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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승주일] 하나님이 세우신 영원한 스승 (히 13:7-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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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세우신 영원한 스승 (히 13:7-8,17)

제가 31년 전에 신학교 다닐 때 서울 오류동에서 몇 년 동안 야학 교사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공부하고 싶어도 가정 형편 때문에 공부를 못한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교회 지하 교육관에서 모여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 그 학교 이름이 ‘청운학교’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르친 과목은 정치경제 과목이었습니다. 제가 행정학을 공부했기에 그 과목을 맡았습니다. 

그때 가르쳤던 제자 중에 둘이 교회 사모님이 되었습니다. 또 한 제자는 광명의 어느 교회 권사님이 되었습니다. 아주 충성스럽게 섬기는 제자입니다. 지난번 제 딸 결혼식에 그 제자들이 찾아와 주어 축하를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제게 ‘선생님’이라 부릅니다. 그때 내가 20대 중반이니 그 학생들과 나이차이가 별로 없었습니다. 같이 늙어가는 나이에 지금도 종종 전화를 해주어 ‘선생님’이라 불러 줍니다. 뿐만 아니라 HD학교에 가면 학생들이 제게 교장선생님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보람도 있고 행복합니다. 

저는‘선생님’‘스승님’이라는 단어만 생각하면 유대 ‘랍비’가 생각납니다. 

예수님도 랍비라 불렸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랍비라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인 동시에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의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세계에서 노벨상을 가장 많은 받은 민족은 유대인이라 합니다. 노벨 수상자의 480명중 93명이 유대인이랍니다. 약 22%가 유대인입니다. 놀래지도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계 200대 재벌의 15%가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미국 변호사의 약 30%가 유대인이랍니다. 그래도 안 놀래지요? 미국 유명대학의 법대 교수의 약 50%가 유대인이랍니다. 그리고 의대교수의 50%가 유대인이랍니다. 이밖에도 정치, 경제, 문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민족이 유대 민족이랍니다.


어떻게 소수민족인 유대인들이 이처럼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을까요? 

그 대답은 교육입니다. 유대인들은 교육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민족입니다. 그래서 부모, 선생님, 랍비가 삼위일체가 되어 각자의 위치에서 자녀들을 가르칩니다. 

부모님은 자녀의 인격교육을 감당하고, 학교 선생님은 전문가 교육을 시키고, 랍비는 신앙 교육을 책임지고 감당한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역할은 랍비의 역할이랍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세계 최고의 인재로 키워지는 것이라는 조사연구가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교육>하면 우리나라도 세계 어느 민족 부럽지 않게 열심을 내는 민족입니다. 

그러기에 50년 전만해도 세계 최빈국이었는데 50년도 지나지 않아 OECD선진국 대열에 끼어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도 유대인 못지않게 학교 교육은 열심이지만 부모님의 인격교육과 영적지도자의 신앙교육은 유대인의 그것과 비교해보면 매우 빈약한 것이 현실입니다. 

유대인 랍비는 유대인들에게 매우 존경받는 존재입니다. “랍비”라는 단어의 뜻이 “나의 크신 분” 또는 “내 주” 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랍비를 하나님처럼 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묶어놓은 책이 ‘탈무드’ 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탈무드를 자녀를 가르치는 교과서로 여기고 인생 상담서로 여깁니다. 

그렇다면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스승을 두고 살아갑니까? 스승하면 학교 선생님만을 연상됩니다. 그러나 학교 선생님만 스승이 아닙니다. ‘스승’이란 자기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은 모두가 스승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세워주신 우리의 영원한 스승은 누구일까요?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서 몇가지로 살피며 은혜를 나누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우리의 영원한 스승은 누군가? 

1. 우리의 영원한 첫째 스승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워주신 우리의 영원한 스승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스승이십니다. 예수님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가장 완벽하고 온전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로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 동등하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이 땅에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신성과 인성을 가지시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완벽한 참 하나님, 침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으로서의 권리와 특권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소원은 오직 하나입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이 죄 사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가 온전한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의 완전한 스승으로 우리의 모델로 오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함께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크든 작든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스승’이라고 합니다. 

성경에도 보면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스승입니다. 사무엘은 다윗에게 스승이고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스승입니다. 또 바울은 디모데에게 스승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여러분 주변에 훌륭한 스승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 스승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엄청난 스승으로 존경하기도 하지만 인간이기에 실수와 허물이 들어나면 크게 실망을 주는 부분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 중에는 우리의 완벽한 스승은 없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만이 우리의 완벽한 스승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스승이신 주님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 히13:8절을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이 말은 우리 스승이신 예수님은 변함이 없는 영원한 스승이라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마11:29절에서 우리 주님은 “내게 배우라” 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배우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닮게 되고 또 자신도 모르게 스승이 되어 남들에게 스승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도바울은 정말 담대한 분입니다. 

고전11:1절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어디서 사도 바울의 이런 당당함이 나왔겠습니까? 이것은 개인적인 교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믿음의 담대함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로 산다. 그러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면 결국 그리스도를 본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따라서 합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완벽한 스승이십니다./ 

요13:14~15절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우리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면서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너희도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내가 너희 스승이니 너희도 이처럼 행하여 스승이 되라” 하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영원한 스승인 주님을 배워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배워야합니다. 

그분을 만난 사람들은 놀랍게 변화 되었습니다.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을 만난 후 위대한 사도로 변했습니다. 

평생 매국노라고 욕을 먹으면 살아야 했던 마태가 예수님을 만난 후 위대한 사도가 되어 마태복음을 기록한 위인이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기독교의 무서운 핍박자였던 사울이 다메섹에서 주님을 한번 만나고 위대한 전도자로 변화됩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우리의 능력의 스승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정말 주님을 만난 성도라면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분은 오늘도 살아 계셔서 우리의 영원한 스승으로 존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우리의 영원한 스승은 누군가요? 


2. 우리의 영원한 둘째 스승은 부모님이십니다. 

7절에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라고 했습니다. 그들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우리의 영원한 스승은 우리의 부모님이십니다. 

훌륭한 사람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훌륭한 사람 뒤에는 반드시 훌륭한 부모님이 있습니다. 특별히 훌륭한 어머니가 있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아마도 이 찬양의 작사자는 훌륭한 신앙의 어머님을 두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에 어머니가 성경이야기를 많이 해주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때 들은 성경이야기가 잊혀 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어머니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가슴이 찔리지 않습니까? 무릎 위에 자녀를 앉히고 성경을 가르쳐 주셔보셨나요? 아니면 우리 부모님은 내게 이렇게 해주지 않았다고 원망하고 계시나요? 그렇지 못하다면 지금이라도 여러분의 자식들과 손주 손녀들에게라도 해주어야 합니다. 

자식을 낳아준 것만으로도 어머니는 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스승은 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먼저 주님을 잘 배워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스승으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성경을 가르쳐 주려면 우리가 먼저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먼저 본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도 되어야하나 하나님이 세우신 영원한 스승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느 시골 학교에 발령 받은 초임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시골로 이사를 가서 학교로 가다가 냇물가의 징검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졌습니다. 돌 하나가 잘못 놓인 것입니다. 그래서 헛디뎌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집으로 급히 달려 왔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합니다. 

“아이고 물에 빠졌구나. 그래 안 다쳐서 다행이다. 그런데 그 돌은 바로 놓고 왔느냐?” 
어머니의 물음에 아들 선생은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아니요” 

“이 아들아, 그러고도 네가 무슨 선생이냐?. 빨리 그 돌부터 바로 놓고 와서 옷을 갈아입어라. 그 돌 때문에 아이들도 빠지면 어찌하냐?” 

그 말을 들은 선생은 그 즉시로 냇가로 달려가 잘못 놓은 짐검다리 돌을 바로 세워 놓고 집으로 다시 와서 옷을 갈아입고 갔답니다. 

그후 그는 어머님의 말이 평생 잊지 않았답니다. ‘돌을 바로 놓고 왔느냐’
그렇습니다. 그는 내가 먼저 돌을 바로 놓아야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배우는 자녀들도 바른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여러분 자녀에게 스승이 되면 그 자녀들도 커서 그들의 자녀들에게 온전한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머님의 역할은 선생보다 위대합니다. 

성경 열왕기 상하, 역대상하를 자세히 보세요. 유다나라와 이스라엘 나라에 역대 왕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왕들이 등극할 때마다 반드시 기록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의 이름입니다. 어머니가 누구였는지를 성경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 어머니를 보면 그 아들 왕의 치적이 어떨 것인지가 뻔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왕이 비록 악한 왕이었어도 어머니가 누구였냐에 따라 아들 왕의 행적이 달라집니다. 

왕의 어머니가 믿음의 어머니였다면 그 아들은 하나님 앞에 바로선 왕이 됩니다. 
이것은 왕의 어머니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부모로서 어떤 스승의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자녀들의 성공과 실패는 갈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아버지 영향도 있지만 어머님 영향이 더 큽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자기는 어머님의 때문에 성공하였다고 간증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부모님은 자식에게 스승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나도 / 내 자녀에게 /최고의 선생님이다/. 
우리 부모님은 /하나님이 세워주신 / 최고의 스승입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우리의 영원한 스승은 누군가요? 


3. 우리의 영원한 셋째 스승은 교회 목사입니다. 

히13:7절을 보세요.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여기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은 누구일까요? 

그들은 과거 그들의 지도자들입니다. 그분들은 순교하여 지금은 생존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마음에 새겨 기억하고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과거의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과거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신 목사님들, 그리고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주려고 생명 걸었던 선교사님들... 그들이 여러분의 스승입니다.  

그리고 17절을 상반절을 보세요.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여기서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은 현재의 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누굽니까? 지금 현재 우리를 인도하는 영적 지도자들입니다. 그분들이 여러분의 영원한 스승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영적인 지도자냐는 누굽니까? 교회 목사들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해주는 목사들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영적인 지도자인 목사를 따르되 그들이 가르쳐 준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하여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지도자는 영적 지도자는 아닙니다. 

말로는 지도자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면 그는 영적 지도자는 아닙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영적인 지도자는 아무나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지도자는 먼저 말씀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때 그 말씀에 의한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아야 합니다. 말로만 하지 않고 하나님이 명령한대로 하고 사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지도자가 말씀과 행실이 일치하지 않으면 바리새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책망하는 외식하는 자들이고 그들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는 지도자를 가까이 하고 그들이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사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인간적인 경력이나 학력만을 보지 마세요. 
겉으로 박사학위가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고 경력이 아무리 화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들 속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명령과 반응이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가를 보셔야합니다. 

주님이 맡겨준 사명에 목숨 걸고 그 일을 위해 충성하고 사는가? 그 행위의 결말에 어떤 열매가 있는가를 보셔야 합니다. 

그렇게 충성하고 주님을 닮으면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명심하세요. 영적 지도자의 권위는 외모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영적 지도자의 권위는 말씀에서 나오고 말씀으로 말미암고 말씀으로 성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를 따르고 그를 순종하면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스승의 반대말은 뭡니까? 제자입니다. 
제자는 “보고 들은 것을 따라 가는 자”입니다. 영어로 제자란 “disciple” 이고 “follower”입니다. 한마디로 따른다는 것입니다. 

뭘 따릅니까? 스승이 하는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스승의 행동, 스승의 언행,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좋든 싫든 목사를 스승으로 따르는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종들이 그 일을 즐겁게 하도록 협조하며 따라야 합니다. 
17절 하반부를 봅시다.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목사가 성도를 지도하고 이끌어 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교회에 목사를 세우시고 그들로 하여금 성도들의 영혼의 문제를 책임지게 하십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처럼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했습니다. 영적인 책임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영적 지도자이기에 영적인 책임이 무겁습니다. 그러기에 그 무거운 짐을 질 때 즐거움으로 하게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영적인 지도자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즐겁게 그 일을 감당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순종하고 올바로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여러분들의 영혼을 위하여 늘 깨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새벽기도 안 해도 목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면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사는 성도들의 문제를 갖고 기도할 때 마치 자기가 계산할 사람인 것 같이 생각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러기에 제발 목회를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마셔야 합니다. 

그러기에 목사는 여러분에게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는 여러분이 유익을 누리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세우신 영원한 스승입니다. 그러기에 제발 목사를 경계하지 마세요. 목사를 두려워하지도 마세요. 목사에게 어려워하거나 부담 갖지 말란 말입니다. 어떤 성도는 목사를 무당처럼 두려워합니다. 어떤 분은 목사를 하나님처럼 무서워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럴 것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종은 맞으나 목사는 여러분의 스승입니다. 

목사는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돕는 선생님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복된 생활을 하려면 목사를 가까이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목사를 스승으로 두어야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 /목사는 /하나님이 세우신 영원한 스승이다./ 


말씀을 맺습니다. 

가장 좋은 스승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모님도 영원한 스승이고 목사도 영원한 스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 그런 좋은 스승을 세워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스승도 문제지만 제자가 스승을 스승으로 보지 않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복을 누리면 하나님이 세우신 스승을 바르게 따르고 바르게 배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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