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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 내 형제며 자매냐? (눅 08: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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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사시는 동안 그 가족이 그에게 동조하지 않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막 3:21에 보면 예수의 친척들이 그를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에게 와서 복음을 전파 못하게 얼마나 만류했는가를 볼 수가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진리가 나타나 있습니다. 사랑은 흔히 자신의 일가 친척보다도 자기와 밀접한 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더 친밀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가장 깊은 관계란 단순히 혈연 관계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깊은 관계란 혈통보다 마음과 마음, 그리고 정신과 정신적 관계입니다. 흔히 사람이 참다운 친밀감을 갖는 것은 공동 목적과 공동 원칙, 공동 관심과 공동 목표를 가질 때 비롯됩니다.

1.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를 찾아 온 것은 막 3:21 말씀에 의하면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온 것입니다. 아직 그 가족들도 예수께서 메시야이신 것을 믿지 못하고 다만 예수가 미쳐서 거리에서 필요없는 광기의 발작을 염려한 나머지 예수의 전도생활을 만류하러 온 것입니다. 여기 아버지 요셉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 요셉은 일찍 별세한 것으로 믿어집니다. 19절 말씀 “예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를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라고 했습니다.

2. 누가 내 형제며 자매냐 20-21절에 “혹이 고하되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섰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가족 관계를 부정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육의 관계를 초월하는 신령한 가족 관계를 말씀하신 것 뿐입니다. 육의 가족 관계는 현세에 한하지만 신령한 가족은 영원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내 모친과 형제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듣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나아가 그 뜻을 실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신령의 가족을 중요시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한 그 누구보다도 가정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눅 2:51에 보면 예수께서는 어려서부터 그 부모에게 순종하여 잘 받들었음이 나타나 있고, 요한복음 2장에 보니 가나의 혼인을 축하하셨음이 나타나 있고, 또 요 19:26-27에 보면 십자가에서 운명시 그 모친 마리아를 사도 요한에게 부탁하심을 잊지 않으시는 자상한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본문에서 역설한 것은 육신의 인연으로보다 신령한 인연으로 된 형제 자매가 더욱 귀중한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인연은 곧 하나님 아버지 뜻을 따라 행함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여기고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자는 누구나 예수의 친걱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믿는 성도를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참으로 실제적이고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우러러 보며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나에게 행하소서”라고 말할 때 거기에는 기쁨의 삶이 존재합니다. 사랑은 오직 하나만을 택하는 것이요 오직 한 주님만을 섬길 수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철저하게 맡길 때, 전 세계에 연관성을 가지게 되는 한 가족의 일원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포함하는 한 가족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기록된대로 우리 주님은 맡은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병자를 고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그곳에 그의 모친과 형제들이 찾아왔습니다. 사실인즉 그 형제들은 굉장한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그 형에 대해서 그들 나름대로의 욕구가 있었습니다. 이왕이면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수 있는 좀 더 강력하고도 조직적인 선도를 할 일이지 밤낮 병자들과 함께 하고 계시니 당한 일이 아니냐고 그를 찾아가 강력한 제의를 하고 싶었습니다. 여간해서 만날 수 없는 아들이요 형이기에 단단히 별러서 찾아 왔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 밖에 모친과 동생들이 찾아 왔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를 들은 우리 주님께서는 너무나도 엄숙한 소리로 둘러 앉은 사람들을 보시고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내 어머니요 내 형제요 내 자매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피를 나눈 부모요 형제 자매라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리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이 그토록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와의 골육친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골육친지 이상으로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며 예수는 곧 우리의 구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우리 죄를 사유해 주시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해 주신 분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박혀 피를 홀리므로 우리를 구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엇을 드리며 그의 뜻을 행하고 있는지 반성을 해야 합니다. 만일 주님께서 이 진리에 임재하셔서 누가 내 모친이며 내 형제 자매냐고 책하신다면 정말 그 책망을 피할 수 있을런지, 혹은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는 칭찬을 받을 수 있을런지 정말 두려운 순간일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기 위해서 밤낮으로 대중 속에 몸을 던져 그들과 침식을 같이 하면서 일하셨습니다. 밤에는 산에서 기도를, 낮에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하는 무리들을 위해 음식 잡수실 겨를도 없이 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보낸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하기를 “너희는 가서 듣고 본대로 전하라 맹인이 보고 절름발이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 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 나며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고 보고 들은 그대로 가서 전하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생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예수님의 형제 자매라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하는데 우리의 신앙 생활도 주님의 이 생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는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갔노라” 하는 고백을 할 수 있도록 꾸준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자기 뜻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사회는 너무 많이 급변하는 세대가 되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이며, 이 사회에 적응 못하는 십대 청소년이 너무너무 많아서 범죄 문제 등 갖가지 많은 사회 문제가 제기됩니다. 오늘 이 시대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할 일이 너무 많아 하나님의 뜻을 서둘러 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70년의 역사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70주년 창립의 역사를 지닌 교회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이방 사람에게다 빼앗기고 우리 자신은 허수아비처럼 할 일을 못 찾아 허둥지둥 갈 바를 찾지 못할 때 우리 교회는 있으나 마나한 교회가 되고 만 것입니다. 에스더는 그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하고 왕에게 가서 고하여 결국에 가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 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은 성도들은 주님의 뜻을 행하는 주님의 형제 자매, 모친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적은 일에 충성하고 끝까지 충성하고 변함없이 충성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시는 복된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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