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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예수 : 그 이름과 능력 (행 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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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예수 : 그 이름과 능력 (행 4:1-12)

1. 믿는 자가 많으니 (:1-4절)

4장은 특별히 핍박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핍박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난데없는 방해와 탄압과 핍박이 공권적으로 강하게 일어나게 되어졌습니다. 거기에는 3가지 부류가 나타나는데 제사장, 성전 맡은 자, 사두개인들이 일어났습니다. 

선지자는 마치 검사와 같다고 본다면 제사장은 변호사와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어디까지나 백성 편에서 하나님 앞에 화해를 청하고, 속죄를 청하고, 무죄를 청하는 입장에서 제사장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고 백성에게 올 화와 앙화와 불행을 물리쳐 주려고 하는 것이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이 제사장들이 백성을 위하기보다 오히려 백성을 더 괴롭혔고 백성에게 샬롬이라는 평화를 주어야 할텐데 오히려 불안과 부담과 괴로움과 쓰라림을 주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은 레위인 중에서 성전의 제사와 각종 의식들을 맡아서 주관하는 사람들로 끝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자들입니다. 

성전 맡은 자란? 성전을 지키고 성전을 유지해 가고 관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전에 부정한 사람이나 짐승 또는 이방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비하던 사람들로서 상당한 지위를 갖고 있었으나 예수님을 죽이고자 할 때 오른손을 들었던 사람입니다. 대개 바리새파가 그것을 더 많이 맡고 있었습니다. 

아니 성전에 무슨 실권자가 필요하겠습니까? 성전을 가지고 실권자라는 말은 어감이 절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성전 맡은 자라 해서 다른 사람들은 성전에다가 마음대로 할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 수호장들이 가로 막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성전이라면 수호장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언제든지 문이 열려서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고 언제든지 하나님과 사귈 수 있고 하나님한테 하늘의 응답을 가르침을 받는 그런 자유로운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가로 막는 일들이 있을 때, 되도록 해주는 것이 성전 맡은 자들인데 오히려 엉뚱하게 그 중대한 직무가 삐뚜로 잘못되어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전 맡은 자들은 유력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전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재력, 관리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나의 실권 다툼을 하게 되고 정치가 되어 문제들이 많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또한 사두개인이라는 사람들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나라에 정치적으로 커다란 이권이 붙어 있는 것에 대해서는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당시에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니 제사장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막았지만 오히려 더 믿는 자들이 오천 가정씩 불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공권력을 남용하고 악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탄압, 박해, 체포를 합니다. 유죄 판결을 내려서 옥에다 가두는 일들을 했습니다. 죄없이 가두고 가두어서 날이 저물었다는 이유로 그 이틀날까지 두는 불법을 자행하면서도 불법을 행한 줄 조차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들은 자들은 믿는 자로서 이제 지금 이 유대교가 하고 있는 일들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과 진리는 핍박으로는 절대로 막을 수가 없습니다. 막아지기는커녕 더욱 더 크게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자유와 신의와 공의를 가지지 않고서는 해결을 볼래야 볼 길이 없습니다. 

오늘날 이 성경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앞날에나 과거, 현재, 미래할 것 없이 이것은 성경입니다. 이 성경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경우에 갖다 들이대도 진리는 다 살길을 주고, 승리와 기쁨과 해결을 주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룩하시는 살아 계신 말씀임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 우리나라의 문제가 어지러워지거나 사회문제가 어지러워지더라도 이 사도행전 4장의 말씀만 갖다 들이댈 때 승복하면 문제는 다 은혜롭게 해결이 될 수가 있습니다. 사도들은 죄없이 이들에게 잡히게 되었습니다. 이들한테 잡혀서 산헤드린 공의회에 있는 옥에다가 가두었습니다. 

왜 이런 짓을 했습니까? 공의회는 이스라엘 한 지파에서 6명씩의 대표가 나와서 72사람이 나라와 백성을 대신한 기관입니다. 여기에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권력이 있습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최고의 형벌을 여기에서 판결을 낸 곳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바로 이 자리에 잡혔습니다. 이 자리에서 내일 아침이면 심문을 받게 되어졌습니다. 이러한 장소가 바로 행 4:1절에서부터 오늘 상고하는 말씀 속에 들어 있습니다. 왜 가르쳤느냐? 누가 가르치라고 했느냐? 이 공의회에서 너를 가르치라고 했더냐? 가르치라고도 안 했는데 왜 가르쳤느냐? 왜? 우리가 정죄해서 죽인 예수를 너희가 부활했다고 전도하고 또 다시 살아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 이와 같은 죄목을 만들어서 유죄판결을 내리는 곳이 산헤드린입니다. 그들이 싫어하는 일을 하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충만한 제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진리와 참, 하나님에게 대한 완전, 영원, 긍휼, 자비, 은총, 능력 역사하심에 대해서 지식을 온전하게 되어 더욱 담대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식별하고 분별할 수 있는 올바른 지식, 즉 진리 지식이라고 하는 것을 넘치게 가질 수 있게 되어지는 것을 성령충만이라 합니다. 

변질된 성전을 맡은 자들에게, 변질된 사역자인 제사장들에게, 변질된 목적과 방향을 끌고 나가는 바리새나 서기관이나 사두개인들을 향해서 오늘 이 주객이 전도된 참, 혹은 옛, 원천, 원줄기를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참된 선과 거짓됨을 가르는 운동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제사장이나 성전 맡은 자나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하고는 정반대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이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의 본체가 예수님이시오, 본체이신 예수님의 실체가 성령님이신데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성전 맡은 자가 되며, 제사장이 되며, 어떻게 바리새인들이 되며, 율법 학자인 서기관이 될 수가 있을 법한 일입니까? 

우리가 그들보다 못난 것 같고, 불리한 것 같아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5천 명씩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우리 주님과 동행하게 되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예수, 그 이름의 능력(:5-12절)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으로 인해서 권세자들과 충돌이 일어났어요. 그들이 사도들에게 말합니다. 7절을 보시면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했느냐” 다시 말하면 우리가 잘 살고 있는데, 너희가 무슨 권세로 누구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서 이 성을 소란하게 하고 우리를 뒤흔들어 놓느냐 하는 겁니다. 

이에 베드로가 한 마디로 말합니다. 10절입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2절도 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여러분, 오늘 성경에서 우리가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은 이름입니다. 당시의 권세자들인 관원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 대제사장들이 이름을 거론하고 있고, 베드로도 역시 이름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름에는 그 이름을 가진 당사자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그 이름에는 어떤 다른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상호 하면 목사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의 이름이 거론됩니다. 1장 21절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요? 구세주라는 뜻입니다.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누가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요?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구원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보내주신 분이고, 그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들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믿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우리는 가끔씩 아니 자주 종종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구원 이외의 것에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무슨 주술적인 효과나 부적 같은 효과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면 병마도 물러나고 귀신도 쫓겨나고, 앉은뱅이도 일어나고 죽은 자도 살아난다는 심리가 있어요. 이러한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면 병도 낫고 귀신이 쫓겨갑니다. 믿으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면 앉은뱅이도 일어나고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성경에만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땅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수 없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보세요? 우리는 가끔씩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걸고 나갈 때가 있어요. 일만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갖다가 붙입니다.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협박까지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조금만 서운하게 해 봐요. 무시당했다고 생각해 봐요. 니들이 나를 건드려. 내 안에 있는 하나님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복수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하는 것은 아닌데, 우리의 마음에 은근히 이러한 마음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왜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느냐 하면 성경에 보면 이런 일들이 나오거든요. 대표적인 구절이 누가복음 10장 17절입니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사도들이 예수의 이름을 갖다 대기만 하면 뭐든지 꼼짝 못했다는 겁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아가면 병이 낫고 귀신이 쫓겨나고 복을 받는다는 것이 틀린 말 아닙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19절과 20절입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되어서, 이루어진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므로 내 이름으로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그 때에야 비로소 기도가 응답 받게 될 것이라는 의미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우리가 잘못 사용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누가 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권세자들이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런 일을 행했느냐고 하니까 하나님이 이러한 일을 약속하셨고, 하나님이 이 일을 진행하고 계시고,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다. 얼마나 멋집니까? 지금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데요? 그림을 그려보세요. 

5절에 보세요. 유대의 관원들, 지도자들이지요. 장로들과 서기관들, 대제사장인 안나스를 비롯하여 가야바, 요한과 알렉산더가 있어요. 그 밖의 대제사장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다 참석을 했어요. 분위기가 살벌합니다. 베드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모든 사람들의 눈과 귀가 움직이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바로 전하면서 구원을 증거합니다. 그것이 12절인데,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담대한 믿음과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한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원은 반드시 예수를 믿어야만 가능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다른 길은 없습니다.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처음에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가 이렇게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가 너무 배타적이고 독선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방법을 제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진리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구원의 문제는 우리의 생각과 계획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계획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나 공자, 석가를 통해서는 안 되느냐고 반문하실 지 모르지만, 만일에 그들을 통해서 구원이 이루어진다면 그러한 구원은 사람이 만들어놓은 구원이지 진정한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수를 믿어야만 합니다. 다른 이름으로 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뜻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만 들어갈 수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화) 한 복음 전도자가 광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고 탄광 지방으로 갔습니다. 탄광에 도착하여 석탄을 채굴하는 막장으로 들어갑니다. 전도자는 휴식 시간을 이용하여 광부들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몹시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세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광부들은 세상에 그렇게 쉬운 일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전도자의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얼마 후에 광부들은 다시 일할 시간이 되어서, 전도자가 밖으로 나오려고 통로 쪽으로 나오는데 감독관을 만났습니다. 전도자가 감독관에게 하나님의 구원방법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감독관은 “사람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믿기만 하여 구원을 받는 것은 너무 싶잖아요. 사람이 무슨 행위라도 해야지요. 그건 이해할 수 없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전도자가 감독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여기에서 어떻게 밖으로 나가나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엘리베이터만 타면 됩니다.” 

전도자가 계속해서 묻습니다. “꼭대기까지 오래 걸립니까?” “아니요. 단지 몇 분이면 됩니다” “정말 쉽군요. 그런데 당신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밖으로 올라갈 수 있단 말인가요?” “그럼요. 사람들이 많은 비용을 들여서 공사를 해 놓았기 때문에 그냥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기만 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답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은 이 길 밖에 없답니다.” 

그때에 전도자가 말합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와 같은 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돌아가시는 대속의 은혜를 베풀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기만 하면 밖으로 올라가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천국에 가는 길은 이 길 밖에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루하루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가운데서 문제의 해결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해결점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그 어떤 문제도 능히 이기며 승리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므로 구원 얻고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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