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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고전 12: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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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성령의 은사적 관점에서 성도는 어떤 사람이며 우리가살아야할 삶 의 방향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오순절 신앙을 가 진 사람들에게는 은사장으로 잘 알려진 성경입니다. 성령을 통해 주어진 은 사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직업이 다르고 성품이 다른 것처럼 성령의 은사 또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 받은 은사가 다 르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은사가 더 중요하고 내가 받은 은사가 시시한것도 아닙니다. 이 모든 은사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필요 적절한 은사들을 그 뜻대로 나누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으로 은사는 한 성령으로 각자 필요한 은사가 성령의 뜻에 따라 주어 지는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 가장 적절하고 필요한 삶의 도구가 된다는 사실 으리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은사를 설명하면서 몸과 지체는 어떤 관계일까 여기 바울사도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서민과 이방인의 관계는 도저히 융합할 수 없는 물과 기름과의 관계와 같습 니다. 그런데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기만 하면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고 함으로서 성령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신분에 대해 민감합니다. 흑인과 백인과 황인종에 대한 구 별을 합니다.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성령으로 한 몸이 되게 하셨다는 선언 과도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몸으로서의 지체의 역활이 더 중요하 다고 말씀합니다. 흑인이든 백인이든 성령으로 한몸된 성도는 우리의 지체 로서의 역활에 더 충성하고 그 역활을 위해 서로의 지체를 사랑하고 또 함 께 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인것입니다. 만약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그것은 전체의 지체가 한 몸으리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 고통은 전 체가 다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그것은 또한 전체 몸의 영광이 되기 때문에 함께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27절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말 씀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으 공동체 인식과 함께 어떠한 지체로서의 삶이 필요한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회는 복잡하고 다양합 니다. 각자의 삶에 대한 철학이 있고 방향이 있습니다. 건강하게 살려는 노 력도 있습니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기도 합니다. 성실하고 뜻있게 살려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어떤이는 많은 재산을 형성하여 사회에 공헌하기도 합니다.사회는 어둡기 도 합니다. 하지만 밝은 분야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속에 구원받은 성도의 삶이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구원받은 성도라 하 더라도 그들도 다양한 세상의 일원이었고 또 그들과 함께 세상에서 살고 있 습니다.그러나 여기서 말씀하려는 중요한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따로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세상사람과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 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인에게 주어진 삶의 형태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 거운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길은 진리의 길이요 복된 삶이라고 성경은 말하빈다. 영생의 길이요 축 복의 길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에 이르는 영원한 방법입니다. 자랑스 럽게 자유스러우며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에 이르는 영원한 방법이빈다. 자랑스럽게 자유스러우며 기뻐해야 할 일입니다. 여기 서 중요한 것은 구원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인식입니다.

 지난번에는 죄에 매어 죄의 종으로 살아가야 했지만 지금은 나의 모든 죄 와 저주와 질병과 추악한 것들을 모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셔/아 다는 믿음을 통해 거듭난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다는 인식이 필요한 것입니 다. 오늘 이 자리에는 그리스도의 몸된 성도가 함께하고 계신줄 믿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몸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세상적 방법에는 유능했고 능숙해있습니다. 금방 세상사람들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 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서툴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은사적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도의 사명도 주셨고 선지자의 사명도 주셨습니다. 교사나 능력이나 병고치는 은사나 다스리는 것과 방언을 말하 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각자 성도들에게는 다양하 게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 겠느냐 다 능력행하는 자겠느냐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구원빠다은 백성으로 가장 유능하게 살 수 있도록 필요한 은사를 성령의 뜻 대로 주시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의 확신을 가진 그리스도 의 몸이라는 인식을 같고 있다면 분명히 그런 사람에게는 성령의 뜻에 따라 은사가 주어졌습니다.

 여러분은 그 은사적 사명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많은 사라들은 자신에게 어떤 은사가 주어졌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이 은사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훌륭한 지체가 되기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 울은 우리의 살을 여기서 멈추게 하지 않습니다.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하 신 것입니다. 더 큰 은사는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카리스마톤 은혜로 말 미암아 주시는 선물인데 성령께서 그것을 사용하여 살도록 구원받은 성도들 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함은 그리스도인으로 더 낳은 자랑스런 삶 을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이 후에 13장 은 사랑장인데 그래서 사랑의 은사를 가장 귀한 은사라고 말합니다. 그리스 도인의 최고의 삶도 사랑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기능적 삶도 중요 하지만 사랑이라는 포근한 감정적 삶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더 낳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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