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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마 13: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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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마 13:24-30)

우리는 씨 뿌리는 비유를 배웠다. 그 비유에서 씨는 천국 말씀이다. 씨가 말씀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좋은 씨는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다. 알곡 곡식이 된 씨는 천국의 아들들임을 뜻한다. 

그러면 가라지는 무엇인가? 가라지는 하나님 나라에서 필요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성과 거룩성과 보편성을 깨뜨리고 혼돈하게 만드는 자다. 즉 가라지는 반대자, 파괴자, 하나님 나라가 축소되고 변형되게 만드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다. 그러니까 씨와 가라지는 모두 사람들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과 그 나라를 공격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쓰러뜨리려는 반대자들이다. 

이 비유의 초점은 알곡이 되는 씨와 알곡이 영그는 것을 방해하는 가라지를 통해 세상이라는 밭은 대결의 상태, 긴장의 상태에 있다는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다. 맡의 의미를 통해 하나님 나라에 부름 받은 공동체인 교회도 하나님 나라의 긴장과 대결을 똑같이 경험한다. 누구도 교회가 더럽혀지고 교회가 혼합되고 교회가 깨어져 나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교회가 교회의 하나됨을 잃고 거룩성을 상실하고 불평하고 다투는 모습이 되어 교회가 교회 되지 못한다. 이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1. 원수의 도전 때문이다. (마13:25)

마13:25中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하나님 나라는 곡식만 자란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의 꿈이다. 그런데 곡식만 자라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밭에 가라지가 자란다. 

마13:39을 보면 원수가 와서 가라지를 곡식에다가 덧뿌린 것이다. 원수가 문제다. 하나님 나라를 파괴하려는 원수는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 하나님의 하는 일을 시기하여 가라지를 알곡 위에 덧뿌리는 것이다.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다. 그래서 천국이려니 생각한 교회에 다니다보면 전혀 뜻밖의 가라지가 알곡 속에 섞여 있음을 경험한다. 그래서 알곡과 가라지가 부딪히며 공존하는 긴장이 치열함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교회가 교회 도지 못하고 신음하는 이유는 원수 마귀 때문이다. 


2. 사람들이 깨어 있지 않아서다. (마13;25上)

마13:25上을 보라.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린 때가 나온다. 즉 사람들이 잘 때에 뿌린다. 원수 마귀는 항상 아무도 모르게 움직여서 일을 한다. 주님도 왼손이 하는 일, 오른손이 모르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원수 마귀는 죄 짓게 하고 분열시키고 평화를 깨뜨리고 문제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가운데서 움직인다. 죄를 짓는 일, 반역하는 일, 은혜를 거역하는 일 등 이런 일은 사람들의 눈에 보이면 누가 했는지 금방 알게 된다. 그래서 비난을 받게 되므로 마귀는 아무도 모르게 움직이고 사람들이 잘 때에 시도한다. 

요일3: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라고 한 것처럼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을 보라. 공개적으로 하는 자들이 없다. 은밀하게 한다. 어두움에 있을수록, 보이지 않을수록, 들키지 않는다는 순간에 시도한다. 그러기에 교회에서 몰래 몰래 어디 다니고, 몰래 몰래 쉬쉬하며 그룹을 지어 다니는 것은 악마적인 것이다. 바라보고 있는 자에게 떳떳해야 한다. 또 지키고 깨어 있으면 원수는 활동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는 자들이 많은 교회는 원수가 맘대로 활동한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기도와 말씀에 깨어 있어야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먹잇감을 찾는 원수 대적 마귀를 막아낼 수 있다. 신앙 생활, 교회 생활, 봉사 생활에 깨어 있자.


3. 서두르지 말고 기다려라. (마13:29)

곡식 밭의 종들은 가라지가 생긴 연유를 알았다. 곡식 밭의 주인되신 하나님이 심은 것이 아니고 원수 마귀의 장난임을 알았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의 밭에 필요치 않은 이 가라지를 뽑아야 하는가? 나부터도 다 뽑아버리고 알곡 교인이 가득한 교회를 만들고 싶다. 그러나 마13:29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종들은 지금이 가라지에 손을 대야 할 때라고 생각하지만 주인은 가만 두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긴장은 이 땅에서 현실적으로 계속되는 현상이다. 그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 기다린다고 할 때 언제가 되어야 이 대결의 긴장이 해소되는가? 추수 때이다. 마13:30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우리는 이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 지금 가라지를 내버려두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① 알곡이 다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 알곡을 가라지라고 보고 가라지를 알곡으로 볼 수 있는 무지함과 불완전한 제한성을 가지고 있다. 교회에서 우리는 분명 알곡 성도와 가라지 성도가 섞여 있음을 보고 안다. 하지만 지금 가라지 소탕을 하려고 할 때 가라지처럼 보이는 사람이 알고 일 수 있다. 광명한 천사로 위장한 알곡은 사탄의 부하인데 알곡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므로 가라지를 두는 것을 가라지를 위해서가 아니다. 하나님은 결국 알곡 한 톨을 위해서 가라지를 두는 것이다.

② 심판하실 이는 우리가 아니다.

우리는 알곡 성도가 되기 위해 긴장을 이기고 도전을 이기고 잘 열매 맺어야 할 자들이다. 낫을 들고 거두어 갈 심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보내시는 천사들이다. 마13:39 “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천사들이 추수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내가 심판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③ 추수가 가까워지면 모두가 저절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시간이 되면 알곡은 알곡으로 나타난다. 가라지는 추수 때에 가라지로 나타난다. 처음은 비슷하고 유사하다. 처음은 벼를 심고 피가 자라면 모양도 색도 비슷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구별된다. 하나님 나라의 알곡 신자인지, 원수 마귀가 섞은 가라지 신자인지 공개된다. 그러므로 서두르지 말자. 

열심 당원은 지금 당장 해치우려 하였다. 요한, 야고보도 이방인 가라지를 불을 내려 태워버리도록 하자고 하였다. 허나 이런 시도를 내려놓고 추수 때인 세상 끝을 기다려야 한다. 이것을 알고 있는 바울은 고전4:5에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하였다. 추수 때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다.

④ 지금이 거듭남의 때이기 때문이다.

어둠의 자식과 빛의 아들들, 가라지와 알곡들, 이 두 종류의 삶은 거듭남 앞에 놓여 있고 타락 앞에 놓여 있다. 사람의 방법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주의 영으로 변화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지금은 아직 기회의 때이다. 회개의 기회, 변화의 기회, 종자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지는 때다. 그러므로 기다려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이 비유를 읽으면서 우리의 할 일을 바로 알자. 

첫째, 이 비유를 가르쳐야 한다.

마13:28을 보면 주인이 종들의 무지를 가르친다.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이처럼 우리는 이 비유를 가지고 교회의 불완전한 이유를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팽팽한 대치 국면의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여야 한다. 교회가 어떤 경우에 거룩하지 못하고 교회가 더 분열하고 분쟁하는 소리가 있다 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가라지의 비유를 모르는 사람은 교회만큼은 특별한 곳인줄 알았다고 불평한다. 그러면서 교회에 나오기를 그만 둔다. 그러나 이 비유를 가르쳤으면 교회의 현실을 알텐데 안타깝다. 밭에는 곡식과 가라지가 섞여 있는 이상 대결의 소리가 난다. 이런 면을 정확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시험을 막는 예방 백신이 된다.

둘째, 자신이 누구인지 물어야 한다.

성도는 이 시대에 서 있는 교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신자됨을 물어야 한다. ‘나는 정말 곳간에 들어가고도 남는 알곡 신자인가?, 진짜 신자인가?’, ‘아니면 추수 때 거둬들이려, 불사르도록 던져지는 가라지 신자인가?’ 

마13:38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라고 하였다. 하나님 나라에 사랑으로 자라지 못하고 언제나 하나님 나라에 도전하고 반대하는 사람으로 드러난다면 우리는 심각하게 자신의 영혼의 미래를 내다보아야 한다. 불에 던져 넣을 자인지, 아버지 나라에서 해같이 빛날 것인지를 보아야 한다. (마13:42~43)

셋째, 알곡 신자가 가득한 교회를 세워가는 결심을 하자.

교회는 영적 대치와 긴장 속에 있다.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교회는 어떤 사람이 많으냐에 따라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알곡 신자가 가득한 교회로 세워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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