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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의 보좌앞에 (히 4: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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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보좌앞에 (히 4:14-16)


종교개혁이 일어나자 영국의 메리((Mary Tudor) 여왕은 개신교도들을 잔학하고 혹독한 방법으로 핍박하며 처형을 하였습니다. 1620년 종교의 자유를 찾아 청교도들은 죽을 각오를 하고 메이플라워라는 180톤짜리 작은 배에 102명을 태운 채 신천지를 찾아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서로 붙잡고 눈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거센 풍랑과 싸우는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76일 만인 1620년 11월20일 미국 동부해안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해안을 바라보며 그들은 선상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을 협약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퓨리탄 51명의 명의로 된  ‘Promouth Statement’ 곧 ‘선상협약서’ 입니다. 

내용은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장래의 생활목적을 설정한다. 둘째, 우리는 나라를 세울 때 국민들의 계약에 의한 민주정치를 구현한다.” 늦가을에 도착한 그들은 이어 닥친 모질고 혹독한 추위와 싸워야 했으며 수시로 원주민들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교회를 먼저 지었습니다. 양식의 부족으로 급기야 옥수수 낱알 5개로 하루를 연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낙심하지 아니하고 서로 부둥켜안고 격려하며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풍토병과 원주민들의 습격으로 죽어갈 때마다 형제의 시신을 묻으며 “형제여! 먼저 가라. 하나님 나라에서 만날 때 우리가 어떻게 어려움을 이기고 성공한 것을 말해 주리라” 하면서 눈물로 극복하며 정착하였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라를 건국한 청교도의 전통을 이어 받아 후손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계속 나아감으로 세계 제일가는 국가가 되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여기의 ‘담대히’는 원어로 ‘파레이시아’ 인데 자유라는 뜻입니다. 과거에는 지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었으나 이제는 누구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는 짐승의 피와 대제사장의 중보를 통해서만 하나님이 제한적으로 만나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를 힘입어 누구나 자유롭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 가시기 바랍니다. 

‘나아간다’ 라는 동사의 시제는 현재입니다. 계속적인 행동을 뜻합니다. 즉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찾으며 하나님과 교제를 하라는 것입니다. 은혜의 보좌는 성전 혹은 교회를 뜻합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교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은혜가 임하는 중요한 현장입니다.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찬양으로 은혜의 보좌로 나오기 바랍니다. 말씀을 들음으로 은혜의 보좌로 나오기 바랍니다. 순종으로 은혜의 보좌로 나오기 바랍니다. 기도로 은혜의 보좌로 나오기 바랍니다.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도리를 잡고자

한 어린이가 동생과 함께 기도를 받으려고 교회에 나왔습니다. 아이는 축구공에 눈을 맞아 오른쪽 눈은 이미 실명했고, 그 여파로 왼쪽 눈의 시력까지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안수기도 받기를 소원했기에 목사님은 몇 번이나 간절하게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해도 아이의 눈은 더 악화되어 갔습니다. 목사님은 아이에게 “하나님께서 너에게 주신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었습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세상을 위하여 큰일을 하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시각장애인 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를 거쳐 미국 피츠버그대학으로 유학을 하여 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차관보로 일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바로 강영우(姜永祐) 박사입니다. 그는 볼 수 있는 사람보다 더 위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믿는 도리를 붙잡고 담대하게 나아간 결과입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예수 믿는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믿음의 도리를 굳게 붙잡는 사람을 하나님이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본문 14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도리는 예수께서 대제사장이 되신다는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믿고 굳게 잡을 때 비로소 예수를 통해 오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기의 ‘굳게 잡으라’ 는 원어는 ‘크라테오’입니다. 소중한 것을 손에 쥐었을 때 힘을 더 강하게 주며 꽉 잡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복음의 진리에 굳게 설 것을 명하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고, 경제적 손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핍박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일임을 기억하고 더욱 담대히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다 아십니다.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시기 바랍니다. 결코 절망이 없게 하실 것입니다. 절대로 거꾸러뜨림을 당하지 않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긍휼을 받고자

2차 세계 대전 당시 폴란드에 조종사 로맨 털스키(Roman Tulsky)가 있었습니다. 그가 프랑스에서 비행학교를 졸업하고 돌아가려고 할 즈음 전쟁이 일어나 조국을 위해 싸우기로 하고 비행기를 몰고 돌아가다가 이상이 생겨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착륙하게 되었습니다. 비행기를 수리를 마치고 후 출발하려 할 때 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나치에 쫓기고 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털스키는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것을 알았기에 그를 비행기에 태우고 폴란드로 갔습니다. 그 후 털스키는 나치의 세력이 폴란드를 점령하고 프랑스로 영국으로 확산될 때 폴란드 조종사로 독일과 싸우며 공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포격을 맞고 추락을 하게 됩니다. 낙하산으로 탈출은 하였으나 뇌를 크게 다쳤습니다. 

얼마 후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했을 때 의사가 그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저를 아시겠습니까? 오랫동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비엔나에서 받았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했는데 오늘 당신을 수술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뇌신경 전문의사입니다.” 자세히 보니 그가 구해 주었던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신경외과 의사로 스코틀랜드 육군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털스키를 의료진이 포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찾아와 수술을 하고 그의 목숨을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긍휼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하나님의 긍휼에서 비롯됩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예수가 주시라는 믿음을 보여 드릴 때 긍휼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는 자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자가 아닙니다. 물질을 의지하거나 명철이나 경험을 의지하는 자도 아닙니다. 연약한 모습 그대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와 주를 고백할 때 긍휼히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힘든 일 앞에 결코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로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리며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오는 일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긍휼로 도와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은혜를 얻고자

1952년 한국전쟁이 끝난 12월 어느 날, 밥 피어스(Bob Pierce)와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목사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피어스가 빌리 그레이엄에게 “한국교회는 새벽마다 모여 기도를 드린다”라고 말하자, 빌리 그레이엄은 “그것은 모든 것이 갖춰진 교회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천막치고 예배하는 개척교회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피어스는 “내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천막교회를 찾아가 보자”고 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두 사람은 추운 새벽길을 걸어 천막교회를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많은 사람들이 기둥과 천막만 서 있는 꽁꽁 언 땅 바닥위에 장작개비를 깔고 앉아 새벽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새벽 모인 사람은 189명이었습니다. 새벽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 기도를 통해 한국교회가 부흥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여기의 ‘나아갈 것이니라’ 의 원어 ‘프로스에르코마이’ 의 뜻은 ‘가까이 다가가다’ 입니다. 상대를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며, 만질 수도 있을 정도로 가깝고 친밀하게 접근함을 의미합니다. 즉 은혜의 보좌를 실존적으로 체험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은혜의 근원입니다.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은 기도를 의미합니다. 은혜 받는 비결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보다 중요한 방법이 없습니다. 친히 고난을 받으심으로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어려움을 아십니다. 그러기에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입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는 보좌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늦게 와서 설교만 듣고 축도할 때 빠져나가는 교인이 있었습니다. 헌금할 필요도 없고, 다른 예배나 모임에 참석할 필요가 없었던 그는 최소한의 투자로 최고의 유익을 구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예배는 드리니 천국에 갈 수 있을 것이고, 물질이나 시간도 손해 보지 않으니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병에 걸려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차도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께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주일날 빠짐없이 예배에 참석하였는데 왜 능력을 나타내시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성전에 와서 얼굴만 살짝 비치고 가지 않았느냐? 그래서 나도 병실에 가서 살짝 얼굴만 비치고 나온 것뿐이란다. 너는 항상 바빠서 내게 드릴 시간이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나도 네게만큼은 바빠서 안수할 시간이 없었다.” 그 후 그는 형식적으로 신앙 생활하던 모습을 회개하고 정성을 다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느끼십니까? 그렇다면 신앙의 형식을 버리고 전심을 다해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활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믿음으로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확실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부디 믿는 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잡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으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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