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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와 감사 (레 13:47-52 , 눅 17: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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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아 전도를 마치고 예루살렘을 향하시는 예수님의 마지막 전도여행 은 A.D. 30년 1-2월 경이었다. 이때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 이를 지나면서 여러지역에서 전도하였다. 본문은 예수께서 유대 의식법상 부정한 질병으로 간주되는 문둥병에 걸린 10명의 환자를 고쳐주신 사건이 다. 특히 이 사건에서 치유의 은혜를 무시하는 9명의 유대인과 그 은혜를 깊이 감사하는 1명의 이방인을 비교하여 유대인의 자고함과 이방인의 겸 손한 신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문둥병은 단순한 치명적인 육체의 질병이상의 의 미를 지닌다. 즉, 그들은 문둥병을 인간의 죄악을 대변하는 심히 부정한 질병으로 취급하여 문둥병환자들을 특별관리하였다. 당시 율법의 규정은 문둥병환자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성밖에 거해야 했으며 사람들에게 가까 이하거나 사람들과 섞여 살 수가 없었다. 문둥병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밀어야 했으며 손으로 윗입술을 가리우고서 스스로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미연에 방지해야 했다. 왜냐하면 건강한 일반인이 문둥병환자 에게 접촉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부정한자로 취급되고 말기 때문이다. 이처럼 특별 관리된 문둥병환자가 혹 기적적으로 치유되는 경 우에는 곧바로 사회로 환원될 수 있는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된 증거로 제 사장 앞에서 자기의 몸을 보이고 제사장의 최종판단을 받은후 예물을 드 려야 했다. 사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은 자들이었다. 왜냐하면 문 둥병이란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환자들과의 접촉을 꺼려 했 을 뿐 아니라 특히 레위기 법전에는 문둥병이 매우 부정한 것임을 지적하 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환자들은 종교적 사회적으로 철저히 소외도 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용기를 가지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나아왔으며 또한 감히 예수님을 가까이서 만나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어 서 멀리서서 예수께 간청했다. 주님께 나아왔던 열명의 문둥병자가 모두 다 고침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중 아홉 사람은 자신들이 완쾌된 사실이 너무 기뻤던 나머지 감사의 말 한마디없이 모두 흩어져 갔고 오직 한 사 람만이 주님께 돌아와 주님의 발아래 엎드려 사례했다. 한편 주님은 주께 감사하기 위해 돌아온 한 사람이 사마리아인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유감스럽게도 하나님을 잘알고 또 감사하리라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은 감 사하기 위해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던 은혜를 잊어버린 아홉 명은 외적인 질병만 치료를 받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주앞에 나아와 깊은 감사 를 드린 사마리아인은 영적인 축복도 함께 받은 더 큰 은혜를 누릴 수 있 었다.

11-13절, 주님께 겸손히 그리고 열심히 간구하는 자에게 은혜가 주어 진다는 교훈을 준다. 예수가 자신들이 거하는 처소곁을 지나가신다는 소 식을 들은 문둥병환자들은 율법의 금지 규정에 따라 건강한 사람들 틈에 끼이거나 예수님곁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고 그저 멀리서서 소리를 높여 예수님께 자신들의 사정을 아뢰었다. 문둥병환자들은 나병균에 의해 성대 (목청)가 많이 상해 있으므로 아무리 목청껏 소리지른다해도 일반인들의 목소리에 못미친다. 그럼에도 그들은 마음을 합하고 입을 모아 간절히 그 리고 필사적으로 예수님께 자신들의 병낫기를 간구하였다. 당시 문둥병자 들이 유대 사회에서 겪은 고초와 냉대, 그리고 육체적으로 겪고 있었던 절망과 고통은 그들로 하여금 필사적으로 매어달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필사적인 간구 속에는 예수님의 치유능력에 대한 강한 확 신과 '이분이야말로 참 구주시라'는 확실한 믿음이 함축되어 있다.

이처럼 비록자신들은 그 육체가 연약하고 병들고 그 인격이 사회적으로 멸시받을만큼 보잘것 없다할지라도 겸손한 마음과 간절한 심정으로 예수 님께 나아와 자신의 처지를 진솔히 고하고 또 부르짖는 자에게 차고 넘치 는 은혜가 기필코 주어짐을 깨닫게 된다.

14절, 주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에게 은혜로 주어진다는 교훈을 준다. 예수는 간절히 부르짖는 열명의 문둥병환자를 긍휼히 바라 보시며 그들을 향하여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명하셨다. 이 명령 은 '너희들은 이제 깨끗함을 받았으니 제사장들에게 찾아가서 율법이 정 하는바에 따라 병나았다는 공식적 인증을 받으라'는 뜻이다. 당시 열 문 둥병환자는 아직 몸에 아무런 변화의 기미조차 없는 절망의 몸 그대로 였 으므로 예수의 명령을 무모한 것으로 무시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만 주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 명령대로 제사장을 만나기 위해 발 걸음을 옮겼다. 이 문둥병환자들은 길을 가다가 자신들이 깨끗함을 받았 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실로 그들은 믿음으로 예수께 병 낫기를 간구 하였고 또 믿음으로 주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기적적인 치유의 은혜를 맛보게 되었던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행동치 않 고 주의 말씀만 믿고 신앙으로 걸어 나갈때 주님은 크나큰 은혜를 응답해 주심을 확신하는 것이다.

15-19절, 주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자에게 더 큰 은혜가 주어진다 는 교훈을 준다. 예수로 말미암아 고침받은 열 문둥병환자는 마치 사형수 가 사면을 받고 자유인이 된 것 같이 그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사랑하는 가족과 떨어져 살지 않아도 될 것이고 지금껏 제 한받던 모든 종교적 사회적 활동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으며 특별히 더 이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거나 돌세례를 받지 않아도 되었기에 그 기쁨이란 이루다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아홉명의 유대인 문둥병환 자는 소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선민이란 자부심으로-그길로 각기 자 기처소로 달려가고 말았다. 반면에 유대인들로부터 천시받던 사마리아출 신 문둥병환자였던 자만이 예수께 돌아와 은혜로 치유받은 사실에 감사했 다. 이처럼 세상에는 주의 크신 은혜로 육체의 질병을 치유받거나 혹 경 제적으로 풍요로와지고 사회적으로 명예를 얻은자는 수도없이 많지만 정 작 자신의 복된 변화가 바로 주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고 주께 감사 하며 주께 그 모든 영광을 돌리는 자들은 심히 적다. 은혜받은자는 은혜 받은 사실에 그저 기뻐하고 만족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 말고 한걸음 더 나아가 주님께 감사 찬송하며 이제는 헌신봉사의 삶이 지속되어야 한다.

주께 돌아온 사마리아인은 단순히 육체 치유뿐 아니라 그 영혼도 깨끗함 을 받은 이중의 구원을 얻게 되었다. 이처럼 감사는 더 큰 감사를 가져오 는 신비한 힘이 있다(살전 5:18).

우리 인간들은 죽는 날까지 수많은 질고와 인생의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럴때마다 우리는 당황하고 절망하곤 한다. 그러나 신앙인들이라면 인생 의 위기를 맞이 할때마다 먼저 자신의 허물과 부족을 돌아보고 겸손히 주 앞에 무릅꿇고 간구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기도 응답을 받아 충 만한 은혜를 누릴때에도 마음을 단정히 하고 겸손히하여 은혜를 베푸신 주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돌려야 한다. 진정한 감사는 영혼에 더 큰 감사 의 햇살이 비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열 문둥병자의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공동의 참상을 보여 준 다. 공동의 불행은 그들의 지경과 계급의 차별을 잃어 버렸다. 생의 큰 법칙의 일례로 이러한 이야기가 있다. 어떤 지방에 큰 홍수가 나서 거기 살던 온갖 동물들이 어떤 높은 곳에 같이 모이게 되면 보통때는 서로 물 고 죽였으나 헤치지 않고 같이 모여 있다는 것이다. 인생에게 고통이 있 는 이유가 이것인지도 모른다. 즐거울 때 좋을 때 배우지 못한 교훈을 수 난중에 배운다. 무서운 죄값으로 문둥병을 얻었다고 생각한 이들은 예수 의 긍휼과 연민으로 고쳤다. 예수는 율법을 무시하지 않는다. 저자 루가 는 열사람 중에 사마리아인이 감사하러 돌아 온데 대한 관심을 갖는다.

이방인인 루가가 다른 이방인의 감사에 대한 태도에 관심이 컸던 것이다.

은혜를 아는것은 감사의 덕이다. 감사는 인간의 본성이다. 새가 노래함 같이 인간은 감사한다. 감사는 하나님의 창조적 사랑에 대한 인간의 본능 적 반응이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것과 같다. 씨가 햇빛과 비를 받아 자람같이 우리의 감사도 경험 속에서 자란다. 역대 사도들은 고난 중에도 감사했다(고전 15:57). 독일에서 많이 부르는 노래는 이제 우리는 다 하 나님께 감사하자는 링크알트 목사의 찬양인데 전쟁, 기근, 염병으로 죽 은 교인의 태반을 장사 지내고 와서 작사한 찬송이다. 기독교인이 다른 종교인들보다 찬송을 많이 부른다. 그것은 예수님께 나타난 하나님의 구 원의 은혜를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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