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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 (스 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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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 (스 7:1-10)


‘섭리(攝理)’라는 말은 세상에서 사용하는 뜻과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뜻이 다릅니다. 세상에서는 섭리를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이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이에 비해 기독교에서는 ‘뜻 가운데 인간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섭리라는 뜻은 창 22:14에 나오는 ‘여호와 이레’라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성경의 히브리어 ‘이레’라는 말을 라틴어로 ‘providet’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 providet 라는 말에서 후에  ‘providence’ 즉 ‘섭리’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뜻 가운데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명하셨고, 또 뜻 가운데 숫양을 준비하셨고, 결국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 숫양으로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를 드리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간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고 이끌어 가시는 그 모든 하나님의 활동을 섭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한 가난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학교에 갈 만큼 넉넉하지도 못했고, 어느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할 만한 기술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사진술을 배워 사진기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진기술을 엮어 놓은 책을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그 편지를 받은 서점의 착오로 ‘사진술’에 대한 책 대신 ‘발성법’에 대한 책이 왔습니다. 이 소년은 너무 가난하여 그 책을 돌려보낼 만한 우송료도 없었거니와 반송하는 방법도 몰랐습니다. 

이 소년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 발성법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통해 발성법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 ‘차리 맥키시’라는 사람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가십니다. 그리고 그 인생을 통하여 더 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십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 가운데 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속에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손의 도우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두 번째 바벨론 포로귀환 이야기입니다. 이미 스롭바벨의 영도 하에 이스라엘 백성이 1차 포로귀환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돌아와 예루살렘에서 성전도 재건했습니다. 그리고 또 58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성전재건은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상태는 깊은 침체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보이는 성전은 재건했는데, 보이지 않는 성전은 아직도 제대로 재건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개혁운동을 위해 두 번째 포로귀환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바사에 남아있던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귀환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역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섭리하셨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에스라를 세우심

본문 1절을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 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하나님께서 2차 포로귀환을 이루실  바로 그 때 거기에 에스라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 사건에서 보듯이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를 드려야 할 그 때 거기 뿔이 수풀에 걸려있는 숫양이 있었던 것처럼, 거기에 에스라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물이 필요할 때 숫양이 있었던 것처럼, 2차 포로귀환을 이끌 사람이 필요할 때 에스라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에스라라는 사람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에스라라는 사람을 세우셨습니다. 저를 2차 포로귀환을 이끌 지도자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을 준비하시고 세우시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출애굽기를 읽어보면 출애굽 사건도 모세를 준비시키시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호렙산에서 모세를 세우시는 이야기로부터 본격적인 출애굽이 시작됩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교회의 새성전 시대 역시 사람을 세우시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이런 저런 모양으로 준비해 놓으신 사람들을 새성전 시대를 위해 세우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귀한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에 세우심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왜 에스라였을까요? 하나님께서 왜 에스라를 이 섭리의 역사에 지도자로 세우셨을까요? 한 마디로 에스라는 준비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1-5절을 보면, 에스라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제사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아론의 16대손이고, 정통 제사장 계열인 사독 계열의 제사장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스라가 공적으로 이스라엘을 이끌 영적 지도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에스라가 혈통과 계열을 통해 세워지는 제사장의 공적인 권위를 갖추었다는 말입니다. 

다음으로 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여기서 ‘익숙한 학자’라는 말은 한 마디로 말하면 율법에 능통한 전문가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에스라가 실력으로 봐도 이스라엘을 이끌 영적 지도자의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영적으로 이끌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실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6절을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에스라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었고, 또 왕이 청하는 것마다 다 들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스라가 정치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이스라엘을 이끌 지도자의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 에스라는 왕에게 직접 필요한 것을 청할 수 있었고, 또 나름대로 왕에게 신임을 받고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의 2차 포로귀환을 위해 더할 수 없는 적임자였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3박자를 다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영적 지도자로서의 권위, 당시 국가의 공식적 지위, 그리고 실제로 신앙개혁을 이룰 능력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라와 같은 사람을 준비시켜놓으셨습니다. 꼭 필요할 때 꼭 필요한 사람을 준비시켜놓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께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실 때 하나님을 위해 쓰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하나는 준비된 사람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을 준비를 말합니다. 특히 영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일꾼을 세울 때 주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무엇보다 성령충만이었습니다. 우리가 언제라도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영적 준비를 잘 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하나는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겠다고 부르실 때 ‘아멘!’하고 나설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새성전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새성전시대에 하나님께 필요한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영적인 준비를 잘 갖추셔서 하나님께 새성전시대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순종하셔서 귀하게 쓰임 받게 되시기 바랍니다.

아닥사스다 왕을 쓰심

11절을 보면,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의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2차 포로귀한은 아닥사스다 왕이 조서를 내렸기 때문에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 조서 내용을 보면 놀랍습니다. 우선 12절을 보면, “조서를 내리노니 우리나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그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너와 함께 갈지어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하나님을 섬기기 원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는 에스라와 함께 귀환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16-20을 보면, 예루살렘 성전과 하나님을 섬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25절을 보면, 이렇게까지 명하였습니다.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한 마디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라고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아닥사스다 왕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런 명을 내린 것일까요? 그는 페르시아의 제 6대 왕 아닥사스다 1세 즉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 왕을 말합니다. 물론 그는 페르시아의 왕으로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에스더를 왕비로 맞아들였던 아하수에로 왕의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왕비인 에스더를 잘 알았고, 페르시아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우호적이고 나아가 저들을 돕고자 했던 것입니다.

특히 27-28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또 나로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에스라를 위시한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귀환을 명하게 하시고 적극 후원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쓰십니다. 비록 저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저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도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소중한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직접 관계없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사용하십니다. 

이번 성전건축 과정에서 생각지 못했던 사람들의 도움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동작구청장님의 도움은 성전건축과정에서 큰 힘이 됐습니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있었습니다. 구청장님께서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빠른 시간 내에 보상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건축심의 과정과 건축허가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그래서 어려움 없이 행정절차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건축 시공 중에도 여러 차례 현장을 찾으셔서 관심을 가져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입당 후에도 주변 환경 정리에 큰 관심과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 분은 우리와 직접 관계가 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탁을 드린 일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분이 선거 때문에 도와주신 것도 아닙니다. 마치 본문에 나오는 아닥사스다 왕처럼 하나님께서 이분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적극적으로 우리를 돕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섭리 가운데 필요한 때 필요한 사람을 붙여주십니다. 그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평상시에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어두어야 합니다. 특히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아닥사스다처럼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와 관계없는 곳에서도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잇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

본문 9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첫째 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다섯째 달 초 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저들의 포로귀환 길은 약 4개월이나 걸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긴 여정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지켜주셔서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이것을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때문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 여정은 머나먼 길이었습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 직선거리로 따져도 8백 키로가 넘습니다. 그런데 그 앞에 사막이 가로놓여있기 때문에 비옥한 반달지구라는 곳으로 우회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란 터키지역을 돌아 시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야했습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배가 넘는 약 2000키로나 되는 먼 여정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의 여행 시기를 잘 살펴보면, 우리 가 사용하는 달력으로 4월 8일에 출발하여 8월 4일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해 중에 가장 더운 때 여행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먼 길을 가장 더운 때 네 달을 걸어서 여행을 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8:22을 보면, 에스라는 그 긴 여정 중에 군사적인 호위 없이 어떤 나라의 보호 없이 여행을 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지역을 지나며 토호세력을 만나야했고, 강도와 적들이 즐비한 곳을 지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그 먼 길을 여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큰 어려움 없이 그 모든 여정을 잘 헤쳐 나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섭리 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여정을 지켜주십니다. 어디로 가든지 우리들을 눈동자처럼 보살펴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점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점을 감사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아들과 아버지가 따로 여행을 했습니다. 도착지에서 만나서 여행 도중 있었던 일을 나누었습니다. 아들이 감격하며 아버지에게 간증을 했습니다. 세 차례 큰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큰 교통사고가 있었고, 강도를 만났었고, 그리고 몸이 아팠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결국 이렇게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 아버지가 간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와도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에게는 단 한 차례 어려움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교통편도 좋았고, 건강에도 전혀 문제가 없었고, 그리고 그 어떤 말다툼이나 다툼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큰 어려움을 겪어야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실감합니다. 평상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이점을 깨닫고 간증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섭리 가운데 여러분 개인의 인생에 개입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에 개입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나라와 이 역사가 나아가야 할 길에 개입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여기에 우리가 에스라처럼 귀히 세움 받고 쓰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믿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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