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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에스메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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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메랄다

- Sergei(모스크바 선교사)


19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 빅토르 위고가 쓴 작품 “에스메랄다”는 15세기 노틀담 성당을 배경으로 한 슬픈 사랑의 이야기이다. 낭만주의 작가였던 위고는 당시의 종교의 부패한 사회상을 고발하고 사형제도를 반대하였던 인물이었다.

이 유명한 작품이 모스크바 크레믈린 극장에서 발레로 공연되고 있어 오랜만에 감상할 기회를 가졌다. 언제나처럼 잠깐씩 스쳐가는 흥미로운 장면 외에는 늘상 졸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리 작품에 대하여 공부를 좀 하고서 감상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어떻게 발레로 표현을 하는가 주의 깊은 관심을 가졌기에 제법 흥미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모스크바의 겨울은 음악과 발레와 연극, 그리고 만담의 계절이라고 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멋지고 화려한 의상으로 단장하고 극장에 입장한다.

이 작품 속에는 노틀담 성당의 신부와 종지기 꼽추, 그리고 성당을 지키는 관리인 장교와 에스메랄다가 사랑하였던 청년이 나온다. 가장 열정적인 인물은 신부였다.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에 대한 연모함이 지나쳐 그녀가 사랑하는 애인을 살해하고, 그녀에게 살인 누명을 씌운다. 그리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통하여 그 여인을 차지하려고 술수를 부리지만, 응해 주지 않는 여인의 태도에 오히려 분노로 응답한다. 

신부는 자기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며 너무나 인간적인 부정한 방법으로 일관한다. 하나님도 무시하고 목에 걸린 십자가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직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고뇌하고 갈등하며 날뛰는 발레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또한 가슴 아픈 일이었다.

인간의 본능과 싸워야 하는 갈등, 본능을 이기지 못하여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악하게 살인과 거짓을 일삼는 암흑의 15세기 한 교회 신부의 모습 속에서, 흡사하게 타락한 오늘의 교회를 엿보게 된 것이다. 결국 살인 후에 신부는 악몽에 시달리고,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또 한 번 몸부림치게 된다.

그의 모든 광경을 주시하며 맴돌던 종지기 꼽추는 결국 그 신부와 다툼 끝에 그를 난간에서 밀어뜨려 살해하고 만다. 그리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서 목매달려 사형 당한 에스메랄다, 간절하게 사랑하였던 그녀의 곁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은 서로 엉켜있는 시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으로 애절한 사랑의 막을 내리게 된다.

크레믈린 극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어림잡아 계산을 해보니 약 6천 석 이상 좌석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거의 좌석을 다 메운 관객들을 보면서 이렇게 예술을 즐기는 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느낀다. 전문 발레리나들의 몸동작과 손놀림, 그리고 안무와 군무 등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종지기 꼽추가 죽은 시신을 안고서 슬퍼하며 한바탕 춤을 추는 모습 속에서, 죽은 여인도 다리를 올리며 죽은 상태로 춤을 추며 죽음을 묘사한다. 그러한 전문인다운 연기에 매력을 느끼고 또한 탄성을 울린다. 저렇게 절묘한 춤과 하모니가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와 땀과 노력을 들였을까를 생각하니 참으로 감동스럽다. 

60여명이 넘는 단원들이 2시간 반에 걸친 공연을 진행한다. 저들의 연기를 보면서 모두가 주어진 역할이 다르고 그 영광이 다름을 본다. 주인공의 역할은 몇몇이 감당할 뿐이다. 나머지는 들러리 역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들의 역할이 없이는 주인공은 빛이 나지를 않는다. 역할이 다른 것일 뿐임을 본다. 주인공이 아니라고 그 역할에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 발레 속에서 전문가의 탁월한 기술이 있어야 함을 느낀다. 소명을 사명으로 감당하기 위하여서는 전문인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일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일반적인 것 말고, 나만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대부분 두루뭉수리하게 남 하는 것은 다 한다. 그러나 나만의 전문은 무엇인가 말하라면 특별하게 내놓을 것이 없다. 필자의 모습을 보면서 선교사로서 전문성을 확보하여야 되겠나 함을 생각하게 되니 발레도 아주 유익하다.

발레에서 군무의 아름다움은 빼놓을 수가 없다. 하모니를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하는 것이다. 협력과 팀 사역의 묘미와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주인공이 나와서 춤을 출 때에는 그 나름대로 탁월한 기술과 고고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그런데 수십 명이 한꺼번에 추는 춤은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다수가 엮어내는 하모니는 매우 감동적이다. 선교사들은 협력을 통하여 왜, 이러한 감동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일일까를 생각하며 고민해 본다. 어떻게 군무를 출 수 있을 것인가? 오늘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관현악단의 협주곡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선율이다. 이들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발레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뛰고 난다 하여도 음악의 배경이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이처럼 하모니가 주는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밤 10시가 넘어서 극장을 나온다. 세찬 눈보라가 얼굴을 사정없이 내리친다. 모스크바의 1월, 한겨울은 더욱 깊어만 간다. 모처럼 발레를 통하여서 감동을 받고 영감을 얻다니, 세월의 힘인가? 연륜인가? 아니면 러시아를 닮아간다는 것일까?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종종 발레를 비롯하여 문화의 현장을 누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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