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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 처녀의 비유 (마 2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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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처녀의 비유 (마 25:1-13)

이 세상에는 몇 가지 종말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종말과 우주적인 종말과 자연적인 종말입니다. 성경은 지구 최후의 날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마지막이 가까울수록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벧전 4:7-11).

1. 본문의 상황과 배경

본문의 열 처녀 비유는 유대인의 전통적 결혼 풍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24-25장의 종말론적 교훈의 큰 단락을 문맥으로 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상황으로 설정되어 있는 유대인의 결혼 풍습은 마을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었겠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팔레스틴의 전통적 결혼풍습의 대강은 이렇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결혼을 종교적 예식이란측면보다는 민간의 계약사항으로 더 인식하였습니다.

결혼 전 혼담은 양가에서 내보낸 중매인이나 양가의 어른들에 의해 정해졌으며(예, 창 24:33), 약혼은 신부집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결혼 전의 약혼은 법적인 효력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엄격히 시행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약혼 후 신부가 간음하면 처형될 수도 있었습니다(신 20:7; 22:23-27;마 1:18-19). 근친결혼은 금해졌으나(레 18장) 혼인은 같은 지파나 가문 안에서 일반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결혼 당사자들은 오늘날에 비해 나이가 어렸는데, 랍비 시대에는 남자는 십 삼세, 여자는 십 이세가 최소 혼인 나이로 정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에는 혼인 지참금이 있었는데, 팔레스틴은 사람의 육체적 노동력이 중요한 농업과 목축 사회였기 때문에 신부를 데려감으로서 여성의 노동력을 확보하게 되는 신랑 편에서 신부 편에 지참금을 지급하였습니다. 지참금의 수준은 신부의 사회적 지위나 나이 그리고 지역에 따라 달랐습니다. 약혼이 성립되면 혼사의 중요한 결정은 이뤄진 것이며, 결혼식은 신랑이 신부를 처가로부터 신랑의 집(또는 신랑의 아버지 집)으로 데려오는 절차로서, 결혼식의 절정은 횃불을 든 신부 들러리들이 신랑을 맞이하여 신랑과 신부를 신랑집으로 인도하는 데서 절정을 이뤘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신랑집에 도착하면 그 집에서 결혼 잔치가 베풀어졌습니다.

본문은 때와 징조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직접적인 답변이라기보다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종말을 사는 성도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지를 마지막 단락 안에 있는 다른 비유들과 함께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내용은 주요 주제는 주의 재림이 언제일지 모르기 때문에 성도는 항상 깨어있는 삶의 태도, 즉 주를 맞이할 준비된 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랑은 다시 오실 예수를, 열 처녀는 그를 기다리는 일반 성도를 가리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이 준비한 기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말의 성도는 미련한 처녀들처럼 자기 예상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주의 때를 따라 언제든지 주를 맞이할 준비된 자로 살아야 합니다. 준비된 자로 산다는 것은 주께서 언제 임하든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삶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마 7:21). 하나님의 뜻은 먼저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 드러났으며, 그 중심내용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마 22:35-40).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이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입니다(마 6:33).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고 그의 뜻을 실천하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실천한다는 것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며 사는 것입니다(마 7:12). 이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율법과 선지자들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는 깨어있는 주의 백성이요,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인자의 도래에 준비된 사람들입니다.

주의 재림의 때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전적으로 주의 권한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께서 정하신 중요한 삶의 원칙의 하나를 말해줍니다. 하루, 사절기, 그리고 일년을 주께서 정하시고 우리가 거기에 맞추어 살듯이, 구속사적인 때도 하나님이 정하시며 우리는 거기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신랑의 오는 때를 자신들이 예상하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다가 절망적 결과에 봉착했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이 정하는 아무 때든지 거기에 응할 수 있게 기름을 준비하였습니다. 이것을 일반화하면, 진정한 신앙인은 자신과 모든 일의 이뤄짐의 때를 자신이 지정하려 하지말고, 자신을 복종시켜 하나님의 때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성도가 준비된 자로서 깨어있는 삶을 살 것을 요청합니다.

준비된 삶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으로서, 그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생활 속에서 주의 말씀을 즐거이 묵상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웃사랑은 우리가 그들에게 바라는 대로 그들에게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우리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랑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우리가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신부가 된다면 반드시 혼인의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대하시는 신부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면 혼인잔치에 참여하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의 신랑은 신부에게 세상적 조건들을 요구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을 요구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유대인의 전통적 결혼 풍습을 배경으로 한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유대인들의 결혼식은 주로 밤에 행하여졌습니다. 신랑과 그의 들러리들이 신부의 집에 가서 신부와 신부의 들러리 처녀들과 합류하여 신랑의 집으로 행렬을 짓고 등불을 켜들고 갑니다. 중류 계급의 혼례식에는 오늘날도 열 처녀가 단장을 하고 춤추고 노래하며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를 즐겁게 합니다. 신랑이 오는 시간을 알리지 않고 맞이할 처녀들이 지쳐 자는 동안에 갑자기 들어 닥치는 것이 큰 재미였습니다. 그래서 대개 밤중이나 새벽에 사자가 앞서서󰡐신랑이 오니 맞으라󰡑고 외칩니다.

비유 속의 열 처녀는 신부의 들러리들입니다. 신랑이 늦게 오므로 기다리다 그들은 열 명 모두 피곤하여 신랑이 도착하기 전에 잠이 들었습니다. 그중 다섯 처녀는 생각이 깊었습니다. 기름이 부족할 것을 대비하여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고 잤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신랑을 맞으라󰡑는 한밤중의 외침이 들렸을 때 그들은 당황했습니다. 기름은 이미 다 타고 불은 꺼져 가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에게 부탁했으나 나누어 쓰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그들은 기름을 사러 나섰으나 그러는 사이에 기름을 준비한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습니다.󰡐열어 달라󰡑고 애걸하였으나󰡐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는 신랑의 거절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보통 이 비유가 예수의 재림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복음서가 기록된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십 세기를 내려오는 동안에 예수는 아무 세대에도 다시 육신으로 나타나시지 않으셨습니다. 따라서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준비의 교훈으로 생각하는 주석가도 있습니다. 즉 인생의 뜻하지 않은 위기를 대처하기 위해서 준비가 있어야하겠다는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 어느 해석을 취하든지 그 안에 내포된 공통점은 우리에게 갑자기 오는 위기에 대하여 평소에 각성하고 준비하는 신앙생활을 가르치신 비유입니다.

1. 교회에는 두 종류의 신자들이 있습니다.

이 열 처녀는 신부의 혼인을 축하하고 돕기 위해 특별히 뽑힌 베스트10입니다. 교회를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이 말은 많은 사람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며 하나님께 충성하겠다고 결심을 한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여기 열 처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합니다. 신랑이 좀 늦게 온다고 기다리다 피곤에 지쳐 긴장도 풀리고 잠들게 되었는데 이것은 사람의 자연 현상으로 열 처녀 모두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잘 때는 자더라도 준비를 다해놓고 자는 다섯 처녀가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랑이 온다고 했을 때에 눈을 비비며 등에 불을 켰는데 다섯 처녀의 등에는 곧 기름이 떨어져 불이 꺼져갔습니다. 결국 이 처녀들은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똑같이 뽑힘을 받고 똑같이 피곤하여 졸았지만 신랑이 올 때 큰 차이가 생겼습니다. 이렇게 열 처녀 중에는 혼인 잔치에 참여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있었고 참여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가 있었듯이 오늘날 교회에도 모두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이 오실 때 구원받을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구원받지 못할 사람도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9절에서 예수님은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낸다고 두려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의인 중에 악인이 있다는 말씀이다. 그 뜻은 믿는 자들 가운데 신자와 불신자가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또 마태복음 7장 13절에서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해석할 때 교인들은󰡐믿는 우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이요, 넓은 문으로 들어가고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은 세상 사람이야󰡑라고 말합니다. 이것도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나는 길이다. 나는 양의 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넓고 좁고 간에 아무 문도, 아무 길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와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로 나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똑같이 부르심을 받고 똑같이 피곤해 졸았지만 주님이 다시 오실 때는 열 처녀들처럼 두 종류로 양분될 것이다. 과연 나는 슬기로운 처녀인가?


2. 기름을 준비한 신자만이 천국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과 슬기로운 처녀들의 차이는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였느냐에 있습니다. 여분의 기름을 항상 준비한 처녀는 슬기로운 처녀요, 준비하지 않은 처녀는 미련한 처녀입니다.

그렇다면 기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등을 외형적인 신앙생활로, 기름을 내면적인 신앙생활로 볼 수 있습니다. 즉 등은 교회 출석, 봉사, 전도 등을 상징하고, 기름은 성경 읽기와 기도, 말씀 순종 등을 통한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름 없어 꺼진 등은 신랑을 맞이하는 데 아무런 소용이 없듯이,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가 없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은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하고 십일조 헌금도 하였지만, 외식적이었기에 예수님으로부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남까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하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신자라야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신자입니다. 그렇다면 말세를 사는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베드로전서 4장 7절 이하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기도, 사랑, 봉사의 삶을 사는 신자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신자요, 기름을 준비한 구원받은 신자입니다. 그리고 여분의 기름을 준비하려면 기름이 얼마 남았는가를 매일 점검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매일 매일 하나님께 기도로 교통하며, 용서하는 사랑의 삶과 전도하는 사랑의 삶을 살며, 주신 은사대로 청지기로서 봉사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는 삶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이요, 기름을 준비하는 삶이요, 미래를 대비하는 삶입니다.


3. 기름은 빌릴 수 없습니다.

󰡒신랑이 왔다!󰡓는 외침에 잠자던 열 처녀가 깨어나 자기 등에 불을 켜고 마중 나갔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등불이 꺼져갔습니다. 기름을 준비한 친구들에게 기름을 빌려 달라고 했지만 기름을 같이 나누어 쓰기에는 부족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슬기로운 처녀들이 매정한 것 같은 인상을 주지만, 예수님은 신앙과 구원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로 설명하셨습니다.

신자가 남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하거나 권면을 할 수 있지만 믿음과 구원을 줄 수는 없습니다. 구원은 남의 믿음이 아니라 나의 믿음으로 받습니다. 믿음은 빌릴 수 없습니다. 믿음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형성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했을 때 이렇게 응답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네, 집사람이 열심히 교회에 나가니까 집사람 치마 자락 붙잡고 천국 가지요.󰡓아내가 남편을 위하여 중보 기도는 할 수는 있으나, 남편 대신 회개할 수는 없습니다. 회심도 중생도 구원도 모두 개인적인 것이기에 빌리거나나 빌려 줄 수는 없습니다.

죽음이 눈앞에 닥쳤을 때, 환란과 시험이 갑자기 닥쳐왔을 때, 사고나 병이나 불행이 나를 엄습했을 때 그리고 심판의 날이 내 앞에 도래하였을 때 평소에 믿음의 기름과 성령의 기름을 준비하였던 신자는 승리의 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신자는 남으로부터 기름을 빌릴 수 없어 후회와 통곡의 때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우주적인 종말과 나의 일생이 끝나는 개인적인 종말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기치 않은 환란이나 시험이 올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때를 대비하는 슬기로운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미래에 대한 대비는 오늘 살아 있는 동안에만 해 놓을 수 있습니다. 기도로 자라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화된 믿음으로 기름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삶을 살아 오늘이 행복하고 미래를 보장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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