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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벨탑 사건 (창 11:1-9)

첨부 1


규장문화사에서 발간된 조그만 책 가운데 '담'이라 이름한 책이 있다.
Gloria Jay Evans 여사가 쓴 책이다. 한 주인공이 열심으로 담을 쌓는 이야기이다. 처음에 그녀는 보기 싫은 사람 때문에 담을 쌓았다. 나중에 그녀는 담을 쌓는 일에 만족을 느끼다가 결국에는 스스로 담 속에 갇혀 버렸다는 이야기이다. 후에 그녀는 친구의 충고를 받아들여 담을 하나씩 헐기 시작하였다. 결국은 담을 모두 헐어 버린 후에 자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작지만 매우 감동 있는 책이다.

사람들은 모두 담을 쌓고 있다.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쌓으니까 자기도 쌓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공연히 남에게 뒤지는 것 같아서 열심으로 쌓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쌓는 것들은 담 뿐 아니다. 탑도 있다.

학생들 ... 학문의 탑을 쌓는다.
학생들은 새벽같이 학교에 가고 방과후에는 정신없이 학원에 간다. 밤늦게는 독서실을 찾아간다. 부모들은 이런 아이들을 위해 제대로 잠을 못 이룬다. 이렇게 안하면 남에게 뒤지는 것 같아 좀이 쑤신다는 것이다.
어른들... 재물의 탑을 쌓는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며 그저 돈을 버는데 열심이다. 쓰기 위하여 버는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벌지 않으면 무슨 큰 일이 날 것처럼 돈을 번다. 어른들이 쌓아가는 탑 가운데에는 재물의 탑만 아니라 명예의 탑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권세의 탑을 쌓는다. 사람들은 이런 것을 손에 넣기 위하여 가지고 있는 재물을 아낌없이 버리는 사람도 있다. 단순한 명예직인데도 어떤 사람은 명함에 그 직함들을 열심으로 박아서 뿌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더 많은 이익을 바라면서 허다한 재물을 물 쓰듯 쓰는 사람도 있다.

바벨탑은 니므롯이란 사람을 중심으로 쌓은 탑이다. 우리가 창 10:10-12과 11:1-6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니므롯의 지휘로 세워진 것임이 분명하다. 탑을 쌓는 일에는 반드시 주체가 있다. 시날평지에 세운 바벨탑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탑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그들의 탑을 헐어 버리셨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셔서 사면으로 흩어 버리셨다. 그들은 더 이상 탑을 쌓을 수가 없었다.

만일 우리가 쌓는 이 탑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들은 공연히 헛수고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탑을 쌓아야 하겠다.

1.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탑은 무엇인가 1) 자기 이름을 내는 탑이다.
사람들이 탑을 쌓는 목적이 무엇인가 본문 4 절을 보니 '우리 이름을 내고 ....' 라는 구절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업적을 통하여 자기 이름을 높이 남기고 싶어하는 생각이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만일 우리들이 쌓는 탑이 시날평지에 머물러 탑을 쌓던 이들과 같다면 그것은 매우 헛되고 또 헛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학생들이 학문을 하는 목적은 1등을 해서 이름을 남기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돈벌이 잘되는 회사에 취직을 하기 위하여서인가 아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많은 고생을 한다. 누구를 위하여 돈을 버는가 재산이 증식이 되는 것을 보고 마음에 흡족해 하는가 예수님께서 재물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가 배울 교훈은 풍년으로 소출이 많아지자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자 한 주인이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하셨다.(눅 12:20) 아무리 많은 공부를 하고 아무리 많은 재물을 쌓아 놓았다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것이라면 그것이 곧 바벨탑이다. 이런 바벨탑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롬 14:7-8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바울은 그의 한 평생 살면서 예수 때문에 살고 예수 때문에 죽는다는 고백을 하였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이란 이러한 삶이다. 우리가 학문을 해도, 재물을 쌓아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2) 모조품으로 쌓는 탑이다.
시날평지에서 니므롯은 사람들에게 말했다.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그들은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여 성과 대를 쌓고자 하였다. 말하자면 진품이 아니라 가짜라는 것이다. 그것들은 우선 사람들 보기에 좋다. 그러나 진짜가 아닌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아론의 아들 중에 나답과 아비후라는 아들이 있었다. 이들이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 앞에 분향 하다가 그만 죽었다.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으로부터 내려 온 번제단의 불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불을 담아 사용했기 때문이다.(레 10:1-2) '다른 불'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만일 우리가 성령의 열심이 아니라 인간의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는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 갈 때 반드시 자신들의 죄를 대신하여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제단에 뿌렸다. 그러나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능히 그들의 죄를 씻지 못하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의 죄를 씻을 수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히 10:4)

미가 시대의 사람들은 패역한 사람들이었다. 미가는 백성들 앞에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된 송아지를 가지고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인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라 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신앙을 모조품으로 쌓는 사람이 있다. 사도행전에 보면 사도들이 안수할 때에 성령이 그들 머리 위에 임하는 것을 보고 마술사 시몬이 베드로에게 청탁을 넣었다. 성령의 권능을 돈 주고 사자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선물을 어떻게 돈을 주고 사는가 베드로는 시몬을 책망하였다.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될 것도 없느니라.' (행 8:18-21)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과 지혜로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은 바벨탑이다. 여러분이 많은 헌금을 교회 앞에 낸다고 해서 주님의 은혜를 입겠는가 여러분의 집을 팔아 하나님께 드린다고 해서 천국의 아파트를 얻게 될 것인가 아니다. 출애굽 전날 밤 사망의 그림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을 건너 지나간 것은 어린 양의 피를 보고 지나간 것이다. 어린 양의 피를 대신하여 다른 어떤 것이 거기에 걸려 있거나 발려진 것은 아니다. 무엇으로 양의 피를 대신한단 말인가 오늘 우리가 이 교회에 나아온 것은 보혈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믿는 믿음 때문이다. 고향이 같아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같은 학교 동창이어서도 아니다. 많은 재물을 낼 수 있어서도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바벨탑이다. 주님의 보배로운 피를 믿는 믿음이 아닌 다른 어떤 모조품도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다.

3)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탑이다.
시날평지의 사람들은 우리 이름을 낼 뿐 아니라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다.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셨다. 땅에 충만하라 하셨다.
우리가 초대교회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매우 흥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일러주신 말씀을 보면 떠나지 말라는 뜻도 있지만 반대로 떠나라는 말씀도 있다. 먼저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하셨다. 그러나 곧 이어 예수님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다.

그들은 한데 모였다. 성령을 입었다. 권능을 받았다. 방언과 예언과 병고침과 귀신이 떠나가고 여러가지 기사와 이적과 능력이 나타났다. 그들은 모여서 사도들의 교훈을 받으며 떡을 떼며 교제하며 기도하였다. 그리고 네것 내것 없이 재물을 서로 통용하며 살았다. 그야말로 (찬송가 ♬)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천국이라.'였다.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크게 두려워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흩으셨다. 그들 스스로 흩어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강제로 흩으신 것이다.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행 8:1) 우리가 탑을 쌓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라야 한다. 우리가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하여서 학문의 탑을 쌓아야 한다. 우리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하기 위하여서 때로는 권세의 탑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하고 선한 일에 힘쓰기 위해서 재물의 탑을 쌓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조금 배웠다고 해서 교만하고 조금 가졌다고 해서 거역하고 거스리는 교만의 바벨탑을 쌓으며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할 때 하나님은 그 바벨을 가차없이 흩어 버리실 것이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도전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마 21:44)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탑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요단을 건넌 사람이다.
그는 물 속에서 이스라엘 12 지파의 수대로 12개의 돌을 취하도록 명을 내렸다. 그들이 요단을 건넌 후 어깨에 메고 나온 12개의 돌을 길갈 땅에 세웠다. 12개의 돌을 세운 뜻은 '하나님께서 홍해를 말리심 같이 이 요단강을 마르게 하사 너희로 건너게 하셨다.'는 사실을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수 4:)

세월이 가면 사람들은 모든 기억을 서서히 잊어버리게 된다. 잘난 사람도 잊어버리고 못난 사람도 잊어버린다. 부한 사람도 잊어버리고 가난한 사람도 잊어버린다. 풀은 마르고 꽃도 시들어 버린다. 부귀도 영화도 권세도 모두 다 사라져 버린다. 그 후에 남는 것, 참으로 남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홀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때 그는 야곱의 아들들의 수효를 따라 12 돌을 취하여 단을 쌓았다. 그 제단 위에 송아지 각을 떠서 올려놓고 통 넷의 물을 세번이나 쏟아 부은 다음에 기도하였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날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6)

사무엘 선지자는 미스바에서 불레셋을 무찌른 후 미스바와 센 사이에 기념 돌을 세웠다. 그 돌 이름이 '에벤에셀'이다.(삼상 7:12)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사는 모양이 서로 다르지만 그래도 한가지 분명한 것 하나님은 그 뜻을 구하는 자에게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떤 사람 둘이서 다투고 있었다. 그들 둘은 어리석은 사람들이었다.
다투는 내용인즉 한 사람은 해가 밝다 하고 한 사람은 달이 더 밝다 하는 것이다. 한 참 다투는 중 마침 지나가는 나그네가 있어서 그에게 물었다. 어느 것이 더 밝은가요 이 나그네의 대답이 무엇인지 아는가 '나는 이 마을에 살고 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확실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바벨탑을 쌓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그것을 후손에게 기리고자 하는 탑을 쌓는 자는 모든 일에 형통하다.'는 메시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바벨탑을 쌓기를 쉬지 않는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의견 통일이 되지 않을 때에는 차라리 이 지혜로운 나그네처럼 '나는 잘 모르겠다.' 하는 것이 현명할 때가 더러 있다.
(왜 내가 이것을 여태까지 몰랐던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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