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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새와 제비 (시 8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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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4편은 많은 주석가(註釋家)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가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향과 성전이 그리워서 쓴 시라고 말합니다. 시편 42편과 43편과 거의 비슷해서 같은 저자가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학자는 다윗이 압살롬의 반 란때문에 궁궐과 성전을 떠나 있으면서 여호와의 전(殿)이 그리워서 지은 시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내용은 1-4 까지가 주의 전을 사모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고 6-7절은 신앙적인 전진을 강조하고 있고 8-12절은 망향의 기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 합쳐서 84편은 "여호와의 전을 사모하는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인상적인 표현은 3절에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 도 새끼 둘 보금 자리를 얻었나이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전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표현하되, 참새와 제비 라고 말한 것입니다. 참새와 제비는 별로 값 나가지 아니하는 흔히 볼 수 있는 새입니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보게 되는 평범한 새 입니다. 암컷이나 수컷이나 모양도 비슷하고 몸집도 작습니다. 떼를 지어 다니며 지저귀는 그런 새입니다. 공작새처럼 아름답고 희귀한 새도 아 니고 꿩이나 타조처럼 큼직하고 또 칠면조처럼 먹기에 좋은 새도 아닙니다.
또 참새와 제비는 공로가 별로 없다는 뜻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 보훈에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씨 뿌리 지 아니하고 곡간에 거두어들이지 아니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키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흔하고 보잘 것 없는 참새와 제비가 특별히 주의 제단에 보금자리를 두었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새와 제비는 적을 막아낼 힘이 없는데도 세계에서 수가 가장 많고 번성해 가며 사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사람과 한 집에 서 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친숙미를 주는 새입니다. 우리 인간 역시 비록 천하고 공로가 없다고 할지라도 여호와의 전에 거하기만 하면 가장 행복스럽다 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호와의 전, 그곳은 바로 회개의 생활이 있는 곳입니다. 옛날 다윗이 범죄해서 아주 고민이 생길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주의 전에 나가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세상에서 찢기고 더러 워지고 상한 나의 심령을 회개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전입니다. 세상의 천(千)날을 죄로 먹고 마시는 날이라고 하면 주 의 한 날은 근본적으로 회개할 수 있는 날이라고 하는 점에서 복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 19절에 보면 베드로 사도가 예루살렘 성전 뜰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킨 후에 모여든 대중들에게"너희가 다 회 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올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회 개를 통해서 새로운 날이 옵니다. 회개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가는 첫 관문입니다. 회개가 있을 때 나 개인이 살게 됩니다. 회 개가 일어나면 교회가 부흥하게 됩니다. 회개하는 민족은 새로워집니다.
MRA 운동을 시작한 프랭크 북맨(Franck Bookman)은 회개의 4 계단을 늘 말했습니다. 죄를 미워하자, 죄를 버리자, 죄에 대해서 솔직하고 정직하자, 죄를 완전히 고침 받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에 나아가서 회개할 수 있는 것, 그 이상의 축복은 없는 것입니다.
또 주의 전에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가 있기 때문에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 나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인류 최초로 세상에 태어난 가인과 아벨이 먼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이 주 목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 의 예배를 열납(悅納)해 주셨습니다. 아벨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표본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외아들이라도 바칠 정도로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민의 조상, 믿음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노아는 죄악으로 가장 타락한 세상을 살았지만 하나님 앞에 영광 드리는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의인이라고 하는 칭호를 받았고 물로 온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 그의 가족만은 구원을 얻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 후에도 예배의 생활을 정성껏 했습니 다. 그러므로 세상의 조상이 된 것입니다. 엘리야는 당장 하나님의 불의 응답을 받을 정도로 정성어린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우상으로 죄악 된 세상을 하나님으로 돌이키게 하는 놀라운 역사를 수행한 것입니다. 시편 84편 저자는 하나님과 만나고 싶고,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싶고, 하나님과 이야기하고 싶고 하나님께 모두 말씀드리고 싶고 또 하나님 말씀을 듣고 싶고 하나님께 모두 바치고 싶고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고 싶고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며 하나님을 찬미 하며 하나님을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주의 전에 나아가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참 예배인 것입니다. 세상 천 날 보다 예배의 한 날이 그 만큼 값있다고 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주의 전은 성도의 교제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지난 날 죄인이었던 인생들이 모두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어 형제애로 사랑하는 모임입니다. 교회의생명은 건물도 조직 도 경제 운용도 아닙니다. 속죄 받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성도의 교제가 생명입니다.
성경에 보면 성도의 교제를 "그리 스도의 지체"라고 표현했습니다. 가령 눈이라든지 손발이라든지 위장이라든지 각 지체가 일심 동체가 되어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성도의 교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지체들을 보면 머리에 절대 복종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몸 가운데 머리에 복종하지 아니하는 지체가 하나라도 있었습니까 절대로 없습니다. 교회라는 것은 속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 절대 복종하는 것, 이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 또 지체는 서로 사랑합니다. 서로 용서하지요. 어느 지체가 실수했다고 하더라도 책임 추궁하고 또 무책임하게 배타하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같이 고생을 당하더라도 서로 용서합니다. 또 인내합니다. 부족한 지체가 생겨도 당장 없이 해버리지 않습니다. 온전해질 때까지 계속 참아 나가는 것입니다. 또 희생합니다. 가령 눈이 병들었을 때, 다리가 어쩌다 상했을 때 다른 지체들은 다 무책임하냐,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가 아픈것 이상으로 희생하면서 서로 보완해 나가는 것입니다. 병균이 들어오면 백혈구가 집중해서 이것을 물리쳐 나갑니다. 가령 임 신을 하게 되면 태아를 위해서 다른 부면은 다 희생하면서 그것을 보완하는 것입니다. 이 지체들은 연합하되 서로 용서, 인내, 희생으로 특별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성도의 교제란 바로 이렇게 이루어져 가는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 또 지체를 보면 자기 책임을 최선껏 실행하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 심장이 게으름을 피우는 것 보았습니까 또 나는 이런 일은 할 수 없다고 해서 나태하는 것 보았습니까 심장은 80년이든지 90년이든지 생명이 다 하는 때까지 일초 일각도 쉬지 아니하고 계속적으로 자기의 책임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 손발이라든지 우리 두뇌라든지 우리 폐라든지 간이라든지 우리 지체, 어느 분야라든지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는 지체는 없습니다. 적어도 생명을 왕성하게 가진 지체라고 하면 각기 하는 일은 다 다르 지마는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최선껏 수행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 것입니다.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 뿐만 아니라 서로 사랑하되 자기 책임 을 최선껏 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의와 봉사로 그리스도의 뜻을 펼쳐나가고 또 세상 여러가지 방면에 공헌하는 이것이 지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비록 사막일지라고 인간들이 진정 사랑하게 되면 거기는 반드시 낙원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낙토(樂土)일지라도 분쟁하고 시기하고 불합하면 그곳은 사막이 되는 것입니다.
주의 전이 왜 축복이 되느냐 회개의 장소인 동시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의 장소이고 또 동시에 성도의 교제가 있는 곳 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주 간절히 사모합니다. 심지어 인간들은 여러 가지 사정이 발생되어서 성전을 떠날 수밖에 되는데도 또 돌아가지 못해 애타는 때가 있는 데도 참새와 제비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아니하고 주의 제단에 둥지를 틀고 보금자리를 만들고 새끼를 까고 그렇게 사모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현세를 살아갈 때에 주의 전을 사모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 품안에 살아가는 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우리에게는 무한한 축복 또 위대한 사명을 이루어 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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