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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운명의 인봉을 뗄 자 (계 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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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인봉을 뗄 자 (계 5:1-14)


4장에서는 하늘나라 예배 광경 장면을 중점적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5장에 와서는 사도요한의 심각한 고민기록이 하늘나라를 보고 나타나는 내용으로 적혀 있습니다. 여기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왜 사도요한이 심각한 고민 기록을 했느냐 하면 그 봉한 것을 열어볼 수가 없어서, 그 속에 도대체 뭐가 들었는지 그것을 꼭 보고 싶은데 봉한 것은 아무도 못 본다고 해서 너무너무 슬퍼서 큰 소리로 울었다고 하잖아요? 이 일곱 인으로 봉하는 문화는 옛날부터 로마나 유대 사회에 흔하게 있어 왔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유서를 써 놓을 때는 유서를 써서 두루마리에 둘둘 묶어서 맨 마지막에 열지 못하도록 봉하는데 일곱 사람이 각각 유서를 썼다면 내가 선택하는 일곱 사람이 자기의 도장으로 인봉하는 문화입니다. 그것은 아무도 뜯어볼 수가 없는, 뜯어보면 다시 무효입니다. 열어볼 수 없는, 봉인한 것으로 언제 뜯어보느냐? 유서 작성자가 죽었을 때입니다. 그때 법관의 입회하에 유서를 개봉하도록, 그래야 법적 효력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 다니시는 변호사 집사님께서 늘푸른 대학에 오셔서 유서 쓰는 방법 2시간 동안 강의하셨잖아요? 그때 그 봉인하는 것이 아주 굉장합니다. 일곱 인으로 봉했다는 것은 완전한 봉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볼 수 없습니다. 이런 문화는 개인적인 것도 있지만 국가적인 것, 혹은 기관, 집단, 공동체 이런 곳에서 얼마든지 합니다. 한 몇 달 전에 제가 봉사하는 대학에서 100주년 기념식을 했습니다. 100년이 되었습니다. 100주년 기념식에 학교의 가장 중요한 위치 중앙에 콘크리트로 굴을 파고 봉인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학교의 역사, 중요한 것을 다 역사 기록을 하고 앞으로의 계획서, 그리고 총장, 이사장의 이름을 써서 봉해서 봉인식, 교수들 모두 있는 자리에서 뚜껑을 봉하고 봉인식을 했는데 그 뚜껑 겉에다 뭐라고 썼느냐 하면 “몇 년도 몇 월 며칟날 이 뚜껑을 오픈하라.”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교수들이 저 속에 뭐라고 썼을까 궁금할 거 아닙니까? “열지 마십시오. 이거 앞으로 뜯어볼 사람은 100년만 더 사십시오.” 절대로 못하도록 법적으로 다 변호사 입회하에 작성해서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있었고 국가적인 것도 있습니다. 나라마다 다 있습니다. 비밀문서가 있잖아요? 

그런데 국가적인 비밀도 50년 지나면 상대방 나라와 서로 개봉하기 때문에 과거 역사를 우리가 잘 알 수 있는 거잖아요? 아주 다들 궁금해 합니다. 또, 여러분들도 유언장을 써놓았는지 모르지만 특별히 재산이 많은 집 자녀들은 제일 궁금한 것이 부모의 유언장입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재산 많은 집의 자녀들은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서 ‘아버지가 어머니가 나한테 어떤 혜택을 유언장에 써놓으셨을까?’ 궁금할 거 아닙니까? 자녀들이 많을 때는 이것 때문에 자녀들이 불화하고 내 생전에 안보고 싶은 것이 생기잖아요? 그러니까 법적으로 다 만들어서 그냥 혼자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죽은 다음에 이것을 개봉하라고 법조인에게 이야기를 하고 그런데 이것을 오픈할 때 입회할 수 있는 사람을 거기 써놓습니다. 자녀들, 부인, 남편, 변호사, 그 중의 한 사람만 있어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그 맡은 사람들이 일찍 죽을 수가 있잖아요? 그러면 다시 써도 괜찮습니다. 유언장은 맨 나중에 쓰는 것이 제일 효력이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도 사인한 것이 있습니다. 한 교인이 자기가 세상 떠나면 유언장 공개할 때 이필재 목사님, 변호사, 자녀들 함께 오픈하고 여기 적힌 대로 합의해서 실행해 줄 것을 약속한다고 하셨습니다. 목사들한테 그런 부탁이 더러 들어옵니다. 

그래서 몇 분이 “목사님! 수고스럽지만 나 죽은 다음에 이런 문제를 깨끗하게 뒷정리하고 싶으니까 목사님이 그때까지 목회하시고 살아계시면 그렇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러지요.” 뭐라고 쓰셨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탁을 하고 사인을 한 후에 괜히 저는 궁금해집니다. 저더러 오픈하는데 있으라고 했으니 ‘나는 가족도 아닌데 왜 나를 증인으로 세웠을까? 그러면 그 사람보다 내가 먼저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데….’ 그런데 한분도 안 돌아가십니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계십니다. 하여튼 저까지 괜히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이것은 할 것이 못된다.’ 어떨 때는 슬며시 다른 생각도 듭니다. ‘내가 얻어먹을 것을 써놓으셨나?’ 내용을 말하지 않고 혼자의 생각을 써놓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아주 궁금해집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늘나라의 장래 될 일에 대해서 사도 요한이 궁금해졌습니다. ‘저 속에 뭐가 들었을까?’ 그러니까 일평생 주님을 위해서 자기 청춘을 다 바쳤잖아요? 다른 제자들은 일찍 죽었지만 100세가 넘도록 목회를 하면서 주님의 일을 제일 분량적으로 많이 한 사람이 요한이잖아요? ‘지금도 말년에 예수님 때문에 밧모 섬에 붙잡혀 와가지고 이렇게 고난을 겪고 있는데 내가 일평생 인생을 다 바치고 에너지를 다 소모한 주님이 남겨주신 이야기가 도대체 뭘까? 내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이며 인류의 운명은 어떻게 된다고 쓰여 있을까?’ 이것이 궁금해진 것입니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이렇게 지금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봉인한 것을 고난이 부여된 사람만이 뗄 수 있단 말입니다. “이 운명의 인을 뗄 자가 누구냐?” 3절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울 일이 아닙니까? 얼마나 궁금합니까? 이때 요한의 울음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나는 어떻게 되나? 

정말 주님을 위해서 100년 동안 이 세상에서 살면서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서 바쳤는데 내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어린 나이에 주님의 제자가 되어서 핍박 시대에 그 많은 고난을 내가 다 받았고 지금도 밧모 섬에 유배 와서 이렇게 험난한 고난을 노년에 보내고 있는데 일생을 주님을 위해서 몸 바쳐 살아온 자기, 그리고 주변의 모든 사람의 운명은 과연 주님이 뭐라고 유언서를 썼을까? 궁금하잖아요? 

그런데 열어줄 사람이 없다고 하니까 이게 얼마나 궁금하고 답답합니까? “하늘에나 땅에나 땅 속에 있는 사람이나 땅 아래 있는 사람 아무 것도 이것을 열어볼 사람이 없다.” 이러니까 너무나 답답해서 막 우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다 미래지향적 희망의 삶을 살아갑니다. 내일의 나를 미리 보고 싶은 욕구를 인간은 가지고 있습니다. ‘10년 후에 내 모습은 어떤 것인가? 더 나아가서 하늘나라에서의 나의 위치는 어떨까? 하늘나라에서 상급을 주신다고 했는데 무슨 상급을 나에게 주실 것인가?’ 이 운명의 인을 떼고 미리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 사람들 아닙니까? 

요즘 목사님끼리 만나면 새로운 농담이 하나 생겼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래되었다고 하는데 저는 들은 지 얼마 안 됩니다. 그게 뭐냐 하면 하늘나라에 간 사람들의 모습을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목사들도 목회하기 힘들잖아요? 지치고 힘들고 연수로 따져보니까 60년 이상 목회를 했잖아요? 저도 50년 했잖아요? 금년이 지나면 저도 50년입니다. 어떤 때는 저도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제 보니까 내 일평생은 주님을 위해서 내 모든 정욕과 에너지를 다 소모했다. 

그러면 하늘나라의 내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인가?’ 옛날 한경직 목사님한테 후배 목사들이 가서 “목사님! 하늘나라를 가면 목사님 같은 분은 상급이 참 많으셔서 좋으시겠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드리면 “가봐야지 어떻게 압니까?” 늘 그러셨습니다. “내가 적을 수도 있지 그게 무슨 말이냐?” 요즘에는 목사들에게 목회를 위로하는 차원의 말이 생겼는데 농담으로 이런 사람은 이렇고, 저런 사람은 저런데…. 저더러 이러더라고요. “이 목사! 목회 좀 천천히 해! 그래봤자 목사들은 천국 가서 자장면 배달을 한다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궁금해서 요한도 우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내 모습, 내 운명은 어떻게 열수 있는가? 열어서 보고 싶은데 열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부자 재벌이 “이거 내 유언장이다! 여기에 너한테 어떻게 하라고 다 써 놨다.” 그러면 그 아들은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써놨을까?’ 이게 아주 궁금해서 못 견딥니다. ‘우리 아버지 유언장에 내 운명은 어떤 것인가?’ 요한도 그게 궁금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의 슬픔인 것입니다. 여기 5장은 막 울었다고 했잖아요? “하나님 오른손에 들려져 있는 운명의 기록! 

이것이 뭘까?” 여기 하나님의 오른손이라 하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말하는 것이며 인류의 모든 운명은 하나님의 손 안에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서 있을 것이며 음부의 자리를 펼지라도 내가 거기 있을 것이다. 인류의 운명권은 내가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게 봉인이 되어 있어서 누구도 알 수 없는 비밀로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지금 본 것입니다. 

여기 지금 이미 천국에 간 장로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하고 기쁜 소식을 전해주잖아요? 여기 유대 지파의 사자가 무엇입니까? 유대 이스라엘 백성의 행정 구역을 12 지파로 나눴잖아요? 족장 야곱의 열두 명의 아들 혈통 계보를 따라서 마련한 행정 제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느 지파입니까? 유대 지파란 말입니다. “결국 이 운명의 인봉을 뗄 수 있는 자는 예수이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아무도 없다.” 이런 이야기를 지금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다윗의 뿌리! 예수님을 뭐라고 합니까?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잖아요? 나사렛 예수라고 말하면 로마인들이 금방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 다윗의 뿌리”라고 하면 로마인들은 모릅니다. 그래서 암호 문자로 “이 하나님 오른손에 들려주는 인류의 운명의 기록을 열어줄 사람은 다윗의 뿌리 유다 지파, 즉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이것을 지금 요한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인류의 시작과 종말의 운명이 이미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에 알파와 오메가로 나타나있는 것을 비교 성경 연구할 수 있잖아요? 창세기에서 보십시오. 천지만물이 시작되잖아요? 요한계시록에 와서는 우주의 종말입니다. 

인류의 모든 운명이 알파와 오메가로 다 나와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인간 생명의 시작, 바람을 집어넣으니까 생명이 되어 인간이 살아있는 생명체로 변했잖아요? 요한계시록에 보면 그 모든 생명이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소멸하고 다른 생명으로 부활한다고 되어 있잖아요? 죄와 슬픔과 고통이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주워지더니 요한계시록에 와서는 종결로 “모든 눈물을 씻으시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다.” 고통의 시작과 고통의 종결로 인류의 운명이 각본 되어 있잖아요? 창세기 3장에서 “아! 인간들이 영생할까 하노라. 

그래서 생명나무 실과는 따먹지 못하게 지키라.” 그래서 못 따먹어서 영생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그 금지한 생명나무의 실과를 요한계시록에 와서는 “내가 생명나무의 실과를 주어 먹게 하리니 먹고 이제 영생하라.” 이렇게 되어 있고 창세기에서 우리가 마지막에는 어떻게 됩니까?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흙으로 돌아갑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부활하리라.” 다시 살아납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했잖아요?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와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어서 새 에덴동산의 주인이 되게 하라.” 

창세기에서 죄를 지은 것은 마귀에게 속아서 굴복 당했는데 요한계시록에서는 그 마귀를 결박하여 무저갱에다 집어넣는다고 했습니다. “너는 이제 그만!” 모든 인류의 운명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데 바로 그 계획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그 진리를 우리에게 열어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다 지파, 다윗의 뿌리만이 이 운명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에게 달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류의 모든 운명을 오른손에 쥐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며 그것을 열어서 진리로 열어줄 자는 유다 지파, 다윗의 뿌리, 즉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인류나 자기 운명이 궁금해서 그것을 알아내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한 문화입니다. 사람들이 왜 점쟁이한테 갑니까? 미래 지향적 인간의 욕구에 대한 대답을 들어보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아들딸은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미래의 내 모습을 미리 보고 싶어 하는 인간의 한 욕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점쟁이들이 그렇게 많아지는 것입니다. 

또, 관상을 보러 가잖아요? “얼굴 모습에 장래가 들어있다.” 그래서 얼굴을 보면서 장래를 점쳐주는 문화가 있습니다. 또, 손금도 봐준다고 하잖아요? “당신을 보니까 오래 살겠다. 일찍 죽겠다. 장가 두 번 들겠다.” 손금을 보고 말하잖아요? 우리나라에는 토정비결이 있습니다. 토정이라는 사람이 사람의 개인적인 운명을 풀이하는 책을 내서 정월이 되면 토정비결을 보러 가잖아요? “금년에 내 신수가 어떨까?” 풀이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영적 미신도 생겼습니다. 저는 예언 기도한다는 사람들을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쩌다 들어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것은 하나님이 알려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언기도는 받으러 가지 말고 해주지도 말아야 합니다. 다만 희망사항의 기도를 할 뿐입니다. 잘 되게 해달라고 믿음으로 기도해야지 뭐가 어떻게 된다는 기도는 부작용입니다. 내 친구 한명은 이 예언기도 때문에 목회가 망했습니다. 잘 되는 교회에 부잣집 여 집사가 있는데 아들을 낳아야 하는데 딸만 둘 낳았습니다. 아기 그만 낳겠다고, 요즘에 자녀 세 명 낳는 사람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아들딸 왜 가리냐고 해도, 시아버지, 시어머니, 신랑도 아들이라도 한명 있어야지 해서 방법론으로 선택한 것이 예언기도를 받으러 대한민국에서 예언기도 1인자로 내가 이름을 말하면 모두 아십니다. 

그분이 나타났다 하면 와글와글 운명을 점치기 위해서 많이 모입니다. 그분에게 예언기도를 받으러 가서 “내 소원이 아들을 낳고 싶은데 내가 또 딸을 낳으면 어떡합니까?” “기도해주겠다.” 기도해보니까 100퍼센트 아들로 나오지요. “아들이다.” 부자니까 헌금도 엄청나게 많이 하고 임신을 했는데 6개월 되었을 때 병원에 가서 알아보지 않고 기도해준 예언자에게 또 한 번 가서 감사헌금을 하고 기도를 또 받으니까 “틀림없다. 아들이다.” 두 번이나 그런 기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좋습니다. 교인들이 그렇게 기도해도 괜찮고 기도해주어도 괜찮습니다.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 그 집사는 담임목사가 꼴 보기 싫어진 것입니다. 우리 목사는 그것도 못하느냐 말입니다. 그래봤자 아들딸 50퍼센트 맞는 것인데 그래가지고 그 소문이 막 퍼져나가니까 목사한테도 그 말이 들어온 것입니다. 교회가 그것 때문에 어수선하고 술렁거리는 것입니다. “우리 목사는 능력도 없고 영적으로 힘도 없다. 신학교 다니면서 괜히 리포트나 써서 영적으로 엉망이다.” 그래서 이 목사가 너무 슬프잖아요? 기도를 어떻게 했느냐 하면 “하나님! 왜 그것을 누구에게는 알게 해주고 누구에게는 안 알게 해주십니까? 최선을 다해 목회했는데 이런 대접이나 받고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나한테도 좀 알려주십시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나한테는 안 나옵니다. 이게 뭡니까?” 이런 기도를 한 것입니다. 우리 집에 와서 일주일동안 함께 자면서 좀 쉬었다 가야지 나는 목회도 못하겠다며 고민하고 갔습니다. 그런 공격을 받을 때 목사는 그날로 목사를 그만 두고 싶습니다. “그래! 그만 두자. 아들딸 낳을 거 고사하고 나는 내 아들딸도 모르겠어.” 목사는 무시당하고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기는 열 달만 지나면 출산하잖아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딸 쌍둥이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부활했습니다. 내 친구입니다. 미래의 내 모습이 어떨까 다 궁금증 때문에 예언 기도하는 사람들은 내가 예언해준다고 하고 천국에 갔다 왔다는 둥 별 난리를 하는데 사실 영적 미신도 얼마나 많이 퍼져나가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에 대한 영적 표현들이 본문에 기록되었는데 “일곱 뿔”이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일곱 뿔인가? 뿔은 능력과 권세의 상징으로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모든 동물들은 자기 방어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데 뿔을 가진 동물은 아주 힘이 셉니다. 그래서 시편 18편 2절에 “주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왜 뿔이라고 합니까? 힘입니다. 주님이 나의 힘이라는 것입니다. 한나는 아기를 출산 못해서 아주 무시당했잖아요? 사무엘을 낳았잖아요? 그리고 뭐라고 이야기 합니까? “내 뿔이 높아졌으며” 힘입니다. 그런데 일곱 뿔이면 완전한 힘으로, 더 이상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곱 뿔을 가지신 분이라고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그 다음에 일곱 눈이 나옵니다. 온 세상을 다 살필 수 있는 완전한 눈을 가지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7절에 보면 어린 양 예수가 나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내가 이것을 열겠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운명의 권세를 이양 받았다는 것을 요한계시록이 지금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인류 운명의 주인이 되신 것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28장 1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나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하나님의 권세가 이양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그 다음에 8절, 9절 계속 내려가서 14절까지 천국의 네 생물, 지난번에 모두 말씀드렸죠? 사자와 소와 사람과 독수리! 복음서의 성격, 예수님 사역의 성격, 24 장로 모든 하늘나라의 구원받은 성도 이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예수님 보고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모든 권세가 이양되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좋은 말이 8절에 나오죠?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구약을 읽으시면 해석이 됩니다. 유대인들은 기도를 드릴 때 향을 피우면서 기도했습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피울 때 올라가는 연기가 우리들의 기도이다. 하늘로 올라가라.” 이런 뜻으로 향을 피우면서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금대접에 받치어져서 하늘나라로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 문화가 있습니다. 가장 고귀한 물품을 금으로 주고받습니다. 어느 나라가 제일 부자인가? 금덩어리가 얼마나 있느냐 말입니다. 

저 나라는 금덩어리도 보장이 안 되었는데 종이에다 돈만 찍어냈다면 그 돈은 아무 값어치가 없습니다. 왜 유료화가, 달러가 값이 높으냐? 금이 그만큼 있기 때문입니다. 종이 짝만 만들어내는 나라는 종이 뭐합니까? 금덩어리도 없으면서 저렇게 지폐만 찍어내는 값어치! 거기서는 1달러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1100원 주어야 하잖아요? 그만큼 차이가 납니다. 금덩어리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금이빨도 만들고 금가락지도 만들고 임금님 금관도 있고 솔로몬 성전의 모든 기구는 금으로 하고 믿음은 금보다 더 귀하다가 믿음도 금에 비유하잖아요? 금이 최고의 귀한 물질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최고의 귀한 금 대접에 기도를 담아서 하나님께 드렸다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들의 희망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드리면 천사는 그 기도를 소홀히 가져갈 수 없어서 금 대접에다가 다 담아서 하나님 앞에 “홍길동이 이렇게 기도드렸습니다.” “저 이필재 목사가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합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은 기도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무슨 기도이든지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도 오늘날과 같이 불안 요소가 많이 생길 때가 있고 내 인생도 불안 요소가 생길 때가 있고 어떤 때는 국가 경제도 망가지고 전쟁도 일어나고 다 망가지는 것 같은 미래 불안, 이런 것이 생길 때가 많이 있지요? 요즘에 우리나라가 그런 모습으로 가고 있는 거 같습니다. 

저는 언제나 똑같습니다. “인류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 하나님이 각본 짜신 대로 될 테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이 고유 권한을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주님이 대신 맡았다.” 그 주님께 우리가 열심히 기도를 드리면 대한민국 운명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니까 그가 짜놓으신 온 세상을 살피시는 일곱 눈을 가지시고 한반도를 살피시고 그 힘 있는 일곱 뿔을 가지시고 지켜주시고 운명의 열쇠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열고 닫으시느냐에 따라서 민족 운명이 달려있으니까 오늘 우리는 금 대접에다 기도를 많이 담아서 하늘나라로 보내면 운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한반도뿐만 아니라 이 세계 평화를 하나님이 21세기에 어디로 몰려갈 것인가 이것이 정해진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서 지금 뒤숭숭한 소문이 많이 들리고 요즘에는 이웃집에서 산불만 나도 북한이 로켓 쐈나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하는데, 운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내 운명도, 국가의 운명도, 우리 민족의, 인류의 운명의 열쇠는 하나님이 잡고 계시니까 “하나님 아버지! 21세기 대한민국 교회가 세계 선교를 책임질 수 있도록 이번 기회가 오히려 한반도 평화에 한 운명의 열쇠가 될 수 있는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이게 우리의 기도 제목입니다. 모두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인류 운명의 열쇠는 하나님이 오른손에 쥐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그 오른손에 들려진 하나님의 권세를 유다 지파 다윗의 뿌리 예수 그리스도가 이양 받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운명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만이 이 운명을 알고 오픈하고 그리고 열쇠로 닫고 열수 있는 권세를 가지셨으니 주께서 한반도의 운명을 인도하여 주셔서 가장 선하고 좋은 결과와 수확이 나타나지게 하시옵소서. 우리 각자 개인의 모든 알 수 없는 미래 불안도 주님께서 가장 선하게 인도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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