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 (마 5:9)

첨부 1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 (마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 5:9)  
“makavrioi oiJ eijrhnopoioiv o{ti aujtoi; uiJoi; qeou' klhqhvsontai”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sons of God.”

화평하게 하는 자 

팔복의 일곱 번째는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화평하게 하는 자란, 헬라어로 “oiJ eijrhnopoioiv”인데, peacemaker란 뜻입니다.  
  
우선 화평의 개념부터 정확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화평이란 말은 뒤집으면 평화입니다.  평화, 평강, 평안, 다 같은 맥락의 말입니다.  평안이나 평강이란 말은 좀 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평화나 화평이란 말은 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타납니다.  어찌되었든 기본적인 의미는 같습니다.  화평의 개념은 주로 이런 식으로 이해됩니다.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 혹은 아무 사건 사고도 없이 무사히 지내는 것, 개인적으로 마음이 편안한 것 등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평화는 좀 더 그 의미가 다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평화는 한 마디로 만물의 조화, harmony입니다.  모든 존재들이 서로 협력하면서 최선의 상태로 공존하는 것이 평화입니다.  본문에 사용된 “화평하게 하는 자”는 “eijrhnopoiov"”인데, “eijrhvnh” (peace)란 말과 “poievw”(do, make)가 합성어입니다.  즉, peacemaker입니다.  

외부에서 조성된 평화를 단순히 수동적으로 누리는 자가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드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eijrhvnh”는 “결합하다”는 의미의 동사에서 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구약 성경에 사용된 “!/lv”(샬롬)이란 말도, 동사 “!l'v”(샬람)에서 왔는데 그 의미는 “완성하다”는 뜻입니다.  성경적인 의미의 화평은 어떤 위치와 역할을 전제로 합니다.  그 역할이 무엇일까요? 
  
창세기에 보면 화평의 근본은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의 조화입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아주 만족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이렇게 만족하신 이유는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해내셨습니다.  이 모든 피조물들은 각자의 역할을 함으로써 최선의 하모니를 이루었습니다.  빛의 존재와 역할, 대기권의 물과 지상의 물, 육지와 바다, 태양계와 천체들의 움직임, 식물과 동물, 인간의 역할, 모든 피조물이 보기 좋게 어울렸습니다.  즉, 하나님의 의도대로 서로 협력하고 움직이면서 아름다운 공존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조화는 몇 가지 근본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조화입니다.  둘째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조화입니다.  셋째는 인간과 피조물 사이의 조화입니다.  특히 강조할 것은 인격체들 사이의 조화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조화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 세계에서 조화를 이루는 중심적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과 자연 만물 사이에서 인간은 중재적 위치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하여 자연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자연물에는 자연 법칙을 주셨고, 인간에게는 말씀의 계명을 주셨습니다.  자연 만물은 자연 법칙을 따르면 되고, 인간은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면 되었습니다.  이런 조화적 관계가 곧 화평입니다.  
  
화평이란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싸우지 않고, 아무 사고 없이 무사한 상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 만물 사이의 협력과 하모니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화평이란 개념 자체가 영적이고, 우주적입니다.  평화는 단순히 내 마음 한 곳의 문제가 아닙니다.  

첫째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신앙적인 문제입니다.  
둘째로,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공동의 문제입니다.  
셋째로, 인간만의 문제가 아니고,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오는 우주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한 평화란 이런 모든 문제들이 다 해결된 상태에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화평이 깨진 이유는

화평을 얻고자 한다면 먼저 화평하지 못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원인을 알지 못하면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왜 사람들은 화평하지 못할까요?  성경에 보면 평화가 깨진 이유는 단순 명료합니다.  그 이유는 오직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범죄 때문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께 죄를 지었을 때 평화가 깨졌습니다.  
  
하나님과 인간과 피조물 사이의 모든 관계가 깨졌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치고, 하나님은 아담을 쫓아내셨습니다.  둘째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아담은 아내를 탓하고, 아내는 뱀을 탓했습니다.  가인은 친 동생 아벨을 죽이고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셋째로, 인간과 자연 만물 사이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인간은 자연을 다스리고 보존하는 자가 아니라, 자연물의 숭배자요, 파괴자가 되었습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고통을 주고 때로는 재앙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평화롭지 못한 이유는 이와 같이 죄로 말미암은 “관계의 파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평안한가요?  만일 평안하지 못하다면 그 이유는 바로 깨어진 관계에 있습니다.  나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살펴보세요.  나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정상인지 살펴보세요.  나와 주변 환경의 관계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세요.  
  
평안을 되찾으려면 관계 회복을 해야만 됩니다.  가장 먼저 나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부터 회복해야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인간의 정체성도 회복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자기가 누구인지 앎으로써 마음의 평안을 되찾을 겁니다.  왜냐하면 불안한 마음은 사실 자기 자신을 모르고 사는 부조화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만 회복된다면, 환경이나 주변 문제와 상관없이, 마음만은 정말 평안하게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바로 이점입니다.  내가 현재 평안하지 못한 이유가 외부 환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다든지, 집이 없다든지, 사업이 잘 안 된다든지, 다른 사람들이 나를 괴롭게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문제를 외부에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남의 돈을 훔치고 빼앗습니다.  남의 지위를 탐냅니다.  다른 사람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결국 범죄로 평안을 찾겠다는 생각입니다.  그 결과는 뻔합니다.  평안히 살기는커녕 일평생 더 큰 불안 속에 살게 됩니다.  
  
오늘 정말 평안을 찾고 싶다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세요.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 속에 담긴 첫 번째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화해를 이루셨다

아담의 범죄로 깨어진 우주 만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화해를 이루신 주인공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하나님은 죄악 된 인류와의 화해를 이루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인간이 받아야 될 형벌을 예수 그리스도로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용서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주십니다.  
  
아담 이후로 모든 인류는 하나님과 원수 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고, 마침내는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속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완전히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 1:22)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만을 회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그 피조세계 전체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만물 사이의 모든 관계를 회복하시려는 것입니다.  우주 만물의 화해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보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평화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위에 세워져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화해자이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해자이기도 하십니다.  오늘 깨어진 인간관계가 있다면 피차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 들이세요.  그러면 마음의 평화가 이루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도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런 화해의 원리를 가르칩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엡 2:13-18)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서 아주 중요한 두 인류 사이의 화해를 설명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관계 회복입니다.  유대인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언약의 후예들입니다.  유대인은 언약 백성의 표식인 할례를 받고,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구원을 기다리는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하나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도 없고, 언약도 없고, 천국에 대한 기대도 없었습니다.  구원의 약속도 없었습니다.  이런 두 인류가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이런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유대인 사회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밖혀 죽으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어떤 죄인도 십자가만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을 없애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이 둘이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어 땅 끝까지 세워졌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화해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과의 화해, 사람과 사람, 종족과 종족 사이의 화해가 일어납니다.  
  
어떤 분들은 기독교도들이 전쟁을 좋아한다고 비판합니다.  중세 교회의 강압적인 세속 지배, 독일 지역에서 있었던 신구교도 사이의 30년 전쟁, 지금도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기독교와 회교도 사이의 분쟁 등.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기독교는 전쟁의 종교가 아닙니다.  회교도들처럼 코란 아니면 칼이 아닙니다.  회교도들의 성전(聖戰)처럼 전쟁을 미화하지도 않습니다.  오른 뺨을 치면 왼 뺨을 둘러대는 것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기독교의 전쟁은 육신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입니다.  마귀와 싸우고, 죄와 싸우는 영적인 전쟁입니다.(엡6:)  

다만 역사적으로 나타난 종교 전쟁은 100%, 정치적 목적에서 종교를 이용한 것뿐입니다.  30년 전쟁이나, 십자군 전쟁이나, 그 동기는 다 지배자들의 정치적인 목적에서 시작된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제후들의 입지 강화를 위해서, 혹은 지배자들의 권한 확대를 위해서 종교적인 목표를 표방한 것들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국민들 중에 개별적으로 영호남 감정이 있습니까?  거의 100% 정치적인 주도권을 쥐려는 사람들이 지역감정을 이용하고 부채질하는 것뿐입니다.  
  
아무튼 예수 그리스도는 화해의 길이시며 도구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과 화해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실 때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해도 이루어집니다.  
  
십자가 정신은 화해의 정신입니다.  원수를 용서하는 사랑과 관용이 십자가 정신입니다.  어떤 원수도 화해시키는 것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화해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신분상 진정하고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인류 역사에서 하나님과 죄인을 화해시킨 유일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을 화해시키고, 하나님과 자연 만물, 혹은 인간과 만물을 하나로 화해시킨 유일하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와 우주 만물을 화평하게 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화목케 하는 하나님의 아들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써 화목을 이루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자녀로써 화목을 이루는 사명자들입니다.  예수님이 화해를 이루심으로써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화해를 이루는 자가 됨으로써 참 하나님의 자녀임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가지고 오셨듯이, 우리도 화목하게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8-19)
   
화해를 이루는 자가 되는 것은 내가 진정 하나님의 자녀임을 나타내는 길입니다.  본문에 보세요.  ‘하나님의 아들이 되리라’든지, ‘하나님 아들임을 나타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they will be called) 하셨습니다.  타인에 의해서 인정된다는 뜻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굳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인 것을 나타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 하루만 같이 지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단 한 가지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뭡니까?  바로 오늘 말씀대로 화평, 평화를 이루는 사람, “eijrhnopoioi”, peacemaker가 되는 것입니다.  

전도하느라 애쓰면서 이웃 사람과 한 번만 된 탕 싸워보세요.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전도는 물 건너갑니다.  반대로 항상 화목하게 하는 사람이 되어보세요.  어디든지 나만 있으면 화해가 이루어져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화목하게 되려고 나를 찾습니다.  
  
전도가 뭡니까?  어깨 띠 두르고 예수 믿으라고 외치는 것입니까?  성당에서 언제 그렇게 전도하는 것 봤습니까?  불교인들이 언제 그렇게 전도했습니까?  유독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어깨 띠 두르고 거리 전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 효력이 있는 것은 화해시키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내 삶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리고,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사람이 되세요.  다투고 싸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화목하게 만드는 자가 되세요.  사람들이 나를 보고 말할 겁니다.  “저 사람은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믿는 사람이야!  저 사람은 정말 하나님 자녀야!  나도 저 사람과 함께 할 거야!”  
  
본문을 반대로 표현하면 이렇게 됩니다.  “화평을 깨는 자는 저주가 있나니, 마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다툼을 일으키는 자, 분열을 일으키는 자, 갈등을 일으키는 자, 이간시키는 자는 화가 있나니, 그들이 악마의 자식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천 번 만 번 전도하려고 애써도 싸우는 모습 한 번 보여주면 영혼 구원은커녕 머리털 하나도 구원하지 못합니다.  
  
평화의 사람이 됨으로써 하나님 자녀로 일컬음을 받으세요.  정죄하고, 비난하고, 비판하여 싸움을 일으키지 마세요.  오히려 화평, 평화, 화목, 평안의 사람이 되세요.  남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컫게 되기까지!  그런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일컬음을 받기 때문에 복이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복입니다.  

오늘 내가 가진 진정한 하나님 자녀의 표식이 있습니까?  남들이 나를 볼 때, ‘아, 저 사람은 정말 하나님 자녀야!’ 하는 증표가 있습니까?  화평하게 하는 증표를 보이세요.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