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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형통함에도 조건이 있습니다 (시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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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함에도 조건이 있습니다 (시 1:1-3)

우리 모두는 형통한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또한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형통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보니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서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형통한 인생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본문에서 사용된 형통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찰라흐’라는 단어입니다. 그 뜻은 ‘앞으로 나가다, 발전하다, 성공하다, 유익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단어의 의미를 보면 전진하고 발전하고 성공하고 유익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1-2절을 보면 형통의 조건 4가지가 나옵니다. 첫째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입니다. 넷째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조건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것의 기준으로 삼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형통의 조건 4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는 것이 형통의 조건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형통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들은 낙원에서 왕 같은 존재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신령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의 가정은 마치 천국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며 서로 존경하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형통한 존재였고 형통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언제나 형통하게 행복하게 살던 아담과 하와에게 형통함이 사라지고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하와가 마귀의 꾀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산의 모든 실과를 아담과 하와가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모든 것을 주셨지만 단 한 가지 금한 것이 있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입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창 2:17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나님은 그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는데 하와는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추가 시켰고, “반드시 죽으리라”는 말씀은 “죽을까 하노라”로 변질시켰습니다.
   
마귀는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하와를 속이기 시작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5)
   
어리석은 하와는 악한 자인 마귀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마귀의 꾀에 넘어갑니다. 하와가 마귀의 말을 듣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바라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보입니다. 결국 하와는 악한 자의 꾀를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게 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하와는 그 열매를 아담에게도 줍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 때 상황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아담은 그 열매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이기 때문에 거절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하와는 자기의 범죄에 아담을 끌어드리기 위하여 꾀를 쓰며 유혹했을 것입니다. 아담이 하와의 많은 말에 넘어가게 되었는지 몇 마디의 말에 넘어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가 확신하기로는 분명히 이런 말을 했을 것입니다. “아담, 내가 그 열매를 먹었어요. 하나님이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는데 제가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먹어도 안 죽어요. 절 보세요”
   
아담은 갈등은 했겠지만 결국 이미 악인이 되어버린 하와의 꾀를 따르게 됩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는 했겠지만 결국 악인의 꾀를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어버리게 됩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 대신 악한 자인 사단의 꾀를 따랐고,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 대신 악인이 되어버린 하와의 꾀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형통 대신 불통이었습니다. 이것이 인류 비극의 시작인 것입니다.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뒤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악한 자인 사단의 꾀를 따르고, 하나님을 떠난 악인의 꾀를 따르고 있습니다.
   
사단은 생각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사단은 사람들의 마음에 자기의 생각을 집어넣고 사람들이 그 생각에 사로잡혀서 사단의 뜻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요 13:2을 보면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고 말씀합니다. 가룟 유다는 마귀가 넣어준 생각을 받아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움직이므로 예수님을 팔아먹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 소리가 악인들의 꾀라는 생각을 못하고 그 소리를 따라 움직입니다. 무슨 결정을 할 때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살피기보다는 사람의 소리에 영향을 받아서 움직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무슨 결정을 할 때는 사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찾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을 결정할 때는 전보다 더 성경을 읽고 전보다 더 기도하고 전보다 더 예배에 힘을 쓰기를 바랍니다. 예배도 줄이고 기도도 줄이고 성경도 보지 않고 자기 생각과 사람의 소리를 따라 움직이는 것은 악인의 꾀를 따르는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사단의 꾀를 따르거나 인간의 꾀를 따르는 것아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는 코스를 따라 달려야 합니다. 아무리 빠른 길이 있고, 아무리 좋은 길이 있어도 코스를 따라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사람들은 빠른 길, 좋은 길 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형통의 비결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사단의 속삭임도 있었을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충고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사단의 꾀나 주변 사람들의 꾀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창 12:4입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그것이 형통의 비결입니다. 
 

2. 하나님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는 것이 형통의 조건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죄가 무엇입니까? 죄는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법이 없는데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러나 법이 생기고 그것을 어기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법은 악한 것이 아닙니다. 법은 백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법을 어기게 되면 백성을 보호해야 할 법이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롬 5:13입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죄인의 길에 선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같은 죄를 반복해서 계속해서 범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원래 세상에 길은 없었습니다. 도로를 만들기 전에 있던 길은 사람들이 그리로 계속 다녔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는 잔디가 귀해서인지 어딜 가나 잔디밭에는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팻말이 있으면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데 멀리 돌아가기 싫어서 잔디밭을 통과할 때가 많았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의 통행이 많았던 곳에는 길이 생기게 됩니다. 사람들이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밟고 지나갔기 때문에 길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죄도 그와 같습니다. 같은 죄를 반복해서 계속 범하게 되면 죄의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형통함을 막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미움의 죄를 계속해서 범합니다. 이런 사람은 미움에 길에 서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형통을 막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습관은 죄의 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형통을 막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죄는 지었으면 신속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만약 회개하지 않고 같은 죄를 계속 범하게 되면 죄의 길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통해서 더 큰 죄가 들어오고, 사단이 들어오고, 저주가 들어오고, 불통이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같은 죄를 계속해서 범하게 되면 죄의 길은 더 분명해지고 넓어지게 됩니다. 제 자동차에 네비게이션이 있습니다. 제 네비게이션에는 지나온 길을 표시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 기능을 사용하면 제 자동차가 지나온 길이 지도에 약 1cm 간격의 점선으로 나타납니다. 만약에 제가 같은 길을 다시 가게 되면 전에 있던 점선에 새로운 점선이 더해져서 점선이 겹치던지 아니면 점선의 간격이 좁아지게 됩니다. 제가 같은 길을 반복해서 여러 번 다니게 되면 점들은 서로 연결이 되어 하나의 선으로 표시가 되며 제가 많이 다니는 길이 분명하게 네비게이션에 표시가 됩니다. 죄도 이와 비슷합니다. 죄는 흔적을 남깁니다. 같은 죄를 반복적으로 범하면 죄의 길이 생기고 죄의 길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갈수록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의 길로 온갖 좋지 않은 것들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길을 지워버리는 방법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제 네비게이션에는 제가 지나온 경로를 삭제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제가 그 기능을 커고 클릭을 하게 되면 신기하게도 저의 지나온 경로가 지도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회개도 이와 같은 기능이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사 1:18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회개의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자백하는 것입니다. 요일 1:9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자백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죄의 길을 지워버리시는 것입니다.
   
회개의 두 번째 방법은 그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잔디밭에 난 길을 생각해봅시다. 잔디를 다시 심어서 복구를 했습니다. 그러면 이제 전에 다녔던 곳으로 다니면 안 됩니다. 불편해도 돌아가야 합니다. 마찬가지고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으니 이제는 다시 옛길을 찾으면 안 됩니다. 좀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코스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것이 형통의 조건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오만한 자들’은 하나님을 없다고 하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우습게 보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니 그런 사람은 형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지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됩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정복하기로 계획했을 때 충성스런 장군이 그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하! 부탁드립니다. 이번 러시아 원정을 취소하시옵소서. 각하께선 지금까지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러시아 정복을 그만하소서.”

나폴레옹은 그의 충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장군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간청하면서 “아무리 사람이 일을 계획해도 그 일을 성취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번 러시아 원정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취소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나폴레옹은 크게 화를 내면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가 모든 일을 계획하고 성취한다! 무슨 하나님이 일을 계획하고 성취해?” 그리고 오만하게 러시아 원정을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하여 망하고 만 것입니다.
   
성경은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 말은 오만하지 말라는 뜻과 오만한 사람과는 사귀지도 말라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만한 자와 사귀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는 최소 2가지입니다. 첫째는 오만한 자의 오만함이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전염병에 걸린 사람과 가까이 하면 그 병이 전염되는 것과 같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오만한 자 편에 있다가 오만한 자와 함께 매를 맞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탓던 배에 있던 사람들이 요나 때문에 풍랑을 만나고 고생을 했던 것처럼 오만한 자와 사귀게 되면 오만한 자와 덩달아 풍랑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고후 6:14에서는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은 믿는 사람보다 믿지 않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을 사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함께 멍에를 매지는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오만한 사람과 결혼을 하거나 동업을 하는 것은 미련한 일입니다.
   
오만함의 다른 표현은 교만함입니다. 잠 16:18에서 말씀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루이스 터먼은 아이큐 160이상의 천재들의 일생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천재들은 대부분이 성인이 되어, 실패자의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천재들에게는 ‘내가 최고’라는 교만한 마음이 있습니다. 둘째, 그 교만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거만합니다. 셋째, 고집불통이 되어 무모하게 행동하다가 결국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에 하나 더 추가 시키고 싶습니다. 천재는 하나님 말씀을 잘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자기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망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뛰어나고 능력이 탁월해도 그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막으시면 아무리 머리가 좋고 능력이 있어도 불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시면 아무리 미련하고 무능해도 형통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만하지 마십시오. 겸손하므로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그러면 형통할 것입니다. 

잠 22:4입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겸손하게 사셔서 하나님이 주시는 보상을 받으며 사십시오.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 풍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우리교우들이 좀 능력이부족하고 미련해도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형통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4. 하나님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이 형통의 조건이라고 말씀합니다.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법은 무엇입니까? 저는 최소 네 가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양심입니다. 둘째는 성경입니다. 셋째는 생명의 성령의 법 즉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넷째는 설교입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를 하나로 요약을 하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법이 법대로 사는 백성을 보호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을 보호합니다.

찰스 1세(Charles I)의 폭정으로 고통 받고 있던 영국을 구한 크롬웰(Oliver Cromwell) 이야기입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편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기도하는 일과 성경을 읽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전쟁터에 나갈 때도 늘 기도하고 조그마한 포켓 성경을 포켓에 넣어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가슴에 총탄을 맞고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는 보좌관을 보고 “이제 나 죽네. 잘있게.”라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죽지 않는 겁니다. 분명히 총에 맞았으니 가슴에서 피가 솟구쳐 올라야 하는데 피가 나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가하고 가슴에 손을 넣어 보니까 총탄이 성경에 박혀있는 것입니다. 그는 주머니에 있던 성경덕분에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크롬웰의 성경이 크롬웰을 살린 것은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영적으로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사단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말씀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 보니 형통하는 사람,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미워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몇 주 전에 황신혜 청년이 카카오톡으로 예배가 기다려진다고 고백하더군요. 제 설교가 너무나 좋고 설교로 인하여 마음의 아픔이 많이 치료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예배가 기다려지고 설교가 듣고 싶답니다.
   
저는 그 청년의 고백을 생각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라면 거의 대부분 황신혜 청년과 같은 경험을 했을 텐데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 가운데 지금도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몇 %나 될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황신혜 청년과 같은 체험들이 있습니까? 아마 대부분이 아멘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도 그렇게 사모합니까?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말씀을 사모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 형통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본문 2절을 함께 다시 읽어봅시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형통하는 이유를 3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계속해서 수분이 공급되고 계속해서 영양분이 공급되기 때문에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은 그 말씀으로 인하여 힘을 얻어서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형통한 생활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영국 런던의 테임즈 강변에 재판소가 있는데 그 재판소의 뜰에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에서 열리는 포도는 영국에서 가장 맛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식물학자들이 이 포도나무를 번식시켜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조사를 해 보니 다른 포도나무와 조금도 다른 점이 없었습니다. 학자들이 어떻게 하여 이 포도나무가 다른 포도나무보다 맛있는 열매를 맺는지 자세히 알아봤더니 이 포도나무의 뿌리가 강 밑바닥에까지 뻗어 있었습니다. 뿌리가 강 밑바닥에 뻗어 있으니 웬만한 가뭄에도 충분한 수분을 빨아들일 수 있었고 다른 곳보다 더 많은 영양을 섭취할 수 있어 영국에서 가장 맛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에 깊이 빠져있습니다. 보통 어른들은 많은 시간 컴퓨터를 하면 피곤을 많이 느끼는데 아이들은 피곤한지도 모르고 몇 시간씩 합니다. 그 이유는 컴퓨터 게임을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은 기도하고 성경 읽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1장 8절에서 형통의 비결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하나님의 말씀과 형통은 셋트입니다. 함께 다닌다는 말입니다. 계 1:3에서 말씀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은 어린 시절의 추억 중에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어머니 무릎에 앉아서 성경 말씀을 들었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귀가 닳도록 십계명을 되풀이하여 들려주던 것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가 공직에 있을 때 뇌물의 유혹을 많이 받곤 했는데, 그 때마다 거절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주 너의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링컨의 방에는 깃발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거기에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야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니라”
   
대통령으로 직무를 하다가 힘이 들 때마다 이 말씀을 보고 큰 힘과 용기를 얻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범사에 형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늘 말씀 가운데 서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바로 형통인 것입니다.
   
워싱턴에는 링컨이 애독하던 성경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성경 중에서도 그의 손때가 많이 묻어 있는 구절이 있는데 시편 34편 4절 말씀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링컨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이 구절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링컨은 가난한 집에서 때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링컨이 9살 때 죽었습니다. 너무 가난하여 학교를 다니지 못했는데, 학교 다닌 날이 그의 생애 중 겨우 6개월 밖에 되지 않습니다. 22살 때 첫 사업에 실패합니다. 23살 때 주 의원선거에 낙선합니다. 24살 때 사업에 실패하고, 26살 때 사랑하는 여인을 잃었습니다. 27살 때 그 영향으로 정신분열과 신경쇠약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29살 때 의회 의장선거에 낙선하고, 34살 때 하원의원선거에 낙선했으며, 39살 때 또 낙선했습니다. 46살 때 상원 의원에 낙선했으며, 47살 때 부통령 선거에 낙선했습니다. 49살 때 상원의원선거에 또 낙선했습니다. 그리고 51살 때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었을 동안에도 그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이야기는 끊임없이 있었습니다.
   
낙선할 때마다 링컨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주저앉고 싶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그는 인생으로 일어서지 못하게 하는 일이 계속 찾아 올 때마다 실패가 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자기 내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인생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자기 인생의 기준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링컨은 결국 세계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고,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완수한 행복한 인생으로 마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형통한 사람이 되십시오. 오늘 말씀에서 형통의 비결을 배우시고 그렇게 사셔서 형통한 사람이 되십시오.
   
첫째,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마십시오. 둘째, 죄인들의 길에 서지 마십시오. 같은 죄를 반복적으로 범하여 죄의 길을 만들지 마시고 회개하고 돌이키십시오. 셋째, 오만하지 마시고 오만한 자들과 사귀지 마십시오. 넷째, 하나님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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