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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로 그 믿음 (마 17: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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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믿음 (마 17:17-20)

어떤 사람이 국제회의에 참석하였다가,생면부지의 낯선 사람과 같은 방을 쓰게 되어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보니,상대방의 인상이 썩 좋지 않게 느껴졌고 믿을 수 없는 사람처럼 생각이 되어서 저녁이 되어 잠을 자려고 해도 어딘가 불안해서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귀중품을 싸들고 호텔 프론트에 내려가 자기 물건을 맡기면서 말하기를  “아무래도 같은 방을 쓰고 있는 사람이 미덥지가 않아 가지고 왔으니 잘 보관해 주십시오” 했더니 그 호텔 직원이 웃으면서 “선생님과 같은 방을 쓰시는 분도 조금 전에 제게 똑같은 말을 하고 가셨습니다.” 말하더랍니다.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시대가 ‘불신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서로 믿고 신뢰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이웃과 이웃,친구와 친구,가족 간 형제간에도,부모 자식 간에도 믿지 못하는 믿음이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직장에서 퇴근하여 돌아오는 남편에게 가다렸다는 듯이 아내는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여보! 집에 쌀도 떨어졌고, 보일러 기름도, 찬거리도 떨어졌고 아이들 수업료, 공과금도 내야해요." 한참, 아내의 푸념섞인 말을 듣고 있던 남편이 ‘돈이 떨어졌구만’하고 한 마디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믿음이 떨어진 것입니다. 불가능도 가능케 하고, 만병을 치료하며, 어떤 상처도 회복케 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평안케 하며, 죽음 앞에서조차 초연케 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케 할 수 있는, 믿음이 떨어진 것입니다. 마치 가나의 혼인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졌듯이 말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문제의 뿌리를 감추고, 속이려 하고 드러난 문제만을 보고, 낙심하게 합니다. 우리의 문제는 쌀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돈이 떨어짐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영으로 문제에 접근하여 문제를 푸는 하나님의 식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에게,믿음 없음이 큰 문제입니다. 믿음없어도 교회 다니는 것은 가능함이 문제이지요. 어쩌면 세상 사람들의 믿음이, 우리보다 더 좋은지 모릅니다. 저들은 어디가 아플 때, 약을 먹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약을 먹이기도 하고는 이렇게 믿습니다. '약을 먹었으니(먹였으니)30분만 기다리면 낳을 것이다' 그리고는 걱정을 안 하는 것은 약에 대한 믿음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산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디가 아파 손을 얹고 기도한 후에, 30 분이 지나면 이제 병이 낳아 안 아플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기도하고도 어서 속히 약국을 다녀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온전히 믿지 못하기에 하나님을 거들어주려 합니다. 

병원엘 다녀와도 마찬가지입니다.의사 선생님 말씀을 의심 없이 믿고 삽니다. 불치의 병을 가지고 병원을 찾아, 의사 선생님이 '큰 병이라 어렵다'고 하면 의심없이 그렇게 믿고 절망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얼마든지 건강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을 믿고, 소망중에 기뻐하지 못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면서도, 어둠과 낙망중에 사는 것입니다.

문제는 믿음 없음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안에 불신앙이 문제입니다. 겉으로는 믿음으로 잘 포장되었지만 알맹이는 불신앙으로 충만합니다. 한편으로는 믿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믿지 못합니다. 기도하면 응답주고, 어떤 병에 걸렸을 지라도 하나님은 고치시며 어떤 불가능한 문제라도(산을 바다가 되게 하는)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맡기면 하나님은 못하실 일이 없으시다는 사실을 믿기도 하지만, 안 믿기도 합니다.

그래서 평안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감사하다가도, 불평하기도 합니다. 무엇이 부족할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보다 절친한 친구나 가까운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을 더 든든해합니다. 오죽하면 주님이 마지막 세대에는, '이 믿음을 가진 자를 보겠느냐'고 탄식하셨을까요?

오늘도 우리에게 이 믿음만 있다면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다는 뜻이 아니라 걱정을 안할 수 있다는 말이고 걱정이 안되는 은혜말입니다.

백화점에 가보면 없는 것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쇼핑카에 차고 넘치도록 필요한 물건들을 싣고 나오지만 어떤 사람들은 작은 봉지에 생선 한 마리만 담아 나오고 또 어떤 사람은 빈손으로 아이쇼핑만 하고 나옵니다.

어떤 차이일까요? 돈의 유무입니다. 돈이 많으면 필요한 모든 것을 살 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살 수 없습니다. 한 가지의 물건도 들고 나올 수가 없습니다. 물론 쇼핑은 가능합니다. 주님은 우리 인간의 모든 죄, 부족함, 저주, 가난, 연약함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풍성한 천국 백화점을 우리의 명의로 개설하여 주셨습니다.

그곳에는 없는 것이 없고 부족함도 없습니다. 용서도, 회복도, 치유함도, 능력도, 평안도, 기쁨도, 은혜도, 형통함도, 성공도, 부흥도, 화목함도, 부요함도, 자유함도 말입니다.

우리는 천국 백화점에서 그 믿음이라는 카드만 가지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고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모든 값을 이미 2천 년 전에 지불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이쇼핑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하고,믿음으로 얻고 믿음으로 누려야 할 하나님의 우수고객들인데 믿음이 없다면 한 가지도 내 것이 될 수 없으며 하나라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믿음을 얻기 위하여 욕심내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쌀이나 반찬을 구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넉넉히 살 수 있는 돈을 구하듯이 무엇을 먹을까, 어떻게 살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지 말고 그 모든 것들을 넉넉히 해결할 수 있는 그 믿음을 먼저 구해야 할 것입니다.

불확실성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불안하지만 온전한 믿음만 소유하면 불확실성 시대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노숙자나 병든 사람이 아니라 잔치집에 가서 굶는 사람인 것같이 교회는 열심히 다니면서도 믿음은 없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마치 백화점에 가서 아이 쇼핑만 하고는 아무 것도 사지 못하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물론 돈이 없음으로 말입니다.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며 믿음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착한 사람, 성실한 사람,의로운 사람이나 똑똑한 사람을 찾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기 때문이며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이었던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기뻐하시던 주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냥 믿음이 아니고 겨우 생명부지 하고 주일만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매우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나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리며 온전히 앙망하는 '바로 그 믿음'말입니다. 우리의 평생 기도제목이, "바로 그 믿음, 더욱 주소서" 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로 '그 믿음'을 소유한 사람을 찾는 하나님의 구인광고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세계적인 부자가 되었던 존 록펠러도,사실은 젊었을 때 큰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는 친구의 권유로 광산업에 손을 대었으나 사기를 당해서 투자한 원금을 다 날려버려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었고 광부들은 폭도로 변해 밀린 임금을 요구했습니다. 빛 독촉에 시달리던 록펠러는 나무나 괴로운 나머지 자살까지 생각했으나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믿음으로 달려온 그는 포기하지 않고 황량한 폐광에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 왔는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십시오.”

그는 계속 통곡하며 기도했는데 갑자기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성령님의 위로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때가 되면 거두리라. 때가 되면 거두리라. 더 깊이 파내려 가라.”

록펠러는 이 말씀을 듣고 폐광을 더 깊이 파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런데 폐광을 더 깊이 파내려 가는 작업을 하는 어느 날, 기대했던 금맥(金脈) 대신에 검은 물이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뜻밖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검은 물은 다름 아닌 석유였습니다.

여러분들도 록펠러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전진하여 주님께 칭찬 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록펠러씨처럼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인내하여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은 우리가 누구인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 함께 하신 분이 누구신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인간이 없는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 없는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가장 위대한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믿음을 가졌습니까? 여러분들에게 구원받는 믿음과 함께 역사하는 믿음이 있습니까? 역사하는 믿음이 있다면 어떤 종류의 역사하는 믿음이 여러분들에게 있습니까? 겨자씨만한 믿음입니까? 적은 믿음입니까? 큰 믿음입니까? 어떤 단계의 믿음입니까? 

모든 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고,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구원받는 믿음’, 하나님의 손길을 움직이는, 역사하는 믿음이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주위 환경 때문에 흔들리는 베드로와 같은 믿음이 아닌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온전히 주님을 신뢰함으로 주님께 인정받은 수로보니게 여인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 것인가요?

물질 주도적으로 사는 그 수준의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이 좀 있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하다가 어쩌다 돈이 좀 작아지고 가난하고 어려워지면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슬퍼합니다. 그의 마음과 생각 철학까지도 완전히 물질의 소유에 의해서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고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물질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지식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항상 배우고 깨닫고 공부하고 그것을 큰 기쁨으로 알고 그리고 무엇을 좀 더 알았을 때 그는 천하를 얻은 것처럼 기뻐할 뿐 아니라 지식적으로 자기만 못한 사람을 멸시하는 취미로 삽니다. 

"저것도 모르고,무식한 것" 뭐 이래가면서.유식해 보았자 별 것도 아니건만 그렇게 그 지식 그것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기분으로 살고 감정이 가는대로 삽니다. 기분파, 이것을 철학적으로 이야기하면 낭만파인간이라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고집과 오기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죽을만한 일이 있어도 억울해서 못죽습니다. 오기로,'두고보자, 내가 반드시 이길 거다'그런 집념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복수하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이 죽을 때 자신도 같이 죽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은 무엇으로 사는 것입니까?

우리 믿는 사람은 눈으로 보이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로 사는 것도 아니고 지식을 의지하는 것도 아니고 현실 상황을 훌쩍 넘어서서 오직 믿음으로 삽니다. 작은 일이던 큰 일이던 믿음의 사람은 믿음으로 합니다.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고 결정권을 그에게 맡기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믿음으로 삽니다. 성경은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말씀합니다. 이 믿음은 내 욕망,소원, 신념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입니다. 이 믿음은 미래지향적이고 현실을 넘어서고 상황을 넘어서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직 밝은 미래, 저 높은 곳을 지향하는 그 소망 속에 믿음이 있습니다.

또한 그 믿음을 가지고 현실을 봅니다. 미래를 향하여 가는 오늘의 과정도 그 깊은 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압니다. 매 속에 사랑이 있고 진노 속에 긍휼이 있으며 혼미함 속에 하나님의 오묘한 경륜이 이루어져가고 있다는 그것을 보고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이고 나아가서는 저 앞에 있는 약속을 지향합니다. 하나님의 약속,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신 약속을 믿고 오늘을 사는 것인데 약속을 믿는 믿음은 소중한 성령으로 말미암은 선물입니다. 그 믿음으로 오늘을 삽니다 .

믿음으로 살아갈 때 그는 믿기 때문에 아무 불평없이 기다리고 원망이 없습니다. 반드시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니까 여유도 있고 평안함도 있습니다.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으나 믿습니다. 믿음으로 알고 믿음으로 바라보며 평안합니다. 기다린다고 하는 믿음 하나님의 지혜와능력.하나님의 사랑과 경륜을 간절히 믿고 온유 겸손하게 기다립니다. 

또 하나는 먼저 가본 미래에 사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이 시점에 있지만 먼저 가 봅니다. 내가 지금 젊지만 늙은 상태를 생각해보고 내가 지금 여기에 있지만 저 길을 생각합니다. 그 날을 생각하며 거기서부터 오늘을 생각합니다.먼저 가 보고 그 미래에 의해서 오늘을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못듣는 말을 듣고 다른 사람이 못보는 것을 믿음으로 보고 다른 사람이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죽을 지경으로 매를 맞고도 정신을 차리면서 찬송을 불렸는데 그 신비한 기쁨은 누구도 헤아릴 수가 없으며 오직 그만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만의 지식, 그만의 기쁨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음성을 들으며 삽니다. 들려집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또한 이 믿음으로 살아갈 때에 현실 사건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습니다. 버려진 사건이 없습니다. 내가 한 실수나 성공, 잘했던 못했던 누구를 만났던 모든 사건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을 위해서,다음을 위해서 있는 일입니다.

여러분,순간순간이 다 소중한 의미를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신실함을 체험하게 되고 약속이 분할 성취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증하면서 살아갑니다. 분명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의심은 죄인데 사람들은 의심은 죄가 아닌 줄 압니다. 의심이 마음 속에 좀 지나가는 것인데 무슨 죄가 되겠나, 해서 죄인줄 몰라서 회개도 안하는데 의심이 쌓이고 쌓여서 모든 악의 근본이 됩니다.

에덴 동산에서 지은 죄가 바로 의심이라고 하는 죄이므로 의심은 원죄의 속성입니다. 의심, 불신이 씨가 되어서 모든 죄를 유발하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른 믿음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진노를 믿고 보시고 저 앞에 있는 구원을 믿고 약속을 믿고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아는 것이 있으면 아는대로 진실하시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믿고 따라가시고 보이는 것이 있으면 거기에 충성을 다하십시오. 보이지 않는 것이거든 믿고 순종하십시오. 

의인은 오직 그 믿음으로 살리라. 우리에게 회복되어야 할 그 믿음/우리에게 회복되어야 할 것이 많이 있지만,그 중에서도 이 ‘믿음’,하나님을 향한 이 ‘믿음’이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이 ‘믿음’이란 단어는 우리가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로서, 우리 크리스챤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것보다 우리의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 없는 우리의 기도를 믿음이 실리지 않은 우리의 헌금, 믿음이 사라진 우리의 헌신, 믿음 없이 드리는 우리의 예배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그 어떠한 것들보다,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믿음에 따라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믿음은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또한 믿음은 하나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를 위한 것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결국 자신에게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비결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믿음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구원받는 믿음/첫째로, 믿음에는 ‘구원받는 믿음’이 있습니다.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는데 바로 믿음으로서만 가능합니다.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외에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17절에서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시작도 과정도 마지막도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신앙은 믿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믿음을 빼놓고 신앙생활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하나님께서는 그 어떠한 것보다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에 따라,그 사람을 구원해 주십니다.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믿음이 없는 사람은 불과 유황이 타는 못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을 받으며 살아갈 것입니다(계21:8).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말씀한 것처럼,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다면 그 사람은 구원 받는 줄로 믿습니다(엡2:8).

이처럼 믿음에는‘구원받는 믿음’이 있습니다.둘째로,믿음에는 ‘역사하는 믿음’이 있는데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응답 받는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에게서 찾았던 것이 바로 이 역사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보시고 칭찬하셨고 그 믿음을 따라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주님께서는 똑똑한 자, 지혜로운 자, 경험이 많은 자속에 역사하시지 않고,믿는 자들과 더불어 일하십니다.하나님께서는 머리가 잘 돌아가는 자들과 함께 일하시지 않고,오직 믿음의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십니다.

예수님이 12제자의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경영컨설팅 전문회사에 의뢰를 했더니 제자들에 대한 평가가 다음과 같이 나왔습니다.“나사렛 예수 귀하.귀하가 의뢰한 12명의 인적 사항을 검토하고 심리 테스트 및 적성검사를 한 결과 다음과 같습니다. 한 명만을 제외하고는 다들 학력이 너무 낮고 경험도 부족합니다.그들은 귀하가 새롭게 기획하는 공동체의 간부로서 자격미달입니다. 그들은 단체 관념도 없고,협력 정신이 부족해서 경영관리자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먼저 시몬 베드로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성격이 너무 과격합니다.안드레는 한마디로 무능력자입니다.남을 지도할 사람이 못됩니다.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은 공동체의 이익을 제쳐놓고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도마는 매우 부정적이고 질문뿐이며,추진력이 별로 없습니다. 마태는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할는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및 가나안인 시몬은 사회혁명을 노리는 과격한 불온 사상에 깊이 감염되어 있습니다. 

귀하가 추천한 12명 중 그래도 긍정할만한 사람이 있다면 가룟 유다 한 사람뿐인데 그는 비교적 유능한 편입니다. 사회 지식도 풍부하고 실업인다운 예민한 감각과 판단력도 가졌으며 사교성도 있어 권력 상층부와도 잘 접촉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강한 동기가 있고,의욕도 가득 차 있습니다. 따라서 본 경영 컨설팅 전문회사는 가룟 유다 한 사람만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그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웃으라고 만든 유머이지만, 이 이야기에는 굉장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주님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머리가 잘 돌아가고,사교술이 뛰어나고,강한 성취 욕구를 중요시하는 세상의 기준과 다른 기준을 가지고 계시는데 주님의 기준은 믿음입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이 없음을 보시고 책망하시고, 믿음을 보시고 칭찬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음을 보시고 한탄하시고,ale음을 보시고 그 믿음에 따라 초자연적인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주님께서 사람들에게서 찾았던 가장 소중한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믿음의 사람을 찾으십니다. 주님께서는 2천 년 전이나 오늘날이나 똑같이 믿음의 사람을 찾으시고 그 믿음에 따라 역사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믿음의 크기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는 달라진다는 것입니다.여러분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역사하는 믿음'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려고 합니다.

1)겨자씨만한 믿음/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세 명의 핵심 멤버를 데리고 산에 올라간 변화산 사건이 나오는데 어떤 아버지가 간질로 고생하며 자주 불과 물에 쓰러지는 아들을,산밑에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9명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산밑에 남아있는 9명의 제자들은 그 아들의 병을 고쳐주지 못했습니다.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께서는 9명의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마17:17)라고 책망하신 후,귀신을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즉시 나은 것을 보고 있던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와서“우리는 왜 쫒아내지 못했습니까?”라고 묻자,예수님께서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

무슨 말입니까?제자들에게 믿음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 믿음은 겨자씨만한 믿음도 되지 않은 극히 부족한 믿음,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기에는 충분하지 않는,정말 보잘 것 없는 믿음이었습니다.그래서 역사가 일어나지 않은 것입니다.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는 비록 눈에 겨우 보이는 극히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이라 할지라도,그러한 믿음을 귀하게 보신다는 것이고 그러한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산을 옮길 수 있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큰 믿음을 요구하시고 큰 믿음을 통해 역사하시지만,그렇다고 겨자씨만한 믿음을 무시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겨자씨는 매우 작지만 그 속에는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생명이 있는 것처럼,우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눈에 보일까 말까한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의 특징은 주위 환경을 보는 특징이 있습니다.믿음이 적은 사람들은 ‘오늘은 추워서 교회 못가겠고 비가 오니까 예배에 빠지겠다’,‘날씨가 좋으니까 집에서 쉬겠다’라고 하며 주변 상황에 흔들립니다.또 믿음이 적은 사람은 사람을 보는 특징이 있습니다.‘보기 싫은 사람이 많아서 교회가기 싫다‘, ’보기만 해도 밥맛 떨어지는 누구 때문에 다른 교회로 가겠다‘,’그 친구 잘 난 척하는 것,꼴 보기 싫어 신앙생활 못하겠다‘라고 하며 흔들립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을 근심시키는 사람입니다.그러나 사람이나 환경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언제나 변함없는 욥과 같은 사람은 하나님을 안심시키는 사람입니다.여러분들은 하나님을 근심시키는 사람입니까?아니면 안심시키는 사람입니까?

여러분들이 적은 믿음의 단계에서 큰 믿음의 단계로 옮겨지기를 원한다면,주님만을 바라보고 신뢰하시기 바랍니다.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사랑의 대상입니다.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진정한 믿음의 대상이신 주님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주님을 신뢰하되,온전히 신뢰하시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큰 믿음

마태복음 15장 21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을 때,수로보니게에서 출생한 한 헬라 여인(막7:26)이 귀신들린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주님께 애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이 여인은 예수님을 따라가며,“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라고 하며 예수님께 매달렸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의 간청을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그런데도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간청을 합니다.얼마나 시끄럽게 굴었는지,제자들은 “이 여자가 우리 뒤에서 자꾸 소리를 지르는데,보내버릴까요?”라고 주님에게 건의를 하자 주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께 나아와 절을 하며 도와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주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 하다”고 냉정히 잘라 말씀하시자 여인이 포기했습니까?아닙니다.“주여 옳으신 말씀입니다.그러나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라고 하며 여전히 주님께 간청을 합니다.그러자 이 여인의 모습을 보신 주님께서는 드디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15:28).”

주님은 끝가지 포기하지 않고,매달리는 이 여인을 칭찬하셨습니다.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주님께서는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이렇게 주님으로부터 칭찬받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주님께서는 그녀가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셨고 귀신 들려 고통 받고 있는 그녀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비록 이 여인은 수로보니게 출신이었지만,비록 유대인이 아닌 헬라인이었지만,예수님께서 인정하신 ‘큰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이처럼 포기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믿음의 사람인 줄로 믿습니다.눈에는 아무 증거 아니 보여도,귀에는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손에 잡히는 것은 없어도,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주님께서 ‘큰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해 주시고 그러한 사람을 축복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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