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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손과 교만함의 문제 (욥 15: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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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바스가 욥에 대한 분노를 토로한 이유는 욥의 답변 자체가 연로한 친 구들의 권고를 무시하는 부도덕하고 유아독존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다. 그래서 엘리바스는 풍자적 표현을 사용하여 욥을 비난하고 있다. 즉, 엘 리바스의 논지에 따르면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독자적으로 얻을 수 있는 자가 세상에 제일 처음 난 자이며 따라서 욥이 지혜 있는 듯이 그리고 자신만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듯이 행동하는 것은 자신을 처음 난 자의 위치에 두려는 교만한 마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바스의 이러한 비난은 욥이 가진 지혜의 개념을 바르게 알지 못한 때문이다. 사실 욥은 세상이 하나 님의 지혜로 창조되어 졌다고 굳게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인간 이 지혜를 얻는 길은 불경한 말을 삼가고 과거의 지혜에 주목하며 현인의 충 고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엘리바스는 무죄를 주장했던 욥 의 행위를 교만의 극치라고 반박하며 결국 하나님의 판단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본문에서 엘리바스는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욥의 행위를 하나님을 무시 하는 행동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여인에게서 난 자가 깨끗할 수 없다 는 것이 성경의 주장인데 어떻게 자기 자신을 향해 무죄하다 할 수 있겠느냐 고 질문하며 욥의 주장은 인간의 전적 부패성을 충분히 알고 있는 연장자들뿐 만 아니라 이처럼 타락한 인간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까지도 무시하는 행위라고 주장하는 것이다.(11절) 따라서 엘리바스는 이런 자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며 마침내는 정죄당 할 수밖에 없다고 을 내린다. 그러나 엘 리바스의 이런 평가는 욥의 진술을 유심히 듣지 않은 결과이다. 왜냐하면 욥 은 타락한 인간의 전적 부패성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욥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던 이유는 자신이 본질적으로 무죄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에 게 일어난 환난이 결코 친구들이 비난한 그런 특정한 범죄의 응보가 아니라 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저자는 욥이 범죄함으로 고통을 당한다는 엘리바스의 논리를 1차 변론 때와 마찬가지로 본문에서도 반복시킨다. 즉, 1차 변론이 시작되는 4장에서 욥의 고난을 범죄의 결과라고 내렸었던 엘리바스는 본 단락을 통해서도 욥이 결코 무죄한 자가 아니요. 오히려 악인이라고 말하고 있다.(16절) 결국 이는 본서 자자가 여전히 편협한 사상에 입각해 변론을 전개하는 엘리바스의 완고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을 통해 우리는 고난과 관련된 우리의 태도를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자신에게 오는 고난이 하나님의 연단의 과정일 수 있음을 알아 좌절하거나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지체들 중에서 고난당하는 자를 정죄하거나 무관심 속에 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화) 미국의 흑인 노예 해방자, 아브라함 링컨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 다. 링컨은 낮에는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고학을 했다. 링컨의 아버지는 링컨 이 일하는 것은 좋아했지만 책을 읽는 것은 못마땅하게 여겼다. 책을 읽고 있 는 링컨에게 아버지는 늘 퉁명스럽게 말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잠이나 자 렴, 책을 읽어 무엇이 나온단 말이냐 그래도 링컨은 조금도 아버지를 원 망치 않고 언젠가는 이해해 주리리라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매매 계약서 한 장을 링컨 앞에 내밀면서 말했다. 잘 아는 사람이 땅을 조 금만 팔라고 사정하기에 견디다 못해 20 에이커를 팔았다. 이것이 그 계약서 란다. 그런데 링컨은 계약서를 보곤 깜짝 놀랐다. 아버지, 큰일났어요.

아버지가 판 땅은 20 에이커 뿐인데 이 계약서에는 20 에이커만이 아니라 아 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땅 전부를 팔았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뭐라구! 그런 날벼락 맞을 짓이 어디 있단 말이냐! 아버지는 얼굴이 새파 랗게 질리면서 그대로 벌떡 일어나 뛰쳐나갔다. 글을 전혀 몰랐던 아버지는 계약서가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를 몰랐던 것이다. 아버지는 단숨에 토지를 사겠다는 사람에게 달려가 매매 계약을 취소시켜 버렸다. 그리하여 어물어물 넘어갔더라면 큰 일날 뻔했던 일을 아슬아슬하게 모면했던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부터 아버지는 링컨에게 책을 읽는다고 꾸짖는 일이 없었다.

자신이 아는 것, 경험한 것만으로 모든 것을 한정시켜 버린다면 얼마나 답 답한 노릇인가! 아버지라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자기 주장이 옳 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류이다.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배울 수 있다는 개방성을 지니고 있는가 어린 아이에게는 순수성과 정직성 그리고 단순성을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는 삶에 대한 진실성과 현실 적응 능력을 아랫사람에게 는 섬김과 성실성을 배울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불안전성을 인식하고 무엇이 든지 누구에게든지 배울 수 있다면 많은 진보와 발전이 뒤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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