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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삶의 창조적 용기 (마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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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창조적 용기 (마 5:1-12)

재미있는 전설이야기입니다.신이 사람에게 행복을 주실 때,바로 주시지 아니하고 천사에게 맡겨서 너희가 갔다주라고 했는데 그 천사들이 너무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좀 마음에 걸려서 질투가 생겨가지고 행복을 숨겨두기로 하고 저희들끼리 의논을 합니다.

한 천사가 "바다 깊은 곳에다 숨겨둘까?"하니 다른 천사가 말하기를,‘사람들은 재주가 많아서 그것을 다 찾아낼 것이야’라고 했고 "아주 높은 산중 꼭대기에다 갖다 감춰놓을까?" 하니 ‘사람들은 모험심이 많아서 거기까지 뒤져서 행복을 다 찾아낼 것이라’고 했고,어떤 천사는 ‘사람들은 자기 머리만 믿고,재주만 믿고 자랑하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가슴에다 두면 못 찾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자기 머리만 믿고 자랑하면서 가장 가까운 가슴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더라는 그런 이야기입니다.환경과 행복은 무관하다는 사실만 깨닫고 살아도 그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인데 아직도 우리는 환경 속에 행복이 있는 줄로 그렇게 믿고, 환경의 변화,보다 더 나은,보다 더 좋은 환경만 생각하고,몸부림치고 싸우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기 때문에,영영 행복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영국 일간지인‘런던 타임즈’가 ‘가장 행복한 사람’의 정의를 현상 모집하였는데 1위는 모래성을 막 완성한 아이이고 2위는 아기의 목욕을 다 시키고 난 어머니이고 3위는 세밀한 공예품 장을 다 짜고 나서 휘파람을 부는 목공이고 4위는 어려운 수술을 성공하고 막 한 생명을 구한 의사로 나왔습니다.상위권으로 입상한 정의에는 황제나 귀족,고위 관리,엄청난 부자나 유명 연예인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흔히 행복은 크고 좋은 일에서만 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행복이란 가장 보람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일을 완성하였을 때 찾아옵니다.

여러분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잘 생각해 보세요.아마 여러분도 가장 보람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일을 막 끝냈을 때 가장 행복을 느끼지 않았을까요?지금 비록 세상에 안 계셔도 부끄럽지 않은 이름의 아버지가 계셨던 자신,건너뛰는 끼니가 예사이고 푸성귀 거친 끼니,빈한한 생활이어도 따스한 가슴을 지니셨던 어머니가 계셨던 자신,누구나 알아들을 수 없는 이름이라도 떳떳이 밝힐 수 있는 이름,살아있는 동안 살아 있을 이름을 가진 나 자신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호화롭고 기름진 생활이 아닐지라도 때로는 고민과 갈등 속 아픔 있어도 그래도 웃을 수 있는 오늘을 가진 나 자신, 따스한 손길로 반겨주는 둥지의 별빛 같은 밤이 있고 웃음으로 안녕을 빌어주는 햇살같은 하루의 아침이 있는 나 자신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나라의 경제와 그 나라 국민의 행복도는 같은 것이 아니며 우리의 건강도 그렇습니다. 호적이 말하는 연령과 소위 종합 진단을 해서 건강 연령이라고 하는 연령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그래서 나이 육십이 넘은 사람도 사십 세가 있을 수 있고 삼십 세 된 사람도 벌써 육십 넘은 그렇게 허약한,벌써 다 늙어버린 그러한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인데 호적상 나이와 건강 연령하고는 같은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그 국가경제,정치적 안정,이런 것들과 그 국민이 가지는 행복지수와는 같은 것이 아닙니다.돈과 행복은 오히려 반비례하고 경제와 행복지수는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반비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행복이라는 것은 몇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하게 됩니다.하나는 환경적 행복인데 이것은 물질의 부라든가 혹은 권세를 누리는 것이라든가 내가 갖은 소유, 혹은 자연 여건,이 모든 것들이 다 환경적으로 오는 행복인데 그것은 그 자체가 행복일 뿐인 환경적 행복이 있고 또 하나는 존재적 행복으로 이것은 벌써 인간 자신이 가지고 누리고 있습니다.인간은 근본적으로 행복하도록 창조되어 있습니다.

셋째는 상태적인 행복으로 이것은 환경과 존재 사이에서 인간이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환경으로부터 혹은‘그 존재가 얼마만큼 행복을 알고 깨닫고 느끼고 누리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좋은 환경에서도 행복을 못 누리는 사람이 있고,또 어떻게 생각하면 처절한 환경 속에서도 남다른 행복을 자기만이 누리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그러면 이 존재적 행복이 극대화되어 나아갈 때,그는 항상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중세기 스콜라 철학자이면서 대표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행복을 주관적인 복과 객관적인 복 두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주관적인 복이라는 것은 인간 스스로 생각하고 이것이 복이라고 생각하고 복을 위해서 노력해서 잠깐 얻는 듯 하는 그런 것인데 돈을 벌어 돈에서 오는 행복을 좀 느끼고 공부해서 깨달아서 조금 느끼고,또 지휘와 권세를 누리면서 행복하다 하고 축하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것이 전부다 주관적 행복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가 생각하는 모든 수고가 결국은 허망하게 불행으로 끝나게 됩니다.이 주관적 행복과 다르게 객관적인 것이라는 것은 은총적으로 주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수고나 노력이나 생각과는 관계없이 위로부터 주시는 은총으로 주시는 그런 행복은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것인데 이 객관적 행복을 그 은혜로 받아들일 때,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는 만큼만 그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흔히 '산상수훈'이라고 하는 여덟 가지 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이 여덟가지 복이라고 하지만 3절부터 11절까지 원문대로 보면 매절마다 첫절이 '마카리오이'라고 하는 말로 시작이 됩니다.

그러니까 복된 자,마카리오스.복된 자,하고서 복된 자는 어떻다 하면서 설명해 나가는 것인데 그래도 이 번역상으로 조금 어려움이 있습니다.‘이런 사람은 복되다’가 아니고, ‘복된 사람은 이렇다’ 라고 설명을 합니다.이 '마카리오이'라고 하는 단어가 아홉 번 있습니다.

3절로부터 11절까지.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될 것은 복된 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존재의 문제입니다.

여기에 우리가 팔복이라고 말하고 예수님께서 설명한 복이라고 말하지만,이 복속에는 잘 사고 부자로 사는 이야기,출세하는 이야기,소유나 정치,경제 이런 이야기,가 아무리 보아도 없습니다.'복된 자는 이렇습니다'할 때 환경과는 관계가 없는 그것이 특징입니다.그러면 복된 자라는 것이 환경과 소유와 지위와 무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소중히 여겼던 율법적인 복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기복적인 복과도 관계없이 복을 설명해 나가고 있는데 이것은 가시적이거나 물질적이거나 업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어디까지나 내면적인 것,심령적인 것,마음의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그래서"복된 사람은 이런 마음이고 복된 사람의 생각은 이와 같고 복된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이렇게 계속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된 사람은 마음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사람이라고 말해 나갈 때에 계속 중점적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천국을 주시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위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온유한 자가 복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땅을 차지하는 권세를 주시기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의에 배부르도록 해 주실 것이며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고 복된 사람은 마음이 청결한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기 자신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는데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움 받게 될 것입니다.특별히 핍박받는 자가 복이 있는데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어느 날 미국 시카고의 큰 호텔에 한 노신사가 들어와서 카운터에 있는 아가씨에게 "이 호텔에 있는 방 중에 제일 값싼 방을 하나 제게 주시오."이렇게 말하니 그 말을 듣고 세상에 호텔에 들어와서 제일 싸구려 방을 달라는 사람은 없기에 쳐다보니까 이 사람이 세계적인 유명한 재벌 존 록펠러입니다. "어째서 싼 방을 달라고 것이나요?""제가 싼 방이 제일 좋으니까요."이 아가씨는 한 마디 더 했습니다. "당신의 아들은 이 호텔에 올 때마다 제일 좋은 방을 달라고 늘 그렇게 이야기,해서 제일 고급방에서 쉬고 가는데 그 아버지는 어째서 제일 싼 걸 원하십니까?"

그때에 이 록펠러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내 아들에게는 나 같은 부자 아버지가 있지만,내게는 그러한 아버지가 없거든요."부자 아버지를 둔 덕에 아들은 돈 쓰고 다니는 거죠?여러분, 하나님이 부자이시며 그분이 우리 아버지입니다.이것으로 만족 할 수 없겠습니까?

오늘 성경은 이걸 말씀하고 있어요.내가 너를 위로하고,너를 만나주고,너에게 천국을 약속해 주고,네게 모든 것을 더해 줄 것이다.복된 자니까.이제 그 복된 자로 살아 갈 수 없겠느냐?이렇게 복된 자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이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면서 내가 슬퍼하고 걱정하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배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사랑하는 자, 사랑을 받는 자는 절대로 슬퍼할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래서 말씀합니다.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그런 존재로 살아가고 있고, 그러므로 복되다고 말입니다.특별히 오늘 본문에 가장 강조되는 말은 천국이라는 말인데"천국이 그저 마음의 문이 아니겠냐,마음이 평안하면,"그런 천국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오늘 성경은 명확하게 말씀합니다."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핍박당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천국은 절대로 관념주의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설명될 문제가 아닙니다.하늘나라의 약속을 받고 오늘을 사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을 사는 그 복을 느끼며,그 복을 매일 같이 확증하며 살아갑니다.그 사는 생은 전혀 다릅니다.'하늘의 상이 큼이라'참된 복을 바라보며,참된 복된 자로서의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다.그에게는 원수가 없고 미운 사람도 없으며 오늘 낙심할 필요도 없고 좌절할 필요도 없으며 여기에 삶의 창조적 용기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박해하고 있을 때,그때 많은 사람이 순교했는데 순교한 사람 중에 마지막에 이런 시를 읊으면서,유시를 남기고 간 믿음의 선배가 있습니다.당신들이 나를 저주하면 할수록 나는 당신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고내게 침을 뱉으면 사랑의 숨결을 뿜어낼 것이며 구타하면 신음하는 소리로 사랑을 고백할 것이며 나를 찌르시면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절규할 것이며 나를 짐승의 먹이로 던지면 나는 사랑의 재물이 될 것이며 나를 불태우면 나는 사랑의 열기로 당신의 증오의 가슴을 녹일 것입니다.이것이 행복입니다.(서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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