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신년] 푯대를 향한 신앙생활 (빌 3:13-16)

첨부 1


푯대를 향한 신앙생활 (빌 3:13-16)


2012년은 ‘임진년’이라는 해입니다. 12지간에서 ‘자’, ‘축’, ‘인’, ‘묘’, ‘진’에서 ‘辰’은 용을 뜻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용의 해입니다. ‘壬’자는 검은 색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임진년은 ‘흑룡의 해’라고 합니다. 용은 동,서양에 함께 알려진 상상의 동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용은 상서로운 기운을 가진 동물로 임금에 비유했습니다. 임금님의 얼굴을 ‘용안’이라고 하고, 임금님의 옷을 ‘용포’라고 하고, 임금님이 앉는 자리를 ‘용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용꿈을 꾸고 아이를 낳으면 큰 인물이 된다나 어쩐다나 ... 올해는 특별히 흑룡의 해라고 하니 올해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크게 될 거라는 이야기입니다(전혀 믿을 만한 것은 못되는 이야기임). 

사실 임진년, 흑룡의 해가 복된 해라고 하지만, 1592년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60년 전, 1952년에는 6.25 전쟁 중이었습니다. 또한 성경에서 용은 계시록에 옛 뱀이요 마귀, 사탄을 상징하는 것으로 나중에 잡혀서, ‘용용 죽겠지’라는 말이 이루어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2012년 용의 해를 맞아서 생각해 보았는데, 하여튼 모든 것을 좋게 해석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용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받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2012년 새 해 첫 주일입니다. 저는 2012년에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 제일교회를 어떻게 사용하실 것인지? 그래서 얼마만큼 부흥케 하실 것인지? 그리고 과연 우리 교회로 하여금 선교의 사명을 어디까지 감당하게 하실 것인지? 이런 일들을 기대하고 생각을 하면 밤에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한 해를 생각해 봅니다. 마라톤 선수는 42.195km를 달려야 합니다. 출발선을 떠난 선수는 우승을 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선수의 긍지를 갖고 목표점을 향하여 완주하는 것이 당연한 의무입니다. 이것은 인생을 출발하는 데도 필요한 생활철학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새 해 첫 시간,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하는 지를 보여줍니다. (13~14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푯대를 향하여’,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올 한해 우리는 앞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가는 데는 험한 언덕도 있고, 날씨가 험할 수도 있음. 그리고 어두운 길목에는 무서운 짐승이나 도둑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비장한 각오는 물론 정신적인 무장도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 어떤 방법을 가지고 나아갈 것입니까? 

오늘 성경 본문을 통해 새해 첫 주일,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생각해 봅니다. 

1. 목표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목표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데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신앙인의 생활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그 목표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신앙생활의 모범자이며 우리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생활을 착실하게 이어가야 합니다. 

목표를 상실한 생활이란 허무한 생각에 지배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생활이 바로 목표의식이 철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항상 바라보고 걸어가는 사람은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게 와서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의 성품을 배우는 것은 세상의 죄악을 벗어버리고 선을 향한 생활을 위한 꾸준한 걸음입니다. 

2012년을 시작하면서 생각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리 교회가 계속 바라보아야 할 큰 비전과 목표가 무엇일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 혼자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중직들이 함께 바라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향해 주시는 큰 비전, 분명한 목표, 이것을 우리가 세우고 계속해서 그것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모든 임원들이 모두 한 곳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때, 때로는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고갯길을 올라갈 때 그 자리에 앉고 싶은 생각을 할 때가 여러 차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좌절을 참고 견디며 좀 느리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면 다시 힘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생활 중에도 그런 때는 계속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 가장 힘을 주는 것은 멀리 보이는 목표입니다. 목표지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에는 목표지가 있습니다. 그곳을 향하여 다시 용기를 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쓰러질 때도 있습니다. 시험으로 인하여 실망하고 낙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 나의 주인이 되시며 목표가 되시는 예수님을 향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데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신앙을 가졌다는 자체가 목표의식이라는 것입니다. 목표의식이 뚜렷한 사람은 어떠한 곤경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나아갑니다. 폭풍우 속에서도 등대를 발견한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목표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2. 위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1년을 살아가는 생활에서 항상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누가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까? 항상 주님의 음성을 사모하는 사람에게 들려주십니다. (신26:17)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라” 

이것은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는 항상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살았고, 그 소리에 의하여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도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예수님은 공생애 3년 동안 항상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의하여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바른 생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만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를 따르는 제자의 생활은 모두 그렇습니다.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등 뒤로 돌리고 나면 반드시 사단이 앞에서 나에게 명령할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위로부터 태어난 사람은 위의 소리를 들어야 진실을 행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기서 오는 명령을 실천하는 것이 의무입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다만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에게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때로는 성령께서 감동을 주셔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십니다. 

‘내 안에 역동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이란 책이 있습니다. ‘오랄 로버츠’라는 목사님이 쓰신 책인데, 오랄 로버츠 목사님은 대단한 분이십니다. 그는 교육자이고, 복음 전도자이며, 또 사업가이며 120권이 넘는 많은 책을 저술한 저자이고 또 TV를 통해 많은 인기를 누린 목사님입니다. 그는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복음 전파와 전도대회를 개최하였고, 국가적, 세계적 모임과 컨벤션에서 수백 번 초청 연사로 활약했습니다. 그가 설립한 오랄 로버츠 대학은 미국의 기독교 복음주의에 입각한 유명한 대학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어려서 너무도 가난한 집에서 자라났고, 또 심하게 말을 더듬는 말더듬이였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놀라운 일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그는 말합니다. 항상 자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자신을 통한 하나님의 성공을 절실히 원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위로부터 오는 축복은 하나님의 생각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꾸준히 달려야 합니다. 

(16절)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던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이 말씀은 그 자리에 머무르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꾸준히 걸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단이 아니라 중단 없는 성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앞에 있는 12절에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언제까지 달려갈 것입니까? 마지막 날까지입니다. 금년 12월 31일까지입니다. 그 때에야 결산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하는 것입니다. 이미 금년은 시작되었습니다. 안가겠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가야 합니다. 1년의 생활은 짧은 일생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1년을 성실하게 살면 평생을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생을 사는 정성으로 금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영생으로 이어지는 생명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강한 권면으로 \'용기를 갖고 걸어가라, 믿음으로 걸어가라, 희망을 갖고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에서 흔들리지 말고 오로지 기도하는 자세로 성령의 힘을 얻어 악의 힘을 이기고 살면 최후의 승리는 주님과 더불어 얻을 수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1976년에 미국 교회에서 성실하게 꾸준히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을 조사했습니다. 당시 아이오와주 케오쿡에 있는 제일침례교회의 성도인 린퀴스트 여사가 뽑혔습니다. 그녀는 1888년부터 88년 동안 꾸준히 주일 예배에 참석하였다고 합니다. 그 동안 크리스마스 예배나 부활절 예배에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그 88년 동안 그분이 섬기던 교회에서 8000번 이상의 설교를 들었고, 4000번 이상의 기도회에 참여했으며 29000번 이상의 취침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또한 린퀴스트 여사는 50년 이상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였는데, 그녀의 제자들 중 많은 수가 목회자가 되었고, 또 훌륭한 인물이 나왔다고 합니다. 

80년 이상을 한결같이 주님을 바라보고 성실하고 신실하게 살아온 한 여인의 신앙생활은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일입니다. 

1951년 4월 미국에서 당시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서 파면당한 맥아더 장군이 워싱턴 의회의 고별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통해 인생의 의무가 무엇인지 알고 그 사명을 다 감당한 한 노병은 물러납니다. 단지 노병은 죽지 않고 물러갈 뿐입니다.” 

우리도 평생을 달리는 신앙생활 하다가 은퇴식장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평생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좇아 산 이 노병은 죽지 않고 단지 물러갈 뿐입니다.” 

2012년 새 해에는 우리가 끝까지 푯대를 바라보고 나아갑시다. 위로부터의 소리에 민감하게 귀를 기울이고, 꾸준히 달려 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들에게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2012년이 그러한 결심으로 나가시는 여러분에게 놀라운 축복의 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