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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끈질긴 기도의 능력을 믿어라 (눅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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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기도의 능력을 믿어라 (눅 18:1-8)

제가 언젠가 차를 운전하면서 어디를 가고 있었습니다. 저는 운전 중에 극동방송을 자주 듣는데 제가 라디오를 켜니 어떤 목사님의 설교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으며 은혜를 받으며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 긴 터널을 통과하게 되었는데 그 터널에 진입하자마자 방송이 수신이 안 되고 ‘지지직~~’ 소리가 났습니다. 그 터널 안에는 방송전파수신 장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긴 터널을 지나는 시간에 중요한 내용을 듣지 못하게 되어 속도를 내어 그 터널을 빠져 나왔습니다. 터날 밖으로 나오자 전파가 잡혀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부분을 놓쳐 아쉽기 그지없었습니다. 

저는 이 일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말씀치 않아서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아서 못 듣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수신 장치가 없어서 못 듣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들을 수 있는 귀가 없는 것입니다.   

동시에,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아무리 들으려 해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기도를 해도 하나님이 응답치 않는 것 같은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내가 터널을 통과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동굴 안에 거하고 있는지를 분간해야 합니다. 

터널을 통과하고 있다면 잠시 후에 벗어 날 수 있기 때문에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내가 동굴 안에 있는 것이라면 아무리 기다려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자기가 동굴 안에 갇혀 있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린다고 불평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그때는 그 동굴 속에서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동굴 속에 숨어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사람이 싫어서 동굴로 숨는 경우도 있고, 직분을 감당키 힘들다고 그 직분을 팽개치고 동굴로 숨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나 기막힌 환경이나 고난이 닥쳤을 때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동굴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라기는 그것이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연약하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때론 만사가 귀찮고 힘들어서 나도 모르게 동굴로 피할 경우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들어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속히 동굴에서 벗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터널과 동굴은 차이가 있습니다. 터널은 조금 지나면 다시 밝은 세계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동굴은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어두워집니다. 그리고 결국은 길이 막혀 있습니다. 그러니 속히 되돌아 나와야 합니다.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깨닫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터널에 있든지 동굴 속에 있든지 우리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터널이나 동굴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 기도는 들으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기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교훈하고 있습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는 아주 못된 재판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었는데 그 과부는 아주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였습니다. 그래서 그 재판장에게 찾아와서 자기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재판장은 아주 못된 재판장이라 가난한 과부의 호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되어 그 재판관은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사건을 맡아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단 말입니다. 

어떻게요? 그 과부가 밤낮으로 찾아와 재판장을 귀찮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재판장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매일 괴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이런 생각을 하고 들어 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우리 주님이 이런 비유로 말하셨을까요? 
기도를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끈질기게 하라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가난한 과부의 끈질긴 요청에 그 소원을 들어주었는데 하물며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가지고 아주 중요한 교훈 몇 가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1. 누가 끈질긴 기도를 하는가? 

여러분! 어떤 사람이 끈질긴 기도를 할까요? 

1)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자가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인 것을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하나님께 여러분의 문제를 내어놓고 정말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수없이 명령하셨는데 왜 우리는 기도를 그렇게도 안하고 있나요? 그 이유가 뭔가요? 

혹시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지 않는 것 아닌가요?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지만 혹시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하고 있지는 않느냔 말입니다. 

그게 아니면 하나님이 나를 돕지 않아도 내 힘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인가요? 그렇다면 그것은 무서운 교만입니다. 내게 되어진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믿어야 합니다. 

사실 오늘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아주 어려운 것을 요구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십니다. “항상 기도하되 낙심하지 말라” 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나요? 어떻게 쉬지 말고 기도할 수 있나요? 

그러나 한번 뒤집어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할 수 없는데 하나님은 왜 하라고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지금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계시는 것인가요?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대화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 대화가 기도입니다. 

기도는 뭘 해달라고 하는 것만이 기도가 아닙니다. 친구와 대화 하듯, 부모가 자식과 대화하고 싶어 하듯, 늘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기도를 안 합니다. 그게 우리 문제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우리 기도를 듣고 계심을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쉽게 포기하며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2) 반드시 응답한다고 믿는 자가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이 불의한 재판관과 같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 비유 말씀을 통해서 끈질긴 기도를 하면 반드시 응답한다고 교훈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불의한 재판관과 다르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에 세밀하게 귀를 기울이고 계시고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시기 위해서 늘 준비하고 계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두 번 달라고 했는데 안주신다고 쉽게 포기하지 말라 하십니다. 연약한 과부도 재판장을 밤낮 괴롭게 해서 문제를 해결했는데 어찌 살아계신 하나님이 당신의 택한 백성의 밤낮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반드시 들어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7절을 보세요.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아멘?   

문제는 내가 기대했던 응답과 다르게 응답될 때 응답이 안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즉각 Yes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때는 Wait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No라고 하시는 경우입니다.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도 응답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No도 응답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끈질기게 기도하라 하나요? 

가끔은 No와 Wait도 Yes로 바뀌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막둥이가 저녁늦게 통닭을 사달라고 하면 “안돼” 하고 거절합니다. 그러면 아들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졸라댑니다. 포기할 줄 모르고 계속 조르니 알았다고 그 요구를 들어주기도 합니다. 하나님도 가끔 그러십니다. 그래서 끈질기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구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이미 응답 받은 것을 모르고 있기에 거절되었다고 보는 경우도 있으나 알고 보면 이미 다 응답하셨습니다. 믿으시길 축원합니다. 
  

2. 끈질긴 기도를 원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즉각 응답치 않고 끈질긴 기도를 해야만 응답하시나요? 하나님은 심술쟁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끈질긴 기도를 원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뭘까요?   

1) 끈질긴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제가 물어보겠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기도하는 것을 즉각, 즉각, 다 응답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아마도 이 자리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또 달라는 대로 다 들어주신다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과 사모하는 마음이 있을까요? 아마도 당연한 듯이 생각하고 감사 없이 살 것입니다. 

왜 우리가 끈질기게 기도해야 하지요? 하나님은 우리를 기도를 통해 훈련시키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늘 깨어 기도해야 될까요? 

벧전5: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그렇습니다. 지금도 사탄은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누구를요? 잠들어 있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하지 않는 사람을 삼키려고 노리고 있습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세요. 사자나 표범들이 늘 노려보고 있습니다. 누구를 노려보고 있습니까? 병들어 있고 긴장을 풀고 있는 짐승입니다. 그리고 무리에서 이탈한 짐승을 노리고 있습니다. ‘어흥’하고 달려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을 노리는 마귀도 신앙이 병든 성도, 시험 들어 깨어 있지 못하는 성도, 그리고 교회에 모이지를 않고 늘 외톨이로 겉도는 성도를 노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들고 기도를 통해 자신의 약점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끈질긴 기도가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2) 끈질긴 기도는 나를 변화시켜 줍니다. 

어떻게 변화시켜 주시나요? 

먼저는, 끈질긴 기도는 나의 요구를 명확하게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과부는 어떤 억울한 일이 있었는지는 우리가 모릅니다. 그러나 재판장에게 찾아가서 그가 요구하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재판장이 그 요구를 들어준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고 계십니까? 
그것이 꼭 필요한 것입니까? 그리고 여러분이 구하는 것의 결과를 아십니까? 

그러면 끈질기게 구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내 기도한대로 응답치 않을 수 있음도 알아야 합니다. 왜냐면 내가 구한대로 주시면 내게 유익이 없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구한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릅니다. 

사55:8~9절을 아시지요?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무슨 이야기냐 하면 하나님은 우리보다 우리 미래를 더 잘 아시고 우리 형편을 더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모르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구하는 것의 결과도 주님은 아신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유익이 없는 것은 아무리 떼를 쓰고 금식을 해도 안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거절도 응답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또한, 끈질긴 기도는 은혜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게 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가치를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 은혜가 값없이 버려지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요즘 초등학교 분실물 창고에 가면 학생들이 잊어버리고도 찾아가지 않는 물건들이 쌓여 있답니다. 선생님들이 조회시간이나 방송으로 찾아가라 해도 찾아가는 학생이 별로 없답니다. 어떤 경우는 이름이 쓰여 있어서 찾아주면 필요 없다고 버리라 한답니다. 왜죠? 말 한마디면 부모가 새것을 사주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는 물자가 귀해서 몽당연필에 볼펜 껍데기를 끼워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부모의 수고와 사랑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실 때 공짜로 여기거나 가치 없이 여기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오병이어 때 5천명이 먹고 남은 떡 부스러기를 제자들에게 모으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12바구니 모았습니다. 

왜죠? 주님이 자년 보호하느라 그러셨나요? 그것도 있겠으나 하나님은 베푸신 은혜가 배고플 때는 소중하다가도 배부르다고 쓰레기로 버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3:20절에 이렇게 표현되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이게”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3) 끈질긴 기도는 믿음이 있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기도의 응답이 지연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하나님이 나를 테스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이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확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끈질기게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필요한 것이 아니면 한두 번 기도하고 포기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로 우리 믿음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말 급하고 빠르게 돌아갑니다. 특히 한국 사람은 성격이 급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급속도로 변합니다. 선교사님들 중에 몇 해 만에 한국에 오신 선교사님들은 한국에 오면 정신 사납고 어지러워 못살겠다고 합니다. 너무 많이 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여유가 없고 인내가 없습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신호가 떨어졌는데 출발이 1~2초만 늦어도 뒤에서 빵빵거립니다. 특히 젊은 사람일수록 기다릴 줄 모릅니다. 그래서 죽도록 사랑한다고 하고선 애인이 군대 가면 언제 그랬냐 싶게 고무신 거꾸로 찹니다.   

신앙에는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부모님 구원을 위해 기도하십니까? 끈질기게 구하시기 바랍니다. 

자녀가 믿음 안에서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포기하지 말고 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언젠가 하나님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에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8절에 아주 특이한 말씀이 있습니다. 
8절하반부를 보세요.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기도를 이야기 하다가 왜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인가요?   

인자가 올 때는 언제입니까? 말세에 주님이 재림하실 때를 두고 하신 말입니다. 
그때에는 세상에서 믿음이 있는 자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끈기 있게 기도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세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가 되며 끈질긴 기도를 하는 믿음의 사람들 찾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지막 때가 될수록 우리는 더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3. 끈질긴 기도는 어떤 결과를 가져오나요? 

1) 아브라함처럼 형제를 구원합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6번을 끈질기게 붙들고 기도합니다. “50명이 있으면 어찌 하겠습니까? 5명 부족하면 어쩌겠습니까? 40인, 30인 20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10명이 있으면 어찌하겠습니까! 6번을 변경하며 끈질긴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기도하는데 하나님은 진노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에 의인 10명이 못되었지만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의 기도를 생각하사 롯의 기정을 소돔성에서 강제로 빼 내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2) 야곱처럼 문제 해결을 받게 합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에서가 군대를 이끌고 달려옵니다. 그때 야곱은 얍복 강변에 앉아 있다가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합니다. 허벅지 관절이 부러지도록 죽을힘을 다해 끈질기게 매어 달립니다. 

많은 분들이 이것을 기도로 봅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이 기도대로 그는 응답을 받았고 결국 형 ‘에서’를 만났을 때 그 환도 뼈가 부러진 것 때문에 살아납니다. 

그토록 죽이려고 이를 갈고 달려오던 에서가 왜 갑자기 끌어 앉고 울며 용서했을까요? 하나님의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에서의 마음에 긍휼을 넣어 준 것입니다. 그리고 환도 뼈가 부러져 절뚝거리고 달려오는 동생이 불쌍한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그러니 뼈가 부러지도록 끈질긴 기도를 하면 우리가 걱정하고 염려했던 문제가 해결되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3) 한나처럼 자녀를 복되게 합니다. 

삼상1장에 엘가나의 부인인 한나가 자식을 낳지 못하자 남편의 첩인 브닌나가 한나를 속상하게 합니다. 그러니 한나가 얼마나 원통하고 억울했겠습니까? 

남편과 함께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는데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던지 제사장 엘리 눈에는 그녀가 술 취한 것 같이 보였을 정도입니다. 

나중에 사정을 들은 엘리 제사장은 그녀를 축복합니다.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러자 한나는 짐 싸들고 집으로 돌아가서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기도 응답을 확신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그녀를 생각하사 잉태케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끈질긴 기도는 태의 문을 엽니다. 그리고 끈질긴 기도는 자녀에게 복이 됩니다. 그 기도로 태어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됩니다. 

한나의 기도로 사무엘이 복을 받습니다. 젖을 뗀 사무엘을 성전에 바친 한나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겠습니까? 그 끈질긴 기도는 자녀에게 엄청난 복으로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식에게 어떤 유신을 주고 싶습니까? 돈입니까? 재산입니까? 다 소용 없습니다. 기도의 유산을 물려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부모님의 믿음의 기도는 자녀를 복되게 하는 최고의 유산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끈질긴 기도를 요구하십니다. 
쉽게 포기하는 기도가 아닌 끈질긴 기도를 요구하십니다. 
우리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 밤을 새워 끈질 긴 기도를 하셨습니다. 얼마나 끈질긴 기도였는지 땀방울 떨어짐이 핏방울처럼 떨어졌다고 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그렇게 기도하셨는데 연약한 우리는 얼마나 더 기도를 많이 행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놀라운 복을 주시고 싶어 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끈질기게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기도를 통해 우리 믿음을 보길 원하십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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