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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병욱 목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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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욱 목사에게 

- 이태형 부장 (국민일보 미션라이프부)


세계적인 구약학자이자 선교학자인 크리스토퍼 라이트 국제랭함파트너십 대표는 지난달 남아프리카공회국에서 열린 제3차 로잔대회의 주역 가운데 한 명이다. 국제랭함파트너십은 복음주의 거장인 존 스토트 목사가 제 3세계 청년들을 돕기 위해 설립한 단체. 스토트의 은퇴 이후 라이트가 뒤를 이었다.

74년 열린 1차 로잔대회의 주역은 존 스토트와 빌리 그레이엄 목사였다. 스토트가 세계 선교의 방향과 전략을 담은 로잔 언약(Lausanne Covenant)의 기초를 잡았다. 이번 3차 대회에서 로잔 서약의 기초를 다진 인물은 라이트. 이로써 라이트는 존 스토트의 진정한 후계자가 된 셈이다. 

존 스토트가 1차 로잔대회에서 목회자들에게 강조한 것은 투명성(Transparency)과 정직(Integrity)이었다. 세계 선교를 이끌어 나갈 지도자들은 정직과 투명성이 없이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 로잔 동아시아 디렉터를 맡고 있는 최형근 서울신대 교수는 “2년 전에도 스토트 목사가 세계 교회 지도자들에게 정직과 투명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 했다”고 전했다. 

‘존 스토트의 후예’인 라이트 대표가 이번 로잔 대회에서 강조한 것은 36년 전 스토트 목사가 말한 것과 비슷하다. 라이트는 지도자들에게 ‘HIS'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겸손(Humility)과 정직(Integrity), 단순함(Simplicity)의 영문자 이니셜을 딴 것이다. 그는 교회 지도자들이 빠지기 쉬운 3대 우상을 ’GPS', 즉 탐욕(Greed)과 권력(Power), 성공(Success) 이라고 전제하면서 이를 타파할 개념으로 ‘HIS’를 제시했다. 

라이트는 “36년 전(로잔1차대회) ‘교회를 향한 도전’으로 지적된 많은 것들이 아직도 투쟁해야할 대상으로 남아 있는 것이 통탄스럽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도전들(성공과 탐욕과 권력)을 제거하고 겸손과 정직, 단순함을 세워나가는 노력은 지금 시대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한국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이 라이트가 말한 ‘HIS’임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 이제 목회자 뿐 아니라 목회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GPS'가 아니라 ’HIS'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지도자를 평가해야 할 때가 왔다.

요즘 한국 교회 화제는 단연 삼일교회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논란과 그에 따른 교회 사임이다. 전 목사가 교회 홈페이지에 ‘사죄와 사임’을 발표한 이후 성추행 사건은 ‘공식적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전병욱’과 ‘삼일교회’란 키워드가 실시간 검색순위 상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각 언론도 주로 인터넷 판을 통해서 이 사실을 보도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탁월한 목회사역자인 전 목사에 대한 환호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을 것이다. 교회내 성추행 문제 등을 무조건 덮어놓는데 급급했던 한국교회 현실에서 전 목사가 공개적으로 죄를 고백했다는 점은 평가해 줄 만하다. 물론 이 사실이 그의 성추행의 비도덕성과 중대성을 감소시키지는 못한다. 그는 분명 비난 받을 행동을 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지도해야 할 목회자였기 때문에 더욱 심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지도자이기 때문에.

전 목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접하면서 요즘 시대에 목회자나 교회 지도자가 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GPS를 버리고 HIS를 구비하지 않는 한 교회지도자들로 인한 온갖 부정적 이야기들은 그들의 긍정적 사역을 가릴 것이다.

목회 사역 내에도 탐욕과 권력, 성공의 덫은 도처에 깔려 있다. 분당 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는 “목회는 경계선 긋기”라고 말했다. GPS와 HIS의 경계선을 긋기, 그 경계선을 긋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목회자의 행복은 이 목사가 말한대로 ‘살얼음판을 걷는 행복’이다.

전 목사는 한국교회 어느 목회자보다도 더 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의 탁월한 인간적 능력, 헌신, 노력 등은 그를 한국교회에서 우뚝 서게 했다. ‘백절불굴 크리스천’을 강조했던 전 목사도 경계선을 긋지 못했다. 한 순간 삐끗하니 지난 시절 쌓아올린 모든 것이 무너졌다.

나는 전 목사의 목회와 사역 이야기가 이것으로 모두 끝났다고 보지 않는다. 오직 ‘코람데오’(하나님의 마음 앞에서)의 심정으로 하나님과 문제를 해결하고, 또한 우리의 교회와 이 사회가 허용하는 시간과 과정이 지난 다음에 다시 목회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미국 그리스도 왕 교회(CTK)의 데이브 브라우닝 목사의 글을 읽었다. ‘나는 또다시 목사가 되었다’는 제목의 글이다. 

“나는 목사다. 아니, 또다시 목사가 되었다. 90년대 중반에 목회를 접을 때는 많은 것이 불확실했다. 그러나 한 가지 만큼은 확실했다. 그것은 다시 목사가 되는 일은 절대로 없으리라는 확신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다. 내가 그 분을 포기하는 동안에도 그 분은 나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고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셨다. 내 영혼을 소생시킨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워싱턴 벨링햄의 초교파 교회의 맨 뒷줄에 앉아있었다. 그리스도 왕 교회(CTK)는 나에게 사랑과 수용, 그리고 용서를 알려주었다.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은 내 상처를 치유하고 내 열정에 다시 불을 붙이셨다.

이 회복의 시기에 기도 동역자가 나를 권면했으며 목회자가 멘토가 되어 주었고 회중이 나를 지지해 주었다.(...중략) 몇 년이 지나자 그야말로 나는 다시 달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또다시 목사가 되었다. 하지만 예전과 똑같은 목사가 아니다. 확신하건대 나는 많이 변했다. 목회하는 상황 역시 아주 달라졌다.”

나는 어느 순간(언젠가 될지 모르지만) 전 목사가 다시 달리기를 바란다. 또 다시 ‘목사’가 되기를 소망한다. 예전과 똑 같은 목사가 아니라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모습의 목사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간 삼일교회와 전 목사가 한국교회에 주었던 청량감과 신선함, 그리고 처절한 상실감을 뛰어넘길 새로운 목회를 어느순간 다시 펼치기를 바란다.

GPS가 아니라 HIS의 삶과 목회를 실증하는 목사로 돌아오길 바란다. 바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사회적 합의의 정화 시간이 지난 다음에. 개인과 교회의 타임 스케줄이 아니라 그분의 시간에, 그리고 전 목사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수긍하는 시간에.

그 시간동안 정죄보다는 긍휼의 마음으로 그를 기다리는 성숙함이 성도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교회이기에,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이야기 해서는 않되지 않을까 싶다.

사건이 불거진 이후, 수 많은 성난 목소리들이 도처에서 들린다. 사람들은 "이제 전 목사도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 어느 누가 "끝났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교회가 이 세상에 해 줘야 할 외침은 바로 "아직, 끝나지 않았다"가 아닐까 싶다. 비록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인생도, 전 목사의 목회도, 끝나지 않았다. 보수건, 진보건 상관없이 ‘교회야말로 소망의 공동체’임을 인식하고 있지 않은가. 수없이 우리는 용서와 사랑, 은혜를 이야기하고 살지 않았는가. 전 목사가 탁월한 목회자라고 해서 그에게만 "너는 끝났다!"라고 정죄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 제한된 존재들이다. 어쩌면 우리의 오류 가운데 하나는 전 목사의 능력과 탁월성에 너무 도취되어 있었다는데 있다. 그 역시 깨어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인생에 불과할 뿐인데 말이다. 

전 목사의 사죄와 사임이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소위 '물타기'가 되어서는 회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 된다.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사람 앞에서, 그리고 특히...

서초교회 김석년 목사는 “목회는 하나님이 ‘봐 주셔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봐 주시는 만큼’ 목회하다가 어느 순간 ‘하나님이 봐 주시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항복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다시 ‘하나님이 봐 주신다’고 느껴지면 ‘다시 목회를 하면 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전 목사의 성추행사건과 관련해서 ‘교회에 실망하는’ 사람들에게 유진 피터슨의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물으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라고 대답한다. 성경에는 그리고 교회의 역사에는 ‘성공적인’ 회중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교회는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참여하기는 할지라도 교회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비록 수많은 부조리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GPS를 넘어 HIS로 그득한 교회와 지도자들, 성도들을 꿈꾸며, 전 목사의 ‘회복과 어떤 부활’을 기대하는 것은 교회는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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