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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눈에 보이나 건너지 말라 (신 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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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나 건너지 말라 (신 34;1-7)

어느 택시 기사의 고백입니다.

어느 날 택시에 손님이 지갑을 떨어 뜨리고 내렸습니다. 열어보니 100만원짜리 수표 8장과 10만원짜리 수표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현금까지 모두 1,260만원이었습니다. 

기사는 즉각 경찰서로 달렸습니다. 그러나 경찰서 앞에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택시에서 하루 종일 고생하여도 10만원 벌기가 힘든 데 엄청난 돈이라 하루만 더 세어 보고 경찰에 갖다 주고 싶어졌습니다. 장롱속에 감추어 두고 세어 보고 또 세어 보았습니다. 만져 보고 또 만져 보았습니다. 매일 운전하고 들어와서 만지고 또 만져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이 찾아 들었습니다. 

경찰만 보아도 자기도 모르게 떨리면서 브레이크에 발이 갔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는 말대로였습니다. 잠 자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이불을 덮고 자도 덜덜 떨리기도 하였습니다. 아내가 남편과 의논없이 목사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상담하던 중에 남편은 모든 것을 털어 놓았습니다. 지갑을 목사님에게 드렸습니다. 

경찰서에 갖다 주고 싶어도 시간적으로 늦어서 불안하였다는 것입니다. 마침 수사 과장이 그 교회 성도였기에 목사님이 그에게 전달하면서 사정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눈에는 보이나 가지지 말아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보이지만 가지지 말아야 할 것으로 지구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에덴에서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따먹지 말라.”

그러나 선악과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와가 따먹고 아담도 같이 먹었습니다. 보기만 하여야 하지 따먹으면 안 되는 것이 선악과였고 선악과로 인류 역사는 시작되었습니다. 보인다고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 이후 모세에게도 선악과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하였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 200명 가량을 인도하였습니다.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모세의 오직 목표는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하면서 목표 가나안을 잊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였습니다.

“가나안으로 가자.”

그러나 하나님께서 느보산에서 모세에게 가나안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게 하셨습니다. 모세가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현대판 선악과도 여기 저기 많이 있습니다. 모세가 위대한 영적 삶을 살아간 자취를 보면 그 흔적을 존경스럽게 보게 됩니다.
  

1. 좋은 곳이지만 살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아들을 낳으면 모조리 죽여야 했던 비극적인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부모를 잘 만나 죽지 않았습니다. 나일강 물위에 놓아 두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누나 미리암이 모세를 지켰습니다. 완전히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바로왕의 공주가 목욕을 하러 나와서 모세를 보았습니다. 궁중으로 데려다가 길렀습니다. 모세는 궁중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궁중에서 40년 살았습니다. 애급의 모든 학문을 다 익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애급의 최고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40살에 그는 궁중에서 나왔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히 11;24)  

세상에서 제일 살기 좋은 곳이지만 거절하였습니다. 좋은 곳이지만 살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을 보기만 하고 건너지 말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애급에서부터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좋은 곳이지만 살지 말고 떠나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나는 요즈음 헨리 나우웬을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Henri Jozef Machiel Nouwen. 1932-1996) 교수는 예일 대학교에서 신학적 심리학을 가르친 교수입니다. 1980년에는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남미 선교를 하였습니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그는 카나다 라르쉬 공동체 데이브레이크에 들어가서 장애인들을 돌보면서 살았습니다.

헨리 나우웬 교수님은 그 좋은 교수 자리를 버리고 장애인들의 뒷바라지를 하면서 보람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그 때 장애인 아담 아네트(Adam Arnett)를 무척 사랑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장애인이 1996년 2월 34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때 책을 한 권 저술하였습니다.

<아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탈고한 후 그 해 9월 할 일을 다 하였다는 듯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친구들이 나우웬에게 말했습니다.

“자네는 지금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학에서 수많은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면 큰 일을 할 수 있는 데 왜 이런 곳에 있는가?”

이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다. 더 체계적으로 일할 수 있다. 더 큰 섬김으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과연 주님께 어떻게 살아 드려야 할 것인가 고민하였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의 원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였다.”

대학교수가 되는 길은 경쟁이 심한 길입니다. 그러나 대학 교수를 버리고 장애인을 도우러 가는 길은 경쟁자가 한 명도 없는 길이었습니다. 좋은 곳을 떠난 모세처럼 좋은 곳을 떠나 봉사로 살다가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가장 좋은 곳이지만 그 곳에서 살지 않고 버린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천국을 떠나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의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가를 알려주는 유머가 있습니다. 어느 부자가 평생 모은 금은 패물을 한 자루 짊어지고 천국으로 들어 가려고 하였습니다. 천국 문에서 힘들게 한 자루 메고 온 부자에게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부자가 대답하였습니다.

“금은 패물입니다.”

천국문에 있던 베드로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런 것들은 천국에서는 도로 포장 재료입니다.”

그런 천국을 떠나 이 땅에 오셔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는 데 머리 둘 곳이 없이 사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모세는 좋은 곳 궁중이지만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모세를 크게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 장로님들과 함께 월남 관광하였던 것이 늘 생각납니다. 너무나 은혜로웠고 유익하였고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월남 대통령 호치민 궁을 가보고 놀랐습니다. 평생 옷이 세벌이었습니다. 평상복 한 벌, 군대를 시찰할 때 입었던 군복 한 벌, 그리고 대통령으로서 예식을 행할 때 입었던 예복 한 벌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지방에 출장갈 때에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습니다. 사람들에게 신경쓰게 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형이 죽었습니다. 장례식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의 시간은 공적인 시간인 데 사적으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누릴 수 있으나 누리지 않은 분입니다. 대통령궁이 헐어도 고치지 못 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출장간 틈을 이용하여 수리하곤 하였습니다. 정말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나도 유명한 목사가 아니라 존경받는 목사가 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모세는도 좋은 곳이지만 궁중에서 살지 않고 포기하였습니다. 


2. 맛있는 것이지만 먹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맛있는 음식이지만 금한 것이 있습니다. 만나만 먹으며, 부추 마늘 파 수박은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 배경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나왔습니다. 물이 없었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200만명입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아침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 주셨습니다. 하루 하루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만나만 먹기 지루하였습니다. 한 가지 음식을 40년을 먹기란 고역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부흥강사님을 모셨습니다. 
“음식을 어떻게 대접할가요?” 그의 대답은 하나였습니다.
“아무 것이나 좋습니다. 그러나 매끼 다른 것으로 주세요.”

3일 식사도 같은 음식이 싫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추 마늘 파 외 수박이 먹고 싶다고 아우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먹으려고 하다 보면 오아시스에 머믈러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200만명이 먹게 농사를 지으려면 집단 농장이 됩니다. 엄청난 시설을 하여야 합니다. 그들은 떠나지 못 하고 머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곳에 예수님을 보내어 온 세상을 구원시키시려고 하시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었습니다.

모세는 맛있는 것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맛을 찾아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기도 합니다. 산속이고 바닷가이든지 맛있는 집은 손님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였습니다. 모세는 먹고 싶은 음식을 거절하였습니다.  

훈련받은 말이나 훈련받은 개는 주인이 먹으라고 하기 전에는 결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훈련받은 개를 3일 굶깁니다. 그리고 그 앞에 맛있는 고기 덩어리를 던집니다. 그러면 개는 가만히 보고만 있습니다. 주인 눈치만 봅니다. 주인이 “먹어!”라는 명령을 기다립니다. 

훈련받는 동물도 아무 것이나 먹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술 담배 그리고 마약을 금하여야 합니다. 호화스러운 음식도 절제하여야 합니다.

모세는 좋은 곳이지만 살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좋은 것이지만 먹지 않았습니다. 금욕할 줄 알았습니다.
  

3. 가고 싶은 곳이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모세의 평생 소원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느보산에서 가나안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저도 느보산에서 가나안을 내려다 본 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모세는 120세인데 눈의 기력이 쇠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입니다. 위에 단부터 밑에 브엘쉐바까지 240km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모세는 그 전체를 느보산에서 내려다 보았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가고 싶었던 가나안 땅을 통째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눈으로 보고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습니다.
좋은 곳이지만 하나님이 금하시는 곳이 있습니다. 편한대로 살지 말고 필요한 대로 살아야 합니다. 가고 싶은 곳에 가지 말고 가야할 곳에 가야 합니다.

모세는 오직 가나안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기에 가나안을 보기만 하고 가지는 못 하였습니다.  

한국 사람으로서 김 연아를 알지 못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계적으로도 김 연아는 인기절정입니다. 그런데 빙상에서 그가 쇼를 하는 시간은 겨우 4분 9초입니다. 빙판위에서 4분 9초 연기하려고 14년 동안 하루 5시간 이상 연습을 하였습니다. 한번 공중에서 돌면 세바퀴 도는 묘기를 합니다. 한 바퀴 도는 연습을 하는 데 엉덩방아를 평균 1000번 찧어야 합니다. 그리고 연습비는 10억이 듭니다. 3바퀴니까 30억 가량 들었다는 것입니다.
김연아는 평생을 스케이트로 살았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자기 전문 분야에 10,000 시간 이상을 투자하였습니다. 오직 그것만 생각하였습니다. 먹을 것을 다 먹지 않았습니다. 가고 싶은 곳에 다 가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지 않았습니다. 절제하였습니다. 가고 싶은 곳이라고 다 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1-3)

모세는 평생을 가나안을 품고 살았습니다.
그 가나안을 앞에 두고 보기만 하고 가지 못 하였습니다. 그 심정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내가 번역하여 출판한 미드라쉬에 모세 이야기가 재미있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천사를 통해 하나님이 자기를 데려가시려는 계획을 알았습니다.

모세는 원을 그려놓고 그 원 밖으로 나가지 않고 515 번 기도했습니다. 하늘에 모세의 기도소리가 상달되자 하늘에서는 비상에 걸렸습니다. 하나님 귀에 모세의 기도가 들리지 않도록 문을 잠그는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가 그렇게 간절하게 그리고 그렇게 끈기있게 기도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천사들에게 모세를 데려오라고 했더니 천사들은 그렇게 기도하는 모세를 데려올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하나님은 모세와 타협을 하셨습니다.
“네 장례에 내가 꼭 참석할 터이니 너는 내게 오기를 두려워 말아라.”

모세는 하나님의 이 약속을 받고 기도를 포기하였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접었습니다.

얼마 전에 어느 교회 부흥회에 갔습니다.

손목이 없는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말하는 데 기가막힌 이야기였습니다. 목사가 되기 전에 사업가였습니다. 잘 나가는 유능한 사업가였습니다. 가정도 사업도 모두가 원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노름을 좋아 하였습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빌리면 화투장이 손에 착착 붙어 다녔다고 합니다.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기 도박단에 걸렸습니다. 재산을 모두 잃었습니다. 사업터도 다 날렸습니다. 하루 아침에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아내가 말려도 말려도 듣지 않다가 결국은 거지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견디다 못 해 두 자녀와 남편을 두고 가출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술을 정신없이 퍼마셨습니다.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도끼로 자기 한쪽 손목을 잘라 버렸습니다.

“이 손이 내 인생을 망쳤다. 다시는 노름을 하지 않으리라.”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손이 잘못 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보자 마음을 지켜야 했습니다. 인생이 비참하였습니다. 자살시도를 하였습니다. 이 때 전도를 받아 교회 다니게 되었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신학교에 지원하였습니다. 목사가 되었습니다.

손목을 자를 정도의 결심도 마음을 잡지 못 하였지만 성령의 능력은 온통 자기를 사로 잡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좋아 보이는 곳이 보여도 가지 말아야 합니다. 노름장이나 유흥장에는 아예 가지 말아야 합니다.

모세는 가나안을 평생 그리면서도 보면서도 가지 않았습니다. 금할 것을 엄격히 금하였습니다.
결국 모세는 느보산위에서 죽었습니다. 
모세 죽음은 세 가지 신비를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신비 묘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게 기라성같은 사람의 묘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치룬 장례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신 34;5-6)  

모세같이 훌륭한 사람의 묘를 오늘까지 모른다는 것은 신비중에 신비입니다. 만일 모세 묘가 있다면 성지 순례 코스가 될 것입니다. 유명한 자리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 묘도 성지순례중에 성지 순례지입니다.  

“오늘까지”   

이 말에 대한 해석이 분명합니다. 오늘까지 아는 모세묘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 때도 몰랐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신비 120세의 신비

모세 당시 광야는 모든 면에서 살기 어려웠습니다. 환경이 열악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주 강건한 사람이 80살정도까지 살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당시 수명에 대하여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편 90편은 모세가 쓴 시편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 90‘16)  

보통 70,80 살 때 모세는 120살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눈의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여 망원경으로 보는 것처럼 가나안 땅 240 km를 한 눈에 다 보았습니다.
  

세 번째 신비 시체의 신비

모세 시체에 대하여 성경은 언급하여 주고 있습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유 9)  

<모세 승천기>라는 외경 이야기를 유다가 인용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모세가 죽었습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를 장례 지캐려고 할 때 마귀가 와서 시체를 달라고 하였습니다. 사망 권세는 자기의 권세이기에 시신은 마귀 자기들의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모세의 시체를 놓고 마귀와 천사장 미가엘이 싸웠습니다. 서로 차지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천사장이 모세 시체를 장례지냈습니다. 그래서 모세 장례는 하나님이 치루시게 되는 신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을 보고도 가지 못 하였습니다. 가고 싶은 곳에 다 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나는 청장년 30여명을 이끌고 우리 선교지에 갔습니다. 3박 4일 일정이었습니다. 교회를 건축한 곳마다 다니면서 봉헌 예배를 드리는 빡빡한 일정이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반 나절은 골프 대회 시간을 넣었습니다. 그 곳은 아주 싼 가격으로 골프를 치기에 보통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골프장에 안 가겠습니다.”
“왜요?”
“골프의 장점은 재미있다입니다. 단점은 너무 재미있다입니다. 한번도 골프를 친 적이 없는 데 이 곳에서 골프 비용이 싸다고 골프를 치면 한국에 가서도 치고 싶을 것입니다. 아예 안 가겠습니다.”

그리고 혼자 호텔에 남아서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그래서 94권 책이 출판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세는 좋은 곳을 보고 살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좋은 음식을 알고도 먹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평생 가고 싶은 곳도 가지 않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선에서 모든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돈을 바라 보고 돈은 갖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행복을 바라보고 행복은 갖지 않고 불행을 택할 때도 있어야 합니다.
가나안은 바라보고 가나안으로 가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강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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