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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사로야 나오라 (겔 37:1-14, 롬 8:6-11, 요 11: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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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로야 나오라 (겔 37:1-14, 롬 8:6-11, 요 11:40-44)

1. 오래전에 당시 「상주읍교회」에 “나사로”라고 불리는 중년의 신자한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장애인일뿐만아니라 아무도 돌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상주읍교회」를 비롯한 그 지역교인들이 그분을 각별히 돌보아주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한다면 당시 상주지방의 교인들은 하나님 앞에 가서 이런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너는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런 과분한 말씀을 들은 상주교인들은 깜짝 놀라서 하나님께 되물었을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언제 주님께 그런 일을 해드렸습니까?” 그러면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을 것입니다. “여기 지극히 작은 자, 나사로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어떤 분이 하나님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주여, 선하신 주님이 다스리시는 이 땅에 어찌하여 이렇게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그랬더니 주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을 테스트하기 위함이니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내 가정에 어려운 가족이 있습니다. 내 이웃 가운데 어려운 분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 어려운 교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어떻게 대하십니까? 나중에 주님 앞에 설 때 “너는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구나....내가 목마를 때 마시게 하지 않았구나.....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지 않았구나....내가 헐벗었을 때 옷을 입히지 않았구나....내가 병들었을 때 돌보지 않았구나....내가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지 않았구나.” 이런 말씀을 들을 때 깜짝 놀라서 “주여, 언제 내가 주님께 그런 일을 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물으면 주님의 대답은 이러할 것입니다. “여기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니라.” 그렇다면 오늘 나에게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반대자들이 비판하면서 붙여준 별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로 표현하면 “식충이(먹돌이)”, “주정뱅이”, 그리고 이럴 테면 “시정잡배들의 친구”라는 별명입니다. 이런 별명을 듣게 된 것은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찾으시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구원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으시고 누구에게나, 특히 세상에서 가장 비천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접근하셔서 그들과 함께 사귀시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하여 왔노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서 본문은 이런 배경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베다니에 살고 있는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의 가정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그런 계층이 아니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그들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고침 받은 나병환자 시몬이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럴 수 있겠지만 그 당시 특히 유대사회에서 나병환자 자신은 두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 가족들이 겪어야 할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예루살렘에 가실  때마다 이렇다하는 훌륭한 사람들을 찾아가거나 사귄 것이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찾지도 않는 이 가정을 찾아가셔서 거기서 유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니 이 가족들이 주님께 대한 고마운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오실적마다 시끌벅적하게 환영을 하고 접대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주님 발아래서 말씀에 몰두한 일, 마르다가 음식준비하다 말씀만 듣고 있던 마리아에게 불평한 것도 우리는 애교로 생각하면 얼마든지 이해가 갑니다. 주님께 각별한 사랑을 받은 가정, 그러므로 주님을 남달리 사랑하던 가정이 바로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의 가정이었습니다. 이런 사랑의 교제를 통하여 이루어진 일들이 나병환자 시몬이 고침 받은 일이요, 마리아가 향유를 주님께 부어드린 일이요, 마르다가 그토록 요란스럽게 음식을 준비한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서 본문에는 이 가정에서 일어난 최고의 사건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에 묻힌 지 나흘 만에 주님이 거기 오셔서 살려주신 일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오시면,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오늘 우리에게도 역시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이 나사로의 무덤에 가셨습니다. 무덤이 무엇입니까? 인간의 모든 상황이 다 끝나버린 곳이 무덤아닙니까? 요11:17에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라.”고 했습니다. 보통은 사흘까지는 혹 소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는데 “이미 나흘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38절에는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더라.”고 했습니다. 말하자면 “상황 끝”이라 그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은 죽음이 승리했습니다. 생명은 끝이 났습니다. 바로 그 현장에 생명의 주인이신 우리 주님이 가셨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님께서는 나인 성 과부의 독자를 살려 주신 일도 있습니다. 과부에게 독자는 그녀의 전부였습니다. 그 아들이 죽었으니 세상에 그보다 더 큰 절망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장례행렬을 향하여 다가가셨습니다. 생명이신 주님이 죽음을 향하여 다가가셨습니다. 생명과 죽음이 마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그 관에 손을 대시며 “청년아, 일어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죽었던 청년이 살아서 일어났습니다. 생명이 사망을 이겼습니다. 사망이 생명에게 삼킴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의 무덤에 가신 예수님도 일단 돌을 옮겨 놓고 난 다음 외치셨습니다. 아니 명령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랬더니 죽어 나흘이나 지나 냄새나게 된 나사로가 살아서 일어났습니다. 생명이 승리했습니다. 생명이 사망을 삼켰습니다. 절망이 소망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눈물이 춤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생명의 주님이 우리에게 이루어주시는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 비록 여러분의 현실이 "죽은 지 이미 나흘”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 현실을 주님께 아뢰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여러분의 무덤 같은 현실로 모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가로막고 있는 그 돌을 옮겨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그 무덤을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령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을 맞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우리 주님의 고난을 명상하며, 어떤 모양으로든지 주님의 그 고난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절기입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우리 죄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회개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고난의 주님을 내 삶의 현실에 모시는 일입니다. 그럴E 우리 삶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유명한 철학자 키엘케고르가 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은 그 첫머리에 예수께서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하신 말씀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우리의 질병, 우리가 겪는 모든 고난에 대한 우리 주님의 진단입니다. 우리 찬송가 가사 가운데 “택함을 얻은 백성은 망하지 않겠네.”라는 말씀처럼 생명의 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에게는 어떤 현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를 죽음으로, 멸망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습니다. 주님이 거기 오시기만 하면, 주님이 한마디만 말씀하시면 순식간에 우리 현실은 바뀌어 지게 됩니다. “나사로야, 나오라.”고 한마디 하시기만 하면 죽음의 세력은 물러가고 우리 주님의 생명이 승리하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놀라운 역사를 위하여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일단 “돌을 옮겨 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주님께서 일하시도록 자리를 마련해 드리십시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오늘 우리 믿음이 겨자씨 한 알 같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그 보잘 것 없는 믿음을 통해서 태산이라도 옮기는 일을 이루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육신의 생각”을 버리십시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으십시오. 생명과 평안을 가져다주는 “영의 생각”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 가운데 계시면 우리에게 있는 모든 죽음의 세력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의 승리를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3.오늘 구약 본문 에스겔 37:은 너무도 유명한 내용입니다. 소위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가 큰 군대가 되는 환상입니다.

 골짜기에 흩어진 마른 뼈, 그 음산하기 이를 데 없는 죽음의 골짜기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당시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 말씀으로 임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는 말씀으로 임하셨습니다. 선지자와 말씀을 나누신 하나님은 이제 선지자에게 주님의 말씀을 대언하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뼈들에게 대언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오순절 날 각국에서 예루살렘에 운집한 사람들에게 성령 충만한 베드로가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가슴을 치면서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외쳤고, 그들이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생명의 공동체인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였습니다.

 선지자는 마른 뼈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말씀이 선포되어나갈 때 마다 말씀대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뼈 저 뼈가 조립이 되었습니다. 또 말씀이 선포되니까 뼈 위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가죽이 덮였습니다. 오순절 초대 교회도 역시 말씀을 통해 조직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땅의 모든 교회도, 그리고 여기 우리 교회도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조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생기야 사방에서 불어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정말 경천동지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제까지 굴러다니던 뼈였었는데 생기가 들어가니까 일어나 군대가 되었는데 극히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생명의 역사입니다. 생명의 승리입니다. 사망이 생명에게 삼켜졌습니다. 이것이 결국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가 조직이 불비한 것은 아닙니다. 이 뼈 저 뼈가 잘 들어맞고, 뼈들을 지탱해 주는 힘줄도 올라 있습니다. 그리도 최근에는 우리처럼 모두들 예배당도 너무너무 잘 건축하고 있습니다.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부족합니까? 겔37:8에 그 결정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예수님께서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계시지 아니하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조직이나 시설이나 프로그램이 모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인적 자원이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어떤 대형교회 목사님이 그렇게 말했듯이 오늘 한국 교회가 귀족화 되어 간다고 할 만큼 있을 것은 다 갖추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나는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왜 이렇게 말이 많습니까? 왜 세상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대하여 호감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까? 다 있는데 한 가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개인도 그렇습니다. 부서도 그렇습니다. 개 교회도 그렇고 교단들도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정말 절실한 것은 성령임재입니다.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요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합시다. 생명의 성령이여, 오셔서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고, 우리로 살아나서 주님의 큰 군대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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