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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물고기를 모는 그물 비유 (마 13: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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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모는 그물 비유 (마 13:47-50)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가 쌍둥이 비유고 보화와 진주의 비유가 쌍둥이 비유라면 그물 비유도 쌍둥이 비유다. 어떤 비유와 한 쌍을 이루는 쌍둥이일까? 그것은 가라지 비유와 한 쌍을 이루는 비유다. 내용상으로 따로 따로 기록되어져 다른 쌍둥이 비유처럼 같이 나오지는 않지만 가라지 비유와 그물 비유는 그 비유가 지닌 주제가 너무나도 유사하다. 

가라지 비유의 결론은 풀무불, 이를 갈게 됨이라면 그물의 비유도 결론은 풀무불, 이를 갈게 되리라로 되어 있다. 너무나도 똑같은 결론인 것이다. 그러면 이 그물 비유는 가라지 비유와 더불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하나님 나라는 지금 세상 나라와 공존하지만 세상 끝날에는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천국은 심판을 통해서 구별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는 구별이다. 가라지 비유에서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이어서 추수 때, 세상 끝날에 구별하여 잘라내듯 의인과 악인은 따로 나누어진다. 부모 자식 간이기에, 같은 친구이기에, 애인 사이이기에 아무리 같이 있어 보려 하여도 누구도 이 천사의 구별함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그물 비유가 가르쳐 주는 메시지는 이렇다.

1.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 - 모두가 모이는 곳이다. (마13:47)

마13:47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바다는 넓다. 그 바다에 그물을 치면 각종 물고기가 모여 든다. 물고기는 다양하다. 멋진 물고기, 추한 물고기, 먹을 수 있는 물고기, 먹을 수 없는 물고기, 시장에 내면 돈이 되는 물고기, 거저 주어도 가져가지도 않는 물고기 등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그 모든 고기들이 그물 안으로 모인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응답하는 부름 받은 공동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가장 우선으로 하는 일이 있다. 바다에 그물을 치고 고기를 모으듯 교회가 세워진 곳마다 교회는 온갖 종류의 사람을 모은다. 그물 속에도 물고기가 어떠한지 알 수 없듯이 이 사람, 저 사람을 모은다. 교회는 일단 사람을 모을 때 구별하지 않는다. 선교의 구물을 던져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만민의 사람들이 들어오게 모으는 일은 선교의 제 1단계 사역이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선교의 처음 사역은 사람을 불러 모으는 사역이다. 문맹인이든, 장애인이든, 상류층이든, 하류층이든 상관없이 모으는 나팔을 분다. 

큰 잔치 비유를 보라. 마22:1~14을 보면 사거리 길가에 나가서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대로 사람을 모두 데려온다. 그래서 혼인 잔치에 사람이 가득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는 모두를 모이게 하는 곳이다. 바다에 치는 그물과도 같다. 그래서 천국의 일꾼은 어부다. 


2. 하나님 나라의 과정성 - 때가 될 때까지 심판이 숨겨져 있다. (마13;48)

마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그물을 치고 고기를 모을 때 고기가 채워지는 그때까지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다. 바다에 친 그물은 그대로 놓여 있고 아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밀물과 썰물이 흘러지나간다. 그물 안에 모여 있는 고기들은 심판을 모른 체 유유히 헤엄치며 바다를 즐긴다.

이 땅의 사람들도 때가 될 때까지는 주어진 삶을 즐긴다. 일상의 삶이 쳇바퀴 돌 듯 돌아가고 심판은 숨겨져 있기에 유유히 삶을 즐기며 산다. 고기는 어부가 그물을 물가로 끌어내는 날이 언제인지 알 턱이 없다. 삶에 취하여 사는 사람들은 심판을 위해 천사들 앞에 서야 되는 것을 알 리가 없다. 때가 될 때까지 하나님 나라는 은닉되어 있다. 아니 일어날 심판은 숨겨져 있다. 사람들은 노아 심판 때에 먹고 마시고 즐긴다. 장가를 가고 시집을 가며 일상에 빠져 있었듯이 세상에 취하여 산다. 은닉되어 있어서 그렇다. 

그런데 특별히 장래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자들이 있다. 그 숨겨진 심판의 날을 알고 싶어 어쩔 줄을 모른다. 그 호기심은 신앙의 동기가 되고 신앙의 안테나가 되지만 호기심이 커도 날과 그 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물에 모여진 고기가 어부의 마음을 모른다. 그물을 물가로 끌어내는 어부의 결심의 때를 알 수 없는 것과 똑같다. 어부만이 그물을 끌어낼 때를 아는 것이지 그물 안의 고기는 장래 일을 모른다. 

하나님 나라는 심판을 숨겨 둔 나라다. 성도는 교회 생활을 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도래하는 심판을 믿고 준비해야 할 일이지 그대 그 시를 알려하지 말아라. 마24:36을 보면 연, 월, 시는 아버지만이 아실 뿐이다. 천사들도 모른다. 아들도 모른다. 명령하면 천사가 움직이는 것 뿐이지 숨겨져 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사람은 다 섞여 있다.


3.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 - 모든 것을 두 종류로 구별한다. (마13:48下)

마13:48下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심판이 오기 전에는 모두가 모여 있다. 모두가 섞여 있다. 그러나 심판이 시작되면 구별된다. 고기를 잡는 어부가 그물 속에 있는 고기를 구별할 때 갈라놓는다. 즉 좋은 것, 못된 것으로 명확하게 구별 짓는다. 여기도 아니고 저기도 아닌 중간 지대는 없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심판은 두 부류의 구별로 나누어진다. 

마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라고 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좋은 것, 필요한 것, 유용한 부류에 속하여 그릇에 담겨지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어부의 손에 모아졌는데 아무 짝에 쓸모없어 내버려지는 인생이 되지 말아야 한다. 

더욱 기억해야 할 것은 가라지 비유가 땅의 추수 때에 대한 심판이라면 그물 비유는 바다의 추수에 대한 비유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심판이 세상의 심판을 말하지 않고 교회 안의 심판을 말한다는 점이다. 성경을 보라. 바다의 모든 고기를 구별하는가? 아니다. 천국은 그물을 바다에 치고 물고기를 모아서 그물 속에 둔다. 즉 그물 속에 들어와 잡힌 고기를 구분한다는 것이 이 비유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세상의 심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세상은 심판의 대상이다. 다만 그물 안에 들어온 물고기를 모아서 물고기를 구별하듯 교회 안에 들어온 이들은 의인에서 악인을 구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 안에 있다고 안심해서는 안된다.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는 것이 세상 끝의 모습이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의인이 되었다. 예수님 때문에 추악하고 더러운 죄에서 벗어나 의로운 사람으로 일컬음을 받았다. 다 교인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다. 구원의 감격으로 기도도 하고 예배도 드리고 헌금도 하고 아멘도 한다. 

하지만 의인 중에서 구별해 내는 날에 악인이 갈라서게 되고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눠지게 된다. 그래서 천국에 갈 때 두 번 놀란다는 속설이 있다. 그것은 꼭 와야 될 사람이 오지 않아서 놀라고 또 하나는 반드시 오지 않아야 될 사람이 와 있어서 놀란다는 것이다. 살인자가 예수를 잘 믿어 천국에 와 있고 장로님이 잘 믿었는데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천국의 실상이다. 

악인은 의인에게서 나눠지기에 피할 수가 없다. 지금은 다같이 교인이기에, 집사이기에, 착한 일을 했기에 의인인 것 같다. 허나 떨어져 나가야 한다. 구별은 정확하다. 불확실하지 않다.


4.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 거듭남으로 들어간다. (마13:49)

마13:49~50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두려운 일이다. 허나 천사들이 와서 구별한다는 이 말은 큰 교훈을 준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모여 있을 때 사람들이 서로 좋은 사람, 못된 사람이라고 심판자가 되어 상대방을 정죄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약4:11~12참고) 

왜냐하면 두 부류의 그룹으로 구별하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고 천사다. 그 천사는 인자가 보내는 천사다.(마13:41) 천사에 의해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교인들이 스스로 심판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은 자신이 심판자가 되는 것이다. 교인이 교인을 심판할 수 없다. 교인이 목회자를 심판할 수 없다. 목회자가 성도를 심판할 수 없다. 이는 보내심을 받은 천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좋은 씨와 가라지 비유에서 본 것처럼 의인들의 영광, 의인들이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기 위해 살아야 하는 자들이다. 

이런 사실을 몰랐다면 그물 비유를 통해 의인에 속하려는 각오를 더 분명히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섞여 있어도 의인으로, 악인으로 드러날 날이 오는 것이다. 심판의 날에 버려지지 않는 천국의 아들들, 의인들이 되라. 

좋은 씨와 가라지의 비유, 그물치는 비유, 이 두 쌍둥이 비유는 선교의 이유가 만민들로 하여금 심판을 준비하는데 있음을 천명하고 있다. 

이제 묻습니다. 무엇이 그 날을 준비하는 것일까? 가라지는 가라지고 나쁜 고기는 나쁜 고기다. 가라지가 어떻게 알곡이 되고 나쁜 고기가 어떻게 좋은 고기가 되는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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