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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 성령세례의 내적 증거 (벧전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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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세례의 내적 증거 (벧전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오늘은 교회가 성령강림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보혜사 성령님의 오심을 기념하여 성령 강림의 의의를 생각해보고 교회 위에 임하시는 성령의 부으심을 소망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성령님에 대하여 많은 혼돈과 오해가 있음이 사실입니다. 특히 20세기 초반에 시작된 오순절 운동이나, 지난 60년대부터의 은사주의 운동(Charismatic movement) 등으로 인하여 부정적 시각으로 성령 세례를 폄하하는 움직임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령의 부으심은 예수님의 약속이요 우리가 반드시 누려야 할 주님의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모아놓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면서, 성령으로 세례받을 때까지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행 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 제자들은 이미 말씀으로 거듭난 자들이었고, 주님과 함께 3년여를 동거하면서 배웠지만, 능력의 증인이 되기 위하여는 성령의 부으심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침내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력하게 임하셨고, 그들은 모두 성령충만하여 가장 어려운 환경과 여건 속에서 가장 유능하고 효과적인 복음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 종말 교회에 화급한 필요는 성령세례입니다. 계시록 3장에서 보여주는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세속과의 타협의 기운이 완연하며 자신을 지킬 능력도 부족하고 하나님 나라 사역에는 나태한 현대교회를 치유할 주님의 처방은 성령의 부으심 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령세례의 특징은 무엇인지, 그리고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내적 증거는 어떤 것인지,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성령세례의 특징

성령세례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이것이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란 점입니다. 예수님은 일찍이 세례요한에 의하여 ‘성령으로 세례주시는 분’으로 예언되었습니다.

요 1:33= “···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

성령세례에 관한 한 우리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회개하고 믿음을 새롭게 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한다 하더라도, 그것들이 참으로 귀한 것이지만, 성령의 부으심은 우리의 하기에 따라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그 무엇이 아닙니다.  

성령세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입니다. 오직 주님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성령세례와 부흥(revival)과의 차이는 쉽게 말한다면 숫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흥은 동시에 많은 사람에게 성령의 부으심이 있을 때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내세울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에게 겸손히 구할 뿐입니다.

성령세례의 또 다른 특징은 이것이 성도의 분명한 경험이라는 사실입니다. 자신에게도, 그리고 주위 사람에게도 분명히 보여지는 확실하고도 잊을 수 없는 체험으로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마다 그 정도나 방법은 다를 지라도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도록 분명하게 주어지는 경험입니다.  

이 경험은 최고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나타나며, 이것은 이땅에서 천국을 맛보는 신비한 경험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8절).

구약의 선지자들도 성령 충만의 놀라운 경험을 하였으나, 이것은 제한적인 몇몇 사람에게 한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사 시작된 성령세례는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에 대한 성경의 증언을 보십시오. 

행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행 8:14-17=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D.L. Moody는 구두 수선공이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영적 고갈을 느끼고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New York의 Wall Street에서 성령 충만의 경험을 하게 되었고,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주님의 손 안에 거하기를 간구하였고, 그날부터 너무나 다른 전도자 무디로 변하였습니다. 성령 세례는 이처럼 분명한 경험으로 나타납니다. 

행 10:44-46=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갈 3:2-5=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성도 여러분! 이처럼 성령세례는 예외적이요 직접적입니다. 이것은 마치 물을 붓듯이 우리 영혼위에 부어지는 현상입니다. 이슬에 젖는 것과 소나기에 젖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 같이 성령세례는 은혜의 세계에서 현저한 차이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주님의 선물입니다. 

여러분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2. 성령세례의 내적 증거

성령세례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능력있게 전파하는 데 있습니다. 어떻게 능력있는 증인이 될 수 있습니까? 이를 위하여 주님은 우리에게 내적 증거들을 주십니다.

성령세례의 내적 증거는 무엇입니까? 하나씩 생각하며 우리 자신을 점검해봅시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1)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깊은 인식을 갖게 된다 

성령의 부으심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하여 깊은 깨달음을 갖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마음으로 믿는 것을 실제적으로 느끼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차원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차원으로 나아갑니다.

여러분은 골방 기도 중에나 예배 모임 중에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본 적이 없습니까? 여러분은 어느 날 어떤 사건을 계기로 주위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것을 깨달아본 적이 없습니까?  

찬송가 79장을 지은 C. G. Boberg 목사님은 스웨덴의 어느 시골에서 한낮에 내리치는 뇌성과 번개와 비바람, 그리고 활짝 갠 하늘, 그리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자연 속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을 영의 눈으로 목격하였습니다. 그는 그 경험으로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습니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숲 속이나 험한 산 골짝에서 지저귀는 저 새소리들과 
고요하게 흐르는 시냇물은 주님의 솜씨 노래하도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그리하면 온 땅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압도된다

성령의 부으심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앞에 겸손히 부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불타는 떨기나무를 향하여 다가가다가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그 앞에서 경외의 마음으로 압도되었습니다.

출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

그뿐 아닙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두려움으로 가득하여 부르짖었습니다. 

사 6:5=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신약의 사도 요한은 밧모라 하는 섬에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뵙고 엎드려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계 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주후 1740년 11월 5일, 영국의 George Whitefield의 기도 집회 중에 성령의 강력한 부으심이 있었습니다. 5,6분 쯤 지났을 때 회중의 한 사람이 크게 부르짖었습니다. “주님이 임하셨습니다!” (He is come!) 

사람들은 그날 밤이 맞도록 찬송과 기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후일 휫필드는 간증하기를, 그날은 잊을 수 없는 밤이었고,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자신의 무가치함을 절실히 깨달은 밤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령세례를 받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 경외의 마음으로 압도됩니다. 


3)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확신을 갖게 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고는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요 3:16)  

또한 우리는 형제를 사랑하는 자신을 보면서 자기 속에 생명 있는 줄을 압니다. 요한일서 3:14에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 위에 성령의 부으심을 통해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롬 8:16-17=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4)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해진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우리의 마음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해집니다. 우리는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충분한 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행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성령 충만한 예루살렘 교인들은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또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살전 1:4-6=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롬 5:1-5=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마음에 부은 바 되었다고 했습니다. 본문 8절을 다시 봅시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 

초대교회 성도들은 성령 충만하여 시련 속에서도 말할 수 없는 즐거움(joy unspeakable)으로 기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의 관심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교회의 건물이나 조직, 또는 사업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충만한 교회 성도들의 모습에 집중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쁨과 즐거움의 공동체를 이룰 때, 세상은 자기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진정한 행복의 원천을 우리 교회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5)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이것은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바 된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 사랑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영광스럽게 하고자 합니다.
이 사랑으로 하나님의 일을 더욱 크게 하고자 합니다.
이 사랑으로 우리는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크게 나타내고자 합니다.


6) 하나님의 진리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

성령은 진리의 영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할 때 우리의 눈이 열리고 성경 진리를 과거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크게 깨닫게 됩니다.

12세기의 석학 Thomas Aquinas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을 저술한 당대 가톨릭 최대의 학자입니다. 그는 오늘날 우리의 개혁주의 신학과는 다르게 헬라 철학을 신학에 도입하여 이성의 방법으로 신학 체계를 세운 사람입니다. 그의 하나님 존재 증명의 5대 증거는 유명합니다.  

아퀴나스는 죽기 직전에야 비로소 성령의 부으심을 받았고, 더 이상 이성 위주의 신학 논문을 쓸 수 없었습니다. 친구의 거듭된 독촉을 받고 아퀴나스는 말하였습니다: 

“나는 더 이상 쓸 수 없네.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신 것에 비하면 그런 것들은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네. 나는 이제 내 생애의 끝만을 기다리고 있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믿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까? 과연 그렇다면, 성령 세례의 내적 증거가 있습니까? 
그 증거는 하나님의 임재 의식, 하나님 경외의 마음,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 말할 수 없는 기쁨,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 진리의 깨달음 등입니다.

우리 중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와 같은 자신을 바라보며 자책하는 사람은 안 계십니까? 그들은 자신들이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부족한 것이 없다고 현 상태에 자족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합시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령 충만하기를 구합시다. 약속의 성령! 주님은 말세에 모든 믿는 자에게 얼마든지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것은 성령의 부으심입니다. 이 시간 우리 회중 가운데 가장 절실한 필요는 위로부터 내리시는 능력의 성령님이십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능력 있는 주의 백성!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주의 자녀! 우리 교회 교우들의 또다른 이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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