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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의 복을 온전히 누리려면 (창 1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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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복을 온전히 누리려면 (창 14:17-24)

우리는 대한민국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이름은 대한민국입니다. 

어디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나라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영어 명칭은 Republic of korea입니다.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헌법에 의하면 우리나라 주인은 누굽니까? 우리입니다. 내가 주인입니다. 그래서 국민이 대통령을 뽑고 국민의 대표자들이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러나 성도는 한 차원 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나 대한민국의 국민인 우리 성도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와 우리나라, 그리고 온 우주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반듯이 행해야 할 기본의무가 있습니다. 국민이 국가에 대한 의무가 있듯이 우리 하나님 나라 백성도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중에 중요한 것은 주일 성수와 십일조입니다. 그것을 온전히 이행할 때 하나님이 베푸시는 하늘의 복을 누리는 하늘나라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그 주권을 인정하게 하기 위하여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피조물인 인간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그 선악과는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언약을 깨트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갖고 계신 주권을 범한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것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려는 것이었고 결국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죄를 지어 타락했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당신이 주권자임을 인정하시고 우리가 그분의 백성임을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선악과와 같습니다. 

“네가 네 주인이냐? 하나님이 네 주인이냐?” 은 하나님이 보시는데 마치 에덴의 선악과와 같은 계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안식일과 십일조입니다. 

안식일, 즉 오늘의 ‘주일’은 내 인생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첫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십일조’도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누가 여러분의 주인이십니까? 여러분입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당연히 행해야 할 의무인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께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중에 오늘은 특별히 아브라함이 복을 누린 비법 중에 하나인 십일조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길 축원합니다.  
 

1. 십일조의 기원은 무엇인가요?

어떤 신학자는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이기에 폐기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 십일조는 율법이 만들어지기 이전, 즉 모세 이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언제부터일까요? 모세가 태어나기 400년 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창14:19~20절을 보세요. 

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20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라함이 소돔성에 살던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에 나갔다가 승리하고 돌아오는데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납니다. 그때 살렘왕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자기의 승리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전쟁에서 얻은 것의 십일조를 멜기세덱에게 드립니다. 그는 누굽니까? 

18절을 보세요. 

18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그를 사람으로 나타나신 그리스도로 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얻은 것에서 십일조를 그분에게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를 통해 율법이 주어지기 전 400년 전 사람인 아브라함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야곱도 십일조를 드립니다. 창28:20절 이하를 보면 야곱이 외삼촌 집으로 피신하면서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고 서원기도를 드립니다.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성도 여러분! 

십일조란 어떤 것인가요? 십일조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요 또한 나를 지키시고 나의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시는 분이시며 나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이심을 인정하는 표입니다. 그러기에 이 십일조는 율법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나라 백성의 당연한 의무인 것입니다. 
 

2. 십일조를 왜 드려야 하는가?

우리가 십일조를 드려야 할 중요한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1) 하나님이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가 수고하여 재물을 얻었으나 그 모든 것을 얻게 해 주신 것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표시가 십일조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재물을 얻었을 때 자기가 일을 잘해서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은 그런 자세를 단호하고 분명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신8:17~18절입니다. 

17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벌게 되면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일할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 모든 것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잘못된 생각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재물이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인정하는 표로 십일조를 드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2)聖物(성물)이기 때문입니다. 

레27:30절을 보세요.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그렇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구별한 성물입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 중에 아홉은 우리에게 쓰도록 허락하셨고 특별히 하나, 첫 것은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소득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이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성물로 구별된 것을 내 맘대로 쓰거나, 내가 보기에 옳다고 여기는 곳에 선심 쓰듯 하면 그것은 죄악을 범하는 것입니다.  
 

3)복의 通路(통로)로 주셨습니다. 

십일조는 복을 누리는 통로입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잘 지키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성경 말3:10절에 보면 하나님이 엄청난 약속을 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십일조를 가지고 시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겠다고 하십니다.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말합니다. 

“목사님 나는 몇 십 년 동안 십일조를 드렸는데 왜 이렇게도 복이 없나요?” 

그것은 착각입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것은 헤아리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받은 복을 헤아려 보세요. 


4)하나님의 성전의 양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기 위하여 십일조를 요구하시는가요? 

말3:10절에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십일조를 통해서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는 성전에 양식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일조를 바치도록 하여서 그것으로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이 생활하도록 하였습니다. 구약의 레위인 들은 기업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농사지을 땅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성막 일에만 헌신하면서 십일조를 통해 생계를 유지토록 하셨습니다. 레18:21절을 보세요.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하나님은 십일조를 성소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들이 일한 것의 보수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는 십일조가 넘쳐야 합니다. 만약 십일조가 없을 때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가요? 그것은 가정에 양식이 떨어졌을 때 일어나는 현상과 똑 같은 것입니다. 영적인 굶주림이 있게 됩니다. 

지금 한국의 기독교는 어떠한가요?

 십일조를 바르게 드리지 않고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므로 많은 목사님들은 생계를 위하여 육적인 일터로 나가버렸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보니 미국에 한인교회 목사님들 중에 많은 분들이 이중 직업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려워집니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교회는 점점 문을 닫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양식이 떨어지면 집은 망합니다. 마찬가지로 십일조가 없으면 교회는 망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목사도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일만합니다. 

다른 직업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성도가 바친 십일조를 통해 그들의 생활을 책임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목사가 다른 육신의 사업장에서 수입을 얻을 경우라면 그것은 온전한 일이 못되는 것입니다. 
 

3. 십일조를 잘못 사용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언젠가 어떤 집사님이 제게 찾아 오셨습니다. 가정에 빚이 많아 형편이 어려워서 당분간 십일조를 못 드리니 이해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목사가 이해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십일조는 목사 것도 아니고 드리는 자의 것도 아닙니다. 그러기에 십일조를 내 형편 따라 내 맘대로 쓰는 것은 정말 주의해야 합니다.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봅니다. 

1) 십일조를 가지고 구제를 하는 경우입니다. 

이것도 무서운 죄악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지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얻은 수입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마음대로 십일조를 사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일부는 십일조로 드리고 일부는 고아원에 드린다는 것입니다. 15년 전에 우리 교회 다니시던 분이 그랬습니다. 십일조가 너무 적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일부는 고아원에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은행에 빚을 내어 쓰고는 갚을 때 일부는 은행에게 갚고 일부는 내가 보기에 고아원이 어려워 거기 주었으니 그리 알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횡령입니다. 


2) 십일조를 나누어 각종 헌금으로 나누어 드리는 경우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십일조를 일부 드리고 나머지로 감사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이 구별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자기의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십일조입니다. 그것은 의무입니다. 그러나 감사예물이나 건축헌금이나 선교헌금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그러기에 십일조를 가지고 내 맘대로 이 헌금 저 헌금 쪼개는 것도 죄악입니다. 


3) 십일조를 개척교회에 바치는 경우입니다. 

십일조는 내가 몸담고 있는 교회에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고향교회가 어렵다고 그 교회에다 바칩니다. 그러면 그것도 합당치 않은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드리는 자도 잘못 드리는 것이고 그 헌금을 받는 교회도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이렇게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고향교회가 어려워 돕고자 하는 분은 십일조를 드리면서 “이 헌금을 고향 교회에 선교헌금으로 보내졌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기록하고 송금구좌를 적어 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헌금하시면 재정부에서 의논하여 그 교회에 선교비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는 그 교회를 선교해서 좋고, 헌금을 드린 분은 십일조를 바르게 해서 좋고, 받는 교회도 복이 되는 것입니다. 


4) 아예 무시하는 경우입니다. 

많은 성도가 형편을 앞세워 십일조를 전혀 안합니다. 하나님도 자기형편을 아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십일조는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자식이 십일조를 하고 드린 용돈이라 해도 그래도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어떤 분은 드리긴 드리되 적금 떼고 이자 갚고 그리고 난 나머지에서 드립니다. 그것도 온전한 십일조가 아닙니다. 십일조는 내 소득의 십분의 일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작은 욕심에 십일조를 무시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께 아무런 죄책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한 달 전부터 준비했습니다. 고민하고 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를 강하게 압박하셨습니다. 성도님들이 듣고 싶지 않은 설교지만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일종의 선악과입니다. 그것을 내 맘대로 먹거나 건드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4.어떻게 드려야 하늘의 복을 누리게 되는가요? 

성경은 분명 복을 약속합니다. 특히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면 엄청난 복이 있음을 약속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1) 온전한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십일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정말 주의해야 할 것은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온전한 십일조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흠이 없는 것입니다. 양을 바칠 때 병들고 약한 것으로 드리면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일조는 믿음과 정성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 복이 있는 것입니다. 

“온전함”의 반대는 “흠 있음” 입니다. 우리가 드린 십일조가 정말 주님이 받으실만한 십일조인가를 살펴보셔야 합니다. 

그러기에 십일조는 많고 적음이 아니라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적게 얻었으면 적게 드리는 것입니다. 적게 드린다고 미안하게 생각할 것이 없습니다. 또 많이 드린다고 과시할 것도 없습니다. 제가 이는 목사님 한 분은 자기는 “십에 삼조”를 한다고 떠들고 다닙니다. 부흥사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십에 일조를 원하시지 십에 삼조를 하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정말 하고 싶으면 십일조를 정확하게 하고 나머지는 감사헌금으로 선교헌금으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평등합니다. 빈부 격차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습니다. 


2)잘못하면 무서운 심판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십일조를 드리도록 명하셨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십일조를 드리지 않을 때 하나님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자를 도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자기 맘대로 사용하는 것은 도적입니다. 그러기에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 어떤 심판인가요? 

말3:11절 이하를 보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나 온전한 십일조를 안 드리고 도적질하면 어떻게 될까요? 

앞에서 봉독한 말씀을 뒤집으면 됩니다. 

메뚜기가 토지소산을 먹고 포도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고 땅이 황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아무리 노력하고 수고해도 소득이 없고 설사 소득이 있어도 그 소득이 엉뚱한 것으로 지출되게 되는 것입니다. 
 

3) 인간적인 계산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수학적 공식으로 볼 때 10에 1을 빼면 반드시 9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계산 방식은 10에서 1을 빼도 9가 되지 않고, 10도 되기도 하고, 때론 그것이 때로 100이 되기도 하고 1000이 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십일조는 숫자를 분명히 뺏는데도 그 수가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보세요. 하나님이 시험해 보라 하십니다. 그러기에 단순히 수학적 계산으로 살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법칙 속에서 복을 누리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나중에 결산하면 그 수가 더 늘어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그러면 원래 계산상으로는 남아야 하는데 실제는 남는 것이 없는 것을 발견케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는 멜기세덱에게 축복을 받고 승리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여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조카 롯이 살고 있던 소돔성 왕이 나와서 말합니다. 

21절 보세요.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그러자 아브라함은 선언합니다. 

22~23절을 보세요. 

22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나는 너 때문에 부자 되었다는 소리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네게 속한 것은 하나도 갖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내가 승리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 내게 복 주시는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 내가 복을 누리는 것은 내 노력이 아닙니다. 내가 힘쓰고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채우시고 하나님이 승리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믿음으로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렇게 했더니 어떻게 되었나요?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주시는데 엄청난 복을 주십니다. 아들이 없었는데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가 거하고 있는 땅만 아니라 가나안 땅을 다 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성도 여러분! 
십일조의 복을 놓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단순히 10-1=9가 아닙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 있는 거룩한 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통해 우리 믿음으로 보시고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최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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