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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고통과 슬픔이 오는가

  •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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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80102150759_01.jpg (File Size: 67.0KB/Download: 0)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야훼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야훼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야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의 모든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으리니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야훼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출애굽기 14장 5∼18절)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애굽을 등지고 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들이 겪은 슬픔과 고통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인도를 따라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은 큰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앞에는 홍해가,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바로의 명령에 따라 습격해 왔습니다. 앞에는 홍해수요 뒤에는 애굽 군대라! 진퇴양난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올 한해를 보내고 이제 새해를 맞이하게 될 때, 돌이켜보면 우리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앞으로 나가려고 해도 막혔고 뒤로 돌아설 수도 없는 고통 가운데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고통을 당하게 하시는 걸까요? 


 1. 어둠이 있어야 빛이 나타난다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두움에 있다가 들어오면 빛이 대단히 선명하게 보입니다. 요사이 도시든 농촌이든 밤하늘에 은하수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어렸을적에는 하늘에 은하수가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 했는데 요사이는 그렇치 못합니다. 나쁜 공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도시에 불빛이 너무 찬란해서도 그렇습니다. 전깃불이 너무 찬란해서 그 빛이 빛을 잡아먹어 버립니다. 우주에서 지구로 다가오는 은하수 같은 것은 도시에서 빛이 나는 전등불에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어둠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빛의 소중함을 알지 못합니다.

 노르웨이의 리우칸이라는 마을은 100년 전 생긴 마을인데 높은 산 아래의 깊은 계곡에 있기 때문에 산 그림자에 가려서 1년중 반이상을 햇빛을 볼 수 없습니다. 햇빛을 못 보면 우울증이 많이 생겨납니다. 마을사람들은 햇빛을 보기 위해 차를 타고 옆 마을로 가거나, 높은 산에 올라가 햇빛을 받으면서 스키를 타거나,  마을에 있는 케이블을 타고 뒷산에 올라가서 햇빛을 보았습니다. 햇빛을 보기 위해 이런 방법으로 100년 이상을 버티어 온 것입니다. 그런데 4년 전에 이 암울한 마을에 빛이 들어왔습니다. 한 예술가가 산 위에 거대한 거울을 세웠어요. 거울 세 개를 세워서 햇빛을 동네로 비춰주니까 동네가 다 기뻐했습니다. 햇빛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더 잘 깊이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둠을 느껴본 사람만이 빛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2. 고난 후에 다가오는 평안과 기쁨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과 어려움이 다가오는 것을 허락해 놓았습니다. 그 고난을 당하고 나면 기쁨과 즐거움은 더 깊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에 오기까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거친 광야에서 험악한 삶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그 험악한 상황을 극복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기적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역사를 느끼게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명기 8장 2절과 3절에 보면 “네 하나님 야훼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야훼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러 가지 고난과 시련을 겪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도우심이 얼마나 위대하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위기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애굽을 떠난 것인데 왜 이런 시련이 다가오는 것일까요? 출애굽기 14장 12절에 보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떠나기 전, 모세에게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고 불평을 했습니다. 자기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는 것 보다 애굽에 살면서 애굽 사람의 종노릇하는 것이 좋겠다는 불신앙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광야를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광야로 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들은 벌써 마음속에 불신앙이 꽉 들어찼습니다. 하나님 계신 것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기사와 이적이 있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바다 가운데로 건너게 하시고 바로의 군대를 수장시켰습니다. 바닷물이 갈라지고 따라오던 애굽 군대들이 전멸되는 것을 보고 나서야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고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나?”라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불신앙이 사라지고 신앙이 살아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14장 31절에 “이스라엘이 야훼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야훼를 경외하며 야훼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고 말씀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을 야훼인 줄 알게 된 것입니다. 고통에는 하나님의 선한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에서 건지시고 이런 경험을 통해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난이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일이 있습니다. 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하면 강풍이 불 때 쓰러지고 맙니다. 미국에 가면 큰 나무들이 길거리에서 뿌리가 뽑혀서 넘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에는 땅이 너무 기름져서 기름진 땅에 나무를 심어놓으니까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리지 아니하고 자라서 나무에 바람이 불어오면 쓰러지고 뿌리가 파헤쳐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에 와서 길거리에 보면 바람이 불어도 큰 나무가 많이 파헤쳐 넘어진 것이 없습니다. 한국은 땅이 척박하고 양분이 많지 않아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뿌리를 깊이 내려야 되는 것입니다. 한국 나무들은 바람이 불어도 쉽게 뽑히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 평탄하게 신앙생활을 한 사람은 고난이 다가오면 신앙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아주 척박한 생활환경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기도에 응답을 받아서 살아온 사람은 여간해도 신앙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고난중에도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해서 하나님의 응답이 내려와서 응답을 받고 쓰러지지 않습니다. 척박한 땅에 심겨진 나무들은 살아남기 위해 뿌리를 땅속 깊이 내립니다. 그래서 웬만한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깊이 내리는 나무처럼 인생도 고통과 슬픔을 통과할 때 뿌리를 깊이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도 광야를 지나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과 괴로움을 이기고 나면 하나님께서 평안과 기쁨의 삶을 예비해놓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고난을 겪고 나가면 기쁘고 즐거움이 다가오지만 기쁨과 즐거움만 기다리면 고난이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왜 어두움을 겪게 하는지 하나님 앞에 탄식할 때가 있습니다. 


3. 새로운 삶을 얻기 위하여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합니다. 그 어려움을 겪고 나오면 기쁨과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괴로움을 견딘 분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면 한없이 고통을 당한 하나님의 아들을 가슴에 모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힘을 얻어 어려움을 이기게 되고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메마른 겨울환경이 지나고 봄기운이 다가오면 가는 곳마다 산천초목이 생기가 넘쳐나는 것처럼 예수님을 우리안에 모시면 생기가 우리 삶 속에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가난하고 헐벗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고 우리 저주를 다 청산했기 때문에 생기가 예수님께서 넘쳐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모시고 기도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예수님 속에서 생기가 우리에게 넘쳐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어려운 삶, 생활의 저주를 주님께서 청산해주셨습니다. 또 우리가 병들어서 고통당하는 질병도 담당하셨고 우리의 질병도 추함도 담당하셔서 피를 흘리심으로 다 없애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모시면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죽음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 예수 천국 내 천국. 이렇게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가 된 상태를 체험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 보면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예수님 죽은 예수님 모시지 않습니까? 죄와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우리가 모시면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생명의 역사가 우리 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을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마가복음 9장 23절)

십자가에 매달려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청산해주신 그 은혜를 우리가 소유했다고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장 13절) 종교로써 우리를 부른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예수님의 생명을 나누어주기 위해서 우리를 부른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모시고 찬양하고 기도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생기가 우리에게 흘러들어오는 것입니다. 예수 생명이 내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의 의로움이 우리 의로움이 되고 예수님의 거룩함이 우리 거룩함이 되고 예수님의 건강이 우리 건강이 되고 예수님의 축복이 우리 축복이 되고 예수님의 부활 승천이 우리 부활 승천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립보서 2장 13절)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마가복음 11장 22절~24절)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명하면 그 믿음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이루어지는 것,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 시험과 환난을 당하여 괴로울 때도 기도하면 주님께서 일하십니다. 살아계신 주님의 역사가 우리 생활 속에 나타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선언을 늘 해야 됩니다. 시편 21편 2절에 “그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셨으며 그의 입술의 요구를 거절하지 아니하셨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창조적인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그대로 역사해주십니다.

 3차원의 물질생활을 딛고 4차원의 영의 세계로 들어가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야훼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예레미야 29장 11절~13절)

 어떤 사람이 도공을 찾아갔습니다. 여러 가지 그릇을 만들고 도자기를 만드는 곳에 가니까 눈에 띄는 두 개의 화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굉장히 광채가 나고 다른 화분은 빛이 나지 않고 어두컴컴합니다. 똑같은 화분인데 왜 그럴까 궁금해서 질문했더니, 하나는 불도가니를 통해 불로 구웠고 또 하나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 시험을 당하게 하는 것은 빛나는 신자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불 시험을 당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빛난 천국의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름답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불을 통과해야 아름다운 도자기가 탄생하듯 사람도 고통과 슬픔을 통과할 때 더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편71절)

 생각을 긍정적으로 해야 합니다. 유한양행의 창업자인 유일한 박사님은 신실한 크리스천인데, 미국에서 숙주나물 사업을 해서 돈을 굉장히 많이 벌었습니다. 그러나 숙주나물 장사 초기에는 쉽지않았습니다. 그 당시 숙주나물은 미국인들에게 생소했기 때문에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뉴욕 시내의 복잡한 출근길에 숙주나물을 배달하던 트럭이 상가건물을 들이 받아서 트럭에 싣고 있는 숙주나물을 뉴욕의 온 길거리에 쏟아놓게 되어 대혼잡이 일어났습니다. TV방송국에서 나와서 촬영하고 라디오에서 방송하고 신문에도 보도가 됩니다.

 유일한 사장은 ‘이제 망했다’는 생각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하소연합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살았는데 왜 나를 이렇게 버립니까? 나는 이제 빈 손들게 됐습니다.” 하염없이 탄식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TV나 라디오 신문사에서 사고를 보도하면서 숙주나물의 영양소 등 긍정적인 기사를 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서양사람들은 고기 섭취량이 많기에 나물을 같이 먹어야 한다는 보도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차릴수 없을 정도로 매출이 늘어났습니다. 나물장사로 돈을 번 유사장은 제약회사를 세울수 있었고 세계적인 제약회사로 발돋음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불가마를 통하게 하십니다. 불을 통해 빛나게 하십니다. 고난이 다가온다 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고난이 오히려 기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 하나님이 나에게 좋게 해주신다는 그런 생각을 해야 빛과 어두움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들이 머리 위로 날아다녀도 우리가 실제로 느끼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새들이 우리의 머리 위에 둥지를 틀면 그건 문제가 달라집니다. 둥지는 틀지 못하게 해야 됩니다. 마귀가 ‘못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 너는 망했다’라고 속삭이며 우리의 머리에 둥지를 틀면 부정적인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둥지를 틀지 못하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물리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마귀의 둥지를 대신해 성령님이 둥지를 틀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암송하여 머리에 늘 간직하고 있으면 좋은 일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안 된다. 할 수 없다’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올 때마다 둥지를 틀지 못하게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쫓아야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이 마음속에 둥지를 틀지 못하게 만들어야 우리 생활이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7장 19절에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자 야훼가 말하노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말의 열매를 창조하셔서 우리의 삶에 나타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인생이라는 밭에 말이라는 씨를 뿌리고 삽니다. 긍정적인 말을 심으면 긍정적인 열매를 수확하고, 부정적인 말을 심으면 부정적인 열매를 수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과 괴로움을 통해서 더 아름다운 신앙을 창조해내고 합동하여 유익을 이루게 하는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여러분 머리에 성령께서 둥지를 틀게 만들어서 성경의 말씀이 머리에 꽉 차있으면 그 말씀이 씨앗이 되어서 씨가 뿌려지는 것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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