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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자 옷니엘 (삿 0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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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다 사용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 나님은 일부 사람들만 사용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도구로 일생 을 살아간다는 것, 이것이 인생이 추구할 수 있는 최고선(最高善 )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사람의 행복도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가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 고, 사회에서 요구되는 존재이고, 이웃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 라는 자각 속에 삶을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제가 상담을 하는 가운데 무척 가슴이 아팠던, 그래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는 일이 있습니다. 저와 상담했던 사람은 정신병 원에 입원하기 직전에 있는 여성도였습니다. 그 분의 삶이 이렇게 망가진 것은 어느 날 부부 싸움 끝에 남편이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이 분의 정신과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사건은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서 찾아왔습니다. 그 분은 가난한 가정에서 알뜰살뜰 살림하며 남편 뒷바라지에 자녀들 공부시 키느라 애쓰던 중에 사소한 일로 부부 싸움을 하였답니다. 그런데 언쟁 끝에 남편이 던진 말 한 마디가 비수처럼 아내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 말은 너 같은 것은 필요 없어. 꺼져였습니다 . 너 같은 것 필요 없다는 이 한 마디 말이 한 사람의 온 정신과 삶을 파괴하였습니다. 그래, 나 같은 것은 필요 없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그 부인의 삶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우리가 이 사회나 역사에서 부족하고 평범하지만 그래도 필요한 사 람이고 있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며 살고 있다면 그것은 귀 한 삶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나를 필요로 하신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부족한 내 모습을 알면서도 나를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더 귀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된다는 것 , 이것은 얼마나 복되고 귀한 삶인지 모릅니다.

본문에는 하나님이 한 시대를 통하여 쓰신 사람, 하나님의 사람, 한 사회를 구원하고, 한 시대를 일깨우기 위해 주께서 사용하신 사람, 옷니엘 사사가 등장합니다. 사사(士師)라는 말은 우 리 말로는 언뜻 개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에 보면 『사사기』를 『판관기』라고 명명(命名)했습니다. 영어로는 『J udge』로 판단하는 사람, 일종의 재판관 이야기라고 할 수 있 습니다. 그러나 사사가 재판관 역할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사는 군사 지도자이기도 했고, 정치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사 사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상 시국에 나라 일을 감당한 사람입니다 . 팔방미인격의 지도자 역할을 했던 사람입니다. 사사는 아직 안 정되지 못한 사회의 일시적인 지도자였습니다.

사사 옷니엘이 살던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앞에 큰 악 을 행하였고 점차 하나님을 망각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징계 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들의 적이었던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 다임이라는 대단히 악명이 높은 침략자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구 산 리사다임이라는 이름은 영어로 double wickedne ss로 매우 사악한 사람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당시 메소보다미아 왕의 별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가 아주 악명 높은 사람에게 별명을 붙여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스라 엘은 이 침략자에게 무려 8년 동안 짓밟혀 노예 생활을 하였습니 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예의 삶을 체험하면서 그 고통 가운데서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부르짖어 구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신 사람이 바로 옷니엘입니다. 옷니엘은 사사기에 등장하는 첫번째 사사입니다.

우리는 옷니엘을 보면서 중요한 질문 한 가지를 던집니다. 그것은 이 사람이 하나님이 쓰실 만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비밀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쓰실 만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옷니엘의 자질, 그의 사람됨을 함께 추적해 봅시다.

순종의 사람

9절 말씀에서 옷니엘을 소개하는 대목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일반적으로 성경의 인물을 소개할 때는 누구누구의 아들 아무개 라는 식으로 나옵니다. 옷니엘도 그 형식을 따르면 그나스의 아 들이라는 말이 먼저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갈렙의 아우라는 사실이 먼저 소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수아와 갈렙, 이 두 사람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임을 압니다. 그래서 갈렙의 아우라고 하는 것이 사람들이 알아보기 쉽기 때문에 옷니엘을 갈렙의 아우라고 소개했는지 모릅니다. 제가 유명한 사람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이 제 동생들을 소개할 때 이동원 목사 동생입니다라고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동생들은 이렇게 소개하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자기들의 정체성 (identity)이 없어서 싫다는 것입니다.

저는 옷니엘을 갈렙의 아우로 소개한 데는 갈렙의 유명도 때문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옷니엘과 갈렙이 공유하던 삶의 특 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을 좀더 깊이 연구해 보면 옷니엘과 갈렙이 일찍부터 삶을 함께 나누어 형제 이상의 동지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단순히 피를 나눈 형제일 뿐만 아 니라 전투에서 사선(死線)을 넘어가면서 함께 싸웠던 동지였습니다.

여호수아서 15장 16,17절을 보십시오.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취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함으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 내로 주었더라.

이 말씀을 보면 옷니엘은 갈렙의 아우였을 뿐만 아니라 갈렙의 사 위이기도 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근친 결 혼이 문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십시오. 두 형제는 전쟁 터에서 함께 싸웠습니다. 고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죽음의 고비 를 함께 넘었습니다. 옷니엘은 단순히 형과 함께 생활했을 뿐만 아니라, 형이 추구했던 삶의 목적과 가치관을 공유하였습니다.

성경이 갈렙을 소개할 때마다 강조하는 한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일관성 있는 강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갈렙 주 변에 있던 사람들은 언제나 갈렙이 추구했던 삶과 동일한 삶의 질 을 추구했습니다. 성경 곳곳에서 갈렙이나 갈렙의 동지들, 또 갈 렙의 후손들을 소개할 때마다 강조하는 중요한 서술이 있는데, 한 곳만 찾아봅시다. 신명기 1장 36절 말씀입니다.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 라 하시고.

여기서 여분네와 그나스는 동일 인물에 대한 별도의 명칭일 것이라 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나스는 지역 이름을 딴 호칭일지도 모릅 니다. 동네 이름을 붙여 부른 이름이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어쨌든 갈렙은 여호와를 순종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뿐 아니라 후손까지 많은 복을 누리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은 바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은 사람을 구할 때 무얼 기준으로 삼겠습니까? 당신 의견에 철저히 반대하고 대드는 사람을 당신이 하는 일에 참여하도록 하겠습니까 ?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이 되기 원한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겠습니까? 하나님의 도구가 되려는 열망이 있다면 당신 삶에 가장 기초적이고 근원적으로 요 구되는 덕목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순종입니다. 내가 어떤 대 가를 지불하고서라도 주님 말씀에 이의(異意)를 제기하지 않는 것 입니다.

D.L. 무디 목사님이 자기의 동역자요 제자였던 R.A. 토레이 목사님과 함께 시카고의 높은 빌딩 위에 올라간 적이 있었답니다. 무디 목사님은 시카고 전경을 내려다보며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 다.

여보게 토레이, 나는 하나님이 여기서 뛰어내리라고 명하시면 뛰 어내릴 수 있을 것 같네.

어처구니 없는 말이지만 무디가 그 정도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 을 갖고 인생을 살았음을 알 수 있는 일화입니다. 이 말 속에서 주님을 향한 그 분의 애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갈렙은 온전한 순종의 사람이었고, 아우였던 옷니엘에게도 이러한 자세가 이어져 내렸습니다.

성 프란시스 형제단에 어느 날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그 형제단에 가입하기를 원했습니다. 수도원에 들어가서 함께 수도하 며 전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형제단의 위원회는 열의가 가득한 이 청년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심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란시스가 젊은이에게 과제를 한 가지 주었습니다.

젊은이, 저기 배추가 한 포기 있는데 저 배추를 한 번 거꾸로 심어 보겠는가? 왜 프란시스가 이런 질문을 했겠습니까? 그것은 내 상식에 맞지 않고 내 생각에 합하지 않아도, 영적인 스승의 지시에 순종하는 자질이 있는가를 시험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지배했던 가장 중요한 가치관은 하 나님 아버지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성령의 사람

옷니엘은 순종의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1 0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신(神)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 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이 말씀의 중심은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한 사실입니다. 옷 니엘이 하나님이 쓰시는 사사가 된 것은 하나님의 신이 임했기 때 문입니다. 구산 리사다임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신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신, 즉 성령의 사역은 앞으로 사사들의 행적에 계속해서 드러나는 삶의 특성입니다. 성령이 사사들에게 임했다는 표현이 매번 등장합니다. 사사들은 모두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당신처럼 실수할 수 있고, 연약해질 수 있고, 자주 넘어 질 수 있는, 인간이 가진 약점을 한결같이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사사들을 쓰셨던 이유는 첫째 가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산 것이고, 둘째가 순종하는 삶을 사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 님께서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공급해 주 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 5장 32절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 니라고 말합니다.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짝 지어 전도하러 보내실 때 먼저 하신 일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권 능을 주셨습니다(1절). 제자들이 전도하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온 갖 역경과 난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고, 약한 자들을 위 로하고 세워 주는 권능을 갖게 한 뒤 파송하셨습니다. 뿐만 아니 라 이런 약속도 하셨습니다.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19,20절).

예수께서는 말하는 것까지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께서 책 임을 지시겠답니다. 다시 말하면 주께 순종하는 자가 주님, 제 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명하시는 대 로 나가서 전도하겠습니다라고 하면 나머지는 주께서 알아서 해결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께서 도와주십 니다. 하나님이 친히 능력을 공급하십니다.

세상에는 재주 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 이 허다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는 사람 들은 아닙니다. 우리 생각에 하나님이 저토록 재주가 많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을 쓰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깁니다.

이따금 우리 주변에 있는 훌륭한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이 예수만 믿으면 큰일을 할 수 있을 텐데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합니 다. 물론 그들이 예수를 믿고 큰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 뛰어난 능력이 있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그가 가진 재능은 전혀 상관이 없는 경우들도 많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순종의 자리에 있느냐, 하나님이 쓰시고자 할 때 주께 삶을 헌신할 용 의가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순종입니다. 순종의 자질이 어떤 재주 보다 중요합니다.

옷니엘은 물론 굉장히 재능이 있는 사람입니다. 무사로서도 아주 뛰어난 사람입니다. 여호수아서에서 보았듯이 옷니엘은 전쟁에서 승 리한 용장이었습니다. 그는 경험이 있는 무사였고, 재능이 있고, 지혜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옷니엘을 쓰신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닙니다. 성경은 구산 리사다임과 더불어 겨루어 싸워서 옷니엘이 승리했더라. 그의 재능은 대단히 탁월했고 무사로 서 전략이 뛰어났고 군대 경험이 많으므로 그가 이기니라고 말하 지 않습니다. 성경은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여호와 께서…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10절)고 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를 줄 모르는 사람이 자기 지혜와 지식을 바 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칩시다. 일 처리를 아주 깔끔하게 잘했다면, 그는 자기의 지혜, 자기의 능력으로 그렇게 했다고 자 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기 자신을 내세울 것입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재주와 재능 있는 사람들을 제쳐놓고 조금 부족해도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 주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떤 일을 성취했을 때 그 사람의 뛰어남 때문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 때문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강조됩니다. 그는 이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순종할 사람을 찾고, 성령의 사람을 찾습니다. 옷니엘은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희생의 사람 ^ 옷니엘이 하나님께 사사로 쓰임받은 때 나이가 여든 살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었을 때 여호수아의 동역자였던 갈렙의 나이는 85 세였습니다. 그리고 아우였던 옷니엘의 나이는 약 50세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뒤 약 30년이 지나 옷니엘이 사사로 임명받았 으므로 본문에 등장할 당시 그의 나이는 80세입니다. 당신이 8 0세쯤 되었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여유 있는 노년의 생활을 즐 기며 살지 않겠습니까? 대개의 경우 그동안 고생하며 살았던 인생 을 되찾기나 하려는 듯 편한 삶만을 추구할 것입니다.

옷니엘의 가문은 유대 남방 도시였던 헤브론에 정착해 살았습니다.

그곳에서 큰 농지를 소유하고, 목축을 하며, 유다 지파의 지도 자격으로 대단히 안락하고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옷니엘의 가족 배경입니다.

노년기에 모험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 스라엘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를 깨워 구원할 하나님의 사람을 찾습니다. 그때 옷니엘이 이 일에 자원하였습니다 . 이것은 개인적으로 볼 때 굉장한 모험입니다. 굉장한 자기 희 생입니다. 자신의 안락을 추구한다고 해서 시비할 사람도 없는데 자원해서 고통을 택했습니다. 여생을 바쳐 이웃의 평안과 다음 세 대의 안녕을 보장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옷니엘은 희생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11절 말씀입니다.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에.

40년 동안 평화가 유지되었습니다. 옷니엘 한 사람의 희생과 헌 신으로 그 땅에 40여 년간의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40년 동안 한 나라가 평화를 유지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비근한 예로 우리 나라의 지나간 40년을 되돌아본다면 40년간 의 평화 유지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옷니엘은 사사의 직무를 충실히 감당했습니다. 첫번째 사사로 대단 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바로 자신을 희생했기 때문에 얻은 결과입 니다.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 사람의 배후에는 언제나 한 알의 밀 알처럼 썩어져 희생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김우중씨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에도 보면 희생이 있어야 풍요 와 번영이 뒤따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시대에는 희생과 헌 신의 자세가 부족합니다. 서로 자기만 편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결국 다음 세대는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세대의 번영을 위해 지금 우리가 눈물과 땀을 흘리며 자신을 버리는 희생을 감수해야 합니다. 교회 내에서도 다음 세대의 교 회가 평안과 비전과 사명에 불타 오르는 교회로 성장하도록 우리 세대가 기꺼이 주님 앞에 희생과 헌신을 해야 합니다.

당신도 옷니엘처럼 성령의 사람, 순종의 사람, 희생의 사람이 되 십시오. 삶의 진정한 보람을 자기 안일과 평안에서 찾는 것이 아 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창 조하고, 부족한 대로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 당신의 재산과 몸과 삶 전체로 하나님께 쓰임받은 것을 기뻐하 고 감사하며 더욱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여호와의 신(神)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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