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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지혜로운 자식 (잠 23: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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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자식 (잠 23:22-25)


미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 한 여인이 외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낮에는 양계를 했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해서 아들의 등록금을 준비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의 고생하는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하였으며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통령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졸업식에 입고 갈 변변한 옷이 하나 없었습니다. 행여나 자랑스러운 아들에게 누가 될까봐 어머니가 말씀합니다. “얘야, 네 졸업식장에 가기는 가야겠다만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갈 수가 없구나.” 어머니의 치맛자락 앞에 무릎을 꿇고 아들은 울며 매달립니다. 

“어머니 안 계신 졸업식장, 내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어머님이 보아 주지 않는 메달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목에 걸려진 금메달을 어머니 목에 걸어드릴 수 없다면 지나간 3년이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졸업식장에 참여했습니다. 아들이 졸업식에서 답사를 하고 영광스런 금메달을 들고 남루한 옷차림을 한 어머니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그리고 금메달을 벗어 어머니의 목에 걸어드렸습니다. “이 메달은 어머니의 몫입니다” 아들은 더 열심히 공부하여 미국의 28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입니다. 그는 자녀들의 가슴속에 어머니의 사랑을 불일 듯 일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914년 상하원의원들의 동의를 얻어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 날로 정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어버이날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본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삶 속에서 추구해야 할 요건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우선 악인의 꾀에 빠져 헛된 세상 재물을 좇지 말고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함으로 흔들리지 말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것이 지혜로운 자식이 되는 길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잠언 기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로 비유하며 어버이의 훈계를 무시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어버이의 교훈을 무시하였을 때 필연적으로 세상 유혹에 빠지듯이 하나님의 백성 역시 말씀을 무시하면 필연적으로 타락하게 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어버이를 공경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신앙입니다. 어버이 공경에 대한 계명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중요한 의무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지혜로운 자식은 누구입니까? 효를 행하는 자녀들입니다. 지혜로운 자식을 둔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워하리라고 본문은 증거합니다. 그렇다면 어버이를 즐겁게 하는 지혜로운 자식은 어떻게 행하여야 합니까?
 
첫째로 어버이에게 청종하라

일제시대와 6.25전쟁을 거치던 민족의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김용기(金容基) 장로는 민족의 살길은 오로지 농촌의 부흥에 있음을 믿고 가나안 농군학교를 세워 농촌개혁 운동을 펼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 범일은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갈등을 하다 가출을 합니다. 멀리 일본으로 건너가려고 부산에서 배를 탈 기회를 엿보던 중 아버지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로 시작된 편지는 아버지를 피해 도망치려던 16세 청년의 발목을 붙잡고 말았습니다. 

편지의 마지막 대목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고당 조만식 선생의 자녀들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뜻을 따랐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내가 명예를 구했느냐? 돈을 구했느냐? 진정 이 땅에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네가 이해해 주지 못하면 어떡하느냐? 돌아오너라. 그리고 함께 일하자. 이 일이 어렵지만 하나님이 칭찬하실 것이고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실 것이다.” 자신의 가야할 길을 발견한 김범일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기로 결심하고 훗날 원주에 제2 가나안 농군학교를 열고 효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김범일(金釩一) 장로의 말입니다. “효란 자녀가 정직, 순결, 봉사, 겸손의 미덕을 갖추어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면서 자신의 위치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아버지의 아들답게 사는 것이 결국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효도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본문 22절입니다.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여기의 ‘청종’은 듣고 따른다는 뜻입니다.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버이에게 청종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어버이에게 눈을 부릅뜨고 거역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거칠게 거역합니다. 그런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어버이의 말씀을 잘 들어드리는 것이 행복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물질이나 돈을 드리는 것보다 더 큰 효도입니다. 시간 낭비, 세대차이, 잔소리라는 생각이 들어도 청종해야 합니다. 인생의 보약이 됩니다. 청종에는 길과 은혜와 행복과 부귀영화의 보화가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버이에게 청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시간이나 돈이 드는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청종하면 큰 힘과 복이 됩니다. 어버이에게 청종하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반드시 청종하게 됩니다. 내가 어버이의 말씀에 청종해야 자녀들도 따라서 청종하게 됩니다. 청종은 효도이며 최고의 복입니다.  

둘째로 어버이를 존경하라

2차대전 당시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할 때의 일입니다. 해군 사령관이 마닐라 해안을 향해 함포사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바로 그때 병사 중 한 명이 갈아입던 옷이 바다에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그는 함포사격을 하라는 상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바다로 뛰어들어 옷부터 건져냈습니다. 병사는 명령 불복종 죄로 군법회의에서 즉결처분을 받아야 하는 긴박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재판관 조지 듀이(George Dewey) 장군은 준엄하게 그에게 물었습니다. “군복은 얼마든지 있는데 왜 명령을 어기고 그런 짓을 했는가?” 그러자 병사는 물에 젖은 옷 호주머니 속에서 빛바랜 사진 한 장을 꺼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분은 제 어머니입니다. 저는 어머니의 사진을 어머니로 생각하고 늘 위로 받았습니다.” 듀이 장군은 한참 동안 묵묵히 병사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의 사진 한 장 때문에 목숨까지 바칠 각오로 바다에 뛰어든 자네야말로 진정 용기 있는 군인이도다.” 어버이의 말씀, 인생, 신앙을 경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존귀하게 대해야 합니다. 

본문 22절입니다.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여기의 ‘경히’는 ‘경홀히’의 준말인데 신중하지 않고 소홀히 여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존경이 없는 사랑은 결코 효도일 수가 없습니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라는 것은 공경하라는 뜻입니다. 공경하다는 말의 어원은 신체의 ‘간장’ 이란 뜻입니다. 모든 장기들이 중요하지만 특히 간은 해독작용을 하는 중요한 기관입니다. 어버이를 공경한다는 것은 마치 간을 소중하게 돌보듯이 어버이를 귀하게 대하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공경하라는 히브리어 ‘카베드'는 ‘무겁다’ 라는 뜻입니다. 즉 공경은 무게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인생길을 걸어가신 어버이는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삶의 무게, 경륜의 무게가 있는 법입니다. 그 무게를 인정하는 것이 바로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 무게를 인정하면 귀히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어버이를 경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행위입니다. 보이는 어버이를 경히 여기는 자가 어찌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있습니까? 어버이를 제대로 섬길 때 하나님도 제대로 섬기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성도는 반드시 어버이를 제대로 섬기고 효도하게 됩니다. 어버이를 존귀히 여김으로 즐겁게 해 드리는 지혜로운 자식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어버이에게 마음드리라 

나이든 어느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화하였습니다. “가문을 망치고 싶지 않지만 네 어미와 헤어지기로 하였다.” 그러자 아들이 “아버지,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라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서로 같이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너에게 이런 말하는 것조차 속상하구나. 여동생에게도 전화해서 이 사실을 말하여라.” 아들은 황급하게 여동생에게 전화하여 부모의 이혼 사실을 전했습니다. 여동생은 소리치면서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할게” 하였습니다. 

딸은 즉시 아버지에게 전화를 하며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아버지, 절대 이혼은 안 돼요. 내가 갈 때까지 절대 갈라서서는 안돼요. 내일 오빠도 오라고 할 거예요. 그때까지 절대 헤어져서는 안 돼요” 그러자 노인은 전화를 끊고 부인을 보며 말했습니다. “됐어. 이번 명절에는 애들이 다 올꺼야! 그것도 자기들이 경비를 지불하고...그런데 다음 명절에는 뭐라고 하지?” 

본문 26절입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신앙인은 마음이 항상 하나님께 가 있어야 하듯이, 어버이에게 마음이 가 있어야 합니다. 어버이는 우리를 키울 때 진자리 마른자리 가려 누이시며 기르셨는데 우리는 어버이가 진자리에 누우셨는지, 마른자리에 누우셨는지, 또는 차가운 자리, 더운 자리인지를 골라 누우시는지 잘 살펴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항상 마음이 어버이의 마음에 가 있어야 합니다. 어버이가 느끼도록 해야 합니다. 어버이는 자녀들의 마음을 원합니다. 마음이 실린 말, 마음이 실린 행동, 마음이 실린 선물을 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선물을 드려도 마음이 실리지 않은 선물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늙으신 어버이를 구박하고 술 한 잔하면 구타를 일삼는 불효자식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으신 아버지는 아들 손자를 극진히 돌보고 또 잘 지켜주었습니다. 마을 친구들이 할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이보게, 자네는 배알도 없는가? 그 핏줄이라고 하면 피가 거꾸로 용솟음칠만도 한데, 뭐가 귀하다고 손자 녀석을 극진히 돌보고 섬긴단 말인가?” 그러자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모르는 소리하지 말게. 이 손자 녀석 잘 키우면 원수 갚아 줄지 누가 알겠어!” 어느 때 보다 효자가 그리운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전의 전통적인 가정은 중심이 어버이에게 있었으나 지금은 그 중심이 부부와 자녀에게 옮겨갔습니다. 어버이에 대한 효가 엷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효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어버이에게 효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은 잘 되고 장수하는 길입니다. 모름지기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지혜로운 자식이 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자녀인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부디 어버이에게 청종하는 자식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버이를 경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어버이에게 마음을 드리는 지혜로운 자식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어버이를 즐겁고 기쁘게 해 드리는 복된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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