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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성숙 (빌 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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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성숙 (빌 4:10-13)


미국 댈러스 펠로십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에드 영(Ed Young)목사가 쓴<고품격 크리스천>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저자는 크리스천의 이름을 먼저 바꾸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름을 바꾼다고 하는 것은 평범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고품격의 삶으로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HD(High Definition)텔레비전을 예로 들었습니다. HD 텔레비전은 보통 텔레비전보다 해상도가 크게 다릅니다. 고화질입니다. 

성능이 우수한 만큼 값도 비쌉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도 HD 그리스인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다시 말해 고품격 그리스도인 즉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보다 더 선명하게 하나님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역설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 즉 고품격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대량생산을 하는 생산라인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QC라는 것이 있습니다. QC라는 것은 품질관리라는 단어의 약자입니다. 크리스천을 양산해 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질을 높이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일입니다. 사람에 비유한다면 자식을 낳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답게 잘 키우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일입니다. 함량미달의 그리스도인, 저품질의 그리스도인 즉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 까닭에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땅에 떨어뜨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고품질 그리스도인 즉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시며 우리들이 수행해야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13절~16절에 말씀하시기를“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고품격 그리스도인 즉 성숙한 성도로서 이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자족하는 삶입니다. 

본문 11절에“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했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환경에 따라 신앙이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신앙으로 모든 환경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하든지, 평안한 환경에 처하든지, 궁핍한 환경에 처하든지, 풍부한 환경에 처하든지 언제나 한결같은 믿음으로 자족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자족할 줄 아는 신앙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자족이란 현재의 상황에서 스스로 만족하게 여기며 불평이나 불만이나 원망이 없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현재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불평하려면 끝이 없습니다. 자족하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세계적인 부호였던 석유왕 록펠러에게 어느 날 신문기자가 찾아와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은 현제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로 만족하십니까?” “아니오.” “얼마큼 더 가져야 만족하시겠습니까?” “조금만 더”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조금만 더”라는 것이 얼마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조금만 더”에 도달하면 또“조금만 더”하고 욕심을 내게 될 것입니다. 결국 끝없는 욕구불만의 연속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소유로는 결코 누구도 만족함을 얻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평신도 신학자인 우찌무라 간조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자족하는 마음을 이렇게 글로 표현했습니다.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의 가난함도 슬프지 않고 
남의 부유함도 부럽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는 나는 
오직 감사한 마음이 넘칠 따름이라.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몸의 환란도 괴롭지 않고
몸의 행복도 사모하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는 나는
오직 평강과 만족만 있을 따름이라.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일의 실패에 실망하지 않고
일의 성공에 뛰며 기뻐하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는 나는 
영원한 승리자이기 때문이라.

우찌무라 간조는 가난함, 환란, 실패 등 이 모든 것에 대하여 만족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자족하는 마음입니다. 
자족이란 모든 환경이 넉넉한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족이란 마음의 생각에서 오는 것입니다. 자족하는 마음에 감사함이 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에 행복이 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에 하나님의 은총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빌립보 감옥에서 이 빌립보서를 썼습니다. 그래서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로마 감옥에 수감되어 몸은 병들고 사랑하는 사람들과는 헤어져 있었으며, 죽음의 순간이 눈앞에 다가온 시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환경에 지배를 받지 아니하고 그가 처한 악조건을 역이용했습니다. 법정에 끌고 들어가면 증인석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감옥에 집어넣으면 간수를 전도하여 회심시켰습니다. 이처럼 바울사도는 어떤 환경이라도 이를 이용하여 영혼구원의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어느 대학교수는 말하기를, 자기 집에서는 모든 식구들이 음식투정을 절대로 안하기로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된밥은 된맛으로 먹고, 진밥은 진맛으로 먹고, 생쌀밥은 생식에 도전하는 정신으로 씹어 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밥이 설익어도 건강에 좋은 생식을 한다고 생각하고 맛있게 먹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매사에 이렇게만 살아간다면 그는 분명 고품격 그리스도인 즉 성숙한 성도로 이 세상에서 빛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비천에 처할 줄 아는 삶입니다. 

본문 12절에“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바울사도의 자족함이 어느 수준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함에 차할 줄도 알고, 배부름과 배고픔에 처할 줄도 알고, 궁핍에 처해도 자족할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바울사도는 믿음을 지키며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억울하게 매를 맞고 감옥에 끌려가면서도 찬송하며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로마 감옥에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오히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해“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립보서 4:4)고 하며 성도들을 위로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비천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므로 위로받을 길 없는 슬픔의 날도 있습니다. 때로는 사업에 실패하거나 실직을 하여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가 바로 비천에 처한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에 바울과 같은 비천에 처할 줄 아는 신앙이 없으면 낙심하기 쉽고, 인생의 낙오자가 되고, 신앙의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평소에 교회를 잘 다니던 사람이 자식이 입학시험에 떨어지자 낙심하여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나약한 신앙이라면 어떻게 험한 세파를 이겨나가겠습니까? 

미국의 화가“오너 숄맨”은 결혼하고 그의 아내가 잉태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숄맨은 임파선 암에 걸려 3개월 밖에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 숄맨은 그의 아내에게 말했습니다.“우리 감사합시다. 이때까지 살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시다. 우리 부부의 좋은 만남과 사랑을 허락하신 것을 감사합시다. 바로 죽지 않고 죽음을 준비할 수 있게 해주신 것을 감사 합시다”그리고 그는 남은 3개월 동안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예수님의 성화를 그리기로 결정하고 기도와 정성을 다하여 성화를 그렸습니다. 이 그림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평화와 위로를 주었는지 많은 그림이 팔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는 3개월이 지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3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도 죽지 않았습니다. 
숄맨의 주치의인 존 헨리는 말하기를“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이다. 감사는 최고의 해독제이다. 감사는 최고의 치료제이다”라고 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보여야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곳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 계신 곳에 기적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믿음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복된 기회입니다. 이에 대해 야고보서 1장 12절에 말씀하시기를“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시험을 참는다는 것은 불평불만을 토하며 억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환경 중이라 할지라도 믿음 안에서 감사하며 묵묵히 신앙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욥이라는 사람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3남 7녀의 자식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동방의 거부로 불렸던 그 많은 재산은 외적들이 다 빼앗아갔습니다. 그의 몸은 병이 들어 가려움을 견디지 못해 
재에 앉아 기와조각으로 몸을 긁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부요할 때 가까이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다 떠나갔고, 심지어 아내마저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어버리라고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이처럼 처참한 때에도 욥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이때에 욥이 말하기를“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기 1:20~22)라고 했습니다. 

이 엄청난 고난 중에 욥은 또 말하기를“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 23:10)고 했습니다. 지금의 고난은 나를 단련시켜 더 아름다운 정금같은 존재로 만드는 계기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욥의 아름다운 믿음을 보신 하나님은 욥에게 회복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욥기 42장 10절 말씀에“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고 했습니다. 욥의 승리는 자신의 의지적 노력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를 결코 실망시키시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좋은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안에 거하면 어떤 고난과 역경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3. 삶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었습니다.

바울사도는 본문 12절에“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했는데 이러한 힘의 근원이 무엇입니까? 본문인 빌립보 4장 13절에 바울은 밝히기를“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에 대해 헬라어 직역성경에는 이렇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나는 내게 힘주시는 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안에서 어떤 고난과 역경도 이길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은“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은 없다.”라고 했지만 그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스토익 학파들은 자기 수양을 믿었습니다. 
험한 세파를 이기는 것은 나폴레옹처럼 강한 의지나 다짐으로 되지 않습니다. 스토익 학파처럼 명상이나 수양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힘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하나님은 전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18편 1절~2절에 고백하기를“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다윗도, 욥도, 바울사도도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어려운 역경을 이길 수 있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멸망했을 때에, 이 처참한 고난에 대해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예레미야 애가 3장 31절~33절에 밝히시기를“주께서 영원하도록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며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너희들의 죄악으로 나라가 망하여 괴로움을 당하고 있지만 때가 되면 다시 회복을 시켜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믿음으로 현재의 고난을 잘 극복하면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시고자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28절에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경우라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반드시 현재의 고난이 합력하여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태풍과 해일은 항구와 배와 어촌에 막대한 피해를 입힙니다. 아무도 태풍을 원하지 않습니다. 없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태풍가운데에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섭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태풍이 없다면 바다는 잔잔하겠지만 그 바다는 죽음의 바다가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해수면의 수분이 증발된 바다의 염도는 높아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해조류들이 살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어 가는 바다를 거센 태풍이 바닷물을 뒤집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그로 인해 해조류들이 자라게 되고, 이러한 것들이 어촌의 수입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또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건강하고 하시는 일이 잘되시는 분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혹 몸이 병들었거나, 사업이 힘든 분 계십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더욱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예레미야 애가 3장 32절~33절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본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로마서 8장 28절에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사도가 고백한 자족하는 삶과 어떤 형편에도 처할 줄 아는 삶의 비결은“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3)입니다. 바울사도의 깊은 신앙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험한 세파 이기시고, 승리하시는 성숙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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