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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님을 체험하려는 그대에게 (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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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체험하려는 그대에게 (행 2:1-4)

우리 성도는 누가와 함께 하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개와 함께 있으면 뭘 해도 좋지 못한 소리를 듣습니다. 개와 달리기 시합을 할 때, 개보다 늦게 들어오면 개만도 못한 사람이 되고, 개와 같이 들어오면 개 같은 사람이 되고, 개보다 빨리 들어오면 개보다 독한 놈이 됩니다. 그리니 열심히 하고도 기분 나쁘게 됩니다.  (웃자고 하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주님과 함께 하면 다릅니다. 

주님보다 늦게 들어오는 사람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주님과 같이 들어오면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주님보다 빨리 들어오면,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은 누구와 함께 살고 계십니까? 바라기는 주님과 함께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더불어 성령께서 함께 하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님의 능력을 믿는 종교가 우리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복음을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더 크고 넓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으나 실존합니다. 우리 주변에 전파가 날라 다니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소리전파만 아니라 문자나 그림이 전파를 타고 날아다니는데 우리는 보지 못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카톡 문자를 보내면 1~2초 만에 아프리카에 있는 선교사님이 문자를 받아 봅니다. 그런데 안 보인다고 그런 것 없다고 하면 바보 취급당합니다. 

성령님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 성령님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일하고 계심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 그리고 각종의 은사와 표적을 보면 그의 실존과 능력을 믿을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님을 인간이 이해하도록 인간이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을 통하여 이해시켜 주시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우리에게 주신 본문 말씀은 성령님이 어떤 분이며, 어떤 사역을 하시고 계시는지를 소상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육을 입고 있는 우리 인간이 이해하도록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령님을 체험키를 원하시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시는 말씀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성령님을 여러분 삶속에서 체험하시고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1. 바람 같은 성령이십니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공기’와 ‘물’과 ‘불’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세 가지를 통해 성령을 설명해 줍니다. 

먼저 바람을 생각해보세요. 사람은 공기와 바람은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양을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람은 인간의 힘으로 통제하거나 방향을 수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바람은 그 결과로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 바람은 피조물이지만 성령님의 신비로운 사역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것입니다. 
특히 중생사역에 적합한 비유가 ‘바람’입니다. 

요3:7절 이하를 보세요. 예수님이 니고데모와 대화하신 장면입니다.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하시면서 성령의 사역 중에 하나가 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것인데 그 사역은 바람처럼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님의 활동은 보이지 않으나 구체적으로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중생하는 것은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키 어려운 신비로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께서 큰 능력을 가지고 주권적으로 강림하신다고 오늘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2절을 보세요.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님을 “급하고 강한 바람과 같다”고 표현합니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같다”고 했지 바람이 성령이 아닙니다. 

여기 “급하고 강한 바람”이라는 말은 강력한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성령님이 그처럼 사람 속 깊은 곳까지 들어오심을 의미합니다. 마치 태풍이나 토네이도처럼 막강한 힘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이해시켜주는 표현입니다. 

그런 반면 또한 성령님은 조용하면서도 힘찬 영향력을 갖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때로는 봄 바람처럼 부드럽게 임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롬8:26절에 보면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조용히 도우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밖에도 성령님은 바람처럼 1)어느 곳에나 존재하시고 2)죄로 오염된 인간을 정화시키며 3)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시며 4)생명의 생기를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밥을 안 먹으면 약 50일을 버틴답니다. 물을 안마시면 20일 전도 버틴다 합니다. 그러나 공기를 마시지 않고는 단 5분도 못삽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은 창조시 하나님이 코에 불어넣어주신 생기로 생명이 되었기에 성령은 우리에게 불가분리의 관계인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고, 죽은 자도 살리는 부활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또한 그러기에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우리도 모르는 신비한 새 힘이 솟아나는 체험을 하게 하는 분입니다. 


2. 물 같은 성령이십니다. 

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작품 중에 최고의 작품입니다. 그래서 물은 성령님의 다양한 사역을 가장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피조물입니다. 

물은 화학기호로 H2O입니다. 수소 두개 산소 한 개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수소나 산소, 불리해 놓으면 불이 붙으면 무서운 힘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합쳐지면 불을 끄는데 사용되는 도구가 됩니다. 참 신기하잖아요? 

또 이 물은 형태가 없습니다. 0도 이하가 되면 고체가 되고 100도 이상이 되면 기체로 변화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표현하기 적합합니다. 

생각해보세요. 비가 어떻게 하늘에서 내리지요? 수증기로 증발되어 하늘을 떠돌다가 쏟아집니다. 그 量(양)을 생각해 보세요. 그 엄청난 양이 하늘을 날라 다닙니다. 참 하나님이 창조 세계는 오묘하고 신묘막측합니다. 

과학자들은 지구를 ‘물의 별’이라고 합니다. 우주비행사들이 지구 밖으로 나가 지구를 보면 지구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합니다. 정말 푸르고 아름답답니다. 

왜 지구가 푸르냐면 지구는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의 대륙과 섬을 모두 합쳐도 바다 면적의 절반 밖에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구는 ‘물 별’입니다. 지구는 물로 온도를 조절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물로 온도를 유지합니다. 왜 운동을 하면 땀이 나죠?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물 덩어리입니다. 사람 몸속에는 끊임없이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사람피의 90%가 물이고 7~8%는 단백질입니다. 그러니 사람 몸에서 물이 20%만 빠져도 생명이 위독한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님을 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물과 같이 성령님이 없으면 우리가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성령님 없는 우리의 삶은 한시도 살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님의 사역도 물이 하는 역할로 설명을 합니다. 

성경에 성령을 표현하는 물은 어떤 종류가 있나요?

1) 먹는 물(water)입니다. 

이 물은 우리가 마시는 물을 말하는데, 이 물은 씻음과 깨끗케 하는 일을 하고 그리고 우리에게 재충전을 하게 합니다. 성령님도 물과 같이 우리 죄를 씻고 우리를 깨끗게 하십니다. 그리고 인간 영혼의 깊은 목마름과 갈증을 해결해 주십니다. 

요4:14절을 보세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내가 주는 물은 성령이십니다. 그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성령의 물은 사람을 정결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겔36:25-27절을 보세요.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5절의 맑은 물로 뿌려서 우리를 정결케 하십니다. 우리의 타락한 신앙을 정결하게 합니다. 그 물을 26절에서는 “새영”이라 했고 27절에서는 “내영”이라 했습니다. 

이 밖에도 물은 생명을 주고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기쁨을 주는 존재로 표현하셨습니다. 우리 성령님이 그와 같은 분이란 말입니다. 


2) 강물(rivers)입니다. 

성경은 “성령님은 곧 생수의 강으로 표현하셨습니다. 
요7:37-39절을 보세요.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주님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 했습니다. 이것은 그를 믿는자가 받을 성령을 가르켜 하신 말씀이라 하셨습니다. 

특이한 것은 성경에서 ‘강’을 말할 때는 언제나 複數(복수)를 씁니다. 영어로도 "Rivers" 단수가 아닌 복수입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다양한 사역을 의미합니다. 즉 성령님의 사역의 특징은 다양성입니다. 어느 한 가지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하게 여러 가지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강물은 식수로도 쓰지만 농업용수로도 쓰이고 짐승들도 먹고, 다양하게 쓰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마른 땅에 흐르는 시내와 강으로 자주 표현됩니다. 그래서 주변의 나무에 입사귀가 마르지 않음같이 우리에게 늘 생명력이 있게 합니다. 그러다가 성령의 강력한 은혜가 임하면 홍수처럼 범람하여 온 대지를 적시기도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생수의 강이 체험되시길 축원합니다. 


3) 비(rain)입니다. 

시편72:6절에 보면“그는 벤 풀 위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내리리니”하셨습니다. 성령의 비를 내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즘 장마철입니다. 유난히 긴 장마 때문에 힘들어하고 짜증내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농사를 짓는 분들에게는 이 비가 농작물을 키워주는 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비 때문에 여러분이 먹는 곡식이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비가 없으면 기근과 흉년이 찾아옵니다. 

언제가 장마철에 비가 내리지 않아 샘을 파고 강물을 끌어다 대고 난리를 피운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난리를 쳐도 한번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 비하면 인간의 노력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한국에 와서 일하는 외국의 근로자 중에는 비가 내리면 그냥 비를 맞는분이 있답니다. 비를 맞는 것이 너무 좋답니다. 그러면서 하는말, 한국은 복받은 나라라는 것입니다. 비가 자주 오지 않습니까? 여름에만 오지 않고 겨울에도, 봄, 가을에도 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북쪽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건기 때는 6~7개월 비 한방울 안 내린답니다. 그래서 살기가 어렵답니다. 

성령님은 사람에게 비처럼 풍성하게 내려서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이 성령의 비를 맞으면 아무리 강퍅한 사울도 바울로 변화시켜 놓은 능력이 있습니다. 이 성령의 비가 임하면 깡패 김익두가 복음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비를 체험하여 변하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샘물(springs)입니다. 

성령은 또 다른 표현이 샘물입니다. 

요4: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성령을 마신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왜냐고요? 그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샘물은 땅속에서 계속 솟아오릅니다. 

퍼내도, 퍼내도 계속 나옵니다. 그처럼 우리 성령님은 끊이지 않는 공급자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에게 새 힘을 공급하시는 창조자이십니다. 


5) 이슬(dew)입니다. 

성령은 이슬처럼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14:5절에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령님의 사역이 비밀스럽고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우리 삶속에 임하여 일하시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침의 새벽이슬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이슬이 그렇게 중요한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에서 이슬은 많은 생명체에 생수를 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이 야곱을 축복할 때 창27:28절에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며 축복했습니다. 

여기 하늘의 이슬이 뭔가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성령의 임재이십니다. 


3. 불과 같은 성령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불은 여러 가지 방면에서 쓰입니다. 그러나 가장 일관된 상징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와 성품을 뜻합니다. 

신4:24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하셨고 

히12:29절에서도 “우리 하나님은 소명하는 불이심이라”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처음 만날 때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만났습니다. 

성경에서는 여러곳에서 성령님을 불로 설명하였습니다. 특히 오늘 우리가 봉독한 본문 말씀은 “불의 혀처럼 갈라진다”고 했습니다. 왜 성령을 불이라고 하셨을까요? 

불은 뜨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은 성도도 뜨겁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갖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불은 정결케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러운 것과 오염된 것을 불로 태워 깨끗하게 하듯이 우리 죄를 깨끗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불은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받은 자는 빛의 자녀입니다. 

살전5:5절에는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했습니다. 

왜 우리가 빛의 아들이고 낮의 아들인가요? 
성령님이 우리 속에 빛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곳에는 어두움이 사라지고 죄악이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불은 능력을 상징합니다. 막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몇 년전에 제가 경주에서 있었던 교단 수련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때 목사님들과 포항 제철에 견학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펄펄 끓는 쇳물이 용광로에서 쏟아져 흘러 나와 강판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견학했습니다. 

그렇게 단단한 쇠도 강력한 불 앞에서는 물처럼 녹아 흘렀습니다. 불은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도 강력한 힘을 갖고 계신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사는 것도 ‘불의 힘’때문입니다. 

전기도 원자력 발전소나 화력발전소에서 불을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 전기로 에어컨도 돌리고 그것은 물도 끓여 먹고 난방도 하고 조명도 하고 이 강단에 마이크와 스피커도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처럼 성령은 우리에게 불과 같이 임하여 우리를 움직이고 있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성령님의 능력을 충만하게 체험하려면 어찌해야 하나요? 오늘 본문에 제자들은 무엇을 성령 충만을 받기 전에 무엇을 했나요?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 
성령을 체험하려면 

1.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1절을 보세요.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예수님의 제자들만 아닙니다. 행1:13절 이하를 보세요. 

13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자리에 몇 명이 있었나요? 120명입니다. 그 자리에 누가 있었나요? 

예수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 그리고 모친 마리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사람은 예수님의 동생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시자 비로서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모였고 주님을 따르던 여인들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성령님은 모인 무리 속에서 임재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모여야 합니다. 모이기를 힘써야 하나님의 성령을 체험하게 됩니다. 모이지 않고는 안 됩니다. 힘들어도 모이세요. 바쁘더라도 모이는 일을 힘쓸 때 성령님은 강하게 임재하시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체험하려면 


2. 기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행1:14절 하반 절을 보세요.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그렇습니다. 주님이 약속하신대로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모여서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렀더니 오순절에 성령이 불같이, 바람같이 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모이질 않으니 맥이 빠져서 기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요. 

따라서 하세요.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성령 충만을 체험하려면 


3.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기에 주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행1:8절을 아시지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내 증인이 되리라” 약속입니다. 되어라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 약속을 믿었기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의 능력을 체함하고 변화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오순절 성령 강림시 임한 성령이 지금도 우리 속에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다만 충만하지 못하기에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바람 같은 성령, 물 같은 성령으로 그리고 불같은 성령님이 여러분과 함께 함을 믿고 성령 충만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속에 늘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성령님은 저 멀리 하늘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이미 여러분 속에 계십니다. 

그 성령님이 여러분을 전인격적으로 휘잡아 충만하여 이끌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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