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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선교사의 노후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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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의 노후대책 

- Sergei(모스크바 선교사)


나의 아버지는 반평생 40여년간 목회에 전념하시다가 은퇴를 하셔서 지금은 경남 진주에 살고 계신다. 교회에서 은퇴하고 나갈 때에 거처할 방이 없었다. 그래서 동생들이 자취하는 방으로 옮겨서 사셨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사시다가 동생들이 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서로 돈을 모아 작은 아파트를 영구 임대하여 거처하고 계신다. 지금은 특별하게 지출비용이 없으니 자녀들의 효성 금으로 살고 계신다.

요즘 신문을 통하여 목회자의 노후 대책에 대한 세미나를 비롯하여 교단 총회가 은퇴교역자 대책을 많이 세우고 있는 것을 본다. 시대가 시대니만큼 마땅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평생 세상 물정을 모르고 교회에서만 살다가, 목회자가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혹시 타락한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과 믿음 때문에(?) 세월 다 보내고 막상 은퇴할 때가 되니, 요즘 같이 고물가 시대에 노후가 문제가 되는 일들이 많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일반인들은 40이 넘으면서 벌써부터 노후를 준비한다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고,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책임지실 것인데, 믿음 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한다. 믿음대로 그럴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다른 사람 등에 없고 부담을 주어가면서 은혜 속에 산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노후에 대한 문제는, 현장에 나가 있는 선교사에게도 상당한 고민거리가 되는 것을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있고, 집이라도 있다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어떤 이들은 가난한 집에서 목회자가 되어 물려받을 재산이 전혀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이들이 있다. 어떤 이는 목회자의 가정에서 대를 이어 목회를 하다 보니 역시 재산과는 거리가 멀고, 그러한 재산을 불리고 모으는 데에는 관심이 부족하여 세월을 보내다 은퇴를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세상이 하 수상하여, 이름 모를 병도 많다. 건강하다고 장담하지만, 쇠하여지는 육신은 어쩔 수 없다. 스트레스가 많은 세상을 감당치 못하여 약간 이상한 경우도 있다. 사고도 많다. 자녀들을 돌보고, 대학 교육까지는 시켜야 하는데 감당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자녀들이 없는 경우에는 누구 하나 돌아보아 지원할 이가 없다. 교회도 나이가 많은 늙은이들에게는 관심이 없어진다. 인지상정인가!

타국에서, 타문화권에서, 기후가 다른 곳에서 오랫동안 살다 보면 이름 모를 풍토 병도 생기고, 신경과민, 신경쇠약도 걸린다. 자녀들에게 질병이 생기기도 하고, 사고로 인하여 곤란을 당하기도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현재는 그럭저럭 살아간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노후가 걱정이다.

노후는 돈이 있어야 한다. 무시당하지 않고, 베풀며 위로하고 격려하며 품위를 지키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건강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야말로 노후의 삶은 피폐한 삶이 될 것이다. 신앙인의 결국, 목회자의 결국은 흉하게 될 것이고 영적이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한국을 방문하니, 태아보험으로부터 시작하여 별별 보험이 다 있고, 그런 것은 기본이 되었다고 하여 참 좋은 세상이라고 속으로 웃은 적이 있었다. 선교사는 그것도 모르고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 사고가 나면, 병이 들면, 처음에는 파송 교회가 돌보아 줄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시간이 길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믿는 사람들도 긴 병에 별 수 없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길어질수록 교회는 얼마나 부담을 느끼겠는가? 가족 친족들에게 의지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 저마다 생활이 있고 계획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돈 없는 설움과 늙음에 울게 되는 것이다.

어떤 선교사 부인이 질병으로 인하여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1년이 넘어가니 파송 교회가 후원을 중단하더란다. 그래서 더 어려워지고, 아픈 것도 서러운 일이고 답답한데, 재정적인 부담까지 안게 되면 얼마나 슬픈 일이겠는가? 그래서 건강할 때에, 노후를 계획하는 것은 매우 신앙적이라고 여겨진다. 믿음으로 나가는 이들에게는 믿음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지만, 가족과 교회와 이웃에게 피해를 주면서 그것을 은혜라고 고백한다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 잘못된 것이다.

요즘 은퇴 목회자들이 엄청 많아졌다. 80년대를 넘어가면서 수많은 목회자들이 한국교회에 쏟아졌다. 이제 많은 이들이 은퇴를 하고 후배들에게 이양한다. 은퇴를 앞두고 여러 가지 해괴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것 같다. 원로목사로 세우지 않으려는 교회도 있고, 원로목사가 되기 전에 내팽개치는 교회도 있다. 원로목사로 세워도 교회가 부담을 갖는다.

이래저래 노후는 역시 문제가 된다. 은퇴 목회자들은 노회나 교단에서 베푸는 행사를 손꼽아 기다린다. 자녀 손들의 돌봄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공적으로 베푸는 노회나 총회의 은혜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는 없었다. 그러나 목회자가 쏟아지고 성직자가 불어남에 따라 생겨난 한국교회의 특이한 현상일 것이다. 다른 나라는 상황을 잘 모르겠다.

앞으로 한 세기는 이러한 현상들이 더욱 심화되지 않겠는가? 여기 저기에서 교회가 선교단체가 교단이 은퇴교역자들을 위한 복지시설을 짓고 있다. 그것도 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한국, 얼마나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인들을 한곳에 모아 일률적으로 수용하면, 그것도 과히 좋은 일은 못될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준비할 수 있을 때에 사회 보장제도를 잘 활용하여 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라고 여겨진다. 마 25장에 나온, 주님 맞기 위하여 기름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노후도 대책을 세우고 고민하고 준비하는 것이 자신을 위하여 자녀를 위하여,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바람직한 것이라 여겨진다.

이러한 일들은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파송 선교사들을 위하여 노후 대책을 겸한 평생 건강보험이라도 들어야 한다. 그것이 어려우면 본부와 서로 협력하여 진행하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파송 선교단체에서는 소모성 보험보다 기왕에 넣은 손해보험, 장기적인 대책을 가지고 원금 보장 보험을 운영하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 있는 단체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각 단체마다 상황이 다를 것이지만, 한 달에 15만원씩 들어가는 퇴직금도 보험에 적용하여 이익금을 늘려주는 방법으로 나가면 어떨까? 20년을 넣어도 원금만 불어나 겨우 2천만원을 넘기고 있다면 그것도 생각해 볼 일이 아닌가? 거기에 대한 이자는 어디로 가는지 알 길이 없고, 전혀 모르고 있다면, 선교 본부는 무엇인가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 아니 즐겨 사용하는 말로 투명성이 없는 것이다.

노후 대책은 앞으로 커다란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벌써부터 80세는 보통인 시대가 되었다. 갈수록 현대 과학과 의료혜택으로 인하여 노령 인구는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유엔의 보고에 의하면 인구는 줄어드는데 늘어나는 노령인구 폭탄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2959년 마지막 아이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것은 출산은 적고 노령화는 늘어간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대책이 신속하게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도 투명성과 연계된 문제이니, 강조하지만 말고 근본적인 대책을 찾아보기를 한국교회에 고한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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