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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 유익한 은사 (행 18: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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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흔히들 은사라고 말할 때 병을 고친다든지 아니면 방언을 하면 그게 은사인 줄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그런게 은사임은 사실이나 은사에 대한 정답은 아닙니다.

 은사라는 말은 = 로 영어엔 Gift, Spiritual glft 로 그 뜻은 값없이 거져 주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은사는 임금이나 부모가 그 신하나 자식에게 주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들을 총칭하는 말입니다.

 약1;17절에서 은사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 오나니"

그렇습니다.

각양 좋은 것이 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사입니다.

 은사에대한 자세한 내용은 고전12장과 13장에 잘 설명이 되어 있읍니다.

 오늘은 그 좋은 은사중들 중에 빼 놓을 수 업는 아름다운 은사의 한 장면을 함께 보시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아불로---------1),알렉산드라아 출신

24절에 "알렉산드라에서 난 아불로라 하는 유대인이..."라고 아불로의 신분을 말하고 있읍니다.

 이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헬라 철학의 본고장입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일찌기 동양의 사상과 서양의 사상이 만나 찰란한문화의 꽃을 피웠던 고장입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엔 유태인이 약 100만명 정도 살고 있었고 또 거기에 유명한 유태인 철학자 필로가 유태 종교를 헬라의 철학과 접목을 시도한 곳입니다.

 그리고 더 유명한 것은 이 알렉산드리아에서 70인역 성경이 번역되었던 것입니다.

 24절에 나오는 아불로는 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출생을 한 것입니다.

아불로는 참으로 출생 배경이 훌륭합니다.

그리고 24절이 계속하기를 아불라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했읍니다.

 2),학문이 많은 사람

학 문의 경지가 어디까지 이르렀는지는 성경이 자세히 말씀하지 않으나 학문이 많다고 한 것을 보아 당시에 대단한 실력가 였음은 틀림 없읍니다.

 세상 학문에 능한자가 예수 믿기가 어려운데 아불로는 에수를 믿었읍니다.

 3),성경에능한 사람

아불로는 세상의 학문에만 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도 능한 사람이라고 했읍니다.

 성경을 기록한 성경 기자가 아불로를 보고 성경에 능한 자라고 할 정도면 아불로의 성경 지식은 가히 놀라운 것입니다.

 4),일찍 주의 도를 배운 사람

아불로가 이렇게 성경에 능하게 된 이유 중 결정적인 것은 그가 일찌기 주의 도를 배웠다는 것입니다.

 이는 디모데가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배웠던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

 이는 학교 교육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의 성경 교육이 얼 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5),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가르친 사람

오늘 날 교회 안에 절름바리 신앙인이 상당히 많이 있읍니다.

 그러나 아불로는 참으로 훌륭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세상의 많은 학문 그리고 능통한 성경의 지식 또 어려서부터 배운 주의 도를 열심히 그리고 자세히 가르치기를 힘쓴 사람 입니다.

 많은 학문에 있는 사람이 성경에 능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교ㄱ히 안에서 영적으로 교만하기 쉬운데 아불로는 전혀 그렇치 않았읍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26절에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

아불로는 회당에서 주의 도를 담대히 말하고 있읍니다.

 스데반이 어디서 담해히 주의 도를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읍니까

바울이 어디서 증거하다가 여러번 죽을 번한 매를 맞았읍니까

바로 그 장소들이 유대인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회당이었읍니다.

 그 장소에서 아불로는 지금 담대히 주의 도를 전하고 있읍니다.

 담대히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담대히가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쓰였는지 몰라도 이곳에서 특히 회당에서 담대히 증거했다는 말은 주의 도를 위하여 목숨을 내 걸었다는 뜻인 줄 믿습니다.

 아불로는 자기에게 새 생명을 주신 이 구원의 도리를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학문이며 실력이며 모든 것을 총 동원하여 어디서라도 증거하지 않고는 견 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회당에서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지음 우리 주의에 아불로와 같은 사람 만나 보기가 어렵습니다.

 예수는 수 십년씩 믿었으면서도 아직도 한 생명을 붙들고 복음의 도를 가르치는 사람이 적다는 말입니다.

 다른 것이 은사가 아니라 바로 이런 것이 귀중한 은사입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한 생명을 향하여 생명의 도리를 바로 가르치는 은사 한 생명을 천국으로 바르게 인도하는 그 귀한 은사를 아불로는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날 교회들의 형편을 보면 각 교육기관에 고문이나 부장은 할 사람들이 있는데 직접 뛰어 들어 머리를 맞대고 기도해주고 말씀을 심어주기를 즐겨하는 교사 선생님들이 많지 못함을 봅니다.

 그리고 내가 믿고 있는 이 예수가 존귀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어디가서 담대히 증거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이 있읍니다.

 어떤 분은 자기가 예수를 옳게 믿지 못하니까 아니 예수는 믿기는 믿는데 행동이 개차반 같으니까 어디가서 예수 믿으라는 소리 한 마디 못하는 그런 사람들도 있읍니다.

 또 어떤 분은 성경에 대하여 아불로처럼 능하지 못하니까 할 말이 없어서 전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우리가 믿는 이 에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못함은 매우 잘못하고 있는 일들입니다.

 아불로처럼 많이 알아야합니다.

아불로처럼 일찍이 배워야합니다.

아불로처럼 열십히 가르쳐야합니다.

아불로처럼 어디서나 담대히 증거햐야합니다.

 2,브리스길라의 부부

아불로와 함께 귀한 분이 브리스길라의 부부입니다.

1),부부가 함께 하는 부부 2),교회와 함께하는 부부 3),교역자와 함께 하는 부부 이들 부부는 참으로 귀한 부부의 모형입니다.

 25-26절에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게도 가르침의 은사가 있었읍니다.

 물론 사도 바울을 열심히 따라 다니면서 배운 것입니다.

그 배운 것을 가지고 오늘 아불로에게 자세히 풀어 가르치고 있읍니다.

 얼마나 멋있는 장면입니까 얼마나 멋있는 부부지간 입니까 부부가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불로와 부리스길라의 부부의 공통되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같이 가르침의 은사를 받았다는 것이며 그들이 가르침의 은사를 활용 할 때 최선을 다해서 자세히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를 자세히 알 필요가 있읍니다.

 우리는 우리가 신앙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좀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읍니다

참으로 좋은 은사들을 받으신 분들입니다.

 3 ,더 유익한 은사들

25-26절을 다시 한 번 더 봅니다.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26절에서는"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 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고 했읍니다.

 아불로가 훌융함이 더 확실하게 증명되고 있읍니다.

 아불로가 예수에 관하여 자세히 증거할 때에도 세례 요한의 기사만 알았다고 함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하여 오시고 계심을 즉 준비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만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나 아불로는 자기가 알고 있는만큼 나가서 열심히 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많이 알 필요는 있으나 그러나 우리가 다 알기 때문에 증거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증인이라는 것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을 증거하면 되는 것입니다.

 법정에서도 자기가 알지도 못하는 사실을 증거 할 때 그것을 위증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내가 예수를 알고 있는만큼 그만큼을 주저 없이 증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아불로가 위대한 것은 26절입니다.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 고 함입니다.

 성경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소개할 때에 저들은 장막을 짖는 사람들이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리 화려한 업종에 종사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불로를 소개할 때는 24절에서 1),"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불로 2),학문이 많은 사람 아불로 3),성경에 능한 사람 아불로 4),일찍 주의 도를 배운 사람 아불로 5),열심히 가르치는 사람 아불로 6),회당에서 담대히 전하는 사람 아불로 라고 소개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가지의 비교를 보게 됩니다.

많이 배운 아불로와 장사군의 가족 브리스길라부부와의 대조입니다.

 뭔가가 비교가 될 수 없는게 비교되고 있읍니다.

 그런데 26절에서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있읍니까

장사군 부부가 학자인 아굴라를 가르치고 있읍니다.

 가르치고 있는 부부도 멋 있읍니다만 그들 부부에게 자세히 배우고 있는 아불로는 더 멋이 넘칩니다.

 얼마나 겸손합니까 배운 사람들이 교만하기 쉬운데 더 많은 것을 사모하는 간절함이 저에게 있읍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배워야하는 겸손함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 늘 이렇게 배워야합니다.

 고전3;4-6절에 이런 말이 있읍니다.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하고 다른 이는 아불로에게라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그런즉 아불로는 무었이며 바울은 무었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불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

여기 바울의 말에서 당시 사람들이 그 유명한 복음 전도자인 사도 바울과 아불로를 대등하게 비교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아불로가 언제 이렇게 클 수 있었읍니까

아불로는 학문이 많다고 자만하지 않았읍니다.

그것은 아불로는 성경에 능하다고 태만하지 않았읍니다.

아불로는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고 남을 경시하지 않았읍니다.

아불로는 말씀을 배우는 일에는 참으로 겸손했었읍니다.

 이런 것들이 아불로를 바울처럼 위대하게 만들게 된 동기였읍니다.

 27,28절을 보니 아불로는 그 이후 아가야로 건너가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더 담대히 더 힘 있게 증거를 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27절 하반절엔 "믿는 사람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하고 했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은 우리들 모두에게 이 은사를 주었읍니다.

우리들도 브리스길라의 부부처럼 그리고 아불라 처럼 우리들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은사를 잘 활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만 천하에 들어 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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