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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인 되시는 왕 (요 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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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뒤 따르는 두제자:베드로와 다른 한 제자.

다른 한제자=니고데모,아리마데 요셉/가롯 유다--제자 베드로를 도와 /요한21:24,20:4 ,사랑하시는 자,품에 기댄자 등 3인칭 단수로 자기를 표현하고 있다.

어떻게 대제사장의 집과 그렇게 잘 알았을 까 /요한의 아버지는 소금에 절인 생선을 예루살렘과 대제사장의 집에 대주는 거부상인,에취.브이.몰튼의 증언현재 아랍인의 커피점은 옛날 그리스도인들의 교회였는데 그 맞은 편에는 요한의 아버지 세배데에 속한 집이 있었다고 함영업소 비슷했을 것이다.

 두 제자의 고난의 자리에의 동참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1)증인의 수 (2)-더 중요한 목적 /물론 요한은 나중에 21:24에서 자기의 증거가 참되다고 말한다.왜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더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베드로의 부인 사건이다. 누구의 표현 대로 예수님은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으셨으나,베드로는 모든 것을 부인하고 있다. 이 스승과 제자의 대조되는 모습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길 원한다.

 1.오늘도 부인 되십니다.

 어떤 농사꾼 아버지를 부인한 대학생 아들.

부인 된다는 것은 사실 죽음 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그 아비라면.

 주님이 사람들에게서 그렇게 부인 되는 것은 그렇게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인자도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아까 예에서의 아들 보고 욕했을 것이다. 그런데 겁없이 하나님을 부인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우리 가까이에 있다. 바로 우리 자신이다.

 부인:(1)부끄러워 하는 것 (2)두려워 하는 것 (3)그리스도인 답게 말하고 행하지 않는 것(베드로가 반석 답게 말하고 행하지 못한 것처럼)

모든 복음서에 기록하고 있다.

여러분의 부인도 이처럼 기록될 것이다.

 부인하게 되는 이유:(1)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부인한다.

자기의 생명,즐거움,욕심,이익을 부인하지 않으면 서 주님 뒤를 좇는다고 해봐야 번번히 부인하고,실패한다. 조그만 계집종앞에서 추태를 보인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아주 사소한 욕심 앞에서 주님을 부인한다. 아주 하찮은 사람 앞에서 주님을 부끄러워한다.

 (2)악을 악으로,육을 육으로 대항하면 올무에 빠진다.

베드로--말고의 귀/계집종이 그 친척. 성도는 악한자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상대하여 싸울 수 없다.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에 속한 것들을 무기로 주시지 않으셨다.

베드로의 검 두자루-귀를 벳으나,실제 그것으로 싸워봐야 낭패 .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닌 것을 기억하라.

악에 악으로 대항하면 열번 백번 다 후회한다.그것 때문에 올무와 시험에 빠진다.

 베드로의 나중 고백을 들어보자.벧전 3:9,악을 악으로,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악한자들의 악에 하나님의 사랑으로십자가의 인내로-성령의 말씀과 거룩한 행실로 대항하여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한다.

 오늘도 우리의 왕은 바로 우리들에 의해서 부인 되십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제자에 의하여 그렇게 아프게 부인 당하시던 우리 주님은 그 사랑하는 자를 부인하지 않으셨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방법으로 그를 다시 자기 사람으로 만드셨다. 어떻게 그랬을까요

3.다른 눈으로 보십니다.

 예수님께-누가복음의 설명/주님이 베드로의 눈을 맞추셨다.

생각나 심히 통곡하며 울더라.

 닭 울음소리:당시 율법으로는 예루살렘,거룩한 도시에는 닭이 키워지지 못햇다.

갈리시니움,알렉토로포니아=트럼펫소리=콕크라우/6-9,9-1

2.12-새벽2

3.(1)예수님의 눈:실패하고,부인하고,심지어 저주하는 베드로를 그대로 보지 않으셨다. 고난 중에서도 몸을 돌이켜 자기의 사랑하는 제자를 보았다.

자기가 지어준 이름 그대로,그 속에 있는 믿음을 보셨다. 그 속에 있는 사명을 보았다. 용기를 보았다.비록 입으로 부인하고 조주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속에 있는 자기를 향한 애정을 놓지지 않으셨다.

아니 그것이 참 베드로였다.

 마16:18,내가 네게 이르너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내가 천국의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고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눅22:31-34,시몬아 시몬아,보라 사단이 밀까부릇하려고 내게 너를 청구하였으나 내가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 하였으니 네가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리라.

 우리 왕은 우리의 오늘 실패하는 모습만 보시지 않는다:어제 우리 속에 있었던 주님에 대한 믿음을 보신다.어제 그 왕과 함게 뻐기고 자랑했던 용기를 보신다.어제 그 왕께 보여드렸던 뜨거운 애정도 보신다.당신이 약속대로 주셨던 하늘의 권세도 보신다.그리고 돌이킨 후에 교회를 굳게할 내일의 모습도 보신다.이 사실을 믿는가

고난 중에서도 닭소리와 함께 확실하게 눈을 맞추어 주셨던 우리 주님의 눈은 바로 그런 눈이었다. 오늘 이런 왕의 눈에 여러분의 눈을 맞추시기를 축원한다.

 (2)베드로의 눈:전설에 따르면-베드로는 그 후 때때로 놀림 감이 되었단다. 뒤에서 흉내내기,노골적으로 놀리기/아니요 난 아닙니다. 난 모름니다.

실제로 베드로에게 얼마나 큰 약점이,자기 자신에대한 절망이 되었겠는가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실패한 자기 보습을 보지 않았다.

그날 법정에서 마주친 예수님의 눈은 베드로에게 아마 새로운 눈을 심어주었나 보다.

베드로도 자신을 실패자로 보지 않았다.

실패했으나,곧 돌이킨 자로 보았다.

 이 눈이 베드로를 아주 넘어지지 않게 했다.

다시 일어나게 했다.주님을 이전보다 더욱 뜨겁게 사랑하게 했다.

그리고 이젠 자기를 위지 하지 않게 했다.

자기를 부인할 줄도 알게 했다.

 교회의 기둥이 되었고 하늘의 빛나는 별처럼 유명한 교회의 터가 되었다.

 [결론] 오늘 우리는 목아지 하나 부둥켜 안고, 먹어도 먹어도 만족할 줄 모르는 탐욕스런 배를 채우기 위해 지극히 적은 것에도 걸려,우리 왕을 부인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의 왕께선 오늘도 쓰러진 나를 실패자로 보시지 않는다.어제 우리속에 주셨던 믿음을 보신다.어제 우리에게 주셨던 약속을 보신다.다시 일어나 죄에서 돌이켜 당신의 교회와 나라를 굳세게 할 내일의 자랑스런 모습을 보신다.

 지금 여러분의 눈은 어디에 있는가 오늘 세계 도처 방방곡곡에서 부인당하시고 계시는 우리 왕의 그 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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