 각각 받은 은사를 가지고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시고 예비하신 은혜를 누리는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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