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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행 2: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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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행 2:14-36)

 
부활하신 예수님은 약 사십 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눅 24:49)
그 약속하신 것이 무엇인지 사도행전 기자는 좀 더 분명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마가의 다락방으로 알려진 곳에 모여 약 열흘 동안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렇게 합심하여 기도하는 중에 오순절 날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온 집에 가득했습니다. 또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거기 모인 제자들 가운데 제대로 배운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른 언어들로 말했습니다. 제자들끼리 떠들어댄 것이 아니었습니다. 명절을 맞아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분명히 증언하지 않았습니까?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행 2:7~8)
뿐만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내용까지 밝히 알아 들었습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행 2:11)
그 누구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그리고 몹시 당황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자기가 모르는 것은 무조건 부정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한 것은 요즘 말로 하면 미쳤다고 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그 때까지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오히려 모르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모르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모른다고 해서 함부로 미쳤다고 조롱한 것은 아주 잘못된 태도였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서서 소리를 높여 사람들을 향해서 외쳤습니다.
교회 역사상 맨 처음 행해진 설교가 바로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려는 이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그런데 그의 설교를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교회는 합심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약속하신 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는 세속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모이는 그런 모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의 뜻을 이뤄야 합니다. 주님의 뜻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는 결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비로소 주님의 뜻을 이뤄드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둘째, 교회는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바꿔서 말하면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것 외에는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대로 훈련받은 설교자라면 처음에는 누구나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다 보면 자기의 지식이나 경험을 소개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옛날 사도 바울도 아덴에서 전도할 때 자기의 지식을 앞세웠다가 실패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 교회의 강단이 심하게 오염되어 있다고 하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오직 성령의 지시만을 따라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셋째, 교회는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전도 대상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무엇입니까?
"교회에 가면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만 하고 있더라."
"예배에 참석하면 자기들끼리만 아는 노래를 하고 있더라."
어렵게 전도해서 교회로 인도한 전도 대상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바로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서 앉아 있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 충만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알아들었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끝으로, 교회는 오직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할지라도 그 내용은 오직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해야 합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실수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예화나 경험담 같은 것을 사용하는 것이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어떤 예화라도 말씀의 중심은 될 수 없습니다. 말씀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큰 일, 즉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언제 어디서나 복음만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첫 번 설교는 어떤 내용의 설교였습니까?
그는 먼저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 주었습니다.
조롱하는 사람들뿐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아침부터 술에 취해 있겠느냐고 반문하고 사실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의 예언이 지금 여기서 성취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요엘서 2장 28절 이하의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또 내가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 2:28~29)
그렇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친숙한 구약의 예언을 인용하여 그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말한 것은 설득력이 있는 설명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성령 강림 사건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 베드로는 이어서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를 다윗의 시편 16편 8절 이하의 말씀과 110편 1절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했습니다.
그는 먼저 본문 23절 말씀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우연히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 뜻을 따라 된 사건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또한 본문 24절 말씀으로 예수님의 부활도 또한 하나님께서 친히 살리신 사건이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용서하기 어려운 범죄라는 사실도 분명히 지적했습니다.
본문 23절 하반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인 것은 결국 너희, 즉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 바로 복음의 필요성, 즉 인간은 모두 다 소망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회개의 촉구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울러 그는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이 진실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이 사실을 좀 더 확실하게 전하기 위해서 그는 자신을 포함한 제자들 모두가 이 일에 증인이라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본문 32절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오늘 우리는 얼마든지 편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 그들의 형편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들이 아직도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라고 선포하는 것은 죽어도 좋다는 말과 같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는 그리스도시며 죽음에서 부활하셨다고 담대하게 선포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문제 해결 방안을 물었습니다. 오늘 교회가 선포하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듣고 세상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습니까? 마음에 찔림을 받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며 문제 해결 방안을 반문하고 있습니까?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나 잘 하세요!'라는 조롱과 비난을 교회가 듣고 있지 않습니까?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아주 분명합니다. 교회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충만하게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수단과 방법으로는 결코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깨어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 충만함을 받고 그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담대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생명을 살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찔림을 받고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영혼들이 날마다 더하는 놀라운 구원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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