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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아버지의 집 (요 2: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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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의 집 (요 2:13-22)

작금의 한국교회는 18세기에 유럽이 경험한 심각한 교회정체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럽교회는 전반적으로 일어나는 교회정체 내지는 후퇴 현상을 성경적으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퇴락의 위기가 지금까지 가중되고 있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대로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올라가셨던 예루살렘 성전은 세 번 지은 성전이었습니다. 

첫 번째 성전은 솔로몬에 의해서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은 B.C. 586년경에 바벨론 느부갓네살의 침략으로 파괴되었습니다(왕하 25:8-21). 

두 번째 성전은 B.C. 516년경 포로 기간이 끝난 후에 돌아온 스룹바벨에 의해서 재건된 성전이었습니다(스 6:15-18). 

세 번째 성전은 헤롯왕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의 재위 18년째 되던 해인 B.C. 19년에 시작해서 A.D. 63년 총독 알비누스 때 완성한 것입니다. 
성경에서 교회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두 번 사용하셨는데 두 번 다 마태복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마태복음 16장 18절에 『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마태복음 18장 17절에 『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직접 교회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언급하신 경우가 있는데 이것 역시 마태복음에 나옵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①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전파되고 
② 성례가 정당하게 집행되는 곳, 이른바 진정한 가시적 교회의 외적 표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의 성전 청결의 의도는 교회의 본상을 되찾는 것입니다. 당시에 저마다의 이데올로기가 편의주의와 영합하고 인간의 전통과 서로 다른 가치관에 의해 상실당한 교회의 본래를 되찾는 운동입니다. 
교회의 본상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Ⅰ. 참된 교회는 아버지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2장 16절에 『 내 아버지의 집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교회의 본래의 상像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의 주인입니다. 왜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상가商家로 만들었느냐고 호통 치는 하나님의 아들의 분노입니다. 

너희의 조상들이 그렇게 정성스럽게 드린 제물의 실상이 지금 여기 와있다, 너희 조상들이 드린 소의 실상인 내가 왔다, 양의 실상인 내가 왔다, 비둘기의 실상인 내가 왔다, 내가 온전한 제물이 되어서 피를 흘릴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인의 후손으로 발꿈치를 상하게 될 실체가 왔다(창 3:15), 아담과 하와의 수치를 영원히 가리워 주기 위해 가죽 옷을 입히려고 잡은 한 마리의 제물의 실체가 바로 나라는 말입니다(창 3:21).

아사셀 한 마리 어린양의 실물로 내가 왔다, 숱한 제물의 실물로 내가 왔다, 안식일의 주인이 주일을 가지고 왔다, 할례의 주인이 세례를 가지고 왔다, 낡은 계명(율법)을 버리고 새 계명(구원의 복음)을 가지고 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8장 56절에 『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고 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인간과 하나님을 잇는 유일한 중보자 이십니다(딤전 2:5; 히 8:6; 9:15). 

디모데전서 2장 5절에 『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8장 6절에 『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9장 15절에 『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보(인간과 주님사이) 역할을 하는 로만 카톨릭을 경계합니다. 마호멧을 경계합니다. 똑같이 불교를 경계합니다. 그 외 여타 이와 유사한 종교를 경계합니다.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집을 더 이상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눈이 멀고 귀가 멀고 마음이 닫힌 자들아, 이 땅의 주인이 이 땅에 왔는데 몰라보느냐는 말입니다(요 1:10; 마 8:20).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이 성전을 청결케 할 자격과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당시의 유일신 사상으로 박제되어 버린 유대인들에게 있을 수 없는 말입니다. 두렵고 멀리 계시고 거룩한 하나님을 사람이 아버지라고 했으니 저들의 주장대로라면 신성 모독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Ⅱ. 참된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17절에 『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성전의 본상을 찾는 것입니다. 교회는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교통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와 인격적으로 만나는 밀실입니다. 기도로 열린 하늘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성경)을 듣는 곳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이사야 56장 7절에 『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고 기록된 말씀의 인용 구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는 장사하는 집이 아니라 기도와 예배가 행해지는 경건의 장소라고 하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의 삶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사람들에 의해서 자신의 주장이나 목적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러 종류의 현대판 장사꾼들이 모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교회를 상대해서 장사하는 일에 대해 엄격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강도의 굴혈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7장 11절에 『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窟穴(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 기록된 말씀의 인용 구절입니다. 

예레미야는 성전이 악용되고 있기 때문에 성전의 멸망을 예언했습니다. 예수님도 기도하는 집이 강도의 굴혈이 되었다고 하시므로 모든 장사꾼들과 제사장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한 것입니다. 


Ⅲ.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한 예수 그리스도의 의도입니다. 

1) 성경 예언의 성취를 위함입니다.

본문 2장 17절에 『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69편 9절의 『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고 한 말씀의 성취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행위 자체가 자신이 그리스도란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로 하여금 성경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가 참 성전임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엄청난 예수의 행동 앞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주님은 『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요 2:19)고 했습니다. 

이것은 보이는 예루살렘의 외형적인 성전이 아닌 예수님 자신의 육체를 두고 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자신의 육체를 가리켜 한말입니다. 
영원한 성전, 거룩한 성전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본문 2장 22절에 『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도는 성경으로 돌아감에 있습니다. 그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3) 성전된 그리스도 자신과 성도들과의 관계를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1) 성경에 나타난 교회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에 대한 표현은 다양합니다. 성경에는 교회를 가리켜 

① 하나님의 밭과 집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9절에 『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 했습니다. 

②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 『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고 했습니다. 

③ 선한 목자의 양떼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에 『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라고 했습니다. 

④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29절에 『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9절에 『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라고 했습니다. 

⑤ 성령이 거하실 처소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2절에 『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고 했습니다. 

⑥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절에 『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4절에 『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 』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6절에 『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3)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8절에 『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8절에 『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에 『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고 했습니다. 

(4) 성령의 전으로서의 교회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절에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 했습니다. 

(5) 하나님의 동역자로서의 교회입니다. 

동역자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입니다.
고린도후서 6장 1절에 『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9절에 『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 했습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그리스도의 사신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권면하십니다. 
고린도후서 5장 20절에 『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국 교회가 어지러울 때 반드시 수반되는 현상은 말씀 전하는 일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해야 될 지도자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가랴 13장 7절에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고 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성도들은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닭과 계란을 가지고 어떤 것이 먼저이냐를 가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빚어지는 현상은 교회의 정체가 가속화되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 고린도 교회가 세속화 되어 교회 안에 분쟁으로 얼룩질 때 하나님은 영감 받은 바울을 통하여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습니다(고전 1:2).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든지 하나님의 교회요 택한 백성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이 세상에 그 어떤 일이 일어날지라도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언약하신 약속을 붙잡으십시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십시오(요 6:27).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고통과 아픔을 성경에서 그 치료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문제 해결 방법에 있어서 성경으로 해결한다고 해서 안심해서는 안됩니다. 성경해석의 원리와 신앙의 전통이 동질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이 집은 천국에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집을 관조觀照(지혜로서 사물의 실상을 비춰봄)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 했습니다. 

갈보리교회는 내 아버지의 집,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집, 곧 우리들의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집입니다. 
이 집에 있는 자들만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영생하는 우리의 집을 예비하러 가셨습니다(눅 16:9; 요 14:3; 고후 5:2). 우리가 영생하는 집은 천국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누구라도 올 수 있고 누구라도 환영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속담에 "사람이 올 수 없는 집은 천사도 못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속담에 "개가 사나우면 술이 쉰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가 섬기는 갈보리교회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음 놓고 들어 올 수 있는 무장애(無障碍) 교회로 만들어 봅시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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