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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렘 22: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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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참으로 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물론 실제적으로 피부에 다아 오는 경제적인 문제에도 그 이유가 있겠지만 많은 소식으로 들려 오는 이야 기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 풍 요의 계절에 농부들의 풀에 죽어 있는 모습들을 생각해 봅니다.

 뉴우스를 보다 보니까 농부들이 트랙터를 갖고 무우며 배추밭을 갈아 엎어 버리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비참하고 슬픈 장면이었습니다. 또한 미아리에서 구출되어 온 여자들의 나이를 조사해 보니 15-6세의 어린 소녀 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다 잡혀와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경찰에서는 손을 내밀고 모르는 일이라고 하고요... 한편으로는 갈곳 없는 철거민들의 모습 도 눈에 떠오릅니다.

 늦은 밤에 부평 공단 옆을 지나노라면 노동에 지친 젊은 청년들이 몰려나 오는 것을 봅니다. 공장 폐수에 살 터전을 잃어버린 어부들의 한에 어린 모습과 이 땅에 소외된 많은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반면에 요즈음 호화 별 장이니 골프장이 등이 범람한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전에는 외국인들 만 타고 다니는 줄만 알았던 값비싼 자동차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습니다.

 백화점 진열장에는 우리의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의 가격을 붙여 놓은 많은 상품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일들을 바 라보며 우리는 또한번 빈부의 격차를 뼈저리게 실감합니다. 또한 이 모든 비리와 낭비를 방지하지는 못할망정 이를 조장하고 스스로 이 대열에 앞장 서고 있는 정부의 고위 관리들을 생각할 때 우리의 가슴은 더욱 답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만 계실까 도데체 하나님의 뜻은 어떻 게 이루려고 하실까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흐름 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물 음은 비단 우리 시대에만 있던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먼 옛날 유대 나라 에도 이러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본문의 말씀을 통해 오늘날 우리 에게 주시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 합니다.

 때는 여호야김이 즉위하고 있던 유대 왕조 말기입니다. 그의 아버지 요 시야는 하나님을 잘 섬겼던 왕이었습니다. 그는 성전을 재건하고 신명기 법전을 재발견하여 종교의 쇄신운동을 알으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독립까지 꾀하였던 요시야는 이집트의 바로인 느꼬에게 전사하고 말 았습니다.

 왕의 후계자를 선택하는 가운데, 백성들은 맏아들인 여호야김을 제쳐 두 고 둘째인 여호아하스를 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 비록 여호야김이 요시야 의 장남이었으나 정치적 지혜도 없으며 성격이 난폭하고 고집스러우며 이기 적이고 충고를 받아들일 수 없는 폭군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집 트의 바로인 느꼬가 3개월 후에 다시 쳐들어 와서 그를 이집트의 허수아비 로 세워 놓았습니다.

 그는 이방 세력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기 때문에, 야훼의 계약은 깡그리 무시했으며 아버지 요시야의 계약은 하루 아침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습니 다. 그는 자신을 반대하는 예언자 우리아를 죽이고(26:20-23)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칼로 오려 불에 태워버렸습니다.(36장)

여기에서 정통성을 잃은 왕의 만행이 시작됩니다. 진정 민의에 의해 선 택되지 못한 왕. 그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일에 급급해서 이집트에 조공 을 바쳤고 자신의 왕권을 정당화 시키는 방법으로 궁궐을 호화롭게 장식하 는 방법을 썼던 것입니다.

 이것을 본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진노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부정한 수법으로 제 집을 짓고, 사취한 돈 으로 제 누각을 짓는 이 몹쓸 놈아 ! / 동족에게 일을 시키고, 품값을 주지 않다니 ! 여기에서 예레미야는 왕의 불의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믿고 사람들을 마음대로 이용하는 폭군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심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예레미야에게는 출애굽을 이루어 주셨던 하나님 의 역사가 떠올랐을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철저한 민주주의 사 회이념 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 아래서 모든 인간은 평등한 것입니 다. 극단적으로 왕과 못수는 서로 이웃인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다 른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집을 널찍이 지어야지, 누각을 시원하게 꾸며야지 하며, 창살문은 최고 급 송백나무로 내고, 요란하게 단청까지 칠하였다만, 누구에게 질세라 송백 나무를 쓰면, 그것으로 왕노릇 다하는 것 같으냐 속이 빈 사람일수록 겉을 번지르르하게 하려고 애씁니다. 무엇인가 찔리는 것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과대하게 광고합니다. 썩어가고 있는 정치, 경제일수록 더욱더 화 려하고 성장일로에 있는 것처럼 채색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무서운 것은 그렇게 하는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진정 모든 것을 이룬 사람인 것 처럼착각을 합니다. 쉽게는 배우지 못한 사람이 갑자 기 졸부가 되어 모든 사람들이 자신 앞에 고개를 숙이게 되면 이 사람은 자 신이 지식도, 인격도, 덕망도 함께 갖은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사실은 돈 밖에 갖을 것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너의 아비는 법과 정의를 펴면서도, 먹고 마실 것 아쉽지 않게 잘 살지 않았느냐 가난한 자의 인권을 세워 주면서도, 잘 살기만 하지 않았느냐 그것이 바로 나를 안다는 것이다. 여기에 다시 야훼 하나님의 신앙이 나타납니다. 이 세상 모든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십니다. 또한 그분은 우리에게 義를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22장 2절 이하의 말씀 대로 법과 정의를 실천하고, 억울하게 착 취당하는 사람들을 건져 주며, 더부살이와 고아와 과부를 괴롭히거나 학대 하지 말고 이 곳에서 죄 없는 사람을 죽여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이대로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를 번성케 하실 것이 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이 성을 돌무더기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는 욕심 밖에 없구나.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죄없는 사람의 피를 흘리려고 눈을 부릅뜨고 백성을 억누르고 들볶을 생각뿐이로구나.

예레미야는 드디어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한다. 죽은 나귀를 치우듯이 끌어내다 묻으리라. 예루살렘성 문 밖 멀리 끌어내다 던지리라.

 우리 민족의 부패된 정치를 바라봅니다. 정통성을 잃은 정권이 발버둥치 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부자의 횡포에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을 봅 니다. 하나님의 뜻이 사라져 가는 현실을 봅니다. 인간이 인간으로 취급 받지 못하는 세상을 봅니다. 이 시대에 예언자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고 있습니까 열광주의자들처럼 산 속에 들어가서 주님 오실 날 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까

이 땅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제 하 나님의 음성에 무릎을 꿇고 귀기울여야 할 줄 압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번 정신을 가다듬고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이 민 족 앞에서 올바로 서지 못했던 것을 참회해야 할 줄 압니다. 우리가 사회 의 불의를 조장했던 것을 통회 자복해야 할 줄 압니다. 그리고는 말씀을 이 땅에 담대히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연합된 힘으로 이 지역사회 의 의식개혁 운동을 벌여 나가야 할 것입니다.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고 그들의 인권을 지켜주는 파숫 군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 그 날을 위해서 부 단히 현실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주시는 지혜를 따라서 행동으로 옮겨야 하겠습니다. 언젠가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그 때를 기다리며, 하 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역군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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