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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전 (대하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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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에 대하여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크기를 살펴보면 넓이가 동서로는 3

1.8m이며 남북으로는 10.6m요, 높이는 15.9m입니다.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로 되어 있는데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막이 처져 있습니다. 성소에는 제단과 떡상과 물통이 있으며,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법궤가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법궤에는 모세가 시내산에 받은 십계명을 적은 두 돌판과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습니다.
이 성전의 역사성을 볼 때, 성경에 흐르고 있는 전통적 신앙의 근거를 주목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1. 성전의 터전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역대하 3:1-2를 보십시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솔로몬이 왕위에 나아간지 사년 이월 초이일에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모리아산! 이 산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했던 곳입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가 백 세에 낳은 아주 귀한 외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모리아산으로 출발하였습니다. 이렇게 사흘 길을 간 후에야 모리아산에 이르렀습니다. 사환들은 산 아래에 머물게하고 이삭에게 번제에 쓸 나무를 지우고 자기는 손에 불과 칼을 들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중간쯤 올라갔을 때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물었습니다.
『불과 나무는 가지고 가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너무도 가슴 아프고 기가 막힌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산에 올라가서 단을 쌓고 나무를 벌려 놓고 이삭을 결박하여 칼로 아들을 잡으려고 할 때, 하나님의 사자가 중단케 하고 제물에 쓸 수양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 히브리 역사는 過去事(과거사)이지만, 현재 안에 힘차게 살아 있어 산 과거라 부를 수 있는, 인간의 초인간적인 하나님을 향한 헌신을 여기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성경 중심에 가까와지는 해석은 히브리서 11장 18절 이하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히 11:18-19)
이 모리아산은 부활의 생명을 상징하는 신앙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제단의 터전입니다. 아브라함부터 솔로몬 왕의 이스라엘 성전의 건립까지 15대, 주전 2000년부터 주전 967년까지의 약 1세기 동안, 이스라엘 성전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 순종의 사람 이삭, 기도의 예표가 되는 야곱, 이스라엘의 영도자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사무엘, 다윗,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장래 기업을 받을 땅에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저들은 늙어 단산하였으나 인간의 생리를 무시하고 잉태하는 생명력을 얻었으며, 저들은 구약시대에 벌써 부활신앙을 간직했으며, 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국왕의 소유인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간주하였으며, 때로는 바다를 육지같이 건넜으며, 적의 難攻不落(난공불락)의 성을 믿음으로 순회하므로써 함락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또는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행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희롱과 채찍질 뿐만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임을 당했던 것입니다. 이는 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신앙에 役事(역사)한 實證(실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신앙이 대대로 『모리아산』의 제단 터전을 굳게 하였으며, 드디어 천년이 차매 이 산 위에 성전이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믿음의 터』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의 능력이 믿음의 사람과 같이하여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도 의지하지 말고, 애굽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라고 歷代(역대)를 거쳐 말씀하십니다.
이 성전도 하나님의 종과 사령관님이 미국이나 기타의 원조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自隊(자대) 내에서 이룩했다고 하는 것은 더욱 신앙의 터전 위에 선 교회임을 禮讚(예찬)하여 마지않습니다. 앞으로 순수하게 하나님만을 믿고, 믿음으로 예배하며, 믿음으로 봉사하고, 믿음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믿음으로 선교하시므로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함께 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성전의 지성소의 법궤는 십자가의 모형입니다.
모리아산의 양의 죽음은 2000년 후에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를 대신하여 구속의 제물이 되신 곳과 동일한 장소였습니다. 그러므로 모리아산은 갈보리산의 先驅山(선구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 제단은 이삭을 바친 아브라함의 제단에서 양의 피를 제물로 삼음으로 더욱 명백하게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이 위대하지만 신앙의 대상의 핵심은 오로지 십자가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중요한 意義(의의)는 구원에 있습니다. 갈보리 산에서 주님은 십자가에 달린 처참한 순간에도 흉악한 죄로 인하여 함께 죽임을 당하고 있는 우편의 강도가 회개하며 주님을 의지하고자 할 때, 그에게 구원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이 성전은 여하한의 죄인도 구원을 받아 의롭게 만드는 곳이어야 합니다.

3. 성전은 성령이 교통하는 곳입니다.
신약 교회의 탄생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지 50일 후에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때를 효시로 봅니다. 성령의 감화와 충만한 역사는 성전에 들어온 사람들을 성전화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9를 보세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의 강력한 성령이 성전에서 죄악된 마음을 정결케 변화시키십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삶 속에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갈라디아서 5:22-23을 보세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파크러스트는 『목적이야말로 인생에게 의의를 주는 것이다』라고 했고, 리빙스턴은 『그 사람의 목적이 뚜렷한 한 그 사람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을 분석해 보면 첫째는 희생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요, 둘째는 성전의 지체된 성도들이 하나되어 한 목적으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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