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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희롱을 당하신 예수님 (막 15: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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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롱을 당하신 예수님 (막 15:16-20)

막15: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막15: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막15: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막15: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막15: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희롱을 당하신 광경을 담고 있습니다. 막14:65 말씀과 같이, 전날 밤 예수님은 이미 공회 의원들로부터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얼굴을 가리며 주먹으로 쳤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고 경멸적으로 말했습니다. “네가 진정 선지자라면, 너를 친 자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해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들의 희롱이 끝난 후에, 그들의 하인들도 예수님을 손바닥으로 치면서 희롱했습니다. 

또한 눅23:11에 기록된 말씀과 같이, 같은 전날 밤 예수님은 분봉 왕 헤롯과 그의 군인들로부터도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그런 후 이제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빌라도의 군인들로부터 또다시 심한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희롱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까지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막15:31 말씀과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 앞을 지나가던 자들도 또한 그 곳에 있던 공회 의원들도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아울러 눅23:36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은 군인들로부터 다시 한 번 더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부터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시고 난 후에도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할 때, 예수님이 당하신 신체적 고난을 먼저 우리의 머리에 떠올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예수님이 당하신 육체적 고난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자세하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고.” 이것이 전부입니다. 어떤 식으로 채찍질을 했으며, 정확하게 어디에 또한 어떻게 못을 박았는지 전연 설명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강조하는 바는 예수님이 당하신 육체적 고난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만 십자가에 못 박히셨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좌편과 우편에도 두 강도가 함께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또한 기록에 의하면,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땅에서만 대략 삼만 명 정도의 유대인들이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들 모두도 육체적으로는 예수님과 똑같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예수님이 당하신 육신의 고난은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만 특별하게 육체적으로 고난을 당하신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희롱을 당하시면서, 계속해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참으신 것은 독특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예수님이 희롱을 당하신 사실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며 강조하고 있습니다. 

히12:3 말씀입니다.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가까이 있는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럴지라도 피곤하여 낙심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모든 희롱을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합시다. 예수님을 본받아 잘 참아내며,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에 변함없이 충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뜰 안으로 끌려가셨습니다. 

막15: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마27:27 말씀과 같이, 이 때의 군인들은 총독의 군병들 곧 빌라도의 군인들을 가리킵니다. 당시 로마의 총독 빌라도는 유대 땅을 관할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총독들이 식민지에서 수행해야 했던 업무는 주로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식민지에 주둔하는 로마의 군인들을 지휘하는 일이었습니다. 둘째, 식민지 백성이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감독하는 일이었습니다. 셋째, 식민지 백성이 로마에 반하는 행위를 했을 때 그들을 재판하여 처벌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때 군인들은 그들의 지휘관이었던 빌라도의 명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빌라도의 명령에 따라, 그들은 예수님을 끌고 갔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끌고 간 곳은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이었습니다. 

마27:27 말씀을 보면,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단어를 관정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말하자면 총독 빌라도가 머무는 관정을 브라이도리온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본시 빌라도의 관정은 예루살렘에서 한 100km 정도 떨어진 지중해의 해변 도시 가이사랴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이 되면, 빌라도는 그의 군인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와서 한 동안 머물었습니다. 그러면 이 때 빌라도가 예루살렘에서 머무는 곳이 또한 그의 브라이도리온, 곧 그의 관정이 되었습니다. 

요18:28 말씀과 같이, 이 때 유대인들의 무리는 관정 밖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18:33 말씀과 같이, 빌라도는 관정 안에서 예수님을 심문했습니다. 그런 후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군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에 군인들은 예수님을 끌고서 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군인들은 예수님을 끌고서, 예수님이 심문을 당하시던 자리를 떠나 그 인근에 있는 뜰 안으로 이동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곳들은 모두 다 관정 안에 있었습니다. 

요19:1 말씀과 같이, 빌라도의 명에 의하여 군인들은 먼저 예수님을 채찍질했습니다. 그런 후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과 같이, 그들은 온 군대를 그 곳으로 모았습니다. 요19:2∼3 말씀과 같이, 예수님을 희롱하며 구경거리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신 후, 이리저리 많이도 끌려 다니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안나스에게로 끌려가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셨습니다. 새벽에 예수님은 또다시 공회 앞으로 끌려가셨습니다. 

잠시 후 공회 의원들은 예수님을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겨주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후에, 예수님을 분봉 왕 헤롯에게 보냈습니다. 분봉 왕 헤롯은 예수님을 희롱한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도로 보냈습니다. 

그러더니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처럼, 군인들은 예수님을 끌고 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후 요19:4 말씀과 같이, 빌라도는 예수님을 데리고 잠시 관정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 후 최종적으로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갔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쉴 새 없이 끌려 다니셨습니다. “이제 그만해라. 너희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느냐?” 그러면서 예수님은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부리셔서,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을 끌고 다니는 자들을 벌하실 수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와 같이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입을 다무신 채, 아무 저항도 하지 아니하시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셨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이미 예언된 그리스도의 모습이었습니다. 사53:7 말씀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말하자면 이 때 예수님은 사53:7 말씀을 응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예수님은 수치스럽게 끌려 다니셨지만, 계속해서 침묵하셨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한 대속의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기 바랍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상처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흔들림이 없이 맡은 일에 끝까지 충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군인들로부터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을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먼저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채찍질했습니다. 그 후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도로 입히고, 관정 안에 있는 온 군대를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다 함께 예수님을 희롱하며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막15: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마27:28 말씀처럼,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겼습니다. 채찍질을 당하신 후였기에, 예수님의 몸은 상처투성이였습니다. 군인들이 조심스럽게 행동했을 리는 만무합니다. 따라서 그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길 때, 예수님은 심한 고통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군인들은 예수님에게 홍포를 입혔습니다. 본시 홍포는 로마의 군인들이 군복에 걸치는 붉은 색의 외투였습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자신의 외투가 너무 낡아서 내버렸을 것입니다. 그것이 빛이 바래고 먼지가 묻어서 자색 빛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군인들이 예수님에게 자색 옷을 입혔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본래는 홍포였는데, 빛이 바래서 자색 옷이 된 것입니다. 아무튼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자색 옷을 입혔을 때, 예수님의 몸에 있는 상처들은 더 많이 찢어졌을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가시관을 엮어서 예수님의 머리에 씌웠습니다. 뜰 안에는 여러 곳에 가시덤불이 자생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군인들은 그것으로 가시관을 엮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가시관을 예수님의 머리에 짓누르듯이 씌웠을 것입니다. 

로마 군인들은 살인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피에 굶주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뜰 안에 모인 것은 예수님을 괴롭혀서, 자신들의 쾌락을 추구하려 함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엮은 가시관으로 사정없이 예수님의 머리를 짓눌렀을 것입니다. 

자연히 굵은 가시에 찔린 예수님의 얼굴에서는 피가 흘러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몸 아래로 내려가서, 채찍에 찢긴 상처에서 나오는 피와 뒤섞였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몸은 유혈이 낭자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때 군인들이 바라던 바는 예수님을 육체적으로 괴롭히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희롱하며 즐기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마27:29 말씀과 같이, 그들은 갈대를 꺾어 예수님의 오른손에 쥐어주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예수님을 왕처럼 꾸몄습니다. 왕복으로 자색 옷을 입혔고, 왕관으로 가시관을 씌웠고, 왕의 홀로 갈대를 오른손에 들렸습니다. 공회 의원들은 예수님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고 희롱하더니, 군인들은 예수님을 왕처럼 꾸미고 희롱했습니다. 

막15: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군인들은 예수님에게 경례했습니다. 이를 좀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예수님에게 경례하기를 시작하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군인들이 모두 다 한꺼번에 나아와서 경례하지 않고, 한 사람씩 차례대로 나아와서 예수님에게 경례했다는 뜻입니다. 

마27:29 말씀을 보면, 군인들이 예수님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경례의 동작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왕처럼 꾸몄습니다. 그런 후 이제 그들은 짐짓 왕 앞에 나온 듯이 무릎을 꿇으며 경례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만세를 불렀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당시 사람들은 가이사 앞에 나갈 때도, 가이사에게 경례하며 만세를 불렀습니다. “가이사여 평안할지어다.” 그것을 흉내 내며, 군인들은 예수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물론 이 때 그들은 예수님을 희롱하면서, 자신들의 유흥을 돋우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왕처럼 꾸민 것도, 또한 그들이 예수님에게 경례하며 만세를 부른 것도 다 예수님을 희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음 절을 보면, 그들의 본색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막15: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군인들은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쳤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오른손에 있는 갈대를 빼앗아 그것으로 예수님의 머리를 쳤습니다. “야 이 바보야! 네 까짓 것이 무슨 왕이란 말이냐?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먼.” 이러한 뜻이었습니다. 

이 때의 갈대는 우리가 생각하는 흐늘흐늘한 식물이 아니었습니다. 갈대로 만든 상자에 아기 모세를 담아 나일 강에 띄웠습니다. 또한 막15:36 말씀처럼,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갈대에 꿰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갈대는 단단한 대나무와 같아서, 화살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군인들이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칠 때, 가시가 살 속으로 파고들어 더 많은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남김없이 흘리셨습니다.  

또한 군인들은 예수님에게 침을 뱉었습니다. 전날 밤에는 공회 의원들이 예수님에게 침을 뱉더니, 이제는 군인들이 예수님에게 침을 뱉었습니다. 이는 극심한 경멸을 뜻하는 행위였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예수님을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던 것입니다. 

“머리를 치다.” “침을 뱉다.” 시제가 모두 미완료형입니다. 행위가 반복되었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마27:30 말씀처럼, 어떤 군인은 먼저 예수님에게 침을 뱉은 후 갈대로 쳤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 말씀처럼, 어떤 군인은 갈대로 친 후에 침을 뱉기도 했습니다. 

그런 후에 그들은 다시 한 번 무릎을 꿇고 절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가짜 왕처럼 여기면서, 온갖 방법으로 예수님을 희롱하며 괴롭혔습니다. 

막10:33∼34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이 모든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것임을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미리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공회 의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예수님을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방인들, 곧 로마의 군인들은 예수님을 능욕하고 침 뱉으며 채찍질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곧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삼 일 만에 살아나실 것도 아셨습니다. 

히12:2 말씀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모든 희롱을 참으셨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그러나 시2:4 말씀처럼,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그들을 비웃으실 것입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의 손에 갈대를 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계19:15 말씀처럼, 예수님은 철장 곧 철로 만든 지팡이로 그들을 다스리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속상한 일을 당하셨습니까? 그럴지라도 분풀이하거나 복수하지 맙시다. 예수님도 억울한 일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속상한 심정을 다 아십니다. 예수님처럼,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참으십시다. 참는 것이 결국은 이기는 것입니다. 

찬송가 323장의 가사처럼, 우리는 다 부름 받아 나선 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서, 멸시 천대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속상한 일을 당해도 예수님을 생각하며 잘 참고 이겨냅시다. 예수님 안에서 위로 받고, 참된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관정 밖으로 끌려 나가셨습니다. 

막15: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희롱을 다 한 후.” 그 동안 군인들은 관정 안에서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가시관을 씌웠으며, 갈대로 머리를 쳤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꾸미고 갖가지로 희롱했습니다. 예수님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엄청난 고통과 수모를 당하셨습니다. 

드디어 군인들의 희롱이 끝났습니다. 요19:4 말씀을 보면, 이 때 빌라도는 잠시 관정 밖으로 예수님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요19:5 말씀대로, 그는 가시관을 쓰시고 자색 옷을 입으신 예수님을 무리에게 보이면서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를 못했습니다. 또한 그는 아내로부터 예수님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말라는 전갈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다시 한 번 예수님을 놓아 주려고 시도했습니다. “보라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느냐?” 이런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무리는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요19:12 말씀입니다.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어쩔 수 없이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어야 했습니다. 아니면 가이사에게 좋지 않은 보고가 올라가서, 그의 자리가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이에 빌라도는 예수님을 관정 안으로 데리고 가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최종적으로 군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여기서 다시금 오늘 본문이 이어집니다.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군인들은 그들이 예수님에게 입혔던 자색 옷을 벗기고, 본래 예수님이 입으셨던 옷을 도로 입혔습니다. 그런 동안 예수님은 또다시 극심한 고통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이 끝맺음을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군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의 관정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이어서 그들은 예수님을 성 밖에 있는 골고다로 끌고 나갔습니다. 그 곳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이리저리 끌려 다니시며, 심한 고통을 겪으시고, 온갖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예수님은 단 한 차례도 입을 열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벧전2:21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본을 끼치사 그의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의 자취를 따라오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어떤 본을 끼치셨습니까? 

벧전2:22∼23 말씀을 읽어봅니다.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억울한 일을 당하셔서 속이 상하십니까? 그러할 때 예수님은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기를 바라십니까? 욕을 당하되 맞대어 욕하지 맙시다. 고난을 당해도 위협하지 맙시다. 복수하고야 말겠다며 이를 갈지 맙시다.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깁시다.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늘 깊이 생각합시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을 본받으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며, 성령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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