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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급하면 돌아가라 (행 1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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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하면 돌아가라 (행 16:6-10)

교장선생님이 학교에 꽃밭 정원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학생들이 다닐 길을 만들지 않은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과연 그 꽃밭을 돌아서 다닐까 생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학생들은 꽃밭 한 부분을 살금살금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꽃밭에는 학생들이 다닌 흔적이 뚜렷이 생겼습니다. 

그제야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이 다닌 흔적을 따라 꽃밭 사이에 정식으로 길을 내셨습니다. 학생들은 이제 꽃밭 가운데 난 길을 즐겁게 꽃을 감상하며 다니게 되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길이 아닌데도 사람들이 다니면 막는 데까지 막아보아야 되겠지만 그것이 먹히지 않으면 차라리 그 곳에 길을 내 주는 것이 순리겠지요.’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먼저 아시아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아시아에서의 복음은 힘 있게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시아에서의 모든 전도의 길이 막히게 되었습니다. 이 길도 막히고 저 길도 막히고 이렇게 해도 안 되고 저렇게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쪽이 막히자 이쪽으로 가보려고 했고 또 이쪽이 막히자 저쪽으로 가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생기는 문제가 한 두문제가 아니었고 길을 방해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도 한 두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바울 몸에 지독한 병까지 생겼습니다.

인생 살다보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는 일 마다 안 되고 일이 꼬이기도 하고 이상하게 꼭 풀릴 것 같은 일이 풀리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어쩌다가 틀어질 수 있겠지만 이 사람과도 틀어지고 저 사람과도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병도 그렇습니다. 많은 애를 쓰고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낫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또 나는 틀림없이 바르고 옳은 일을 한다고 했는데도 반대가 많을 때가 있습니다. 의외로 내가 이 일을 하겠다고 하면 틀림없이 찬성하고 옹호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 같은 사람이 반대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로 공격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늘 본문은 여기에 대해서 중요한 답을 주십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우리가 제일 먼저 생각할 것은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이 안 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셨고 일이 꼬이는 것, 일이 잘 풀리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를 섭섭하게 하고 나를 배신하는 그것도 하나님께서 다 그렇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나를 반대하고 저 사람이 지독하게 나를 괴롭히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하나님 까닭’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 까닭’으로 생각하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필요합니다. 

바울 일행이 그러했습니다. 아시아에서 선교를 했고 아직 할 일도 많았는데 길이 막혔습니다. 길이 막히자 바울 일행은 즉각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본문 6절 첫머리에서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일이 잘 안 풀린다고 곧바로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생각하면서 얼른 포기하는 것은 조금 조심해야합니다. 이런 것을 핑계로 해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아니하고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지 아니하는 일이 우리들에게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용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바울 일행은 이것을 참 잘했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6-7절)’ 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보아 여러 가지로 노력을 하고 난 뒤에도 안 되니까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7절)’ 라고 말했습니다. 역시 이것은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궂은 일은 물론이고 좋은 일도 마찬가지로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런 은혜를 주셨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막으셨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까닭’으로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일이 풀리기 시작하고 문제가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아주 신앙이 좋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교회 일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자녀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 부부는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16년 동안 기도했습니다. 16년째 되던 해에 드디어 아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부부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때가 되어서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기형아였습니다. 어느 정도 기형아가 아니라 흉측한 기형아가 태어났습니다. 

이 부부는 통곡을 했습니다. 절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찾아온 친척들과 이웃들도 도무지 무슨 말로 이 부부를 위로해야할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집에 들렀다 입원해있는 아내가 있는 병원을 찾아갔을 때, 어제 그렇게 비통해하던 아내가 환하게 웃으면서 남편을 맞이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손을 꼭 쥐고 “여보, 어젯밤 내가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물었어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 아기를 어느 가정에 보내야 가장 사랑받을 수 있을지 고민 고민하시다 우리를 보고 이 집이야말로 이 아이를 가장 사랑해줄 수 있겠다고 생각되어서 우리 집에 맡기셨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선택해주셔서 맡기신 이 아이를 많은 사랑으로 키워야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든 것은 어떤 것 하나도 하나님 뜻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좋은 일, 궂은 일 그 어떤 일이 있을 때 맨 처음 생각할 것은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셨다,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때에는 아무 까닭 없이 그냥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때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고 하나님의 깊은 뜻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때로는 돌아가라고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 길이 막히면 저 길로 돌아갈 줄도 알아야합니다. 이 길이 아무리 확실하고 분명하게 내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될지라도 꼭 그 길만을 고집할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이 판단이 100%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그 때에도 우리 기독교인들은 항상 내 판단이 틀릴 수 있다, 전혀 아닌 것 같은 저 사람의 판단이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먼저 유대인이 구원받아야 된다는 것을 생각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 바울을 유대인에게 보내지 아니하고 이방인들에게 먼저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은 바울을, 복음을 거부할 것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이 구원받고 성령을 받는 것을 본 유대인들에게 우리도 이방인들처럼 구원받아야하겠다, 성령을 받아야겠다는 시기가 일어나서 저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하기 위해서 바울을 먼저 이방인들에게 보냈습니다. 그것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게 함이라(롬11:13-14)’
그렇습니다.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이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닐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러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급하면 돌아가라’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됩니다. 급하면 지름길로 가야합니다. 빠른 길로 가야합니다. 빨리 뛰어가야 하고 빨리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급하면 돌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한 말이 아닙니다. 수많은 경험과 수많은 사람들의 체험을 통해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지름길이 좋은 것 같지만 아닐 수가 있다, 돌아가는 것이 미련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 길이 더 현명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 조상들이 알았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물려주신 말씀입니다. 깊은 지혜가 담겨있는 말씀입니다. ‘급하면 돌아가라’

하나님께서 우리 길을 막으실 때는 어떤 때에는 아예 그것을 하지 말라는 말씀일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안 될 때에는 포기하는 것도 배워야합니다. 인간의 노력은 좋고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 노력으로 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습니다.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은 모든 노력을 다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드렸으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이 바른 믿음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 뜻이 확고하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또 아무리 기도로 매달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 뜻이 더 좋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습니다. 사실 좀 더 길게 본다면 80년이나 되었습니다. 궁정에 있을 때 히브리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힘쓰고 애썼다가 어려움을 당하고 쫓겨난 후 40년 동안 광야에 있으면서 광야생활로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히브리 민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했습니다. 가나안 바로 앞에 왔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야’ 라고 부르시면서 ‘가나안이다. 네가 인도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 땅이다 잘 보아라. 눈에 잘 담아라. 그런데 너는 들어가지 말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럴 때에도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수고했지만 반드시 내가 가 다 열매를 맺고 결실을 맺는 것이 아닐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경우에 그렇게 하셨습니다. 

또 때로는 이 길이 아니고 저 길이라고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바울의 경우가 이 경우였습니다. 바울은 일이 풀리지 않아 고민 고민했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답답해했습니다. 내가 오로지 하나님 복음을 전하려고 이렇게 고생하는데 왜 이렇게 일이 풀리지 않는지 고민하고 있던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밤에 환상 중에 나타나셨습니다. 환상 중에 유럽 사람 한 사람을 보내서 바울에게 유럽으로 들어와서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말하게 하십니다. 

바울은 밤에 그 환상을 보자 즉각 무릎을 쳤습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토록 내 길을, 우리의 길을, 복음의 길을 막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지금까지 아시아에서 복음 전하느라 수고 많이 했다. 

지금까지 네가 할 일은 그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에서 이 일을 해야 되겠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환상을 본 바울은 그때부터 유럽에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 복음은 유럽 전역에 흩어지게 되고 다시 아메리카 쪽으로 가고 또 다시 극동쪽으로 오고 우리나라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답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라는 10절 말씀입니다. 마게도냐는 유럽입니다. 유럽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막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그렇게 답답하던 마음이 다 풀어졌습니다. 답을 받았습니다. 해결이 났습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전 세계에 복음이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지금은 하나님께서 막으셨지만 나중에 길을 열어주시기도 합니다. 지금은 막힌 것 같지만 어느 순간 하나님께서 열어주실 때도 있고 심지어는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열어주시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 한 분이 20년 전에 저에게 부탁을 했고 저도 그동안 그 집사님을 위해서 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응답이 되지 않아 참 미안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야 하는데 베풀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세월이 자꾸 갔습니다. 

이제 그 분의 연세가 일흔이 넘었습니다. 객관적으로 누가 보아도 더 이상은 기대할 수 없는 나이인데 그 연세에는 도무지 결코 있을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중요한 기업의 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이 집사님과 권사님 부부와 같이 만나 ‘우리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군요. 우리 기도는 다 하나님께 기억되고 언젠가는 열매를 맺는군요.’ 라고 같이 고백하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땅에 떨어지지 않고 반드시 응답해주신다는 고백이고 감사였습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저 소원하기만 하고 간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도를 거절하고 거부하시는 것 같고 외면하는 것 같아도 때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 것 같아도 우리는 끝까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들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외면하는 것 같아도, 거절하시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쳐다보는 눈, 여러분이 하시는 기도 전부 다 기억하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 시선은 물론이고 귀도 마음도 하나님께 기울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끝까지 놓치지 않아야합니다. 한 번, 두 번하고 그만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을 쳐다보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종종 놀라운 일이 생겨납니다. 하나님은 어느 순간 당신이 그렇게 확고하게 잡수셨던 마음을 완전히 바꾸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분명한 계획을 정반대로 바꾸기도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늘 하나님과 함께 할 때 하나님은 절대로 외면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잊어버리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그냥 땅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열매를 맺도록 되어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여러분들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기울이는 것입니다. 눈도 마음도 귀도 기울이면서 하나님과 함께 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이 역사를 이루시는 것이고 그때서야 비로소 여러분들은 진정한 행복의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때 여러분들에게 행복은 이미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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