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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낙원을 이 땅에 만드는 사람 (창 21: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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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을 이 땅에 만드는 사람 (창 21:25-34)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천국은 너무도 좋은 곳인 가 봐요.” 듣던 이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그렇게 많은 분이 천국으로 갔는 데 돌아 온 사람이 한 명도 없잖아요.” 
우리가 죽어서 가서 영원히 살 곳이 천국입니다. 낙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기 좋은 곳을 낙원이라고 말합니다.

뉴질란드에 갔더니 그 곳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낙원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천국을 만들어 가지고 가시다가 귀퉁이가 떨어진 곳이 자기 나라라는 것입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해변가로 나갔습니다. 바위를 들추기만 하면 전복들이 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30분 정도 들추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를 팔면 300만원은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살기 좋은 낙원같았습니다. 그런데 천국에는 네 종류가 있습니다.

1. 심령 천국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여기있다 저기 있다 말지니 네 마음속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심령 천국이라고 말합니다. 이 땅에서 마음에 편안한 천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2. 가정 천국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가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만드시는 것이 가정이었습니다. 마귀가 제일 먼저 공격하여 파괴한 것이 가정이었습니다. 가정이 불행하면 다 불행합니다. 가정이 행복하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욥의 가정과 같이 가정 천국이 이루어 져야 합니다.

3. 교회 천국

안디옥 교회는 천국과 같은 교회였습니다. 모두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함을 받았습니다. 가정같은 교회, 교회같은 가정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지상 천국입니다.

4. 천상 천국 

우리가 궁국적으로 바라는 천국입니다. 우리는 천상천국에서 영원히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지상 천국을 만드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심령 천국을, 가정 천국을, 그리고 교회 천국을 만드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오늘 아브라함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브라함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정처없이 떠 돌아 다닐 때였습니다. 블레셋 땅으로 왔습니다. 비옥한 땅에는 자기들이 차지하고 살면서 못 쓸 땅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런 땅에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막 땅에 아브라함은 우물을 팠습니다. 아무 곳이나 땅을 판다고 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으로 아브라함은 우물을 팔 수 있었습니다. 그 곳 이름을 브엘세바라고 지었습니다. 브엘세바란 7개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막에 낙원을 만들었습니다. 우물을 파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살 수 없는 땅을 살기 좋은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본토인이 못 하는 것을 나그네가 이루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 낙원을 건설하였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가정이 낙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낙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낙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낙원이란 어떤 곳입니까?

1. 하나님이 계신 곳 

낙원이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있어도 낙원이 아닙니다. 불꽃이 없는 불이 불이 아닌 것처럼, 엔진이 없는 자동차는 자동차가 아닌 것처럼 어린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있어도 부모가 없으면 낙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우물을 팠습니다. 그리고 에셀나무를 심었습니다.

사막이 살기 좋은 낙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33-34)

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안에서 만이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중심을 살아가는 곳이 낙원입니다.

어느 집에서 이사짐을 나를 때였습니다.

큰 어항을 옮기려고 하다 보니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그러니까 이사짐 쎈터에서 어항 밑에 있는 모래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물을 5분 1만 남겼습니다. 그리고 어항을 싣고 5시간을 달렸습니다. 30 마리 가량의 물고기들은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간신히 목숨만 붙어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런 곳은 물고기들에게 낙원이 아닙니다. 물고기는 물속에서만이 참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안에서만이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낙원입니다.

요즈음 모임들이 하나님은 안 계시고 너무나 인간적이서 구역질날 정도입니다.

나는 우리 교회 장로님들의 믿음이 보수적이라 좋습니다. 감독회장 후보이기에 수많은 행사에 많이 참석하여 인사를 하게 됩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에 화환이 빼곡이 놓여 있습니다. 강대상에도 화분들이 수없이 놓여 있습니다. 그 곳에는 반드시 리본이 있고 보낸 사람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강대상에 올려 놓는 화분에는 리본을 모두 떼고 올려 놓습니다. 하나님만이 영광받으실 자리이기에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철저한 신앙 고백입니다. 나도 우리 교회에서 한번도 강대상에 앉는 때가 없습니다. 반드시 강대상 밑에 앉는 것이 습관입니다.
하나님을 극진히 모셔야 합니다. 그 자리에 사람이 올라가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면 하나님이 계실 자리가 없습니다.

어느 목회자 모임 조직을 국민일보에 발표하였습니다.
단장, 상임 부단장, 부 단장이 20명, 상임 총무, 총무가 41명, 부종무 9명, 협동 총무 18명, 부장은 11명 그리고 단원은 12명이었습니다. 단원보다 임원들이 6배가 많았습니다.
모두 윗 자리만 앉으려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실 윗자리가 없습니다. 그런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모인 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섬기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 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7)
하나님이 계신 곳이 바로 낙원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느 곳을 가든지 단을 쌓았다고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사람들과 평화가 있는 곳 

아무리 하나님이 계시고 물이 있고, 푸른 초원이 있다 할 지라도 원수가 있는 곳은 낙원이 아닙니다. 갈등관계가 있는 곳은 낙원이 아닙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 솔로몬도 말했습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 25;24)

아브라함이 이주하여 살고 있는 브엘세바는 블레셋 땅이었습니다. 나그네가 이 땅에 와서 우물을 파고 나무를 심고 낙원을 이루고 사는 것을 보니 시기와 질투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고생하면서 판 우물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러던 중에 블렛세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 왔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정말 놀라운 사건입니다.

몇 가지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1) 왕이 나그네를 찾아 왔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2) 나그네가 왕을 책망하였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25)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세상 사람이 두려워 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지역으로 이사 왔을 때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가 너무나 예뻐서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 것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랬더니 그 곳 최고 통치자 아비멜렉은 사라를 보자 그의 아름다움에 매혹되고 말았습니다. 결혼한 여자라면 자기 아내로 삼을 마음을 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하니까 자기 아내로 삼고 싶어서 사라를 아비멜렉의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동침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꿈에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창 20;3)
아비멜렉은 놀라서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아직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내 책임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책임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거짓말하여서 그런 줄 알고 아내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창 20;4)
하나님은 아비멜렉을 용서하셨습니다. 몰라서 그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창 20;6-7)

아비멜렉은 다음 날 아침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 보냈습니다. 그 후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을 건드리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가만히 두지 않으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무서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나그네 아브라함을 찾아 온 것입니다. 그리고 나그네가 그 나라 왕을 책망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평화 조약을 맺었습니다. 서로 괴롭히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니까 평화스러운 낙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평화로운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런 곳이 낙원입니다.

원수가 없는 곳이 낙원입니다.
적이 없는 곳이 낙원입니다.
인간 관계가 안 좋은 것만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습니다. 애매한 소리를 하며, 기절할 듯한 비상식적인 말을 들을 때만큼 모욕적인 것은 없습니다. 이웃과의 갈등입니다.

아기 사슴에게 늑대가 말을 했습니다.
"너 왜 물을 흐려 놓는거야!"
"저는 아래쪽에서 물을 먹었는데요."
"이 자식, 말이 많아!"
또 늑대가 말을 했습니다.
"너 왜 작년에 우리 아버지 화나게 했어."
"작년에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이 자식, 꼬박꼬박 말대꾸야!"

늑대는 약한 아기 사슴을 잡아먹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며 갈등을 조장하는 이웃이 있다면 낙원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아내와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깊은 산속에 조그만 웅덩이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 어떻게 물고기가 들어 왔는 지 5마리가 한가롭게 그리고 평화롭게 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혼자 외쳤습니다.
“너희들은 낙원에서 살고 있구나.”
적이 없습니다. 자기들끼리만 살고 있습니다. 누가 건드린 적이 없습니다. 얼마나 평화롭습니까? 하나님께서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다 없애는 것이 아니라 친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적을 친구로 만들었습니다.

어느 왕이 전쟁을 하러 나가면서 말했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적을 완전히 섬멸할 것이다.”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왕은 적들을 모조리 포로로 잡아 왔습니다. 그리고 포로 수용소에 수용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신하들이 적들을 죽이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왕이시여! 적들을 모조리 섬멸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왜 모조리 죽이지 않고 그대로 두십니까?”
그 때 왕이 말했습니다.
“나는 약속대로 적을 모조리 섬멸하였다.”
“저기 포로 수용소에 있지 않습니까?”
그 때 왕이 말했습니다.
“저 들은 내 적이 아니라 내 친구들이다. 그 동안 다 내 친구로 만들었다. 이제는 적이 하나도 없어졌다.”

그렇습니다.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 바로 낙원입니다.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우리 사회가 낙원이 되어야 합니다.

독일에서 가장 좋은 자동차는 벤츠입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목사님들이 교회가 아무리 커도 벤츠는 타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목사는 좋은 자동차의 상징인 벤츠를 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부자도 있지만 가난한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의 화목을 위하여 목사들은 스스로 낮추어 산다는 것입니다. 

카나다에서 가장 좋은 코트 중에 하나가 물개가죽 코트입니다. 비가 와도 입어도 됩니다. 눈이 와서 맞아도 상관없습니다. 물속에서 살던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성막 때문에 물개가죽을 300마리 주문하였습니다. 받고 보니 303마리였습니다. 같이 갔던 집사님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300마리 주문하였는 데 303마리가 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몰라서 물었습니다.
“무슨 뜻이요?” “세 마리 가지고 목사님 코트해입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면서 거절하였습니다. 나는 우리 갈보리 공동체가 화목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곳이 하나님이 계시고 평화가 있는 낙원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다 있어도 마음에 평화가 없으면 낙원이 아닙니다. 사람들과 평화가 있는 곳이 낙원입니다. 아브라함은 적속에 들어 가서도 모두를 친구로 만들고 평화를 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곳이 낙원입니다.

3.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곳

낙원이란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곳이 낙원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사람들과 평화가 있는 데 축복이 없다면 낙원이 아닙니다. 그런 곳은 진정으로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반드시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바로 이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당시 블레셋 왕은 아비멜렉이었 데 아비멜렉이 군대장관 비골을 데리고 아브라함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도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이 되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서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므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창 21;22-23)
“네가 무슨 일을 하든 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도다.”

이 말은 얼마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계시다는 증거인 지 짐작일 갈 것입니다. 무엇을 어디에서 하든지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파파라치(paparazzi)라는 직업이 있습니다.
유명 연예인이나 저명인사를 몰래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특종 기사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영국 다이애나 왕비가 파파라치를 따돌리려고 과속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도 교통 위반하기 쉬운 곳에 숨어서 사진찍어 고발하여 돈을 버는 파파라치가 있었습니다. 한 달 수입이 1000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도 파파라치가 있었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아브라함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축복을 주시는 파파라치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요셉에게도 하나님이 영적 파파라치가 되어 따라다니셨습니다. 요셉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을 축복하셨습니다. 나는 나에게도 파파라치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파파라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의미에서 머리에 키퍼를 쓰고 다닙니다. 하나님이 내 위에 항상 계시다는 고백입니다. 정통적인 유대인은 잘 때에도 이 모자를 벗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곳이 낙원입니다.

개미 집단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꿀단지라는 개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꿀을 많이 먹습니다. 배가 터질 듯이 꿀을 몸속에 넣습니다. 배가 고무풍선처럼 터질 듯이 먹어 거의 움직일 수 없을 정도까지 됩니다. 그리고 홍수나 천재지변으로 식량이 부족하거나 어려워지면 동료 개미들에게 다 빨아 먹게 하는 개미라는 것입니다.

나누어 주기 위하여 먹습니다. 주려고 모읍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주변을 낙원으로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곳이 낙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낙원을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낙원이란 어떤 곳입니까?

1. 하나님이 계신 곳이 낙원입니다.
2. 사람들과 평화가 있는 곳이 낙원입니다.
3.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곳이 낙원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고백을 소개하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임지를 놓고 기도중에 교수님이 불렀습니다.
“내가 자네에게 일할 곳을 소개하겠네.” 반가원서 물었습니다.
“어디 입니까?” “강원도 삼척 산골에 있는 조그만 교회야.” “몇 명 모입니까?”

“2명” “안 가겠습니다. 그런 곳에 가면 어떻게 먹고 살겠습니까?” “주님만 믿고 가.” 교수님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그는 삼척으로 떠났습니다. 아주 산골에 있는 다 쓰러져가는 교회였습니다. 그 곳에 가서 일하면서 하나님께서 그를 놀랍게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한 영혼의 귀중성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를 따라 공급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언제나 기적이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자기를 축복하여 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낙원입니다.
사람들과 평화가 있는 곳이 낙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곳이 낙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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