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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욱 큰 것을 사모하라

  • 송재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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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큰 것을 사모하라

(고전12:31)


러시아는 120이래 최대 한파가 몰아닥치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25년 만에 체감온도 영하 50도의 한파가 몰려들었습니다. 나무에 올라가던 청솔모가 얼어 죽었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30년 만의 한파가, 또 어떤 곳에서는 130년 만의 최저기온이 형성되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북한을 폭격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라고 합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로부터 탄핵될 가능성이 있다면 탄핵을 모면하기 위해 북한을 폭격할 것이라고 합니다. 중국은 마치 남북한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처럼 북한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하고 있으면서 남한에 대해서는 쉽게 정책을 바꾸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2018년, 대망의 해를 맞이하여 우리는 그 첫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갈수록 문제는 쌓여만 가며 해결될 기미보다도 꼬여만 가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향해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라고 권고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의 말씀이기 전에 성령님께서 고린도교회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새해 첫날 우리는 성령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 것을 듣고자 합니다.


Ⅰ. 교회의 상황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이와 같은 말씀으로 권고한 것은 고린도교회의 다양한 은사와 직임에 관해 말씀하신 직후입니다. 고린도교회는 물리적으로 작고 연약한 교회가 아니라 수많은 교인들이 모이는 모든 것이 풍부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그 서두에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습니다.고전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이와 같이 고린도교회는 부족하고 연약해서 문제가 아니라 크고 모든 것이 풍족하여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크거나 적거나 문제는 언제나 상존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큰 교회에 대해 매스컴에 보도되는 것을 보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들이 산적합니다. 우리 교회 근처에 있는 대형교회들의 경우 대부분 몇 년씩 교회 내분으로 말미암아 문제들이 인터넷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적은 교회는 또 적은 대로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 교회도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혹 어떤 문제로 앓고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어떤 교회든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목회자로부터 모든 성도들은 온 힘을 기우려야 합니다.


어떤 청년이 세계적인 유명한 설교가인 찰스 스펄전 목사를 찾아와 “저는 완벽한 교회를 찾아다니고 있는데, 그런 교회 찾기가 어렵습니다. 혹시 목사님께서 아시면 소개해 주십시오.” 그 때 스펄전 목사님은 그 청년에게 “저도 그런 완벽한 교회를 찾고 있는데, 아직 못 찾았습니다. 만일 청년이 더 찾아보고 혹 완벽한 교회를 찾으면 나에게 연락해 주십시오.”라고 그 청년을 돌려보냈습니다. 실망한 그 청년이 돌아가려고 할 때 스펄전 목사님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젊은이, 설상 완벽한 교회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네가 그 교회에 다니는 한, 그 교회는 완벽한 교회가 될 수 없을 것이야.”


오늘날은 교회에 실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교회는 훌륭한 기독교인들을 모아놓은 곳이 아니라 오히려 불완전한 기독교인들을 교육시키는 “학교”입니다. 또한 아픈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봐주는 “병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완벽한 교회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은 성경대로 가르치고 성경대로 이루어지기를 추구하는 교회마저 희소하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장 중요한 복음과 진리가 왜곡되고 있는 것입니다. 최소한 복음과 진리는 증거되어야 하는 것이 교회요 교회의 존재목적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복음과 진리를 전하던 교회까지도 성장위주의 교회 목표로 말미암아 영혼구원이 목표가 아니라 사람 수를 채우는 것이 목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라는 말씀은 세상의 모든 교회에 주신 권고요 우리 교회를 향하여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Ⅱ.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고린도교회는 모든 것이 풍족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라고 권고하였습니다.
우리말 성경과는 달리 본문은 “사모하라(Ζηλοῦτε)”라는 말이 문장의 제일 앞에 있습니다. 또한 현재 명령형으로 시작됩니다. 제일 먼저 “사모하라”라고 명령한 것은 “더욱 큰 은사”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입니다. 또한 이 말은 “지속적으로 사모하라”는 명령입니다. 더 나아가 이 말씀은 “열심으로 사모하라”는 뜻입니다. 더구나 이 말씀은 마치 질투하고 시기하듯이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그처럼 사모하라고 명령한 것입니까? 그것은 본문에 나타난 대로 “더욱 큰 은사”입니다. “더욱 큰 은사”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추구한 은사보다 더 큰 것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고린도교회는 은사에 부족함이 없었는데, 고린도교회가 추구해야 하는 “더욱 큰 은사”는 무엇일까요? 은사는 성령으로부터 오는 초자연적인 기능으로서 하나님과 주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기 위한 방편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사의 높고 낮음이 따로 없습니다. 모든 은사는 성도들 개인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그 필요를 따라 적절하게 나눠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은사를 가진 성도가 다른 은사를 가진 성도를 향하여 쓸 데 없다고 하거나 나와는 다른 은사를 가진 성도의 은사를 부러워할 이유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필요를 따라서 나눠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큰 은사”는 무엇일까요?
고린도교회는 파를 나눴습니다. 어떤 이들은 아볼로파, 혹은 바울파, 베드로파, 심지어 그리스도파라고까지 스스로를 세웠습니다. 그 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고전1:13)라고 책망하였습니다.


또한 고린도교회는 어떤 은사를 중요하게 여겼으나 어떤 은사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특히 가르치는 것이나 예언이나 방언과 같은 은사를 가진 성도들은 항상 앞에 나서기를 좋아했습니다. 이들은 자연적으로 다른 은사를 가진 성도들의 은사를 무시했습니다.


파벌을 만든다거나 다른 성도가 가진 은사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자신이 중요하게 쓰임 받는 은사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좋은 은사를 가졌음에 틀림없을지라도 큰 은사를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 육체의 입, 눈, 코, 귀는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와 같은 지체들에게는 항상 두드러지게 보이며, 예쁘게 보이며, 관심을 주기 위해 아름답게 치장합니다. 입에는 루주를 바르고, 코는 오뚝하게 세우고, 귀에는 귀고리를 달고, 눈에는 갖가지 모양을 냅니다. 또한 얼굴은 예쁘게 화장을 합니다. 요즘은 남자들까지도 화장을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브라질에서는 남자들이 엉덩이를 멋지게 보이기 위해 수술을 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신체 중에서 얼굴이나 입, 코, 눈, 귀만이 중요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의 손이나 발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머리의 뇌와 심장과 폐와 신장 등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들은 겉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들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심지어 얼굴이나 입, 코, 눈, 귀, 팔이나 다리가 절단되어도 생명은 유지되지만 심장이나 폐 등 보이지 않는 것들은 조그만 문제만 생겨도 생명에 위협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사실은 보이는 것들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감싸서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지체들의 상호보완작용을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습니다.


고전12: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이와 같이 참된 은사의 목적은 개인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봉사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보이지 않는 지체들이나 은사들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며, 사랑으로 보호하며 이끌어주는 것이 “더욱 큰 은사”입니다.


Ⅲ. “가장 좋은 길”


사도 바울은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라고 권고한 후에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라고 증거하였습니다.사랑하는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새해에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열정적으로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시기와 질투를 할 정도로 사모해도 좋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더 큰 은사를 사모하면 가장 좋은 길을 보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가장 좋은 길”은 무엇일까요? 사도 바울은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라고 권고하였는데, “더욱 큰 은사”는 더욱 주목받는 것이라기보다는 더욱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은사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가장 중요한 은사 혹은 가장 큰 은사라고 말하지 않고 “가장 좋은 길”을 보이겠다고 증거하였습니다. “가장 좋은 길”은 가장 좋은 은사라든가 가장 추구해야 하는 은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사에는 마치 우리 육체의 지체들 중에 중요한 것이나 덜 중요한 것이 없듯이 귀한 것이나 덜 귀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길”은 은사가 가장 중요하게 사용될 수 있는 길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하면 은사가 가장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가진 은사가 어떤 것이든지, 교회에는 다양한 은사가 필요합니다. 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만 있다면 교회가 어떻게 될까요? 다스리는 은사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교회는 마치 배가 산으로 올라가듯이 교회는 그 목적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길”은 은사가 가장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길을 의미합니다.


어떤 성도에게는 교회에서 꼭 필요한 은사가 있지만 그 은사가 사용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인 저가 일을 맡기기 거북스러운 성도들이나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교회에 유용한 은사를 가졌지만 교회에서 쓰임받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큰 은사”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은 순종과 사랑에 의한 관용입니다. 배려입니다. 자신의 은사와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른 사람을 더욱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다음과 같이 시작하였습니다.


고전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과 예언의 능력과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무용한 것입니다. 또한 자기의 모든 소유로 구제하고 심지어 자신의 몸을 완전한 희생으로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2018년을 맞이하여 우리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사랑으로 섬길 수 있게 되기 바랍니다. 그 어떤 은사와 헌신보다도 사랑이 제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바랍니다.


서로 나누기
1. “더욱 큰 은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2. “사모하라”는 말씀은 어떻게 하라는 뜻인가?
3. “가장 좋은 길”은 은사를 어떻게 활용하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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