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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남기시겠습니까? (롬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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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남기시겠습니까? (롬 14:5-9)     

‘에비슨’ 은 미국 장로교회에서 조선으로 선교사 파송을 받았던 사람으로 오직 예수의 복음을 전하므로 조선 사람들을 하나님께 인도 해야겠다는 뜨거운 사명감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과로와 풍토병으로 몸은 쇠약해 졌고 조선에 온지 6년 만에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병원다운 병원이 한군데도 없을 때라 에비슨 선교사는 결국 병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미국에서 치료를 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에 한양에 제대로 된 현대식 병원을 세워야 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후원자를 물색하였습니다.

어느 날 기독교인들의 모임이 카네기홀에서 있다는 말을 듣고 그는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곳에서 그는 짧은 시간을 할애 받아 동방의 작은 나라 조선을 소개하면서 그곳에 병원 하나가 꼭 세워져야 하겠으니 후원해달라고 간곡히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한 젊은 사업자가 조선에 병원을 세울 수 있도록 자신이 후원을 하겠다고 약속 하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세브란스’ 였습니다. 

당시 액수로도 적지 않은 후원금을 받은 에비슨 선교사는 ‘나와 내 아내는 이 일을 위해 1년간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라고 감격하였습니다. 그 후 에비슨 선교사는 필요한 기술자들을 데리고 함께 조선으로 돌아와서 왕실의 허락을 받아 병원 건축공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공사는 2년6개월 동안 계속되었고 마침내 완공이 되자 병원의 이름을 후원자의 이름을 따라 ‘세브란스병원’ 이라 명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세브란스병원은 선교사 부부의 간절한 기도와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값지게 사용한 사람의 헌신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결과였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몸과 물질을 드리는 헌신은 반드시 아름다운 결과를 낳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위해 일하고 돈 벌고 출세하고 성공하는 것은 자기 외의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유익이나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를 위해 사는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든지 무엇이 되든지, 무엇을 가지든지 오로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주를 위해 사는 사람, 주를 위해 헌신된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사는 사람들일까요? 그에 대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먼저는 감사하며 삽니다. 6절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여기서 우리는 먹어도 감사, 안 먹어도 감사한다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감사는 말과 행위로 표현됩니다. 세계 어느 나라건 제일 많이 사용하는 일상용어는 감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는 말만으로 성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말과 함께 행위가 뒤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타난 신앙의 선진들은 입으로 감사할 뿐만 아니라 생명을 바치고 시간을 바치고 물질을 바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먹어도 감사, 못 먹어도 감사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공해도 실패해도 감사했고, 돈을 벌어도 못 벌어도 감사했습니다. 살아도 감사했고 죽으면서도 감사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였습니다. 

왕상17장을 보면 유대에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아 흉년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엘리야 선지자가 시돈지방 사르밧이라는 작은 동네에 살고 있는 과부 집을 찾아갔을 때에 배가 고프니 떡이 있거든 한 조각을 달라고 하였을 때에 과부가 말하기를 “네겐 떡이 없습니다. 있는 건 통에 한 움큼의 밀가루와 기름병에 기름이 조금 남아 있을 뿐입니다. 이제 나뭇가지를 주워다가 불을 지피고 남은 가루로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굶어 죽을 날을 기다릴 생각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들은 엘리야 선지자는 그 과부에게 “두려워 말고 가서 남은 가루로 떡을 만들어 오라‘ 고 하였습니다. 이 과부는 이렇게 굶어 죽으나 저렇게 굶어 죽으나 일반이라고 생각하고 순종하여 자기와 아들이 먹는 것보다는 엘리야를 대접하는 것이 좋다고 여겨 떡을 만들어 대접하였습니다. 그야 말로 목숨을 걸고 순종하고 바친 것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왕상17:15-16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엘리야가 그 집에 머물며 여러 날 먹었지만 가루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기름병의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감사는 드릴 때에 진정한 감사가 됩니다. 얼마 전 세계에서 20년 동안 최고의 갑부는 바로 빌 게이츠였으며 지금도 여전히 최고의 갑부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는 지금도 수십억 달러를 사회에 기부하고 있는데 사실 처음에는 자신을 밝히지 않고 몰래 하다가 언론이 추적해 그의 일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폴 멜런’ 이라는 사람은 미국 국립미술관에 7천500만 달러를 기부하였고 반 고흐, 오베르 등 유명 화가의 값으로 따지기 어려운 그림 100여 점도 함께 기증했습니다. 유서에서 드러난 그가 사회에 기부한 현금은 모두 4억5천만 달러였으며 수많은 값진 그림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내어 놓았는데 이 모든 것을 말없이 조용히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우리나라 재벌들과는 너무나도 차원이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돈 벌어 빼돌리고, 돈 벌어 자식주고 돈 벌어 호의호식하면서도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는 상관없다는 마인드입니다. 당연히 하나님도 안중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때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세상에서 호위호식을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 네가 한일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우리는 대답할 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의 간증에 노년에 신앙생활을 시작한 한 성도분이 계셨습니다. 이분이 질병으로 인해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고 회복 가운데 목사님이 심방을 가게 되었습니다. 병상에서 만난 노년의 성도님은 목사님을 보고 말씀하시기를 “목사님 제가 하나님 앞에 가서 섰을 때 네가 세상에서 뭘 하고 왔느냐 물으시면 대답 할 말이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 일이 없습니다. 이북에서 피난 내려와 험한 세월을 보내며 장사해 돈 벌고 자식들을 키웠지만 그런 건 자랑할게 못되지 않습니까? 저도 죽기 전에 한 가지라도 일을 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이 거액을 헌금으로 하나님께 드렸는데 마침 교회가 훈련원을 세우기 위해 기도하던 가운데 그분의 헌금으로 땅을 사고 훈련원을 건축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항상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네가 어떻게 무엇으로 나를 사랑했으며 감사했느냐?’ 라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습니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자식을 키웠습니다.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직장을 다니고 일을 하였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돈 벌었습니다.” 라고 대답한다면 주님은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고 물으실 것입니다. 

여러분 돈도 많이 벌어야 합니다. 사업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자녀를 잘 양육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보다 그것들이 더 소중하거나 그것들 때문에 주의 일을 소홀히 하거나 주님을 잊어버리면 결코 안 될 것입니다. 먹어도 주를 위하여 먹고, 먹지 않는 자도 주님을 위해서 먹지 아니하되 범사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로 주를 위해 헌신된 사람은 모든 것이 주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8절을 보면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 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를 위해 사는 사람들은 소유 개념이 다릅니다. 모든 것이 주의 것입니다. 생명도, 재산도, 재능도 주의 것이라고 믿는 것이 주를 위해 사는 사람들의 신앙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분들은 극단적으로 ‘주를 위해 사는 사람들은 살 권리도 없고 무일푼으로 살며 24시간 교회 안에 살아야 하는 것이냐?’ 이렇게 묻습니다.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누리고 내가 사용하고 있는 것들이지만 그 소유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늘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롬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권력도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입니다. 권력뿐입니까? 우리가 자긴 재물도, 자녀도, 가정도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맘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것 아닌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무리수를 두게 되고 그러다 보면 과욕을 부리게 됩니다. 그러다가 결국 실족하고 파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즘 삶을 비관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들이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사업에 실패하고 물질로 인해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가족과 함께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어린 자녀들까지 동반하여 죽음의 길로 내몰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내 자식이라 하더라도 생명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내 것으로 착각하고 극단적인 행동을 한 것은 너무나 불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한 청년이 성인식을 마친 후 마을에서 가장 연로한 노인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습니다. “어르신 오늘부터 저는 성인이 됐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충고를 좀 해 주십시오.” 그러자 노인은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 청년은 대답하기를 “비누와 양초를 만드는 일은 자신 있습니다.” 노인은 다시 청년의 손을 잡고 충고를 해줍니다.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거라. 

그러나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네 사업의 동업자로 모셔 들이고 수입의 10분의 1은 반드시 동업자에게 드리거라.” 청년은 이 충고를 받아들여 자신이 잘 하는 일을 시작하였고 후에 큰 사업가로 성공하였습니다. 그가 바로 ‘윌리엄 콜게이트’ 로 세계적인 치약, 비누회사의 설립자입니다.

그는 또 콜게이트 대학을 설립하여 회사의 수입을 사회에 환원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소유임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동역자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이와 같이 놀라운 복을 받게 됨을 믿으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청지기’ 란 주인이 아니지만 주인의 일을 위임받아 대신 일하도록 고용된 사람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해서도 안 되고 주인의 소유를 낭비해서도 안 됩니다. 주인의 소유를 주인이 원하는 대로 가장 효과적으로 관리, 운용해서 주인에게 최대의 만족과 최선의 결과를 제공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인이 청지기를 불러 얼마나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했는지 결과를 보고 받고 평가하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청지기 의식’ 이 있습니다. 그리고 청지기 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삶의 과정과 결과가 틀림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청지기들의 생활은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직접 책임지고, 돌보아 주신다는 보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6:31-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우선주의의 사람들은 가정에서도 경제에 규모가 있으며, 낭비가 없으며, 책임감이 강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상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주의 것이라는 근본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소유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요, 자신은 단지 평생 관리를 맡은 청지기임을 의식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런데 아직까지도 여전히 주님을 내 주인으로 인정하지 아니하고 내가 여전히 주인의 자리에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분들은 계시지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주가 되시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가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 내려와 주님께 그 자리를 내어 드리고 우리의 남은 생애를 주인 되신 주를 위하여 살고자 하는 값진 선택과 결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주를 위하여 사실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저는 과연 나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들이 얼마나 될지를 늘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 땅에서 얼마의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다고, 혹은 젊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이라고 부르신다면 가야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여러분 준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에 내 삶을 주님께 헌신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그런데 무조건 헌신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항상 주님께 감사해야합니다. 감사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바로 헌신으로 감사를 표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내가 그토록 세상에서 얻고자 했던 것들 누리고자 했던 것들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내가 살아 숨쉬고 있을 때에 하늘나라에 무엇을 쌓아둘 것인가를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것은 주님의 나라에 쌓아 둘 때 가장 안전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복음성가 가운데 ‘이제 내가 살아도’ 라는 곡이 있습니다.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이제 내가 떠나도 저 천국 가고 이제 내가 있어도 주 위해 있네 우리 예수 찬송하며 나는 가겠네 천군 천사 나팔 불며 마중 나오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말씀을 마칩니다.

여러분 정말 그렇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들의 남은 삶이 주님께 감사하되 최고의 헌신을 드리며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며 주님 앞에 섰을 때에 그래도 내가 이 땅에서 주를 위해 이러한 일을 하였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러한 한 가지 정도는 남길 수 있는 그러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기를 힘쓰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삶임을 결코 잊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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