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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을 보라 (출 1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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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보라 (출 14:1-31)

1. 3일 동안 먹지 못해 몹시 배가 고픈 호랑이가 먹이를 찾아다니다가 어설프게 쭈그리고 않아 있는 토끼를 발견하고, 그야말로 비호같이 단숨에 낚아챘습니다. 호랑이에게 잡힌 토끼라면, 놀라서 새파랗게 질려 있어야 할 토끼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는, 호랑이를 째려보면서, 무어라고 말했겠습니까? “이거 놔 임마!” 라고 했답니다. 호랑이로서는 상상도 못한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토끼를 놓아주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이었습니다. 어제의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방황하는 호랑이 앞에 또 한 마리의 토끼가 나타난 것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호랑이는 단숨에 토끼를 낚아챘습니다.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잡힌 토끼가 또 다시 말하기를 “나야 임마! 어제 그 토끼” 

이 말을 들은 호랑이가 깜짝 놀라서, 다시 자기도 모르게 토끼를 놓아주고 말았습니다. 호랑이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다시는 저 무서운 토끼를 만나지 않기를 바라고, 이제는 확실히 기억해야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호랑이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억지로 자기 굴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하루가 지나고, 호랑이는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다시 사냥할 먹잇감을 찾아서 어슬렁어슬렁 찾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토끼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이번에는 어제 그 토끼인지 아닌지를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자기를 충격에 빠트린 그 토끼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잽싸게 달려가 역시 토끼를 낚아챘습니다. 

그런데 토끼가 한 마디를 하자, 호랑이가 충격을 받아서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 말이 뭔지 아십니까? “자슥, 이미 소문 다 났어. 이거 놔!” 라고 했답니다. 

비록 어떤 사람이 웃자고 지어낸 유머이지만, 이 유머 속에 감추어진 교훈이 있습니다. 독수리는 하늘을 나르는 강한 날개가 있을 때 독수리로서의 역할을 하고, 호랑이는 어떤 동물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한 야성을 가지고 있을 때, 호랑이가 진짜 호랑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개가 꺾인 독수리는 더 이상 독수리가 아니고, 야성이 죽어버린 호랑이도 역시 더 이상 호랑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예배를 드리는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백성다운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어려움과 환란의 비바람이 우리 인생에 몰아친다고 할지라도, 순수하고 담대한 믿음, 열정적이고 심지가 굳건한 믿음으로 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애굽에 내린 마지막 재앙, 장자 죽음의 재앙을 당한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냈습니다. 요셉이 애굽 총리가 되어 자기 가족 70명을 고센 땅으로 이주하게 한 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430년 만에(창15:13-14, 출12:40)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할 당시 보행하는 장정만 60만 명 가량이었으니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수는 대략 300만 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출12:37)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지름길은 블레셋의 해안 도시 가사(Gaza)를 통하는 지중해안 길이었습니다. 

이 길은 약 4일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 아주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이 길에는 당시 철기 문화를 배경으로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던 호전적인 백성, 블레셋 족속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약 그 길로 간다면 블레셋과의 전쟁이 불가피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 생활을 바로 직전에 마감한 관계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정비가 안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전쟁을 치를 군사적인 준비 뿐 아니라 마음의 준비조차도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막강한 블레셋 군대와 맞부딪치게 되면, 쉽게 낙심하고 출애굽한 것을 후회하면서 오히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소지가 충분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6배나 먼 광야 길로 그들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나약함을 깊이 아시기 때문에 취하신 조처였습니다. 

(출13: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숙곳을 거쳐 에담에 이르게 하여 그곳에 장막을 치게 하셨습니다. 이곳은 홍해의 수에즈만 끝자락에 있는 곳입니다. 지름길인 지중해 해변길에서 동남쪽 방향인 이른바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인도하신 것입니다. 

(출13:18-20)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그들이 숙곳을 떠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갑자기 가던 길을 돌이켜 다시 지중해변 가까이 바알스본으로 인도하시고 그곳에 장막을 치게 하셨습니다.

(출14: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을 친 이곳은 막다른 홍해 길입니다. 이곳은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고 판단할 수 있는 막다른 곳이었습니다. 앞은 바다요, 양 옆은 산이며, 뒤는 사막인 그러한 사면초가의 아주 위험한 지역이었습니다. 진퇴양난의 위험한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보고, 바로가 오합지졸인 노예 민족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줄로 오판하여,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군대를 몰고 뒤에서 추격해 올 것이 분명한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군사전략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곳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갑자기 진로를 바꾸어 이스라엘 백성을 막다른 홍해 길로 인도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진퇴양난의 막다른 지역에 이른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바로로 하여금 그들을 추격하도록 유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하여 홍해가 갈라지는 대 이적 사건을 경험토록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믿음’을, 바로에게는 ‘심판’을, 열방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을 밝히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11:29에서는 이렇게 기록했던 것입니다. 

(히 11: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애굽 왕 바로는 장자 죽음의 재앙을 당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낸 후 사흘 때 되던 날, 이스라엘 백성이 완전히 출애굽 하지 않고 전날 모세가 요구했던 대로 3일간만 나가 있다가 다시 돌아와 종노릇 해주기를 은근히 바랐던 것 같았습니다.(출5:3;출12:31) 

그런데 3일이 지난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행군해 나간다는 보고를 듣자 그의 마음이 급변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낸 것을 후회하고 곧 바로 추격할 준비를 한 것입니다.

(출14:5-7)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바로가 곧 그의 병거를 갖추고 그의 백성을 데리고 갈새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니 지휘관들이 다 거느렸더라. 

바로는 열 가지 재앙 끝에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이스라엘에 대한 압제를 풀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숨 돌릴 만한 여유가 생기자 이내 그 하나님의 무서운 능력을 잊어버리고 또 다시 이스라엘을 노예화 하고자 혈안이 되었던 것입니다. 장정만 60만 명인 그 노동력을 상실했다는 것은 애굽인들에게 커다란 경제적 손실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 노동력의 유익에 대한 애착과 탐욕 때문에 이스라엘을 놓아 보낸 것을 곧 바로 후회하게 된 것입니다. 60만 노동력에 대한 바로의 탐욕과, 또한 이스라엘의 진행로가 막다른 골목으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로 인해, 바로는 곧 바로 최정예 추격대를 편성하여 추격에 나서게 됩니다. 이러한 애굽 왕 바로의 전후 생각과 판단을 미리 아시고 끝까지 완악하고 강퍅한 그들을 심판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본문 4절을 보겠습니다. 

(출14:4)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으로 나를 여호와인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앞선 10가지 재앙을 통한 여러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들에게 알리셨지만 여전히 완악하고 강퍅한 그들을 홍해 바다에 모두 수장시켜 완전한 파멸과 심판을 행하심으로 확실하게 애굽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만이 천상천하에 오직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애굽 사람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과 열방 앞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3. 이렇게 막다른 골목, 사면초가,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한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이 눈을 들어 보니 막강한 최정예 추격대가 새까맣게 몰려 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은 심히 두려워 또 다시 모세를 향해 원망불평을 퍼붓습니다. 오늘 본문 10-12절입니다.

(출14:10-12)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이스라엘 백성이 ‘심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첫째, 비록 숫자는 많지만 그들 가운데에는 싸울 수 있는 장정보다 보호받아야 할 아녀자와 노인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둘째, 싸울 수 있는 장비나 전력 면에서 상대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셋째, 한때 자기들을 부리던 애굽인들이 창, 칼, 갑옷, 투구, 방패, 전차 등 완전한 전투 장비를 갖춘 채 뽀얗게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자 오래된 노예근성으로 말미암아 금방 사기가 저하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 왕의 추격대를 보자 큰 공포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은 10가지 재앙을 애굽 땅위에 베풀어 그들로 하여금 출애굽을 가능케 하셨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극심한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과 믿음을 모두 아시는 하나님께서 갑자기 길을 돌이켜 막다른 골목으로 인도하시고, 그곳에서 ‘홍해의 기적’을 직접 목격하게 하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온전한 믿음’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욕되게 하는 불신과 원망 섞인 불평을 서슴없이 내뱉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백성이 자신을 ‘열 번이나’ 시험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민14:22)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신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므로 자신들의 믿음이 얼마나 뿌리없는 것인지를 잘 드러냈습니다. 모세를 향해 퍼부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14:11-12) 는 원망과 불평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선포한 모세와 아론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를 위한 역경보다는, 안일을 위한 굴종을 쉽사리 택하는 이스라엘의 노예근성을 잘 보여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이나 은혜와는 상관없이 일시적인 편리나 안락을 위해 노예근성에 젖은 말을 서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사사건건 원망불평을 일삼았던 그들은 결국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민수기14:21-24을 보겠습니다.

(민14:21-24)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기 위해 모세를 통하여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애굽 땅에 재앙을 내리시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고센 땅에는 구별하여 재앙이 내리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기적과 능력, 그리고 은혜를 체험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4. 이렇게 믿음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을 가지도록 하시 위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칩니다. 다시 본문 13-14절을 보겠습니다.

(출14:13-14)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제아무리 막다른 골목, 사면초가, 진퇴양난의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 하더라도 다급해하거나 결코 좌절치 말고 조용히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라는 준엄한 지시였습니다. 더 이상 불평하는 말을 하지 말고 묵묵히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앞으로 넘실대는 홍해의 바닷물이나, 뒤로 중무장한 애굽 최정예 군대를 바라보지 말고, 위로부터 오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소망하라는 뜻입니다. 

진퇴양난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 그 주어진 현실만을 바라보지 말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과 믿는 성도들은 현실과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세상의 시각으로밖에 문제를 바라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온전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약속된 축복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바로가 가까워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 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부르짖었다.” 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두려워하고 원망한 이유는 바로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의 진 가까이 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면초가, 진퇴양난의 절박한 위기 상황만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현실과 환경만을 바라보게 될 때 그들은 이렇게 원망을 쏟아 붓습니다. 현실만을 바라보니 과거가 더 낳아 보이고 그리워졌습니다.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헌신짝 버리듯 버렸습니다. 12절입니다.

(출14: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그들은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며 후회하고 원망하고 있습니다. 위기가 왔다고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옛날이 좋았는데 왜 여기까지 끌고나와 우리를 곤경에 빠트리느냐는 것입니다. 그래도 애굽의 노예로서 비참하게 살며 학대받던 그때가 좋았다는 어리석은 푸념이었습니다. 과거 애굽에서 생활을 돌아보니,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차라리 종살이라도 살아 있는게 좋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신앙생활이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옛날 세상에서의 좋았던 생활들을 돌아보고 그 때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과 생각을 가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실패하는 사람은 과거만 추억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현실과 환경만을 바라보고 약속된 가나안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성도들과도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에게 약속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지 않고 현실만을 바라보고 현실에 매여 살게 된다면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갈3:6-9) 

소돔과 고모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고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는 소금이 기둥이 되어 죽었습니다. 

(창 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뒤를 돌아보거나 현실만을 바라보는 자는 결국 구원함을 받지 못합니다.

(히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예수께서도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9:62) 

베드로는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물 위를 걷다가 파도가 일렁이는 검푸른 바다 환경을 바라보고는 아예 물에 빠져 들었습니다.(마14:22-33) 현실과 환경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전혀 안 볼 수는 없지만 내 능력이라는 틀 안에서만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단계 높여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그 약속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망할 것 같은 상황이라도, 이제는 죽었다 싶은 환경이라도 그래도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 약속은 애굽에서 그들을 건져내고 인도하여 약속의 땅으로 이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실하신 하나님이 반드시 그 약속대로 진퇴양난의 환경 가운데서도 반드시 그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현실의 위기를 이기는 힘은 약속을 바라보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 한 가지 분명히 바라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일점일획이도 틀림이 없다고 믿고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홍해가 갈라지고 바다 길을 마른 땅처럼 통과하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불평가운데 모세가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본문 15-16절입니다.

(출14:15-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 말씀은 ‘너는 어찌하여 소리질러 내게 기도만 하느냐? 더 이상 부르짖는 애원으로 기도만 하지 말고, 믿음의 행동을 담대히 취하라.’ 는 책망과 더불어 명령하시는 말씀입니다. “명령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라.” 

한 마디로 하나님을 믿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네 손에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앞에 가로막힌 홍해 바다를 갈라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어느 때까지 장막에 머물러 있으려 하느냐, 곧장 믿음을 가지고 홍해 바다를 향해 발길을 돌려 전진하라는 것입니다. 모세 네 손에 들린 지팡이가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지팡이’이가 아니더냐? 그 능력의 ‘하나님의 지팡이’를 가지고 어느 때까지 머뭇거리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가 지팡이 들고 손을 홍해 바다 위로 내밀자, 과연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출14:21)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마른 땅’ 이란 ‘사막과 같이 건조한 땅’을 말합니다. 수많은 남녀노소 및 짐승까지 별 어려움 없이 건너가기 위해서는 갈라진 바다 밑이 건조한 땅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이를 두고 시편 106:9에서는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시106:9)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 바다를 갈라지게 하고 그 가운데 마른 땅이 되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드디어 ‘홍해의 기적’을 통해 앞으로 전진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추격하던 바로의 군대도 곧 뒤따라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출14:13)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말씀이 성취되는 시간이 임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을 가지고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지만,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이나 그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없는 그야말로 무모한 행동을 취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는 파멸과 심판이 따르게 된 것입니다. 

(히11: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5. 믿음없이 원망불평을 일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가 이렇게 외칩니다. 본문 13-14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출14:13-14)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너희는 두려워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이 말씀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현실의 위기 상황을 타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맹렬한 기세로, 당대 최고의 무력으로 추격해 오고 있는 애굽의 특공대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능력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맨손으로 창을 막아내고 당대 최첨단의 병거들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내게 방법이 없는데 나의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싸우실 것이니 너희는 가만히 서서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너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만히 서서 보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13절 하반 절에 분명 “내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영히 보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눈앞에 까지 다가온 애굽 군대를 다시는 만나지 않도록 하나님이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홍해 바다를 기적처럼 열어주시고 추격해 오는 애굽 사람들을 그 바닷물 속에 수장시키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가만히 서서 바라보니 같은 홍해에서 자기들은 구원함을 받았고, 애굽 사람들은 홍해에 수장되어 죽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 여러분이 구원받게 된 것도 전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의 노력이나 능력으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딛 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면초가에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약속의 땅 미래를 향한 홍해를 건너 구원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가 갈라져 바다 가운데 마른 땅으로 걸어가 구원받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것입니다. 약속의 땅으로 가는 지름길, 지중해 해변 길에서 돌려 머나멀고 험한 광야 사막 길로 인도하시고, 다시 그 길을 돌려 막다른 골목같은 진퇴양난의 사지(死地)로 이스라엘을 내모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아십니까? 지금까지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기억하여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진퇴양난의 사지에서 홍해에 길을 여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누구도 생각하거나 기대하지 못한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홍해에 마른 땅 길을 내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절벽 앞에 있어도, 태산같은 문제가 있어도, 홍해가 있어도, 요단강이 있어도, 하나님에게만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 길이 없다고 믿을 때 우리는 원망합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상상하지 못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길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면초가에 빠진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빠져 나올 길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믿는 사람들에게 원망과 불평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쓴물을 단물로 바꾸는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도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 300만명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오병이어를 가지고 수천명을 먹이시고도 열 두 광주리를 남기시는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내 생각을 뛰어 넘어서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을 못믿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금도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은 인생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길은 높고 깊은 것입니다. 

(사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홍해를 건너야 약속의 땅으로 갈 수 있습니다. 그 파도가 넘실거리는 홍해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뒤에서 뽀얗게 먼지를 날리며 추격해오는 애굽 군대를 바라보지 말고, 내 생각을 뛰어 넘고 내가 상상할 수 없는 길을 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구절, 30-31절을 보겠습니다.

(출14:30-31)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의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더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 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은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 구원받고, 애굽 사람들은 그 홍해에 수장되어 죽은 시체들을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행하신 ‘큰 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보았으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종 모세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은 홍해를 바라보고, 뒤로 추격해오는 애굽 군대를 보았을 때, 온갖 의심과 원망 불평을 다 뱉어냈던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보고서야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심했던 제자 도마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20:27)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는 직접 자기 손가락으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손과 창에 찔리신 옆구리를 만져보고서야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요20:28)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요20:29)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은혜를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끝까지 믿음으로 따라가는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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