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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6.25] 아사왕 시대에 찾아온 평화 (대하 1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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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왕 시대에 찾아온 평화 (대하 14:1-13) 
 
한 일 주일 전 우리는 언론사의 보도를 보고 놀란적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6.25를 앞두고 설문조사를 했답니다. 학생들에게 6.25는 북침인가 남침인가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북침이라는 대답이 69.9% 약 70%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을 그대로 읽으면 남쪽이 북쪽을 쳐들어 올라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표했습니다. 이 고등학생들이 역사 인식이 잘못된 것 아니냐. 교사들이 잘못 가르쳐서 그런거 아니냐. 뭐 별에별 생각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설문에 문제가 있음을 곧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 했습니다. 이 북침이라는 용어 자체가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이 북한이 먼저 공격을 했다는 이야긴가 아니면 북쪽을 향해서 공격을 했다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물론 북한을 공격했다는 것이 북침의 원래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오해할 소지가 있다. 그래서 한 언론사가 다시 조사를 했답니다. 이번에는 어떤 질문지를 돌렸느냐 6.25전쟁은 어느 쪽이 일으켰느냐. 북한이 일으켰느냐 남한이 일으켰느냐. 이렇게 질문을 했어요. 그랬더니 대답이 달랐습니다. 초등학생 80%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 고등학생의 94%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 이렇게 명확하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프닝으로 끝나고 또 걱정하는 많은 분들이 마음을 쓸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종종 우리 사회는 북침설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사실 있습니다. 남쪽이 북한을 먼저 공격했다는거에요. 그것은 일부 편향된 역사학자들이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이 극소수 있습니다. 또 무조건적으로 김정일이나 김정은을 찬양하는 종북주의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보다는 북한의 수령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은 가끔 그런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죠. 

1950년 6월 25일 소련제 탱크를 앞세운 북한의 일방적인 도발로 남한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그날은 주일 새벽이었습니다. 그리고 남북 간에 대화가 이루어지는 시기였기 때문에 화해 무드가 있었고 긴장을 다 풀어버렸습니다. 병사들은 자유롭게 외박 외출을 나갔습니다. 부대마다 텅텅 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북한은 도발을 감행하게 되었습니다. 

자 여러분 만일에 남한이 북한을 공격했다라면 이것은 정신병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이 점령당했습니다. 그런 전쟁을 치룰 나라가 세상에 어디있습니까? 3일만에 전쟁에 질줄을 알고 도발한 그런 민족은 있을수가 없죠. 전쟁 발발 40일만에 낙동강 하류까지 부산만 남겨두고 온 남쪽 땅이 다 공산당에 의해서 점령 되었습니다. 

당시 남한군의 총 병력은 10만 5천명이었습니다. 북한의 군사의 총수는 20만 4천명이었습니다. 두 배가 넘습니다. 이렇게 적은 군사를 가지고 누가 도발을 일으킬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남한의 탱크가 몇 대나 있었을 것 같습니까? 한 열대? 남한에는 탱크나 자주포가 단 한 대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에는 탱크가 242대 자주포가 176대나 있었어요. 그러니까 남한이 도발했다는 것은 도저히 억측에 불과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한 항공기기는 연락기를 포함해서 22대가 전부였습니다. 북한의 항공기는 연락기를 포함해서 211대 우리보다 꼭 10배를 넘게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자 여러분 이렇게 열세의 전력을 가지고 전쟁을 일으킬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 북침설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가를 우리는 대번에 알수가 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고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우리는 휴전협정이라고 그러죠. 휴전협정이 이뤄지는 3년동안 이 한반도는 포탄에 의해서 초토화 되어 버렸습니다. 수많은 재산을 잃어버리고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아군과 적군을 포함해서 수백만 명의 사람의 생명이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6.25 이 전쟁을 통해서 뼈 아픈 역사의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정말 자유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 평화는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우리는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열세의 전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또 세계경제 12의 나라로 발전해 온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건 한 마디로 기적이고 하나님의 전적이 은혜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여러분 역사 속에 다른 나라로부터 원조를 받다가 다른 나라를 원조하는 나라가 된 나라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에요. 우리는 다른 나라로부터 원조를 받았어요. 전쟁이후에 너무 어려워서 매일 외국에서 원조 받던 나라가 이제는 60년만에 다른 나라를 원조하는 나라가 된거죠. 코이카라고하는 단체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해외에 나가서 그 나라에 학교를 지어주고 병원을 지어주고 교량을 건절하고, 농토를 개발해주는 일을 하고 있죠. 우리교회에 김선호집사님이 바로 그 단체의 지원을 받고 지금 아프리카에 가서 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평화가 얼마나 고귀한 것이지 모릅니다. 정말 이 땅에 평화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죠. 미국 워싱턴에 가면 한국전 기념공원이 있는데 거기에는 이런 글귀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결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나라의 이름도 모르고 한 번 와보지도 못했던 16개국의 젊은이들이 이 땅에 와서 피를 흘렸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에디오피아, 터키, 필리핀을 비롯한 16개국의 젊은이들이 아무 연고 없는 이 땅에 와서 수백명 수천명씩 생명을 잃고 돌아갔어요. 그들의 피의 대가가 오늘 이 땅의 번영이라는 아름다운 나라를 세워놓게 된 것입니다. 

또한 이 민족의 참으로 구원을 위해서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끊임없이 기도한 기도의 열매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아름다고 고귀한 자유와 평화를 우리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해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에서 우리는 남왕국 유다의 아사라고 하는 왕에 대해서 읽었습니다. 아사왕은 남왕국 유다의 3대왕입니다. 여러분 잘 알다시피 솔로몬 이후에 남북이 갈라집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 남왕국 유다가 생기는데 남왕국 유대의 1대왕이 르호보암, 2대왕이 아비야, 그리고 3대왕이 바로 아비야의 아들 아사왕입니다. 그런데 아사왕은 아주 정의로운 정치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꼭 드는 통치를 했습니다. 그래서 아사왕은 매우 훌륭한 왕이고 아사왕의 통치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땅에 하나님께서 평화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성경 14장 1절을 말씀을 다시 한 번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아비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사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 그의 시대에 그의 땅이 십년 동안 평안하니라” 아멘. 아사왕 시대의 특징은 평안입니다. 평안이란 말은 평화라는 말과 동일한 말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 보면 많은 말들을 평화라고 바꾸어 놓았습니다. 

또한 오늘 5절과 6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이어서 읽어보겠습니다.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이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 

이 아사 시대의 특징은 평안입니다. 평화. 여호와께서 그 땅에 평안함을 주셨다. 평안함을 누리니라. 7절에도 보니까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이 평안의 특징이 있습니다. 평화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바로 평화입니다. 여러분 내 마음의 평화나 가정의 평화가 내 뜻대로 되어지는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그 평화를 주셔야 되요. 그래서 우리가 평화 평화로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 이렇게 찬양하지 않습니까. 이 아사의 시대에 찾아온 평화, 정말 그 원인이 무엇일까. 

어찌하면 우리가 가정에, 우리 민족에, 이 지구촌에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을까. 우리는 그 비결을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평화를 얻기 위해 첫째는 선과 정의를 행해야합니다. 오늘 우리 2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2절입니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 아멘. 이 선과 정의는 뭐예요. 선정을 베풀었다는거죠. 그는 착하게 정치를 하고 그리고 정의로운 정치를 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백성 앞에서 그는 정의로운 통치를 펼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평안이 오게 된 비결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불의 부정이 가득한 사회는 평화가 없습니다. 원망과 복수와 미움과 증오는 있을지언정 평화란 것은 없습니다. 평화란 바로 정의의 기초위에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목적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평화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평화는 정의 위에 세워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히 우리 대한 민국이 정의로운 사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와 우리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정의의 기초 없이는 평화가 주어 질 수 없습니다. 정말 우리는 내 자신이 오늘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정말 한국 민족이 정의로운 길로 가고 있는 가를 돌아봐야 해요.

어떤 책을 읽다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있더라구요. 카지노에는 없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저도 한 12년 전에 미국 서부 일주 하다가 라스베가스까지 간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카지노가 어떤 곳인가 가서 동전을 바꿔서 잠깐 해본 적이 있어요. 저는 잃었는데요. 우리 집 사람은 한 30불 땄어요. 하여튼 그런 경험이 있는데 카지노에 가면 세 가지가 없다고 해요. 
첫째는 시계가 없어요. 시간을 몰라요. 그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지고 있는 돈을 다 잃어 버려요. 
두 번째로 뭐가 없느냐? 창문이 없어요. 낮이 되었는지 밤이 되었는지 그것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세 번째로 뭐가 없을까요? 거울이 없어요. 자신의 초췌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해요. 그러니까 전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거기에 빠져 들게 되다가 결국 있는 것을 다 쏟아 붓고 빈 털털이가 되어서 나오는 곳이 카지노예요.

여러분 오늘 우리 사회 우리는 얼마나 분별력 있게 인식하고 있느냐? 정말 이 사회가 공의에 서 있는 지 정의에 기초에 서 있는지 그리고 내 삶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 자신을 돌아 볼 수 있어야 해요. 정의의 거울 앞에 우리는 이 민족을 비춰 볼 수 있어야 해요. 정말 하나님 앞에 우리는 정의로운가 아니면 거룩한가

아모스 5장 24절에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희는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정의를 공의를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미가서 6장 8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은 정의와 인자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런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사회는 바로 정의의 기초위에 서 있습니다. 그런 사회에 진정한 평화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책을 읽다 보니까 그런 말을 했어요. 우리 대한민국은 부패 공화국이다. 물론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한 때 부정부패가 너무 만연돼서 부패 공화국이라는 그런 오명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것 만이 아니예요. 

요즘 우리 대한민국을 향해서 어떤 사람들은 도박 공화국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바다 이야기 피씨방이 다 게임하고 돈 내기 하는 것. 인터넷이 다 돈 내기 하는 것이라는 거예요. 그늘 밑에 동네 어른들만 모이면 화투를 치고 돈 10원짜리 100원짜리를 가지고 심심풀이로 돈 내기 하시구요. 명절 때만 되면 가족들이 모여서 화투판을 벌이고 돈내기를 해요. 우리 사회가 도박 공화국이라는 거예요. 너무 부끄러운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우리 대한민국이 술 공화국이라는 거예요. 세계에서 술 소비가 가장 많은 나라가 대한민국이래요. 또 우리나라는 폭력 공화국이예요. 학교 폭력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예요.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왕따 당하고 얻어맞아요. 

또 부끄럽지만 낙태 공화국이예요. 세계에서 낙태를 많이 하는 나라 중에 하나입니다. 그런가 하면 고아 수출국 1위가 또 대한민국이에요. 지금도 그런 줄 모르겠어요. 그런가 하면 우리가 또 자살공화국입니다. 세계에서 자살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어떻게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자살이 가장 많은지 이해가 안갑니다. 그런가 하면 고소 고발 공화국입니다. 툭하면 고소하고 고발합니다. 참 무서운 나라입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인구가 두 배는 더 많습니다. 우리가 5천만이라고 한다면 일본은 1억이 넘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고소 고발 건이 1년 동안 몇 만 건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고발 건은 30만 건이 넘는데요. 기분이 나쁘면 그냥 고발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기분 나쁘다고 목사 고발하지 마세요. 기분 나쁘면 고소 고발해요. 변호사들은 다 밥 먹고 살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이것은 좋은 사회가 아닙니다. 웬만한 것은 그냥 화해하고 웬만한 것은 묻어 두고 넘어가야지 기분 나쁘면 고소하고 고발해 버려요. 일본하고 비교해서 10배 이상 고소 고발이 많은 나라예요. 이 엄청난 국력을 엉뚱한 일에 낭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부끄러운 일이지요.

여러분 우리는 이제 이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의 기초 위에 세우는데 우리 모두가 앞장서고 기도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 째로 우리가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우상을 척결해야 합니다. 우상을 멀리해야 합니다. 자 오늘 우리 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이방 제단과 산당을 없애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찍고” 아멘 아사 왕이 첫 번째 한 일이 종교 개혁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 외에 다른 모든 제단을 헐어 버렸어요. 이방 제단 산당들 다 없앴어요. 주상이라는 것은 놋으로 만든 우상입니다. 주상들을 다 깨트리고 녹여 버리고 불로 태워 버렸어요. 아세라 상을 찍어 버렸어요. 

여러분 5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또 유다 모든 성읍에서 산당과 태양 상을 없애매 나라가 그 앞에서 평안함을 누리니라.” 아멘 모든 산당과 태양 상을 없앴더니 그 때에 하나님께서 평안함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척결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상은 우리의 평화를 깨트리는 것입니다. 또 우리 아사 왕을 보면 종교 개혁자로서도 참 철저한 분입니다. 우리가 읽지 않았습니다만은 15장 16절에 보면 아사왕의 어머니 마아가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태후인데 이 여인이 가증한 아세라 목상을 섬기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아사왕이 그 모친 마아가를 폐위 시켜버렸어요. 여기는 모친이라고 해서 어머니라고 나오지만 우리가 원어로 보면 그것은 할머니라는 표현입니다. 자기 할머니를 태후의 자리에서 폐위 시켜버렸어요. 

다시 말하면 자기 할아버지 르호보암의 아내인 마아가라는 여인을 폐위 시켜 버릴 정도로 자기 가족이더라도 우상 숭배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철저한 종교 개혁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평안을 얻게 되었고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상이란 무엇입니까?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여러분 옆의 분에게 물어봅시다. “당신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이예요. 물질이 될 수도 있고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자녀가 될 수도 있고 명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바로 우상이예요.

어떤 목사님이 개척한지 10년 됐는데 조금 몇 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저희 개척 교회에서 건물도 없이 월세를 내는 상가에 있는데 늘 예배당이 있는 그런 그리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청약 저축을 하나 들었습니다. 아파트라도 하나 분양 받아서 그것을 예배당을 만들 궁리를 한 것입니다. 

마침 자기 교회가 있는 옆 도시에 새로 신도시가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아파트 열풍, 부동산 열풍이 불기 시작했어요. 이 청약 저축을 넣은 지가 몇 년이 되어서 1위가 되었고 당선될 확률이 많았어요. 그랬더니 그 목사님이 예배를 드리는데 이 부동산 생각만 나더라는 거예요. 이 청약 저축만 생각 나더라는 거예요. 기도를 해도 말씀을 나누려고 해도 청약 저축 통장만 자꾸 생각나더라는 거예요. 이것만 잘 붙잡고 있으면 된다는 기대감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그것을 해지해 버리려고 은행에 몇 번 갔다가 다시 돌아서고 다시 돌아서고 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자기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예배 시간에 공개를 했데요. 자기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야 이놈의 목사야 너는 청약 저축을 의지 하냐? 나 하나님을 더 의지 하냐?’ 그러더라는 거예요. 너무 부끄러웠데요. 생각이 청약 저축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그래가지고 예배 시간에 공개한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부끄럽게도 하나님보다 이 저축 통장을 더 의지했습니다. 부동산을 더 의지했습니다. 내가 내일 은행가서 이것을 해지해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은행에 해지하러 갔대요. 해지하러 갔더니 새로 청약 저축 통장을 개설하려고 온 사람들 때문에 1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했데요. 그리고 해지하려고 했더니 은행원이 ‘아니 이 귀한 것을 왜 해지하세요?’라고 묻자 할 말이 없어서 ‘하나님이 더 큰 집을 주셨어요.’라고 말하고 돌아왔답니다.

여러분 하나님보다 당장 도움이 될 것 같은 청약 저축 통장을 더 의지한 부끄러운 목사님의 고백은 그 분만의 고백만이 아니예요. 그의 고백은 저의 고백이기도 하고 우리 모두의 고백이기도 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만약에 어느 주일 날 어느 집사님이 몇 천 만원을 십일조를 했다, 감사 헌금을 했다!! 제가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제 마음 속에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상황을 아는 재정부의 부원들은 또 얼마나 좋아할까요? ‘목사님! 누가 몇 천 만원을 헌금해서 이번 달은 걱정이 없겠어요.’ 

여러분 누가 헌금을 많이 해서 그 물질 때문에 기뻐하고 좋아한다면 물질을 더 의지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것일까요? 솔직히 타락한 목사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물질을 더 의지하는 거예요. 여러분 목회하면 종종 때로는 교인이 적어도 어느 날 헌금을 많이 해서 우리의 목표를 초월하면 솔직히 기뻐하지 않았는가? 

저는 그렇게 부인할 자격이 없습니다. 때론 교인이 줄어도 헌금이 늘면 그것을 기뻐할 때가 있었습니다. 차마 우리가 하나님을 더 의지하느냐? 물질을 더 의지하느냐?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가족 중에 누가 돈이 있는가 생각이 듭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지 이 생각이 먼저 납니까?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보다 더 먼저 찾는 것,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상을 던져 버릴 때 진정 여러분의 심령 속에 평화가 임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그것을 끊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아사왕은 평화를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아왔습니다. 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유다 사람에게 명하여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하며 그의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고’ 아멘. 

아사 왕은 온 백성에게 명령했어요. 너희는 이제 하나님을 찾으라.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순종해라. 온 백성을 하나님을 찾게 했어요.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구를 의지합니까? 오늘 아사 왕은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평화의 시작입니다. 

우리 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아사가 일찍이 유다 사람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찾았으므로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나니 우리가 이 성읍들을 건축하고 그 주위에 성곽과 망대와 문과 빗장을 만들자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께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하고 이에 그들이 성읍을 형통하게 건축하였더라.” 아멘.

우리가 우리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으므로 우리 사방에 평안을 주셨느니라. 말하세요. 하나님을 찾으니까 평화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15장 2절에 보면 아사 왕이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도 너희를 만나 주실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 성도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민족이 하나님을 찾는 민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모스 5장 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소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아모스 5장 5절에 보니까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나님을 찾아야 해요.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의 소원을 아뢰어야 해요. 그게 바로 하나님을 찾는 거예요. 

특별히 오늘 14장 9절 이하에 보면 구스 사람 세라가 남왕국 유다를 치려고 100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300대의 병거를 끌고 남왕국 유다를 공격해 왔습니다. 그런데 남왕국 유다의 병력은 50만이 조금 넘었어요. 그리고 병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2배이상의 차이가 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왕국 유다가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어떻게 이겼는지 아세요? 

아사 왕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부르짖고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11절 말씀 함께 읽어볼까요?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아멘. 

하나님 앞에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서 우리는 주 밖에는 우리를 도울 분이 하나도 없고 우리는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의지 합니다. 하나님 여러와여 우리를 도와주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니. 그렇습니다. 아사 왕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가정에 어려운 문제가 왜 없겠습니까? 여러분의 사업이나 직장에 왜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그 문제를 가지시고 하나님을 찾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구체적으로 기도하십시오. 막연하게 기도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기도하는 구체적인 제목들을 내려놓고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링컨 대통령의 책에 보면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링컨은 미국의 16대 대통령이고 우리가 존경하는 대통령입니다. 그는 흑인들을 노예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노예들을 많이 사용하는 남쪽 지역과 부쪽 지역이 전쟁을 벌입니다. 그래서 링컨은 북군을 이끌고 남군과 전쟁을 치릅니다. 그런데 사실은 남군과 북군을 비교해 보면 남군이 월등하게 우세합니다. 그리고 남군에는 리라고 하는 유명한 장군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봐도 북군이 이길 수 가 없어요. 그러나 결과는 북군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링컨은 이렇게 자서전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북군의 승리는 전적으로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우리에게 남군의 리장군 같은 명장이 없었음을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께만 더욱 매어 달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을 것dl 없었으니까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 찾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훌륭한 장군이 있었다면 기도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그들은 의지할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했어요. 그래서 북군이 승리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하나님을 찾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 권력이나 물질을 의지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임하기 위해서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 예배가 달라져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예배에 생명을 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매주일 드리는 이 예배가 정말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예배인가 하는 것입니다. 

모택동이 중국을 통치 할 때 모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체포되거나 살해당했습니다. 아주 가혹한 탄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시골에 농장을 운영하는 30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 분들이 힘을 모아 함께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이 분들은 여전히 주일이면 예배를 드립니다. 한번은 예배 때 공산당 간부가 와서 총을 빼들고 위협을 합니다. 여기에서 다시한번 예배를 드리면 옙를 드릴 때 마다 한명씩 죽일 거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주일 그들은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공산당이 총을 빼들고 들어왔습니다. 예배드리자고 선동한 사람 누구냐? 앞으로 나와라. 그랬더니 예배석에 있던 장로님일 자진해서 앞으로 나갔습니다. 장로님은 총살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주일 예배는 드려졌습니다. 

그러나 다음 주일은 그들은 또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한 사람이 희생됐습니다. 그 다음 주일 또 예배드렸고 또 한 사람이 희생됐습니다. 예배 드릴 때 마다 한 사람씩 죽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예배를 위해서 한 사람의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세 달이 자났을 때 공산당도 더 이상 할 수 없으니까 손을 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유스럽게 예배드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우리 예배를 위해서 어떤 희생을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때로 반은 졸다가 반은 딴 생각하다가 예배 시간 1시간이 지나가지 않습니까? 정말 그것이 생명을 건 예배인가 우리의 예배를 위해 한 사람이 매주 희생당한 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함부로 아무렇게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을 거예요. 이 예배가 얼마나 엄숙하고 살아있는 예배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을까요?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 예배가 아니 한국교회 예배가 이렇게 회복될 수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나눔과 섬김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많이 끌어모으기 보다는 남은 섬길 수 있는 일에 우리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앞장 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1.4 후퇴 때 우리가 압록강까지 올라가니까 중공군들이 밀어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후퇴했는데 미치 후퇴하지 못한 분들이 흥만 부두에서 배를 타고 인천이나 부산으로 온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큰 배가 정착을 했어요. 거기 타려고 하는데 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서로 타려고 아우성 하니까 미군 헌병들이 사람들을 끌어내리고 난리가 났어요. 배에 가득히 탔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못 탔습니다. 

태가 떠났을 때 부두에 남은 사람들은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었다. 그런데 그 배가 떠나는 순간 배에 있던 사람에 의해 배에 찬송가가 흘러나왔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서로 살려고 아귀 다툼하고 그랬는데 배에 탄 사람 중에 크리스천도 많이 있었어요. 그들은 찬송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찬송을 부를 일입니까? 배에 타지 못한 사람들은 다 죽어갈 것이 분명한데...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이기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손해보 더라도 우리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해요. 그리스도인들은 어찌 보면 손해 보는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의 나를 위해서 내 물질과 내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사람이 크리스천이에요. 진정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가 세워지고 하나님나라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손해 볼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손해 보는 사람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그럴 때 이 땅에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우상을 던져버리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함으로 진정한 평화를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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