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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뜻과 복인 고난 (벧전 0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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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악과 불의, 거짓과 위선, 부정과 부패, 사치와 향락, 허영과 허세, 이기심과 온갖 허욕, 마약과 성 문란 등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삽니까” 하는 교인들의 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직접 그런 말을 입밖에 내지는 않지만, 그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적당히 세상 풍조를 따르는 교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하나의 인간으로서 이러한 세상 속에서 살자니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야고보서 4:4 후반에 보면,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더욱이, 베드로는 지금의 세상보다 훨씬 타락한 초대 교회 당시의 세상에서, 그것도 무섭고 잔인한 핍박과 박해를 당하며 살던 교인들에게 적당히 세상과 짝하며 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선하나님의 뜻과 복인 고난
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의를 위하여 고난받는 것이 복 있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2. 열심히 선을 행하라

베드로는 교인들이 믿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요 복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에 앞서서,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라고 합니다.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το γαθο ζηλωτα)의 문자적 의미는 ‘선의 열심가들’입니다. 즉, 열심히 선을 행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란 말은, 선을 행하는 데 열심인 그리스도인들은 악평이나 박해 또는 신체적인 상해를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이미 교인들이 애매히 당하는 고난과, 선을 행함으로 겪는 고난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선행에 열심인 교인들을 해칠 사람이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켈리(J. N. D. Kelly)는, “믿음의 사람에게 어떠한 재난이 엄습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의 인격의 고결함을 해칠 수 없거나, 궁극적인 의미에서 그를 손상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확신은 철저히 유대적인 것으로 성경 전반에 걸쳐 흐른다.”라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자기의 재판관들에게, “선인에게는, 살아 있을 때나 죽어 있을 때나 어떠한 해악도 일어날 수 없으며, 신들은 그의 대의명분을 무시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3. 하나님의 복인 고난

선행에 열심인 교인들의 인격의 고결함을 해치거나, 궁극적인 의미에서 손상시킬 사람이 없다고 한 베드로는, 그들이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바 믿음으로 인한 고난에 대해, “그러나 의를 위하나님의 뜻과 복인 고난
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10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종으로서 사단의 지배 하에 고통스럽게 살던 인간이,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의를 위해 고난을 받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실로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채찍질을 당한 사도들이,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겨 주신 것을 기뻐하였고, 언제 어디서나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며 전도하였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5:40 이하의 내용입니다.
여러분, 주님 예수를 위해 얼마나 고난을 당하셨습니까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위해 얼마나 조롱을 당하고, 또 손해를 보았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고난받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교인들은 의를 위해 고난받는 자는 복 있는 자임을 알고, 불신자들이 아무리 무섭게 박해하고 가혹하게 핍박하더라도 두려워하지도 말고, 흔들리지도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28에,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복인 고난을 당하는 교인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라고 권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인이자 주관자로 모시고, 그 분께 복종해야만 어떠한 핍박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거룩한 인격과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그렇게 할 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영생의 소망을 얻게 되고, 그 소망에 관해 묻는 모든 사람에게 항상 온유와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으로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구원받은 죄인인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갖는 길도, 그리스도를 주인이자 주관자로 삼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신앙이 좋았고 선한 정치를 했던 빅토리아 여왕은, 종종 궁궐을 빠져나가서 서민들과 사귀고 대화하는 것을 즐거워했습니다. 한번은 한 과부의 집을 찾아갔는데, 마침 이 과부도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서 같이 기도하고, 신앙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대화 중에 여인의 믿음이 참 좋다고 생각한 여왕이, “아주머니를 찾아준 손님 중에 가장 고귀한 손님이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이십니다.”라고 대답할 것을 기대하고, 그렇게 대답하면 “내게도 그렇답니다.”라고 맞장구칠 생각을 하고 질문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과부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여왕님께서 찾아주신 것이 최고의 영광입니다. 제 생애 최고의 손님입니다.” 그러자 실망한 여왕이, “예수님이 아주머니를 찾아주신 것이 아닐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과부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손님이 아닙니다. 제 주인입니다. 처음부터 계신 분입니다. 저는 그 분을 위해 존재합니다.”
여러분, 주님을 손님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아니면, 주인으로 모시고 있습니까

4.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복종하는 목적

당시의 교인들이나 믿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인이요 주관자로 삼아 복종하는 생활을 하는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사실을 명심해야만 합니다. 첫째는, 악은 악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이긴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복음의 진리에 대한 가장 좋은 변증은 이론이 아니라, 복음에 합당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두 가지가 다 우리로서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죄악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주로 믿고 따른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경험해서 아는 바와 같이, 주님 예수의 뜻을 따라 선을 행하노라면 고난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일찍이 이 사실을 잘 아는 베드로가,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도 빌립보서 1:29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라고 하였고;또 로마서 8:17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5. 맺음말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생각과 행동을 하며 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교인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고난을 당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삼고 선과 의를 실현하는 고난이란 하나님의 뜻이요 복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로 고난을 이기게 하시고, 핍박자들을 이기게 하시고, 더 나아가 영생의 소망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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