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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서기관들은 예수님께 꾸중 들었나 (막 12:3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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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서기관들은 예수님께 꾸중 들었나 (막 12:38-40) 

  
이단 신천지는 서기관들이, 오늘 목사에 해당되는데, 예수님께 꾸중 들었기에, 목사의 말을 들으면 안 된다. 지옥에 간다고 한다고 한다. 정말 목사의 말을 들으면, 지옥에 가는가? 서기관들은 예수님께 왜 꾸중을 들었는가?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만 여겼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성만 보았지, 신성을 보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대한 인물로만 여겼지,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성경을 들어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밝혔다. (37)을 보면, 다윗은 성령님께 감동되어,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라고 불렀다. 
이는 (시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는 말씀을 인용한 말씀이다. 예수님은 다윗이, 그리스도를 자기의 주라고 부른 사실을, 성경을 들어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밝혔다. 

이처럼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로서, 자신이 바로 하나님임을 밝혔다. 그렇게 함으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자신을 믿어, 구원받기를 바랐다. 그러나 서기관들의 마음은, 길 가와 같았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기관들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신성모독 하는 자로 여겼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생각으로 불타올랐다. 그 동안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고, 계략을 행했다. 그러나 모두 실패로 돌아가자, 그들은 다른 계략을 세웠다. 가룟 유다를 돈으로 매수하려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고, 3일 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는데, 그 후에는 사람들이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했는가? 어쩔 수 없이,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가?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인도할 뿐이다. 
성경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께 올 수 없다(요14:6)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예수님을 배척하는, 서기관들의 가르침을 받아서, 구원에 이를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은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사람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누구의 가르침을 받아야만 하는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지금도 우리를 미혹하는, 거짓 선생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거짓된 가르침에 흔들리지 말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바른 교훈에 굳게 서기 바란다. 

1. 서기관들을 삼가라(38-39).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예수님의 가르침은, 경고의 말씀으로 시작한다. 
‘…서기관들을 삼가라.’ 우리말 성경과는 달리 헬라어 원어성경은 ‘서기관들을 삼가라.’는 경고가, 예수님의 말씀에서, 맨 앞에 위치한다. ‘삼가다’는 경계하면서 보라는 뜻이다. 그 당시 서기관들은, 율법을 손으로 베끼는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율법을 많이 알게 됐다. 

자연히 그들은 사람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율법으로 판결해주기도 했다. 따라서 당시의 서기관들은, 모든 백성의 존경을 받으며, 영적인 지도자 역할을 했다. 그들이 가진 율법에 대한, 지식 때문이었다. 
그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율법을 주었다. 모세는 자기가 받은 그 율법을, 여호수아에게 주고, 여호수아는 그것을 장로들에게 주었고, 장로들은 선지자들에게 전해주었다. 선지자들은 그들이 받은 율법을, 서기관들에게 전해주었다. 

이렇듯 서기관들은, 율법을 전수 받은 사람들인 것처럼 행세했다. 따라서 그들은 모든 백성에게,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강요했다. 만일 그들의 가르침을 어기면, 성경을 범하는 것 이상으로, 큰 벌을 받을 것처럼, 백성들에게 위협했다. 이때 예수님은,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경고했다. 
아예 서기관들을, 주의해서 보고,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마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경고했다. 

서기관들은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왜 그런가? 그들은 예수님을 몰랐다. (요일2: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고 했다. 
예수님을 시인하는 자에게만, 하나님이 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부인하며, 백성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 그러니 그들은 천국 백성이 아니었고, 남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사람들 앞에서 천국 문을 닫는 자들이었다. 

더 나아가 (마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했다. 어떤 종교든지, 새로 믿는 자들이, 먼저 믿은 자들보다, 배나 더 열심을 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기관들은, 너무도 위험한 존재였다. 그래서 예수님은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경고했다. 그러면 오늘날의 서기관들은 누구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스르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는 자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이런 자들이 많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런 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서로 간에 어떤 타협점을 찾아보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런 자들을 삼가라고 경고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단들을 경계해야만 한다. 이 시대의 모든 서기관들을, 삼가야 마땅하다. 신천지는 서기관의 이야기를 교묘하게 바꾼다. 
예수님 초림 때 구약을 이룰 때는, 육적 이스라엘이 믿지 않고,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핍박하였고, 오늘날 예수님 재림 때, 신약을 이룰 때는 영적 이스라엘이 믿지 않고, 예수님이 보내신 사자(약속의 목자)와, 그 소속 사람들을 핍박했다고 한다. 이 내용은 신앙촌과 통일교도, JMS도 똑같이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행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성경은 다른 목자가 없다. 오직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만이, 진정한 목자가 되신다. 예수님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다른 목자는 없다. 
(계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어린 양이 목자가 되시는데, 이만희는 자신이 목자라고 살짝 바꿨다. 성경 어디에도, 이만희가 목자라는 내용과, 암시도 없다. 

2. 서기관들은 외식했다. 

자연히 서기관들에는, 경건의 능력은 없었고, 경건의 모양만 있을 뿐이었다. 그 결과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외식하며, 경건의 모양만 보여줄 뿐이었다. 예수님이 서기관들의 외식을, 요약해서 밝혔다. 

(1) 서기관들은 긴 옷을 입고 다녔다. 요즘말로, 가운 곧 성의를 입고 돌아다녔다(38上).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서기관들은 거룩하게 보이는 긴 옷을 입고 다녔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었다. 
(민15:38-39)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대대로 그들의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라,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에게, 옷단 귀에, 술을 만들도록 했다. 이는 그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계명을 기억하고, 준행하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그 목적이 달랐다. 사람에게 보이고자 함이었다. 경건의 모양을,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려 했다. 이처럼 그들은 외식했다. 

(2) 서기관들은 시장에서, 문안 받기를 원했다(38下).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시장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서기관들은 긴 옷을 입고, 옷 술을 길게 해서, 일부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으로, 문안 받으러 갔다. 
서기관들은 시장에서 문안 받을 때, 여러 가지로 칭함을 받았다(마23:7-10). 많은 것을 아는 랍비, 선생, 아버지라 칭함 받았다. 율법이 그들에게서, 나온다는 뜻이다. 지도자라 칭함을 받았다. 지도자이기에 문제가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이 입고 있는 복장으로,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려고 들었다. 

(3) 서기관들은 회당의, 높은 자리를 원했다(39).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회당의 앞쪽에는, 강대상이 있었다. 강대상이 있는 곳은 회중석보다는, 다소 높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강대상 뒤편에는, 회중과 서로 마주보도록 하는, 의자가 놓여 있었다. 서기관들은 회당에 들어가면, 으레 강대상 뒤편의 의자에 앉으려고 했다. 그래야 회당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회당 높은 자리에 앉아서, 자신들을 과시하며, 드러내기를 좋아했다. 

(4) 서기관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켰다(40上).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삼킨다는 먹다보다, 더 강한단어다. 통째로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과부를 돌아보라고 했는데, 오히려 과부들의 가산들을 꿀꺽 삼켰다. 
바리새인들 속에는 탐욕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서기관은 대부분, 바리새인이었는데,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했다. 돈을 좋아하여, 그들 속에는 탐욕이 가득했다. 이들은 과부를 보호한다며, 야금야금 과부의 돈을 갈취했다. 

(5) 서기관들은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들이었다(40中).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부인하기에,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외식으로 길게 기도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였다. 
말씀드린 대로 서기관들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했다. 그들은 속으로, 과부의 가산을 삼키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겉으로는 과부를 위한다며, 과부 앞에서 길게 기도했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외식하는 모습인가? 

이렇듯 서기관들은, 긴 옷을 입고 다녔다. 시장에서 문안받기를 원했다. 회당의 높은 자리를 원했다. 과부의 가산을 삼켰다. 그러면서 그들은 외식으로, 길게 기도했다. 서기관들은 주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기에, 그들의 심령은 거듭나지를 못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경건의 능력이 있을 수가 없었다. 경건의 모양만 보이려고 했다. 예수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그때 우리 심령은 거듭나며, 우리는 경건의 능력을 받을 수 있다. 우리의 심령이 늘 예수님으로 충만해서, 우리에게 경건의 능력이 확실하게 나타나기를 바란다. 

3. 서기관들은 정죄됐다(40下).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서기관들에게는 경건의 모양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은, 그들을 기뻐하지도 않고, 칭찬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올바른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들을 이와 같이 정죄했다.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천국 문을 닫고, 남들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또 거짓된 가르침으로, 남들을 미혹하여, 자기들보다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했으니, 그들이 받는 판결은, 더 중할 수밖에 없었다. 

(요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하나님은 모든 심판을 예수님에게 맡겼다. (마23장)에는, 실제로 예수님은 서기관들을 심판한다.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마23장)에는 이런 표현이, 7번(13, 15, 16, 23, 25, 27, 29)이나 나온다. ‘화 있을진저!’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우아이’(Οὐαὶ)라는 단어다. 헬라어 ‘우아이’는 일종의 의성어다. ‘오호, 우’하며 우는 소리를 묘사했다. 마치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자들이, 신음하며 울부짖는 소리와도 같다. 
서기관들은 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자들이지만, 믿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다. 그들은 예수님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도 그렇게 하도록, 미혹했기에, 정죄를 받았다. 성경은 다른 구원자가 없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도 많은 종교가 있다. 저마다 진리를 추구하며, 선을 갈망한다. 특히 오늘날에는 종교다원주의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종교다원주의는 모든 종교는, 똑같이 구원이 있다고 여기는 주장이다. 오늘날 종교다원주의를 적극 지지하며, 옹호하는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WCC, 세계교회협의회다. 
WCC는 예수님 밖에서도, 구원이 있다고 본다. 그러기에 WCC는 모든 종교들과 대화하며, 함께 손잡고 가자고 한다. 그러나 (잠14:12)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WCC는 오늘의 서기관들과 같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들이 받는 판결은, 더욱 중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WCC는 삼가 해야 마땅하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경고했다. 서기관들에게 경건의 모양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되시는 예수님이, 그들에게는 없었다.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다니며, 시장에서 문안을 받았다. 그들은 회당의 높은 자리에 앉았다. 또한 길게 기도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외식에 불과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켰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자신들을 따르는 자들의 영혼을 삼켜서, 지옥으로 이끌었다. 

그러니 그들이 받는 판결, 곧 그들에게 임할 심판과 형벌은, 더욱 중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을 삼가라고 경고했다. 너무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사람들은, 누구의 가르침을 받아야 했는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곧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야 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서기관들에게 향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사도들에게로 옮겨 놓으셨다. 예수님은 이때 그의 제자들이, 앞으로 해야 할 사역을 위하여, 미리 길을 닦아놓으셨다. 예수님이 뜻하신 바는 그대로 이루어졌다. 오순절을 맞이하여 사도들은, 모두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 

그들의 첫 설교를 듣고서, 삼천 명에 이르는 많은 사람이, 예수님에게로 돌아왔다. (행2:41) “말을 받은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며칠 후에 (행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믿는 자의 수는, 남자만 오천이나 되었다. 다 합치면 이만 명 정도는, 족히 되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행5:28)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온 예루살렘에 가득했다. 예수님의 경고를 듣고서, 많은 사람들이 서기관들을 삼갔다. 그 대신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사도들의 바른 가르침을 받았다. 그 뒤로 사도들의 가르침은, 그대로 이어져서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져 내려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른 신앙과 바른 교훈을 물려주셨다. 우리에게 좋은 교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리고 우리도 계속해서, 우리의 후손에게 바른 신앙과, 바른 교훈을 물려주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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